'분단과 통일' 화두 삼은 역사학자 강만길 명예교수 별세
중고등학생 시절에 읽은 강만길 선생의 <고쳐쓴 한국근현대사> 시리즈는 나의 세계관을 규정하는 책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고쳐쓴 한국근대사>에서 영정조기의 농민이 생산물의 얼마만큼을 수탈당했는지 꼼꼼하게 계산하는 부분이었다. 민중의 입장에서 조선후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그렇게 실감나게 알려주는 글을 처음 읽었었다. 내가 농민의 입장이라면 나의 생산물 중 이만큼을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수탈당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긍정할 수 있을까. 그런 민중의 불만과 압력이 조선후기 체제개혁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었는가를 수탈되는 부분에 대한 계산을 통해 제시하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에게 완전히 매료되어서 수험생활에 바쁜 그때에도 틈틈이 그의 저작들을 찾아 읽으며 밤을 지새웠다. 민족주의 [?] 로 불타던 나의 학창시절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대학교에 가서도 강만길 선생을 신봉하여 그 제자 분들을 쫓아다녔고 하나의 세계관으로 강만길의 민족주의를 받아들였다. 자본주의 맹아론에서부터 조선혁명당과 통일전선, 일제시기 빈민생활사 연구, 좌우합작운동, 여운형에 대한 관심 등에 이르기까지의 광범위한 분야를 넘나드는 그의 연구들을 추적하며 나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민족주의를 받아들였다. 김용섭 선생의 저작들도 그덕분에 알게 되었고 강만길의 오래된 연구물인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 <조선시대 상공업사 연구> 등을 헌책방에서 찾아 읽기도 했다. 사회주의 운동사 연구와 좌우합작운동, 통일전선론 등의 독립운동사 연구에 있어서는 꽤나 강점을 보이지만 오히려 그 본령이 되는 경제사 영역에서는 학부생인데도 불구하고 미진한 부분이 많다 느꼈다. 애당초 제대로 된 이론서가 없는 상태에서 <자본주의 이행논쟁> 등의 입장을 조선사에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의 "맹아"를 다룰 때는 결국 우리가 맹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개념적인 분석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달리 표현하자면 자본주의적 "이윤"의 맹아적 형태를 우리가 무엇이라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윤의 발생 과정을 역사적으로 설명하려면 확실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야 했다. 개인적으로 강만길, 김용섭 등이 그 부분으로 논의를 확장하지 못하고 레닌식의 '두 갈래의 길' 등을 논거로 삼은 게 많이 아쉽게 느껴졌다. 나중에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레닌의 '두 갈래의 길'도 <자본론> 3권에 나와 있는 이행론을 자기 나름대로 전유한 것이었다. '진정으로 혁명적인 길'과 '전前생산관계의 잔재를 제거하지 못한채로 이행한 타협적인 길'이라는 두 갈래의 경로를 레닌은 각각 "아메리카형 경로"와 "프로이센형 경로"로 규정한 것인데, 김용섭과 강만길의 자본주의 맹아론은 이 인식이 빠져 있다. 다시 말해서 조선후기 사회구성체에 대한 규정을 전제로 그것을 아래로부터 제거해나가는 진정으로 혁명적인 경로와 지배계급과의 타협적인 경로 간의 차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적 분석이 빠져 있다.
자본주의 맹아의 형성과 그것의 전개과정(맹아→우클라드→지배적 우클라드→사회구성체)에 대한 분석에 이르지 못하였다. 지주제가 지배적이라 하더라도 다른 다양한 우클라드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존속하며 재생산 조건을 확보하고 있는지, 시전 중심의 독점자본이 무너지고 자유경쟁적인 난전이 활성화되었다면 그것이 전체 우클라드의 전개 속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이 이뤄져야만 했다. 이러한 해명이 부족한 결과 이병천의 후속 연구에 따라 강만길의 연구는 그 빛을 많이 잃게 되었다. 독점체제에서 경쟁체제으로의 이행이 아닌, 하나의 독점체제에서 또다른 독점체제로의 이행이 이뤄졌다는 이병천의 객주 연구 결론은 30여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자본주의 맹아론이 '부조적 수법'을 썼다 비판받는 것도 결국 이론의 부재로 총체적인 분석을 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맑스주의를 좀 잘 공부해서 비판적으로 계승해보고 싶었다. 자본주의 맹아가 무엇인지 더 엄밀하게 규정함으로써 자본주의 이행의 문제를 이론화하고 강만길과 김용섭의 문제의식을 그를 통해 확장할 수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두 분의 입장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민족주의로부터도 멀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민족주의적인 성향은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하다. 마르크스를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계속해서 민족문제를 염두에 두고 체계화를 하는 걸 보면 그렇다. 계급과 민족이라는 두 주체를 어떻게 통합적으로 사고할 것인가? 강만길 선생께서 제 정신세계에 새겨놓은 화두는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내게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길은 곧 내 몸에 새겨진 강만길 선생의 흔적들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아직도 완수하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든다.
선생께서 영면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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