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30

알라딘: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 식민지 조선을 파고든 근대적 감정의 탄생 소래

알라딘: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 식민지 조선을 파고든 근대적 감정의 탄생 
소래섭 (지은이)웅진지식하우스201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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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쪽
148*217mm
385g
ISBN : 9788901122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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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인의 '명랑'은 만들어진 감정이다? 1930년대 식민 통치와 대공황의 여파 속에서 도시 경성에는 '명랑'이란 감정이 이식됐다. 거리 청결에서 '미소 서비스'까지 '대경성 명랑화 프로젝트'는 도시 곳곳을 파고들었다. 가장 우울했던 시대, '만들어진 명랑'의 문화사를 추적하며 오늘과 맞닿아 있는 식민지 청춘들의 비애와 근대적 감정의 이면을 되짚어본다.

책은 근대에 만들어진 '명랑'을 통해 한국 근현대의 감정 문화사를 들여다본다. 그저 '유쾌하고 활발한 기분이나 감정' 정도를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던 명랑에는 우리 역사가 대면해야 했던 식민 통치와 근대 자본주의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요컨대 명랑은 1930년대라는 시대를 지배했던 몇 가지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만들어지거나 발견된 말이었다"라고 밝힌다.

총독부의 '감정 정치'에서 근대 자본주의가 만든 '감정 노동'에 이르기까지, 명랑을 강요한 시대상을 다채롭게 그려낸 책을 통해 우울한 시대를 '명랑하게' 살아낸 식민지 청춘들의 비애와 근대적 감정의 이면을 경험할 수 있다. 더불어 '쿨(cool)'을 외치는 '88만 원 세대'의 또 다른 자화상과 마주할 수 있다.


목차


프롤로그 _ 나는 '명랑'이 수상하다

제1부 명랑의 발견
1장 _ 길고 길었던 명랑화의 시대
2장 _ 여기는 불온 지대, 경성
[명랑한 에피소드] 서울의 눈꼴틀리는 것

제2부 대경성 명랑화 프로젝트
3장 _ 교육 : 두뇌 정화와 모범 인간의 탄생
[명랑한 에피소드] 퇴폐 학생 수난사
4장 _ 대중문화 : 눈물도 단속, 키스도 금지
5장 _ 출세 : 유학에서 치부까지, 이 시대의 ‘스펙’
6장 _ 연애 : 유혹의 기술과 ‘남자 무용론’
[명랑한 에피소드] 남편을 택하는 100가지 비결
7장 _ 여성 : 빌리어드 걸은 미소를 관리하라
[명랑한 에피소드] 인기 점원이 되기까지
8장 _ 스포츠 : 억센 조선, 근대의 심장이 뛴다
[명랑한 에피소드] 경성의 나쁜 남자, 이일

제3부 만들어진 명랑
9장 _ 명랑은 눈물과 어울린다
[명랑한 에피소드] 가을만 있는 세상
10장 _ 명랑을 부정한 명랑주의자

에필로그 _ 88만 원 세대의 감정 포장술

참고문헌
접기


책속에서


P. 42-43 1930년대 들어 갑작스럽게 총독부가 ‘명랑화’를 내세운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경성이 근대적 대도시로 발전하는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1920년대 말 30만 명을 조금 넘던 경성의 인구는 행정구역이 확장된 1930년대 중반에 이르면 70만 명에 육박한다. 짧은 기간에 도시의 규모가 팽창하다 보니 주택, 보건 위생, 치안, 교통 등에서 문젯거리가 속출했고, 총독부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도시 명랑화’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접기
P. 70 이런 말들을 보면 총독부가 ‘명랑화’를 내세운 두 번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즉, 이 시기 총독부가 내세운 ‘명랑’은 ‘건전’의 동의어로서 체제에 저항하는 것들을 억압하고 체제가 요구하는 인간만을 양성하는 규율 담론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명랑’은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을 드러내는 표현을 넘어 ‘좋은 것’을 의미하는 절대적 윤리가 되었다. 접기
P. 163-164 당시 활동했던 ‘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서비스 직종에서 일했던 ‘걸’들이 가장 힘겨워했던 것은 ‘기계적 친절미’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까다롭게 굴거나 희롱을 일삼는 손님 앞에서도 항상 미소와 친절을 잃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중략) 1930년대의 ‘걸’들이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친절을 가장하는 데 어려워했던 것은 이 시기가 이 땅에서 ‘감정의 근대화’가 시작된 초창기였기 때문이다. 접기
P. 244-245 1930년대가 명랑의 열기로 달아올랐던 것도 그 시대가 더 많은 ‘포장의 기술’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나날이 늘어가는 우울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명랑이라는 포장을 겹겹이 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중략) 그러므로 이제 “명랑은 웃음과 어울린다”는 이 글의 첫 문장은 수정할 필요가 있겠다. 명랑은 눈물과 어울린다. 그것이 1930년대부터 생겨난 현대적인 우울과 현대적인 명랑의 독특한 성격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다. 접기


추천글
역사적으로 우울은 ‘현실’ 그 자체이며, ‘명랑’은 그에 맞서기 위한 환각제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 책은 감정 정치라는 새로운 역사학적ㆍ문화학적 주제를 다루었다. 이로써 문화정치나 망탈리테사 연구의 지평은 또 한 걸음 나아간 셈이다. 감정 정치에 대한 저자의 역사적 성찰은 오늘날의 감정 정치와 ‘감성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도 상당히 유용하다.
-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자살론》 저자)

익숙하지만, 한 번도 고민하지 못했던 ‘명랑’이란 단어로 한국 근현대의 감정 문화사를 날카롭게 추적했다. 소래섭의 글을 통해, 우리는 식민지 현실과 근대 자본주의가 빚어 놓은 부자연스럽고도 서글픈 감정의 근대사와 만나게 된다. ‘명랑’의 이면에 자리 잡은 어느 모던 걸의 우울이 ‘88만 원 세대’의 한숨과 오버랩되는 순간, 근대 경성은 역사가 아닌 현실이 된다!
- 전봉관 (KAIST 인문사회과학과 교수, 《경성기담》의 저자)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1년 5월 14일 교양 새책
조선일보
- 조선일보 Books 북Zine 2011년 5월 14일자
중앙일보
- 중앙일보(조인스닷컴) 2011년 5월 14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소래섭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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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 현대시를 전공했다. 서울대학교, 카이스트, 가톨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고 현재는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백석의 맛』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시는 노래처럼』 『백석,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 공저로 『18세기의 맛』 등이 있다.

최근작 : <우리 앞에 시적인 순간>,<아산, 그 새로운 울림 : 미래를 위한 성찰 세트 - 전4권 (보급판)>,<얼과 꿈 (보급판)> … 총 2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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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이렇게 살면 큰일 나는 줄 알았지>,<요즘 팀장의 오답 노트>,<누구도 나를 파괴할 수 없다>등 총 288종
대표분야 : 철학 일반 1위 (브랜드 지수 235,460점), 심리학/정신분석학 2위 (브랜드 지수 437,625점), 경제학/경제일반 5위 (브랜드 지수 302,03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인의 ‘명랑’은 만들어진 감정이다?
1990년 당시 집권당인 민주자유당의 박준규 국회의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의장의 역할에 대해 “정치 풍토의 명랑화”라고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24년 전인 1966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은 새해를 맞아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조국 근대화의 과정으로서 “명랑한 사회의 건설”을 당부한 바 있다. 그리고 다시 1930년대 조선총독부는 “도시 경성의 명랑화”를 식민 통치의 필수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처럼 ‘명랑’ 혹은 ‘명랑화’라는 말은 1930년대 조선총독부에 의해 표현의 홍수를 이루다가 1990년대에 들어 급격하게 종적을 감춘 단어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명랑의 의미와 그 시절의 명랑의 의미는 같지가 않다. 총독부에서 해방 이후의 권력까지, 그들은 왜 명랑이란 감정을 사용하고 선전했을까? 어딘지 수상한 냄새를 풍기는 명랑이란 감정을 추적한 신간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는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 책이다.
이 책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는 근대에 만들어진 ‘명랑’을 통해 한국 근현대의 감정 문화사를 들여다본다. 그저 ‘유쾌하고 활발한 기분이나 감정’ 정도를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던 명랑에는 우리 역사가 대면해야 했던 식민 통치와 근대 자본주의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저자인 소래섭 교수는 서문에서 “요컨대 명랑은 1930년대라는 시대를 지배했던 몇 가지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만들어지거나 발견된’ 말이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총독부의 ‘감정 정치’에서 근대 자본주의가 만든 ‘감정 노동’에 이르기까지, 명랑을 강요한 시대상을 다채롭게 그려낸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우울한 시대를 ‘명랑하게’ 살아낸 식민지 청춘들의 비애와 근대적 감정의 이면을 경험하게 된다. 더불어 ‘쿨(cool)’을 외치는 ‘88만 원 세대’의 또 다른 자화상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명랑’을 추적하다: 명랑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우선 ‘명랑’의 의미부터 생각해 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명랑(明朗)’은 “1)흐린 데 없이 밝고 환함, 2)유쾌하고 활발함”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즉, 첫 번째는 날씨를 표현하는 경우를 말하고, 두 번째 의미는 사람의 성격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첫 번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두 번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고문헌을 비롯한 1930년대 이전의 자료에는 명랑이 두 번째 의미로 사용된 용례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저자는 “1930년대 이전까지의 ‘명랑’은 날씨 상태를 설명하는 단어였으나, 지금처럼 감정이나 성격을 묘사하는 단어로 의미가 변한 것은 일본 식민 통치의 영향 때문”이라고 본다. 실제로 명랑은 한자어로, 당나라 때 문헌인 《진서》 등에서 용례를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된 말로 보인다. 그런데 일본으로 넘어와 ‘명랑’은 밝은 성격이나 감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고, 결국 이것이 식민 통치 기간을 거치면서 우리말의 의미를 지금처럼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건 도덕적 정당성이나 권위를 확보하지 못한 권력은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 체제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하려고 시도한다. 박정희 정권과 신군부 세력에게, 그리고 총독부에게 ‘명랑’은 근대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약화된 정치적 기반을 복구하려는 정치적 레토릭이 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명랑 운동회’, ‘범도민 생활 명랑화 운동’ 등의 명랑화는 이제부터 살펴볼 조선총독부의 명랑화 운동의 연장이라고 보아도 크게 무리가 아니다.
1930년대 조선총독부는 대대적인 ‘대경성 명랑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먼저 경성에 오물과 악취로 위생 문제가 대두하자 ‘조선오물소제령’이 내려졌고, 거리 치안을 위해 걸인 2만 5000명을 퇴치하겠다는 대대적인 계획도 발표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총독부의 ‘감정 정치’는 교육과 대중문화, 스포츠 전반으로 확장된다. 당시 명랑의 반의어로 통용되던 ‘저급, 퇴폐, 침울, 불온’한 영역에 총독부의 손길이 섬세하게 닿기 시작했다.

1930년대식 모범 인간 만들기: 두뇌 정화에서 키스 금지까지
총독부는 조선의 모든 학생들을 ‘모범 인간’으로 양성하기 위해, 신문·잡지·음반·영화 등 각종 매체와 오락물에 대한 검열과 통제를 강화해나갔다. 전쟁 수행에 방해가 되는 향락적인 것에는 퇴폐적이고 난잡하다는 이유로 불온이란 딱지를 붙여나갔다.
중일전쟁이 한참일 무렵 부임한 제7대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는 조선인의 ‘두뇌 명랑화’ 작업에 열중했다. 일본 제국주의에 복종하는 황국신민을 기르기 위한 총독의 작업은 언뜻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말한 판옵티콘(Panopticon)을 연상케 한다. 커다란 눈의 형상이 인상적인 당시의 안약광고(본문 71쪽)가 상징하듯이, 당시 총독부는 각종 매체와 오락물에 대한 감시의 눈길을 사방으로 뻗치고 있었다. 교육 일선에서도 ‘명랑한 학생 만들기’가 이루어졌다. 우선 학적부를 개정하고, 내신제를 도입했다. 현재의 학교생활기록부도 따지고 보면, 이 시대에 만들어진 학적부의 유산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언행일치의 명랑한 인격’을 양성하라는 총독의 요구가 관철되었다.
학교를 벗어난 한편에서는 대중매체에 대한 검열과 통제가 이루어졌다. 학교교육을 통해 ‘모범’을 규정했던 것처럼, 일제는 신문, 잡지, 서적, 영화 등의 매체를 통해 건전과 명랑이라는 이름의 모범을 전파했다. 총독부의 취지에 동참해, 1938년 《조선일보》는 ‘유행가 현상 모집’을 실시하기도 했다.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유행가가 모두 퇴폐적이고 저속하므로, 대중의 고상한 정서를 고양할 명랑한 가사를 모집하겠다는 것이 공모의 취지였다.
음반과 함께 대중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던 영화도 검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서양 영화배우들의 키스 장면은 ‘풍기 괴란’을 이유로 예외 없이 삭제 당했다. 당시 총독부에게 키스는 명랑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검열이 심해질수록 키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지대해졌지만 ‘불온’의 딱지가 붙은 모든 것들은 퇴출되었고, 총독부식 ‘모범 인간 만들기’는 갈수록 활기를 띄었다.

조선 최초의 감정노동자들: “빌리어드 걸은 미소를 관리하라!”
이 시기의 총독부와 함께 명랑 열풍을 지배한 또 다른 축은 근대 자본주의였다. 자본주의의 심화 속에서 대공황이 몰고 온 유례없는 불황은 출세와 치부(致富)에 대한 남성들의 욕망을 자극했고, 미소를 파는 온갖 ‘걸’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당시의 걸들은 “신경을 잃어버린 기계처럼”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면서 명랑을 연출하는 조선 최초의 감정노동자들이었던 셈이다.
1930년대 급격히 증가한 걸들은 스틱 걸(산보를 즐기는 남자를 부축해주는 여성), 매니큐어 걸(네일아트하는 여성), 데파트 걸(백화점 여점원), 엘리베이터 걸(엘리베이터 여성 안내원), 가솔린 걸(여성 주유원), 티켓걸(극장 매표원), 빌리어드 걸(당구장에서 손님과 함께 게임을 하거나 점수를 세는 여성), 할로 걸(전화교환수), 버스 걸(버스 안내양)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이들은 남성들도 직업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취업 전선에 나선 근대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화려한 용모와 미소로 ‘자본주의의 꽃’이 된 주인공들이기도 했다.
당시의 직업여성들은 명랑이라는 근대적 감정을 내세워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미덕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명랑한 얼굴’을 위한 ‘도회적 화장법’도 그들의 필수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한 언론은 “인기 점원이 되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애교 제일, 냉소는 금물 등의 요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180-183쪽 참고)
이처럼 명랑은 강압적 통제를 정당화하려는 총독부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감정의 근대화 과정에서 새롭게 강조된 감정 중 하나였다. 이러한 명랑의 압력 속에 ‘걸’들은 이중고를 겪었다. 직장에 나가면 누구에게나 명랑해야 했고, 가정에 돌아오면 아무에게나 명랑하다는 이유로 남편의 의심을 받았다. 근대 자본주의가 파고든 자리엔 이처럼 감정노동자들의 비애가 싹텄던 것이다.

감정은 누구의 것인가: 슬픈 조선에서 ‘88만 원 세대’의 우울을 발견하다
총독부와 근대 자본주의가 강요한 명랑이란 용어의 홍수 속에서 1930년대는 웃음이 넘쳐난 시대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대다수의 지식인과 예술가, 학생과 노동자들은 우울에 젖어갔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은 청년 실업으로 이어져, 수많은 인텔리 지식인이 거리의 룸펜으로 전락했다. 이른바 ‘룸펜의 시대’였다. 이렇게 태어난 ‘눈칫밥 룸펜’들은 골방에 처박히거나, 다방으로 모여들어 우울을 소비하고 초라한 자의식을 확인했다. 당시 다방은 멍하니 앉아 교양과 고민이 있는 체하는 예술가들의 집합소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이 시대가 명랑의 열기로 달아올랐던 것은 더 많은 ‘포장의 기술’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나날이 늘어가는 우울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명랑이라는 포장을 겹겹이 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마치 지금의 ‘88만 원 세대’처럼 말이다. 1930년대의 엄홍섭은 그의 소설에서 이 시대의 명랑과 우울의 감정을 여성으로 의인화해 당시 청춘들의 정서를 대변한 바 있다. “명랑 양은 현대인에게 추파를 던지는 매소부(賣笑婦)의 전형”이라고 말이다. 명랑이라는 감정을 매소부, 즉 매춘부에 비유한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명랑 양’의 유혹을 저버리고 결국 ‘우울 양’이 건네는 침묵과 손을 잡는다.
그러고 보면 당시의 눈칫밥 룸펜 세대는 오늘날의 88만 원 세대와 많이 닮아 있다.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우울을 느끼는 계층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지만, 문명의 급격한 변화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그 변화의 선상에 꿈 많고 힘없는 지금의 88만 원 세대가 놓여 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1930년대의 ‘명랑화’는 2010년대의 ‘행복화’와 ‘쿨’이라는 레토릭으로 대체되었는지 모른다. 특히 21세기의 문화를 대변하는 코드가 된 ‘쿨한’ 감성은 실업률이 높아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진 시대의 산물이라는 분석이 많다. 결국 88만 원 세대의 ‘쿨’은 1930년대의 ‘명랑 가면’, 즉 감정 포장술의 21세기 버전인 셈이다.

명랑을 부정한 명랑주의자: 김기림의 ‘제3의 명랑론’
식민지 조선인 대부분이 우울과 명랑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시절, 시인 김기림은 명랑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제 병합 이후, 조선인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스스로를 ‘슬픈 민족’이라 규정해왔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한 많은 민족’이었다. 그런데 김기림은 이러한 “슬픔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감정을 배제한 “이성으로서의 명랑”을 강조했다. 이때의 명랑은 총독부나 근대 자본주의가 말하던 명랑과 차원이 다른 명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기림은 명랑해지라고 외친 ‘명랑주의자’인 동시에, 당대의 명랑은 부정했던 ‘반(反) 명랑주의자’이기도 했다.
김기림은 여러 편의 글에서 ‘명랑’을 즐겨 사용했다. 그런데 김기림이 말한 명랑은 도달해야 할 최종 목표가 아니라, 지성이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나 ‘배후의 감정’에 가까웠다. 그가 주창한 모더니즘도 눈물로 얼룩진 1920년대의 문학을 극복할 대안이었다. 결국 김기림의 ‘명랑론’은 수상했던 1930년대의 ‘명랑 열풍’에 맞서, 조선을 슬픔에서 건져내 새로운 시대에 도전하게 하려는 야심 찬 기획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비록 불발로 끝나버렸지만 말이다.
여전히 총독부나 자본주의가 강요했던 명랑은 얼굴을 바꿔가며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행복’을 갈망하고, ‘쿨’한 감정 포장을 미덕이라 요구하는 세상을 사는, 2010년대의 한국인에게 1930년대의 김기림은 “이제라도 내 감정의 주인이 되어라”라고 말하고 있다. 흔적으로만 남은 김기림의 사유가 우리에게 유효한 것은 이러한 주체적인 감정의 자각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1930년대의 수많은 문헌을 뒤적이며 복원해낸 ‘만들어진 명랑’의 문화사는 김기림이 주창한 ‘제3의 명랑론’으로 인해 역사와 더불어 현실이 되는지도 모른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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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이의 과거를 철처히 캐묻다!!
블루데이지 2011-06-3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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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 명량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본 경험이 생각나게 하는 책이었다.
거북이 2015-05-1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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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근대화가 시작된 20세기
초반의 경성에 대한 가벼운 견학문입니다. 아직까지도 이 때 형성된 문화와 가치관이 상당히 잔존하고 있음을 알수있습니다. 역시 겉으로 드러나는 의복이나 주거등은 쉽게 바뀌어도 드러나지 않는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은 바뀌지 않습니다.
석천 2014-01-0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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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이 본래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그리고 1930년대를 전후로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Horn 2016-08-0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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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우리의 서울은 어떠했는지 사회문화적으로 알 수 있는 책 ^^
햄톨이 2014-01-0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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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피스트걸과 망할 놈의 명랑



나의 생활기록부에는 항상 이런 말이 있었다. "매사에 밝고 명랑하며..." 웃는 얼굴밖에 별로 칭찬할 것이 없었던 아이에게 쓰일 수 있는 문구다. 나는 한편, 울보라는 별명이 있었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명랑어둠소녀'였었다. 책을 보니 내가 명랑할 수 있는 이유는 자주 울어서 였구나. 나는 외롭고 슬프면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댔다.




엄마 욕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감정포장을 교육받았다. "'여자는' 항상 웃고 다녀야 돼.. 웃어야 남들한테 예쁨 받고... 웃지 않는 얼굴에는 침을 뱉을 수 있으며....어쩌고 저쩌고......." 웃는 얼굴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했던 엄마는 나를 걸핏하면 울고 웃는 애로 만들었다. (하지만 언니는 안 그랬던 걸 보니 딱히 내가 피해자라고 주장하기는 좀 그렇다.)




구직을 하고 회사를 들어오면서 깨달았다. 학교나 대외활동 경험같이 내가 얻은 것보다 타고난 것이나 잘 포장된 것이 중요하단 사실을. 물론 '어마 무지막지하게' 대단한 일이라면 조금은 사정이 달랐겠지만. 몇 달간의 백수 시간에서 온 마음 고생으로 나는 다행이도 바짝 말라있었고 엄마의 맹목적인 '미소' 교육 덕에 면접에서 효과는 있었다. 결국 여자의 능력과 자기관리란 몸매관리, 피부관리, 상냥한 태도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걸 재확인하고 사회의 쓴 맛에 입을 쩝쩝 했다.




1930년대 경성. 최초의 근대화된 도시로 한 때 뻑하면 드라마와 소설의 단골 배경으로 채택되었다. 나 역시 관심이 많아 이런 저런 책을 몇 권 뒤져봤다. 30년 대 신문광고로 본 세상만사(?), 여자의 몸이 부각되기 시작한 30년대의 몸 담론... 그리고 망할 놈의 '명랑'까지.




급격한 도시화 때문인지 경성 이후로 반백년이 훌쩍 넘은 지금의 서울은 실상 무척 위태롭다. 맞벌이에 아파트만 줄곧 살았던 나는 방송에서 말하는 '한국인의 정'이라는 것의 존재를 본 적도 피부로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황폐한 도시생활에 이미 익숙해서 곳곳에서 들리는 안 좋은 뉴스에도 그럴 법하다.. 고 넘겨버린다. 오히려 도시 평화에 힘쓰는 이들이 아직도 있음에 놀라는, 매정하고 꼰대님들께 자주 회자되는 네가지 없는 젊은이다.




그래서 30년대 경성을 살아온 분들은 어떻게 젊은 시대를 나셨나 했더니.. 요즘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더 멜랑꼴리함에 빠지고 '룸펜'이라고 하는 고학력 실업자들의 사정은 더 심했다. 인생을 요령껏 살기에 몰두하며 돈을 버는 법과 이성을 꼬시는 법을 알고 싶어한다. 돈을 버는 방법도 비슷하다. 빈대짓, 짠돌이짓, 채권을 사라느니... 한탕을 노리라느니. 이런 남자를 만나고 저런 남자는 피하라느니. 지금 보면 황당해서 웃긴 것도 있고 더 정확한 것도 있는 거 같다.




그리고 갑자기 들어친 근대화로 백화점과 카페의 등장, 그 전과 다른 서비스를 맛 보면서 요즘과 같은 진상도 탄생하게 된다.




당시에는 엘레베이터 걸, 데파트 걸, 버스 걸, 가솔린 걸 같은 단순 서비스직 여성이 생겨났고 '걸'들을 고용한 이유인 감정노동자도 이 때 탄생하게 된다. '걸'에게 요구하는 건 이거였다. "(예쁜 얼굴로) 명랑하라."




'걸'로서 돈을 벌 수 있는 이들이 한정됐던 까닭에 여성들의 외모는 출중해서 그만큼 껄떡껄떡하는 사람도 많았나 보다. 어떤 걸은 이렇게 토로했다. "사람이 진땀이 나도록 물건을 뒤져보고 그대로 휙 돌아서며, 좀 흘기면 애교 없다고 시비하시는 손님은 깊이 반성해주셨스면 좋겠습니다." p. 157




서비스업에 있는 사람답게 당부도 어쩜 이렇게 예쁘게 하는지.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진상들의 만행이 눈 앞에 바로 그려진다는 게 슬픈 일이다. (왜 반백년이 지난 지금도 손님들의 재수탱이 '갑질'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인가..)




일제시대 서울의 이름 경성. 경성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근대'시작의 시작으로 생겨난 도쿄와 아주 비슷한 이 도시의 존재는 '현대' 서울과 차이점이 거의 없다는 게 놀라웠다. 30년대에의 '걸'들은 전국적으로 고작 10-20%의 꽤 선택받은 여성들이자 야만적인 시대의 희생양이기도 했다. '걸'에게 강요되었던 '명랑'의 감정은 조선총독부의 '감정 정치'에서 온 것이다. 감정을 꾸며내서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기운을 전염시켜야 한다는 요지인데... 식민지 시대가 언제 끝났는데 아직도 명랑을 요구하는 것인지.




요즘의 감정노동자도 그 때 보다 덜 힘들까. 그렇지 않다. 스튜어디스, 연예인, 점원 그리고 타이피스트 걸인 나...는 입사 직후처럼 명랑하지 않다고 욕을 들어먹으니까 말이다.(사장 할아버지.. 내 친구들 사이에서 이미 엄청 유명하다.) 그리하여 이 망할 놈의 '명랑'에 혹사당하지 않기 위해 곧 회사를 떠난다. 바이 짜이찌엔.






* 사족 1 : 스펙 만능 주의와 이 나라에서 잘 나가려면 필요한 능력은 아직도 비슷하다. 예를 들면 1.영어를 배울 것(미국가서 3~4년 있다오라) 2.기자와 교제를 하면서 정보를 얻을 것 3. 무슨 집회든지 발기인에 들 것 4. 남 앞에서는 반드시 사회와 민족을 논하라....




* 사족 2 : 옛날부터 남여 서로 물어뜯는 건 비슷했다. '남자 무용론'에 반박하는 '여자 무용론'까지. 그러면서 속으론 이성의 애정을 얻고 싶어서 비법을 공유하고 연애를 못하는 사람들을 마구 비웃는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져서 조금 변한 것도 있지만 30년대 소위 연애 좀 해봤다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비법은 제법 수긍이 갈 만한 것도 있다.




담화는 상대자의 칭찬으로 일관할 것/ 남자는 우스운 이야기를 해서 여자를 웃게 하고, 여자는 서러운 이야기를 해서 남자를 쫄쫄 울게 할 것(뒤에는 모르겠다.)/ 어느 기회를 타서든지 자기의 특수 재질을 보여줄 일/ 피아노 계약을 즉석에 맺을 일(부를 과시한다.)/ 화장품을 사줄일




1920년대에 동아일보에 '남편을 택하는 100가지 비결이라는 기사가 실렸다는데 48개 까지로 연재가 중단 되었다. 그럼에도 공감가는 것이 있었다.




3번. 여자같이 얌전한 남자와 결혼하지 마라. 그런 남자가 아내를 곱게 다룰 것이라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 남자는 늘 아내를 박박 긁고 괴롭힌다.




12번. 재산이 넉넉하더라도 직업이 없는 남자와 결혼하지 마라. 남자는 한가해지면 술, 담배, 여자만을 생각한다.




13번. 여자보다 못 배운 남자가 여자 말을 잘 들을 것이라 생각하고 결혼하지 마라. 그런 남자는 지식으로 여자를 못 누르면 주먹으로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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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쥐의 독서일기 2014-06-11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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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을 잃어버린 권력의 선택-포장된 감정 이식



도덕성을 잃어버린 권력의 선택-포장된 감정 이식
날마다 신조어가 생겨내는 세상이다. 이런 세태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은 낫선 의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일쑤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말들 중에서 새로운 세대들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 있다는 것에는 그리 주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사용하는 말의 의미가 전도되거나 확장 내지는 축소되기도 하여 언어의 소통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지만은 않다.

또한, 특정한 세력에 의해 목적의식적으로 강요된 단어가 있다. 이는 우리 정치 현실에서 피부로 느꼈던 현실의 문제이기에 그리 낫선 일은 아니다. ‘공산주의’라는 말이 ‘자본주의’의 대립적인 말임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의 반대개념으로 사용되면서 정치적 목적에 의해 사상의 자유를 말살하는 정치적 의도로 사용된 것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의 저자 소래섭이 주목하는 단어는 바로 ‘명랑’이라 것이다. 주목하는 대상의 상태를 표현하는 의미가 더 넓게 사용되던 말이 사람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 의미가 바뀌면서 강요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려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사용된 역사적 현실에 대한 검증을 하고 있다. 저자가 ‘명랑’이라는 단어를 통해 주목하는 시대는 1930년대인 일제 침략기 조선의 경성이었다.

식민지의 암울했던 시기는 민족적 감정이 발로되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또한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는 세력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신문화가 확산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는 1930년대 식민 통치와 대공황의 여파 속에서 도시 경성에는 ‘명랑’이라고 하는 특정한 감정이 총독부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강요되었다는 것이다. 총독부는 거리 청결에서 미소 서비스까지 ‘대경성명랑화프로젝트’를 실시하며 도시 곳곳을 파고들었다. 사상검열은 신문, 잡지, 음반, 영화 등의 사회 전반적 분야에서 의도적인 보급이나 변화되어가는 사회의 흐름을 특정한 방향으로 끌어가려는 군국주의적 의도가 다분히 내포된 사실을 말해준다.

이렇게 일제 총독부에 의해 사람들의 감정을 변화시키려는 정책은 군국주의 일본의 정치적 의도에 부합하는 사회와 사람들을 양산하기 위한 계산된 정책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명랑이라는 단어의 뜻이 ‘유쾌하고 활발한 기분이나 감정’ 정도를 가리키는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가 대면해야 했던 식민 통치와 근대 자본주의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고 파악한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저자는 1930년대 일제 침략기의 조선 사회를 중심적으로 살피면서도 그것에서 멈추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군부독재 시절로 대표되는 박정희 정권이후 정부의 목적의식에 의해 펼쳐졌던 사상의 통제정책이나 뒤쳐진 산업사회의 겉모습을 바꿈으로써 사람들의 감정을 변화시키려 했던 다양한 정책에 대해서도 살피고 있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명랑운동회’나 ‘범도민 생활 명랑화 운동’ 등에서 보이는 ‘명랑화’가 어떤 목적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그것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까지를 살피고 있다.

“1930년대의 ‘명랑화’는 2010년대의 ‘행복화’와 ‘쿨’이라는 레토릭으로 대체되었는지 모른다. 특히 21세기의 문화를 대변하는 코드가 된 ‘쿨한’ 감성은 실업률이 높아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진 시대의 산물이라는 분석이 많다. 결국 88만 원 세대의 ‘쿨’은 1930년대의 ‘명랑 가면’, 즉 감정 포장술의 21세기 버전인 셈이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밝힌 말이다. 특정한 세력이나 권력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진행되는 정책들은 결국 도덕적 정당성 확보에 실패한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일반적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지난 역사의 사실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서도 자행되고 있는 것이며 사람들이 이렇게 ‘포장된 감정’에 의지할 때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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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無盡 2011-06-14 공감(3)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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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명랑’의 사전적 뜻은 ‘1.흐린 데 없이 밝고 환하다. 2. 유쾌하고 활발하다.’이다. 한데 날씨가 명랑하다, 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 걸로 보아 요즘에는 2번 뜻인 유쾌하고 활발하다, 의 의미로 정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나는 명랑이란 말을 좋아한다. 안부 문자를 보낼 때 습관적으로 ‘명랑, 상큼, 발랄’이라는 말을 자주 쓰기도 한다. 이때의 명랑도 당연히 유쾌하고 활발하다, 의 의미인 것은 자명하다.





한데 책 한 권 덕에 이 말에 대한 색다른 의미를 새길 기회가 생겼다. 작가 소래섭 강연을 들은 후였다. 어떻게 하면 시를 노래처럼, 노래를 시처럼 가까이 대할 수 있을까에 대해 청소년들을 상대로 연 인문학 강좌였다. 학생들 못지않게 일반인들에게도 유익한 강연이었다.





일제강점기 때의 문학 전반이나 사회상에 관심이 많은 학자로 보이는 그의 몇몇 저서 중 단연 관심 가는 것은 것은『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이다. 당장 빌렸다. 한마디로 ‘명랑’에 관한 의미를 다시 짚어보게 하는 책이다. 작가에 의하면 적어도 일제강점기 때의 ‘명랑’이라는 낱말은 지금의 ‘유쾌하고 활발하다’라는 의미와는 좀 더 다른 의미로 쓰였다. 아마 오늘날의 ‘건전’, ‘모범’ 등의 단어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 갈수록 그 숨은 뜻은 ‘체제에 길들임’, ‘불온함을 용납 못함’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통치 권력 입맛에 맞게 문화 시민으로 길들여지는 상태를 ‘명랑’이란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던 것이다.



보건, 위생, 치안 등 당시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총독부는 ‘도시 명랑화’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사람의 교양에서부터 도시 문화 전반에 이르기까지 관에서 통제하겠다는 의도였다. 기준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들을 퇴치하는 것이 경성 명랑화의 주된 모토였다. 따라서 명랑의 반대말은 ‘음탕, 불결, 범죄’ 등이 될 수 있었다. 명랑한 것이 아니면 모두 없애야 할 것들이었다. 거리 방역사업에 몰두하고, 분뇨 정비 사업을 벌였으며, 이만 명이 넘는 걸인 퇴치에 사활을 걸었다. 사회 운동으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체제 순응적 모범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로 나아갈 수 있었다. 체제 순응적 학생을 만들고, 대중매체를 통제했으며, 불온한 행위는 퇴출시켰다. 불온한(?) 경성 전체가 명랑화 사업에 동원된 것이다.





강요된 건전과 부자연스런 절제가 ‘명랑’이란 말로 포장되었던 당시 사회 의식이 오늘날에도 완전히 고리를 끊었다고는 할 수 없다. 경성의 불온함을 명랑하게 만들고자 했던 것처럼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개별자의 건전한 불온조차 허락하지 않는 경직된 사회 구조이다. 프랑스와즈 사강이 말했던가. 사회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통제를 위한 명랑이 아니라 개방을 위한 명랑일 때 ‘명랑’이란 말의 가장 밀도 높은 진정성이 담보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명랑이란 말이 그다지 명랑하게 쓰이지 않는다는 이 씁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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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2-11-25 공감(3)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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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대국민 명랑화



통감정치, 무단정치, 문화정치 등등 일본의 무수한 제국주의 통치와 식민지 통치 정책은 들어 봤어도 이 책을 알기 전까지 감정정치 내지 통치는 처음 들어 보았다.
일제의 식민지 시대에 나라를 잃은 서러움만을도 충분히 힘들고 고단했을 한국인들이 이젠 하다하다 감정까지 통제 받았다니 참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과 함께 치밀하다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제목만 보면 대단히 긍정적인 책 같다.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얼마나 긍정적이고 명랑(?)한가 말이다.
하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민지 시대 일본의 제국주의가 거의 멸망을 앞두고 조선에 대한 지배와 통치가 극에 달한 시점이기도 하다.
그러한 시기에 도대체 누가 명랑할 수 있겠는가?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 명랑이라는 의미는 과연 그 시대에 어떤 의미로 쓰였던 것일까?
그럼 명랑 먼저 그 의미부터 파악해 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명랑(明朗)'은
(1) 흐린 데 없이 밝고 환함.
(2) 유쾌하고 활발함.
이라는 두가지의 의미로 사용된다.(p.41)
흔히 요즘 사용되는 명랑의 의미는 두번째인 경우가 많다.
이처럼 한 단어도 시대나 사회적 상황에 따라 그 의미는 확연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떤 의미에서 이 명랑이란 단어를 통해 우리 민족을 지배하려고 했을까?
그 당시 일본이 생각한 명랑은 '저급, 퇴폐, 난잡, 침울, 불온' 등과 같은 의미와 일맥상통한다고 봐도 괜찮을 것이다.
즉, 일본은 우리 민족의 불온한 요소들을 모두 제거함으로써 일본에 충성하고, 자신들의 지배에 수월한 모범시민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암암리에 우리 민족의 정신과 육체를 명랑화하고, 우리의 주변 환경을 명랑화 한다는 명목으로 감정통치를 했던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일제의 대국민 명랑화 정책과 관련된 다양한 시책에 대한 당시의 신문기사 자료가 등장한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역시나 그 당시의 언론이라는 것이 권력앞에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이 권력으로 부터 독립을 지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던 가 보다.
아무튼 그 당시의 시대상과 일제의 통치 전략을 볼 수 있는 기사는 글과 함께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다.
그 당시의 모습을 알게 해주는 귀한 자료라 할 수 있겠다.

책을 보면서 참 재밌었던 것은 그 당시에도 신문사의 경품 당첨이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 처럼 독자 공모를 통한 것들도 상당히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경품 당첨이 공정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눈을 가린 소녀가 추첨하는 사진이 신문이 실려 있다.

불온한 시대에 명랑하지 못한 우리 민족을 위해(?) 명랑화 작업을 대대적으로 시행하다니 대단한 조치이다. 하지만 '오늘부터 명랑해라' 라고 한다고 해서 기분이 명랑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명랑하지 못한 시대가 부각되는 조치가 아니였을까?
명랑이라는 감정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이 마저도 우리 민족의 통치의 수단의 한 방안이였단 것을 생각한다면 참 씁쓸해지는 사건이다.
불온한 시대, 그 감정마저도 통치 받아야 했던 일제의 대국민 명랑화 운동이 헛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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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zahbs 2011-09-1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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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감정의 주인이 되는 자들의 것이다




‘식민지 조선을 파고든 근대적 감정의 탄생’이라는 부제를 단 <볼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는 우리 사회에 슬그머니 스며든 ‘명랑(明朗)’이란 감정의 정체를 뒤쫓은 울산대학교 소래섭교수의 문화사적 탐정놀이라고 읽었습니다.



프롤로그를 통하여 저자가 <명랑운동회>라는 TV오락프로그램을 인용하고 있어 꽤나 친근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제가 명랑운동회를 즐겨보던 시절의 나이와 비교해보면 조숙했을지도 모를 나이에 즐겨보았던 모양입니다. 어떻거나 저 역시 ‘명랑’하면 <명랑운동회>가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후배의 학위논문의 초고를 읽다가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명랑’의 정체를 뒤쫓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근래 들어 ‘명랑’이란 화두를 들어본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제1장에서는 ‘명랑’이 우리의 뇌리에 기억되기까지의 역사를 뒤쫓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명랑’은 백성의 눈을 가려 현혹하려는 통치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근래 마지막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제5공화국이었고, 그 앞에 자주 인용되었던 것이 제3공화국, 그리고 거슬러 결국은 일제 강점기에 식민통치의 문화적 접근방안으로 강요된 것이 처음이라는 근원에 도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억압된 사회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명랑’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경주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사회에 특정정서가 자리를 잡는데 힘으로만 눌러서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제강점기를 되돌아보면 민족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나아가 경제적 측면에서도 조선의 백성들은 우울한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음에도 일제가 던져준 ‘명랑’이란 화두가 그런대로 먹혀들어갔었던 모양입니다.



우리 사회에 명랑이란 말이 자리 잡게 되는 과정에 세 가지 요인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저자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요인은 처음 시발점이 되었던 조선총독부의 ‘감성정치’, 두 번째 요인인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자본주의적 근대화과정의 요소로서의 ‘감정관리’ 그리고 세 번째 요인은 김기림이 간파한 ‘배후의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각각의 요소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을 해보면, 조선총독부가 통치수단으로서 명랑을 강요한 것은 식민지화에 대한 조선백성들의 열패감, 경제적 수탈 및 부를 창출한 수단을 빼앗긴 절망감 등으로 바닥까지 가라앉은 조선백성들의 감정곡선을 끌어올려 일제가 예정하고 있는 전쟁수행의 장애요인을 사전에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농업을 비롯한 일차 산업중심 경제구조를 가진 조선사회가 유통에 중점을 둔 상업중심의 자본주의적 경제구조로 전환되면서 감정서비스의 필요성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김기림을 인용한 ‘배후의 감정’이란 ‘명랑’이란 가면 뒤에 숨어 있는 본디의 의도를 깨부수기 위한 배후의 감정으로서 ‘명랑’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식인들이 간파해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래섭교수를 따라서 ‘명랑’에 숨어 있는 이러한 의미들을 뒤쫓다보니 상당기간이 일제 강점기간에 조선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사회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화두가 되는 위생문제에 관해서도 정말 경성거리가 인분이 나뒹구는 끔찍한 상황이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은 보기 힘든 광경이겠습니다만, 예전에는 시골에서 밭농사를 짓는데 인분이 정말 귀하게 쓰였기 때문에 뒷간에서 일을 보아야 했고, 화장실을 정기적으로 치우기 위해서 똥장군에 퍼 담아 소달구지에 얹은 똥통으로 져 나르던 인부들을 흔히 보고 자란 세대이기도 합니다. 당시 젊은이들의 일상, 대중문화, 돈벌이, 연애와 스포츠 등등 다양한 화제를 중심으로 하여 식민지 조선사회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는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명랑을 뒤쫓는 소래섭교수의 탐정놀이의 결말은 ‘만들어진 명랑’이란 제목으로 제3부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조선사회가 피동적으로 수용하게 된 ‘명랑’이란 화두를 능동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입니다. 앞서 소래섭교수가 세 번째 요인으로 김기림을 인용하여 설명한 배후의 감정으로서 명랑은 그야말로 주체적으로 명랑을 추구하게 되는 과정인데, 이는 오히려 웃음보다는 눈물에 가까운 역설적인 접근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고통이 크고 슬픔이 깊을수록 웃음에 대한 욕망이 더 세차게 끓어오른다. 이주일과 배삼룡이 아직도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그들이 암울했던 시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이기 때문이다.(219쪽)”는 소래섭교수님의 말은 그의 속마음에 어디에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단초라 생각합니다.



소래섭교수님은 ‘명랑’이란 화두를 쫓아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조선사회는 일하고자 하나 일자리가 없는 절망한 젊은 청춘들이 넘쳐나는 시기였고, 그들의 관심을 ‘명랑’이란 밝은 이미지의 단어로 포장해서 하릴없이 거리를 쏘다니게 만들다가 결국은 총 한자루 쥐어서 전선으로 내몰려는 일제의 간악한 흉계가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찾아낸 것입니다.



하지만 소래섭교수님의 탐정놀이의 마지막 반전은 바로 ‘88만원 세대’라고 자조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내려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듣기조차 어려운 ‘명랑’이란 단어이지만, 사실은 ‘행복’전도사, ‘쿨’하다, 등 다른 이름으로 가면으로 바꿔쓰고 우리에게 던져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소래섭교수님은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공허한 행복론 따위에 매달리거나 허벅지를 바늘로 찔러가며 쿨한 척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손바닥만 한 거울과 그 거울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명랑해질 준비는 다 마친 것이나 다름없다. 진정한 명랑은 언제나 감정의 노예가 아니라 감정의 주인이 되려는 자에게만 찾아온다.(281쪽)”는 결론으로 일제강점기의 조선 지식인들이 감지했던 ‘배후의 감정’을 다시 깨달아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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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1-11-1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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