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5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서중석 2025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서중석 저자(글)
역사비평사 · 2025년 05월 30일
주간베스트
역사/문화 27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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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해방 80주년에 새롭게 만나는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그들이 꿈꾸고 우리가 이루어야 할 세상
2025년은 경술국치 115년, 신흥무관학교 설립 114주년, 해방 80주년이 되는 해다. 매년 되새겨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하지만, 해방 80주년에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을 개정 ‘대중판’으로 새롭게 펴내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일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초판이 나왔을 때 여러모로 주목을 받았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쟁은 널리 알려졌어도 그 전쟁을 이끈 이들이 신흥무관학교 관계자들이라는 사실은 잘 몰랐던 것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리는 계기가 되어 역사 다큐멘터리가 많이 제작되었고, 또한 한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보여준 이회영 6형제를 다시금 조명하게 되었으며, 독립운동자뿐만 아니라 망명자·이주민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절반의 독립운동자’라 할 수 있는 여성의 역할을 부각했기 때문이다.
2025년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을 새롭게 꾸몄다. 이번 개정 ‘대중판’은 구판의 학술적 내용을 많이 걷어냈고, 이전보다 쉽게 읽히는 문장으로 다듬었으며, 관련 도판을 풍부하게 실어 시각적 보충 자료의 의미를 더했다.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이라는 책 제목은 구판과 동일하지만, 이번 개정판에는 ‘그들이 꿈꾼 세상, 우리의 미래’라는 문구를 달았다.
신흥무관학교의 생도였던 김산은 『아리랑』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한국인들이 단 두 가지만을 열망하고 있었다. - 독립과 민주주의. 실제로는 오직 한 가지만을 원했다. - 자유. …… 일제의 압제로부터의 자유, …… 정상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자유” 김산의 절규에서도 드러나듯이 독립을 꿈꾸었던 망명자들은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진보의 새 나라를 세우고 강한 민족에 의한 약소국 침탈과 약소민족에 대한 만행을 타파하여 모든 인간과 모든 민족과 모든 국가가 평등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간난신고도 마다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것이다.
이 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 세상을 이루었는가. 우리가 이룰 세상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가?”

작가정보

저자(글) 서중석
인물정보
역사학자


194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1988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농촌·노동문제 및 민주화운동을 취재했다. 특히 6월항쟁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 역사적 현장에서 그날의 사건들을 생생히 목격하고 기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며,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 『한국 근현대 민족문제 연구』, 『한국 현대 민족운동 연구』 1·2, 『조봉암과 1950년대』 상·하, 『남·북협상-김규식의 길, 김구의 길』, 『비극의 현대 지도자』(일본어역), 『배반당한 한국 민족주의』(영역),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한국 현대사 60년』(영어·일본어·중국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로 번역), 『이승만과 제1공화국』,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6월항쟁』,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전20권), 『민족주의와 역사교육』(정현백 공저), 『전환기 현대사의 역사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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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3: 전 국가의 병영화, 총력 안보 앞세운 독재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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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권두 화보
개정 대중판 책머리에: 독립운동사 대중화를 꿈꾸며
구판 서문: 책을 내면서


1부 신흥무관학교

들어가는 글: 독립운동 기지 건설운동과 신흥무관학교

1장 무장투쟁의 땅을 찾아서
1. 민족운동 기지 건설의 효시 - 북간도 서전서숙
2. 독립운동 기지 건설의 구체화
3. 안동 등 경북 지방 인사들의 참여

2장 꿈과 눈물의 터전 ‘서간도’
1. 독립운동의 기반 - 서간도 이주민
2. 민족주의자들은 왜 만주를 중시했나
3. 자연조건의 양면성
4. 입적과 토지 매매 문제
5. 변장운동
6. 서간도 이주민의 생활 기반과 조건

3장 백만 배의 뜻, 백만 배의 힘
1. 경학사와 부민단
2. 전기 신흥무관학교
3. 신흥학우단과 백서농장

4장 독립운동의 불꽃, 만주 벌판에 타오르다
1. 한족회와 군정부 - 서로군정서
2. 후기 신흥무관학교
3. 신흥무관학교 생도들의 이동과 청산리전쟁


2부 독립운동 이념, 망명자 사회, 여성

5장 땅에다 씨를 뿌리듯이
1. 독립운동의 방향 - 신흥무관학교 관계자 중심으로
2. 사회진화론의 수용 방향과 교육
3. 정치 이념과 민족의식
4. 애국정신·민족의식의 고취

6장 망명자 사회, 그 엄숙과 견결의 세계
1. 도덕, 예절에 대한 관점
2. 전통문화에 대한 관점
3. 복벽 문제에 대한 관점

7장 절반의 독립운동자
1. 여성과 망명자 사회
2. 여성과 독립운동
3. 독립운동과 부부 생활
4. 독립운동자 아내의 통한

무면도강: 재가 되어 뿌려지다
1. 시사여귀視死如歸의 심정으로
1) 이상설(1870~1917)
2) 이회영(1867~1932)
3) 이석영(1855~1934)
4) 이시영(1869~1953)

2. 인생은 다할 때가 있는 것
1) 이상룡(1858~1932)
2) 김동삼(1878~1937)

미주
참고문헌
이회영 일가 가계도| 이상룡 일가 가계도| 김대락, 김동삼 등 의성 김씨 가계도| 허위 등 김해 허씨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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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이 책은, 1910년대 내내 수많은 인재를 양성했고 3·1운동 이후 크게 확대되어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신흥무관학교와 경학사-부민단-한족회의 전체 상을 그려내어 1910년대에 독립운동이 어떻게 역동적으로 전개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이는 1910년대에 망명자·이주민 사회가 어떻게 존재했는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통적인 방식대로 독립운동 단체의 구성과 활동을 규명해내는 일 못지않게 독립운동자, 독립운동 단체의 정치사상·이념, 망명자·이주민의 사회사, 문화사, 여성사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다시 말해 독립운동사이자 정치사상사, 사회사, 문화사, 여성사로서 독립운동과 당대의 한국 사회를 이해한다.


판사 서평


무장독립투쟁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조국이 해방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신흥무관학교는 3·1운동 이전 일제의 무단통치 시기의 암흑기에 국외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무장독립투쟁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영국의 인도·동남아시아 지배,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 등 백인제국주의하의 다른 식민지 국가들에 비해 일제 강점하의 한국은 인간의 기본권이 철저히 억압당하고 경제적으로 수탈당하며, 민족운동이 무자비하게 탄압당하는 상황이었다. 신흥무관학교는 바로 이 같은 국내 상황에서 독립운동 전개가 용이치 않음을 판단하고 국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려는 전략으로 세워졌다.
오늘날 화폐가치로 따지면 수조 원에 이르는 전 재산을 처분하여 서간도로 떠난 이회영 6형제 일가, 역시 안동에서 99칸의 웅장한 대갓집(임청각)을 떠나 대가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간 이상룡 대소가, 자신의 집(백하구려)을 안동 협동학교에 희사할 정도로 근대문명을 받아들인 김대락 대소가, 한말 의병 투쟁에 몸을 바친 왕산 허위의 겨레붙이 등, 만주로 이주한 망명자들은 서간도에서 독립운동의 터를 닦기 위해 경학사를 조직하고 독립군을 이끌 간부와 중견 인물들을 양성하기 위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이후 평안도, 충청도 등 전국 각지에서 기개 있는 뛰어난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신흥무관학교 교관, 생도들의 독립군 활동은 청산리전쟁에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청산리전쟁은 북로군정서의 성취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신흥무관학교가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1919년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가 만들어질 때 신흥무관학교의 이장녕은 대한군정서의 요청으로 참모장이라는 요직을 맡았다. 또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이나 관계자들은 북로군정서에서 일선 부대의 핵심 직책을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지청천이 이끈 신흥무관학교 생도와 군인으로 구성된 교성대는 청산리전쟁의 또 한 다른 주역인 홍범도 부대의 지원을 받아 이 전쟁에 참여했다.
신흥무관학교 생도와 관련자들은 서로군정서 의용대는 말할 나위도 없고, 통군부·통의부·정의부 및 참의부에도 다수가 참여했고, 조선혁명군 대한독립군 고려혁명군 등 여러 독립군 단체에서 활동했다.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 소속 군으로 광복군이 조직되었을 때 지청천이 총사령관, 이범석이 참모장과 제2지대장, 신흥무관학교 생도였던 김학규가 제3지대장을 맡았다. 신흥무관학교 생도였고 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과 군무부장(국방장관)이었던 김원봉은 조선의용대원으로 구성된 광복군 제1지대를 통할 지휘했다.
일제 강점하에서 한국의 망명자들은 서간도·북간도·북만주에서, 중국 관내(산해관 안쪽)에서, 시베리아·일본·미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들 망명자들은 새 세상을 열려는 혁명가들이었다. 이들은 시사여귀(視死如歸), 곧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향에 돌아가듯이 생각하는 심정으로 독립운동을 펼치며, 무면도강(無面渡江), 곧 뜻을 이루지 못하면 고향에 돌아갈 면목이 없다며 반드시 해방이 되고서야 조국에 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독립운동에 임했다.


망명자·이주민 사회, 그리고 여성
무력에 못지않은 교육과 실력 양성

독립운동사 관련 대부분의 책은 독립운동 단체, 조직, 활동,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남성과 사건 중심으로 서술된다. 그러나 이 책은 독립운동과 독립운동자의 활동뿐만 아니라 망명자·이주민 사회와 독립운동자의 가족, 특히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여성의 역할과 독립운동의 관계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만주, 서간도로 이주한 독립운동자들은 홀로 국내를 떠나온 경우도 있었지만, 집안 대소가와 다 함께 떠나온 경우가 많았다. 큰집, 작은집, 사돈에 팔촌까지 대가족이 움직인 것이다. 그들은 만주에서 척박한 땅에 농사를 짓고 주민자치를 하며 독립운동하러 떠난 이들을 지원했다. 1910년대 신흥무관학교가 계속 유지되면서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고 무관을 양성할 수 있었던 데는 당대 최고의 거부로 손꼽히는 이석영이 전 재산을 쏟아부은 덕도 있지만, 나중에는 서간도 주민들이 성심성의로 마련한 자금도 기여했다. 서간도에 세워진 경학사는 고국에서 오는 동포를 정착해 살 수 있도록 부양하고 중국인과의 법률 관계 사건을 관장하며 행정과 사법 처리까지 떠맡은 명실상부한 주민자치기관이었다. 이 경학사는 후에 한족회로 확대 개편되면서 일종의 임시정부인 군정부(서로군정서)를 조직하고, 신흥무관학교 본교와 분교도 짓는다.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로 이루어진 신흥학우단은 『신흥학우보』라는 잡지를 발간하여 서간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혁명 이념을 선전하며 근대적 지식을 보급했다. 또한 한족회 등 자치단체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도 이바지했다.
이주민 사회의 실제적인 생활 모습, 독립운동자 가족의 역경과 고난 등은 독립운동자의 아내, 며느리, 손자며느리 등의 수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한다. ‘7장. 절반의 독립운동자’는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이 지은 『서간도 시종기』, 이상룡의 손자며느리 허은이 구술하여 펴낸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김동삼의 맏며느리 이해동이 쓴 『만주생활 77년』을 바탕으로 망명자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역할, 시련 등을 서술했다. 마적떼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이은숙, 군정서 독판을 지낸 시할아버지 이상룡이지만 먹을 것이 없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상황에서 찾아오는 손님과 독립운동자 회의 식사를 준비하려고 애태웠던 허은, 백두산 호랑이 김동삼의 맏며느리로서 집안 살림을 챙겨 살던 중에 시삼촌 김동만이 처참하게 학살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아버지 이원일과 시아버지 김동삼의 체포까지 겪은 이해동, 그녀들에게 온전하고 단란한 가족 생활이 없었다. 긴장의 연속에서 독립운동자 남편이나 시아버지를 뒷바라지하고 집안을 떠맡는 가장이었다. 해방 80주년에 새롭게 만나는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그들이 꿈꾸고 우리가 이루어야 할 세상

2025년은 경술국치 115년, 신흥무관학교 설립 114주년, 해방 80주년이 되는 해다. 매년 되새겨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하지만, 해방 80주년에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을 개정 ‘대중판’으로 새롭게 펴내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일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초판이 나왔을 때 여러모로 주목을 받았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쟁은 널리 알려졌어도 그 전쟁을 이끈 이들이 신흥무관학교 관계자들이라는 사실은 잘 몰랐던 것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리는 계기가 되어 역사 다큐멘터리가 많이 제작되었고, 또한 한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보여준 이회영 6형제를 다시금 조명하게 되었으며, 독립운동자뿐만 아니라 망명자·이주민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절반의 독립운동자’라 할 수 있는 여성의 역할을 부각했기 때문이다.
2025년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을 새롭게 꾸몄다. 이번 개정 ‘대중판’은 구판의 학술적 내용을 많이 걷어냈고, 이전보다 쉽게 읽히는 문장으로 다듬었으며, 관련 도판을 풍부하게 실어 시각적 보충 자료의 의미를 더했다.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이라는 책 제목은 구판과 동일하지만, 이번 개정판에는 ‘그들이 꿈꾼 세상, 우리의 미래’라는 문구를 달았다.
신흥무관학교의 생도였던 김산은 『아리랑』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한국인들이 단 두 가지만을 열망하고 있었다. - 독립과 민주주의. 실제로는 오직 한 가지만을 원했다. - 자유. …… 일제의 압제로부터의 자유, …… 정상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자유” 김산의 절규에서도 드러나듯이 독립을 꿈꾸었던 망명자들은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진보의 새 나라를 세우고 강한 민족에 의한 약소국 침탈과 약소민족에 대한 만행을 타파하여 모든 인간과 모든 민족과 모든 국가가 평등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간난신고도 마다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것이다.
이 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 세상을 이루었는가. 우리가 이룰 세상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가?”


무장독립투쟁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조국이 해방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신흥무관학교는 3·1운동 이전 일제의 무단통치 시기의 암흑기에 국외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무장독립투쟁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영국의 인도·동남아시아 지배,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 등 백인제국주의하의 다른 식민지 국가들에 비해 일제 강점하의 한국은 인간의 기본권이 철저히 억압당하고 경제적으로 수탈당하며, 민족운동이 무자비하게 탄압당하는 상황이었다. 신흥무관학교는 바로 이 같은 국내 상황에서 독립운동 전개가 용이치 않음을 판단하고 국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려는 전략으로 세워졌다.
오늘날 화폐가치로 따지면 수조 원에 이르는 전 재산을 처분하여 서간도로 떠난 이회영 6형제 일가, 역시 안동에서 99칸의 웅장한 대갓집(임청각)을 떠나 대가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간 이상룡 대소가, 자신의 집(백하구려)을 안동 협동학교에 희사할 정도로 근대문명을 받아들인 김대락 대소가, 한말 의병 투쟁에 몸을 바친 왕산 허위의 겨레붙이 등, 만주로 이주한 망명자들은 서간도에서 독립운동의 터를 닦기 위해 경학사를 조직하고 독립군을 이끌 간부와 중견 인물들을 양성하기 위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이후 평안도, 충청도 등 전국 각지에서 기개 있는 뛰어난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신흥무관학교 교관, 생도들의 독립군 활동은 청산리전쟁에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청산리전쟁은 북로군정서의 성취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신흥무관학교가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1919년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가 만들어질 때 신흥무관학교의 이장녕은 대한군정서의 요청으로 참모장이라는 요직을 맡았다. 또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이나 관계자들은 북로군정서에서 일선 부대의 핵심 직책을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지청천이 이끈 신흥무관학교 생도와 군인으로 구성된 교성대는 청산리전쟁의 또 한 다른 주역인 홍범도 부대의 지원을 받아 이 전쟁에 참여했다.
신흥무관학교 생도와 관련자들은 서로군정서 의용대는 말할 나위도 없고, 통군부·통의부·정의부 및 참의부에도 다수가 참여했고, 조선혁명군 대한독립군 고려혁명군 등 여러 독립군 단체에서 활동했다.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 소속 군으로 광복군이 조직되었을 때 지청천이 총사령관, 이범석이 참모장과 제2지대장, 신흥무관학교 생도였던 김학규가 제3지대장을 맡았다. 신흥무관학교 생도였고 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과 군무부장(국방장관)이었던 김원봉은 조선의용대원으로 구성된 광복군 제1지대를 통할 지휘했다.
일제 강점하에서 한국의 망명자들은 서간도·북간도·북만주에서, 중국 관내(산해관 안쪽)에서, 시베리아·일본·미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들 망명자들은 새 세상을 열려는 혁명가들이었다. 이들은 시사여귀(視死如歸), 곧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향에 돌아가듯이 생각하는 심정으로 독립운동을 펼치며, 무면도강(無面渡江), 곧 뜻을 이루지 못하면 고향에 돌아갈 면목이 없다며 반드시 해방이 되고서야 조국에 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독립운동에 임했다.


망명자·이주민 사회, 그리고 여성
무력에 못지않은 교육과 실력 양성

독립운동사 관련 대부분의 책은 독립운동 단체, 조직, 활동,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남성과 사건 중심으로 서술된다. 그러나 이 책은 독립운동과 독립운동자의 활동뿐만 아니라 망명자·이주민 사회와 독립운동자의 가족, 특히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여성의 역할과 독립운동의 관계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만주, 서간도로 이주한 독립운동자들은 홀로 국내를 떠나온 경우도 있었지만, 집안 대소가와 다 함께 떠나온 경우가 많았다. 큰집, 작은집, 사돈에 팔촌까지 대가족이 움직인 것이다. 그들은 만주에서 척박한 땅에 농사를 짓고 주민자치를 하며 독립운동하러 떠난 이들을 지원했다. 1910년대 신흥무관학교가 계속 유지되면서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고 무관을 양성할 수 있었던 데는 당대 최고의 거부로 손꼽히는 이석영이 전 재산을 쏟아부은 덕도 있지만, 나중에는 서간도 주민들이 성심성의로 마련한 자금도 기여했다. 서간도에 세워진 경학사는 고국에서 오는 동포를 정착해 살 수 있도록 부양하고 중국인과의 법률 관계 사건을 관장하며 행정과 사법 처리까지 떠맡은 명실상부한 주민자치기관이었다. 이 경학사는 후에 한족회로 확대 개편되면서 일종의 임시정부인 군정부(서로군정서)를 조직하고, 신흥무관학교 본교와 분교도 짓는다.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로 이루어진 신흥학우단은 『신흥학우보』라는 잡지를 발간하여 서간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혁명 이념을 선전하며 근대적 지식을 보급했다. 또한 한족회 등 자치단체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도 이바지했다.
이주민 사회의 실제적인 생활 모습, 독립운동자 가족의 역경과 고난 등은 독립운동자의 아내, 며느리, 손자며느리 등의 수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한다. ‘7장. 절반의 독립운동자’는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이 지은 『서간도 시종기』, 이상룡의 손자며느리 허은이 구술하여 펴낸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김동삼의 맏며느리 이해동이 쓴 『만주생활 77년』을 바탕으로 망명자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역할, 시련 등을 서술했다. 마적떼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이은숙, 군정서 독판을 지낸 시할아버지 이상룡이지만 먹을 것이 없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상황에서 찾아오는 손님과 독립운동자 회의 식사를 준비하려고 애태웠던 허은, 백두산 호랑이 김동삼의 맏며느리로서 집안 살림을 챙겨 살던 중에 시삼촌 김동만이 처참하게 학살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아버지 이원일과 시아버지 김동삼의 체포까지 겪은 이해동, 그녀들에게 온전하고 단란한 가족 생활이 없었다. 긴장의 연속에서 독립운동자 남편이나 시아버지를 뒷바라지하고 집안을 떠맡는 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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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ISBN 9788976966001
발행(출시)일자 2025년 05월 30일
쪽수 476쪽
==
마이리뷰
     
계속 전진하는 노교수의 울림_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서평

서중석 교수는 한국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이자 진보사학의 기둥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늘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고 이를 알리기 위해 방대한 연구와 집필을 이어왔다. 강의에서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그의 열정과 치밀함은 이 책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은 단순히 독립운동 단체의 조직과 활동을 정리하는 데 머물지 않고, 망명과 이주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정치사상, 사회적 관계, 문화적 실천, 여성들의 역할까지 폭넓게 담아낸다.
역사 속에 잠들어있는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대 독립운동사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1910년대 내내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고, 3·1운동 이후 크게 확대되며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마련했다. 저자는 이를 독립운동 군사 기관이 아니라 망명자·이주민 사회의 상징적인 장, 민족의 자유를 꿈꾸던 사람들이 모여 사상과 전략을 모색한 공간으로 조명한다. 그 속에서 독립운동은 단지 무력 투쟁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과 사상적 고민이 어우러진 총체적 실천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경학사-부민단-한족회로 이어지는 조직들의 전체 상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경학사는 이주 사회의 교육과 자치를 중시했고, 부민단은 군사적 성격을 띠며 무장 투쟁의 기반을 다졌다. 한족회는 중국 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활동을 확장했다. 이처럼 조직들은 억압 속에서도 끊임없이 재편되고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며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저자의 사회사적 시각이다. 독립운동을 위인 중심의 정치사로만 보지 않고, 망명 공동체를 이룬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노력을 비중 있게 다룬다. 노동과 교육, 문화 활동, 여성들의 참여까지 서술하여 독립운동사가 단지 남성 지도자들의 이야기로만 채워지지 않도록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독립운동을 보다 넓은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청소년과 일반 독자들에게 이 책은 독립운동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흔히 영웅적 인물들만 떠올리기 쉽지만, 서중석 교수는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공동체적 노력이야말로 역사를 움직인 힘이었음을 강조한다. 또한 망명지에서 전개된 교육과 토론, 문화 활동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정신과도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은 정치사상사, 사회사, 문화사, 여성사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역사서다. 1910년대 한국인의 치열한 삶을 알고 싶거나 독립운동의 현장을 새롭게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한국 사회에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온 서중석 교수의 저작답게, 이 책은 독자에게 오래 남는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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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obi 2025-08-2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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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을 읽고

『신흥무학교와 망명자들』은 서간도와 북간도, 그리고 만주 전역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의 토대를 새롭게 조명한 책이다. 흔히 청산리전투나 봉오동전투와 같은 무장투쟁은 비교적 알려져 있지만, 그 기저에 어떤 사상과 조직, 그리고 인간들의 결단이 있었는지를 세밀히 밝힌 저작은 드물다. 이 책은 바로 그 빈자리를 메우며, 독립운동의 뿌리가 어디서 어떻게 자라났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1부는 신흥무관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중심으로, 무장투쟁 기지의 구체적 형성과정을 설명한다. 저자는 먼저 서전서숙을 ‘민족운동 기지 건설의 효시’로 평가하면서,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닌 민족의 자립을 꾀하는 실험장이었다고 본다. 이어 경북 안동 등 국내 인사들의 참여가 만주 독립운동의 토대와 긴밀히 연결되었음을 서술하는데, 이는 독립운동이 국외만의 일이 아니라 조국 내 민족지도자들의 지원과 헌신 속에 진행되었음을 일깨운다. 또한 서간도의 척박한 자연조건, 입적과 토지 문제 등은 독립군이 단순히 ‘총을 들었다’는 차원을 넘어, 생존을 위한 치열한 기반 다지기 과정을 거쳤음을 보여준다. 경학사, 부민단, 신흥무관학교, 백서농장의 사례는 ‘총과 밥’이 동시에 필요했던 현실을 잘 드러낸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이후 서로군정서를 거쳐 청산리전쟁에 이르는 연속성이다. 이 책은 청산리전투가 ‘갑자기 나타난 영웅적 결기’가 아니라, 신흥무관학교라는 체계적 교육기관과 훈련 과정을 통해 준비된 전투였음을 강조한다. 이는 독립전쟁사가 ‘우연적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치밀한 준비와 교육의 산물임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2부는 사상과 사회, 그리고 여성 문제를 다룬다. 신흥무관학교 출신 인물들이 단순히 무장투쟁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사회진화론과 정치이념을 어떻게 수용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했는지 설명하는 대목은 흥미롭다. 망명자 사회가 보여준 도덕관·문화관·복벽론 논쟁은, 독립운동이 단일한 구호가 아니라 복잡한 사상적 스펙트럼을 지녔음을 드러낸다. 또한 여성들의 역할을 조명한 7장은 기존 독립운동 서술에서 소외되었던 영역을 보완한다. ‘절반의 독립운동자’라는 표현은 여성들이 직접 투쟁에 참여하지 못했음에도, 가정과 생계를 지탱하며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독립운동자의 아내들이 겪은 통한은,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독립운동의 또 다른 그림자다.

마지막으로 책에서는 이상설, 이회영, 이석영, 이시영, 이상룡, 김동삼 등 걸출한 인물들의 삶과 죽음을 서술한다. 이들이 보여준 결단과 일생을 건 투신은, 독립운동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수많은 개인의 인생 전체를 바친 거대한 흐름이었음을 일깨운다.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립운동을 추상적 ‘역사’가 아니라 구체적 ‘삶과 죽음의 기록’으로 느낄 수 있다.

책을 덮으며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독립운동은 뿌리와 줄기와 열매를 모두 가진 유기체였다.’는 사실이다. 신흥무관학교라는 교육의 뿌리, 서간도 공동체라는 생활의 줄기, 청산리전투라는 결실이 서로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는 이름 없는 이들의 땀과 희생이 있었다. 특히 그동안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여성과 망명자 가족의 삶을 주목한 서술은, 독립운동사를 다시 균형 있게 바라보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는 독립운동을 영웅의 이야기로만 소비하기 쉽다. 하지만 『신흥무학교와 망명자들』은 그 뒤에 존재했던 교육, 사상, 생활, 그리고 인간적 고통까지 함께 보여줌으로써, 독립운동을 입체적이고 살아 있는 역사로 복원한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단순히 과거를 아는 것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계승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독립운동은 총과 칼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적 의지를 지켜내려는 끊임없는 노력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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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재 2025-08-2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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