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헤게모니 없는 지배?]
윤치호는 영어를 정말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20대 초반에 영어 공부를 시작하고, 거의 60 년 가까이 영어로 일기를 썼던 사람인데, 하필 영어로 쓰는 처음의 동기는 재미있었습니다. 조선말로 주변 사물과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영어를 선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윤치호에게는 영어란 언어 그 이상이었습니다. 영어는 (기독교적)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기호 체계이었으며, 성경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글"이었으며, 우월한 문명의 표징이었습니다. 미국으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몇년간 거기에서 공부하고 감리교를 받아들인 윤치호에게는 미국은 그 어떤 현실적 관계를 떠나 그저 "이상" 그 자체이었습니다. 서재필이나 이승만, 아니면 식민지 시기의 안창호-흥사단-수양동우회 계열 인사들의 미국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며, 오늘날의 뉴라이트들은 이런 미국관의 말류 쯤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발성이 강한 흠모와 선망, 우러러봄과 자기 동일시 열망 등을, 우리가 그람시적 의미의 "헤게모니"라고 칭하곤 합니다. 미국이란 완숙한 자본주의 문명의 헤게모니란, 자본 축적이 아직 덜된 후발 국가들의 지식인/대중들까지 자발적으로 따르게끔 만들 수 있는 사상, 이념, 문화적 저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는 "연성 권력"이라고도 하는 것이죠.
미국의 헤게모니는 물론 미국의 지정학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한반도 남반부에서마저도 상당한 부침이 있어 왔습니다. 지금 다시 그 절정에 달하고 있지만, 1980-2000년대에 같은 경우 "한국의 반미 현상"에 대해 상당수의 논저가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한데 반미가 가장 유행했던 1980년대만 해도, 학창 시절에 "양키 고홈"을 외치곤 했던 대학생들은, 석박사를 하러 그 뒤에 종종 바로 그 "양키"의 나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NL 계열을 제외하면 운동권도 밥 제솝의 맑스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론이나 브루스 커밍스의 사학 등 영미권의 진보 사상을 학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필적할 만한 이론적 자산을, 동구권과 일본을 포함하여 어디에서도 찾아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수든 진보든 그 성향을 떠나서 궁극적으로 한국 지식인이라면 미국에서 생산된 학지를 조우하여 학습하지 않을 수 없는 객관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 문화는...우리는 지금 K-팝의 세계적 성공에 열광하지만, 서태지와 김건모 이후로는 한국 가수들이 미국산 랩과 레게 (reggae) 등을 익히지 않았다면 과연 K-팝이라는 혼종적인 현상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유튜브와 넷플릭스라는 미국산 플랫폼이 없었다면 과연 K-팝과 K-드라마는 지금처럼 전세계에 퍼졌을 리가 있었겠어요? 지식인 사회는 지식인 사회대로, 대중 문화는 대중 문화대로, 미국의 지적인, 문화적인 헤게모니를 떠나서 존재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미국이 완숙하고 오랫된, 정교한 (sophisticated) 자본주의 문화라면, 중국이나 러시아 등 미국의 경쟁 국가에서의 자본주의란 아주 최근의, 아주 초고속의 축적에 의해서 만들어진 현상입니다. 자유주의적 레짐도 아닌, 독재 국가 주도로 축적이 급격하게 이루어진 경우들이죠. 문화나 학지 생산의 영역을 보면, 중-러 근현대 문화의 상당 부분은 스탈린주의나 마오주의 등 "대안적 근대"의 (결국 실패한) 모색과 직결돼, 이와 같은 역사적 경험이 없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비전문가들에게 쉽게 수용되지 못할 것입니다. 중-러의 사회 과학은 스탈린주의적/마오주의적 도그마의 완전한 지배를 벗어난 지 30-40년밖에 안되는 데다 여전히 독재 국가의 사상적 억압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인지라, 사실 지금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게 미국산 이론들을 수입하여 그 토착화를 시도하는 중입니다. 엄청난 내부 시장을 보유하는 중-러의 대중 문화 같은 경우, 애당초에는 "수출"을 목적으로 해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예컨대 중-러 영화 생산의 상당 부분은 전쟁과 "애국"을 테마로 하는 국책 영화들인지라, 한국 관람객들에겐 거부감 이외에는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문화가 녹아 있는 한류는 중-러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얻어도, 한국에서는 중-러 대중 문화의 팬들을 거의 찾을 수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 미국과 전면적인 대립 국면으로 돌입한 중-러는 미국의 사상, 이념, 문화적 헤게모니 ("연성 권력")에 도전하지 못하는 채 그저 경제와 군사 영역에서의 힘겨루기만 할 것인가요? 일단 그렇게만 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대립의 쌍방이 보통 서로를 미러링하는 법이고, 결국 자유주의/민주주의 등을 내세우는 미국에 맞서려는 나라들 같은 경우에는, 대미 대립의 이념적 기반을 다진 뒤에 그 이념을 학술적으로 정교화시키는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대략적인 예상입니다만, 중-러의 대미 대립의 이념으로 현재에도 이미 "탈식민화", "구미권의 세계 지배 타파" 등이 제시되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탈식민" 등을 출발점으로 해서 중-러가 과거의 "제3세계주의"를 계승하는 모종의 대항 헤게모니의 건설을 시도할 것 같긴 합니다. 단, 스스로를 이미 제1세계로 인식하는 한국인에게는 이런 대항 헤게모니의 이데올로기는 아마도 설득력을 갖지 않을 것 같기만 하죠. 대중 문화 영역에서는, 아마도 틱톡의 경우처럼 중-러는 미국발 전자, 영상 자본주의 모델을 출발점으로 해서 대미 경쟁을 시도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중국산 영화 <장진호>가 한국 전쟁에 대한 "시각" 차원에서 문제를 일으켰지만, 사실 중국 국가주의적 시각만 벗어나면 이 영화는 할리우드 액션물의 중국식 "복제판"에 가깝습니다. 복제는 시작, 그다음에는 할리우드의 생산 방식을 혼종화하여 토착화를 하려고 할 것 같습니다. 좌우간, 경제와 군사에 이어 중-러는 이데올로기 생산과 문화 생산 영역에서도 나름 "대항 헤게모니" 구축의 시도를 할 것 같지만, 한국에선 그 시도들이 당분간 성공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건 제 예상입니다. 이미 스스로의 자본주의적 정교함의 수준을 미국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한국인들의 관점에서는 중-러는 너무 지나치게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막 치고 올라가는" 조야한 졸부 국가를 연상케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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