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1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북한 인권을 걱정한다면 남북교류부터 재개를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북한 인권을 걱정한다면 남북교류부터 재개를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북한 인권을 걱정한다면 남북교류부터 재개를

등록 2023-06-20 19:14수정 2023-06-21 02:38

발표자는 자신을 잃은 듯한 표정이었다. “본인들이 남한 사회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남한의 노동환경에 적응하는 게 어려웠을 수도 있다”는 거의 변명 투의 답변이 이어졌다. 이 답변은 청중의 의심을 푸는 데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도대체 차별이 어느 정도였고 노동환경이 얼마나 나빴기에, 동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하고 인권 이슈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북한으로 스스로 돌아간다는 것일까?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며칠 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한국 외교관 한분이 북한 인권 관련 학술발표를 했다. 발표 화면에 정처 없이 유랑하는 북한의 가난한 어린이인 이른바 ‘꽃제비’들과 탈북자들의 기억에 의해 복원된 정치범수용소의 이런저런 끔찍한 장면들이 계속해서 펼쳐졌다. 발표자 말대로 북한 인권은 세계 최악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토론자들도 이에 관해서는 전반적으로 당연히 수긍했다.

한데 질의응답 시간에 평양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외국 외교관이 손을 들었다. 그는 북한 인권 참상에 관한 발표 내용에는 토를 달지 않았다. 본인 역시 북한 근무 시절에 그쪽 인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눈치챘다고 했다. 그가 궁금해한 것은 북한이 이 정도로 반인권적 지옥이라면 도대체 왜 수십명(정확하게는 지난 10년 동안 31명)의 탈북자들이 스스로 재입북의 길에 나서는가였다. 아무리 가족이 보고 싶다는 등의 개인적 사연이 있어도 “천당에서 지옥으로” 돌아가는 것은 논리적으로 납득되지 않았단다.

이 질문을 들은 발표자는 자신을 잃은 듯한 표정이었다. “남한 자본주의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본인들이 남한 사회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남한의 노동환경에 적응하는 게 어려웠을 수도 있다”는, 거의 변명 투의 답변이 이어졌다. 한데 이 답변은 청중의 의심을 푸는 데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도대체 차별이 어느 정도였고 노동환경이 얼마나 나빴기에, 동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하고 인권 이슈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북한으로 스스로 돌아간다는 것일까?

이참에 나도 질문을 하나 던져보고 싶었다. 2015년 한국 정부의 조사에 의하면 탈북자들의 사망 원인 중 자살이 15%를 차지하는데, 이는 한국 사람들 평균보다 3배나 높은 수치다. 이처럼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난해 북한인권센터 조사에 의하면, 탈북민 18%가 재입북 의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원인 역시 무엇으로 보느냐도 나의 또 다른 질문거리였다. 한데 토론 시간이 다 돼 이 질문들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물론 남북한의 인권 상황을 굳이 단순 비교하면, 북한 인권 실태의 심각성은 크게 두드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우리는 종종 ‘하늘이 사람에게 내렸다’는 의미에서 ‘천부인권’을 얘기하지만, 인권이란 자연 발생적인 게 전혀 아니다.

단순 생존을 목표로 하는 인간집단 안에서 인권이란 개념 자체가 성립될 리 없다. 인권이 지켜지자면 한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사회적 부의 축적과 함께, 그 사회 안에서의 안보불안 정도나 국제적 인권 표준들을 공유할 만한 수준의 국제교류 등이 중요하다. 오늘날 북한처럼 매우 빈약한 물질적 토대 위에서 군사적 총동원 분위기, 즉 조르조 아감벤이 이야기한 “예외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의회정치나 삼권분립의 원칙이 결여된 채 커다란 군부대처럼 운영되는 사회에서 인권이 충분히 지켜질 수 있다고 예상하는 사람은 적어도 인권 전문가 중에서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탈북민들이 겪는 차별과 멸시, 각종 인권침해가 상징하는 남한의 인권 상황은 훨씬 더 의외다. 북한은 가난과 지배그룹에 의한 사회적 자원의 독점 등 제3세계 탈식민 국가들의 전형적 문제들을 심각한 형태로 보여주고 있지만, 남한은 세계인들의 대부분이 선망하고 있는 유럽 수준의 1인당 국민소득에 의회정치가 작동하는 제1세계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는 인권도 제1세계의 평균 정도로 지켜질 것으로 합리적으로 기대해볼 수 있는데, 실상은 이와 전혀 다르다. 국제노총(ITUC)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노동권지수에서 한국은 최악에 가까운 5등급을 계속 유지한다. 최근에 분신자살로 정권의 노동탄압에 맞선 건설노조 간부는 유서에서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 한 것뿐인데, 윤석열 검사독재 정치의 제물이 되어 자기 지지율 숫자 올리는 데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고, 또 죄 없이 구속돼야 한다”고 적지 않았는가? 이 문장 하나가 수천쪽 보고서들보다 한국 노동인권의 현실을 제대로 웅변한다.

잔혹한 노동탄압은 한국형 신자유주의의 불가결한 동반자다. 신자유주의란, 노동자 계층의 파편화와 노동의 비정규화, 노임 억제와 초착취에 의한 자본 축적의 레짐(체제)을 뜻한다. 이 레짐은 인권과 제대로 된 공존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이와 같은 반인권적인 신자유주의가 너무나 쉽게 착근한 사유는, 바로 분단 상황을 이유로 많은 국가기구들이 지니게 된 폭압성이다. 북한보다 훨씬 더 강한 국가인 남한에서는 북한 정도의 “예외상태”를 유지할 필요야 없지만, 남북 대치 상황에서 남한은 부유한 나라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군사화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니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29호(강제노동 금지)를 비준해놓고도, 괴롭힘과 폭언 등이 만연한 직장에서 사회복무요원들이 사실상의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어 “강제노동 국가”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군사화 지수가 매우 높은 사회 아니면 이런 일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물론 쌍방의 대치와 군사화로 인한 인권침해의 정도는, 국력이 더 약한 북한이 훨씬 높을 것이다.

북한 인권과 남한 인권을 함께 개선하고자 한다면 한반도에서의 긴장 완화, 즉 남북대화가 급선무다. 특히 상대적 약자인 북한의 경우에는, 남북이 ‘해빙 모드’에 들어가야 사회에 대한 군사적 통제의 끈을 어느 정도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 반대로, 지금과 같은 대치 분위기 속에서 북한은 ‘한류 단속’ 등 사회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고, 남한에서는 노동탄압을 자행하기 쉬운 보수적 분위기가 사회를 장악하게 된다. 서로를 맞대고 있는 남북한은, 하나의 분단체제를 같이 이루는 만큼 그 관계의 상태가 양쪽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부터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관계가 좋아져야 인권적 상황 개선의 가닥도 동시에 잡힐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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