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0

Taeyoung Park 지금 미국은 아니 미국적 정신은 생존을 위해 투쟁을 하는 것

(3) Facebook


이런 시각! 눈이 번쩍 뜨이고 사태를 새롭게 보는.

"안전과 편안 중요하다. 그런데 전 세계 다른 도시를 평가하면서 그것 때문에 서울이 최고라고 얘기하는 것은 솔직히 후진국과 빈자의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욕구의 상하위를 구분하는 것이 여전히 인정되는 이론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슬로 욕구 단계에서 하위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런 생각이 있었다. 왜 미국에는 영웅이 탄생하고 한국에는 피해자가 탄생할까. 생각해 보면 이것도 욕구 단계와 맞닿아 있다. 자아실현으로 세상을 본다면 명예로운 죽음도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전함이 삶의 목적이 되면 모든 죽음은 그 자체로 실패이자 누군가의 가해가 된다. 자아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존성만 있는 것이다.
미국이 변했다고들 말한다. 나도 아기 때지만 90년대 후반 언저리 미국에서 살았고, 애정이 있는 사람이다. 요즘 변화에 대해 당연히 완벽하다거나 무조건 옳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를 물질적 욕구 이하의 수준에서 보지는 않는다. "





Taeyoung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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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다. 서울은 세계 4대 도시 중 하나다. 이를 부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런데 한국이 살기 최고고 외국도 별것 없더라 하는 글을 읽을 때면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안전한지 얼마나 편안한지 이야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떤 자아실현의 기회가 있는지 얘기는 잘 없다. 어떤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서 살기 좋다는 얘기도 잘 없다. 어떤 특색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어떤 심미성이 있는지에 대한 얘기도 없다. 어떤 생각과 철학을 공유하는지 얘기도 없다.
친구가 콜롬비아 대학에 다니던 시절 캠퍼스에 놀러 갔는데 아주 평범하고 낡은 공간에 들어서더니 여기가 그 맨해튼 프로젝트가 이루어진 곳이라 소개했다. 서울에서는 그런 경험 대신에 이 아파트에 지드래곤이 살고 수십억 하는 아파트라 소개하는 그런 느낌이다. 예술가와 철학자의 도시가 아니라 연예인과 벼락부자들의 도시랄까. 야구장에 갔더니 파병 돌아온 병사가 시민들에게 경례 신고를 하고 박수를 쳐주고 소속된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내뿜을 때, 우리는 연예인이 시구하고 치어리더와 노래를 부르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니면 맨해튼 지하 바에서 유명 뮤지컬 배우의 노래를 들으며 혹은 무명 스탠드업 코미디언 이야기를 들으며 맥주 한 잔 할 때 한국은 지하 룸살롱에서 양주 깔아 놓고 노는 그런 느낌이랄까.
안전과 편안 중요하다. 그런데 전 세계 다른 도시를 평가하면서 그것 때문에 서울이 최고라고 얘기하는 것은 솔직히 후진국과 빈자의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욕구의 상하위를 구분하는 것이 여전히 인정되는 이론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슬로 욕구 단계에서 하위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런 생각이 있었다. 왜 미국에는 영웅이 탄생하고 한국에는 피해자가 탄생할까. 생각해 보면 이것도 욕구 단계와 맞닿아 있다. 자아실현으로 세상을 본다면 명예로운 죽음도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전함이 삶의 목적이 되면 모든 죽음은 그 자체로 실패이자 누군가의 가해가 된다. 자아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존성만 있는 것이다.
미국이 변했다고들 말한다. 나도 아기 때지만 90년대 후반 언저리 미국에서 살았고, 애정이 있는 사람이다. 요즘 변화에 대해 당연히 완벽하다거나 무조건 옳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를 물질적 욕구 이하의 수준에서 보지는 않는다.
원래 미국은 하나의 정신이었다. 세계 최고로 유물적이라는 동아시아인들 시선에서는 이해가 쉽지 않은 문제지만 미국을 지탱하는 것은 자원도, 국방력도 아니다. 안전과 인프라도 아니다. 그건 잘 되어 있든 안 되어 있든 현상일 뿐이지 원인이 아니다.
미국을 지탱하는 것은 미국적 정신이다. 그런데 그것이 타국의 반칙과 해킹으로 오염되고 이민과 범죄로 오염되었다. 이민의 나라라고 하는 것도 그 정신을 공유하는 개척적 이민자들의 나라라는 것이지 다 차려진 상에 팔자 펴보겠다고 넘어오는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은 애초에 아니었다.
칼뱅주의라는 기본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제도상 가장 자유로워진 암스테르담처럼 미국도 기독교적 실천주의가 있었기 때문에 자유로웠던 것이지 그 자유의 근원인 가족주의와 자연스러움을 해체하라고 만들어진 자유가 애초부터 아니었다. 그런데 자유라는 단어도 오용되고 남용되고 변색되고 타락했다.
내부에서조차 기업 분할을 해버리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때리는 강력한 법이 있었기 때문에 자유 시장을 인정한 것이지 처벌하기도 힘든 중국 같은 반칙 꾼들이 해 먹으라고 만든 자유시장이 아니었다. 동맹도 앞에서는 물건 팔아먹고 국방은 무임승차하면서 뒤에서는 러시아 가스 사라고 만들어준 동맹이 아니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니까 미국이 갑자기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바뀐 것은 세상이고 미국은 거기에 적응하고 있는 것 뿐이다.
어쨌든 그렇기에 지금 미국은 아니 미국적 정신은 생존을 위해 투쟁을 하는 것이고 저차원 욕구와 고차원 욕구가 서로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오직 돈 아파트 안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눈에는 미국이 골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나는 지금 미국이 면역 형성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열이 나는 부작용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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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위안부 합의는 처음부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을 핵심 요구 사안으로 마련한 후 이미 여러 차례 마지막 배상이라 했던 한국 스스로의 말을 뒤집고 정말 어렵사리 달성한 외교적 성과였다.
그런데 결국
(1) 피해자에게 직접 돈을 지급한다는 것과 (2) 배상을 종결한다는 내용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하여 중간에서 두고두고 용돈벌이, 표 벌이, 관심 벌이를 해야 하는 윤미향 같은 사람들에게는 실존적 위협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폐기를 해야 했고 효능감이 부족한 일반 국민은 착한 척하느라 착취와 literally 간첩질을 함께하는 세력에 동조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꼬이게 된 것 같다.
용서와 화해가 아닌 피해의식과 원한, 미래가 아닌 과거에 발목 잡힌 대한민국. 국제적인 신용, 아니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니편이냐 내편이냐 왜 더 뜯지 못하냐 하는 야만적 부족주의에 사로잡힌 대한민국. 과학적으로 피해가 없어도 좋은 빌미니 돈을 뜯어야 한다는 체급에 어울리지 않는 윤리 의식. 어떤 면에서 그런 세력을 안고도 여기까지 온 것이 대단해 보인다.
위안부, 편협한 시선에서 벗어날 때
오늘 미군 위안부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있었다. 위안부 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피해를 회복하려는 것은 나는 정말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반일에 의해 취사 선택된 역사에서 벗어나 맥락을 보아야 진정한 의미에서 피해회복과 재발방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은 갑오개혁 전까지 공식적으로 노예제를 운영했다. 사료들을 종합해보면 당시 노예는 주인이 살해할 수는 없었으나 실제 살해를 하더라도 주인을 잘 처벌하지 않았고, 여성 노예의 경우 남편이 있더라도 주인의 성적 요구를 항상 따를 의무가 있었다. 그러니 돈이 많고 신분이 좋은 조선인은 사실상 위안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적 성노예를 소유할 수 있었다.
이를 처음 중단한 것은 일본 정부와 김홍집이다. 김홍집은 일본의 도움과 물리적 호위를 받아 갑오개혁을 진행하면서 노예제를 폐지하고 더 이상 조선인들이 여성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여러가지 개혁조치들을 단행한다. 근대적 개혁조치에 화가 난 고종과 조선인들은 김홍집을 친일파라면서 돌로 쳐죽이고 사지를 찢어 길에 끌고 갔다. 물론 노예제 폐지는 고종도 추후 승계하기는 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완전히 떠난 해방이후에도 한국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를 운영했다. 그리고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에는 지금도 여성 성노예 인신매매가 일어난다. 즉, 일제시대 전에도 일제시대가 지난 이후에도, 아니 지금 이 시점에도 위안부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군 위안부가 정당화 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소녀상을 만들고 분노하는 만큼만 지금 아직도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맞지 않을까? 가해자가 우리 민족이나 중국인이면 관계없나?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제국 일본에 대한 분노 수단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여성과 사회적 약자의 인권 문제로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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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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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young Park

자유보수진영 화해와 발전을 위하여
-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기존 국민의 힘 주류 세력(a.k.a. 지역 웰빙 의원 + 법조카르텔)으로는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충분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정치적 감각 문제 뿐아니라 철학과 능력 레벨이 시대에 한참 못 따라간다. 본인들만 보지 못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수권정당이 되려면 변화하고 확장하여 국민의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이 변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힘 주류 세력은 자신이 쌓아온 정치적 자산, 특히 지역구를 잃는데 극도로 예민하다. 이를 침해하면 자신의 정당이 배출한 대통령도 갈아엎는다.
그래서 침해하지 않을 믿을 수 있는 동지거나 아니면 언제든 팽할 수 있는 외부 인재(a.k.a. 티슈정치인)들을 내세워 변화와 확장을 하는 것처럼 시늉을 해왔다. 하지만 그 동지들 조차도 인터넷 발달로 참을 수 없는 실수들을 노출하고 있고 티슈를 자처하는 인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와 중에 강대강 대치가 발생한 것으로 본다.
- 이준석의 리더십은 맞는 방향이었나?
이준석은 대대적인 공천 개혁을 원했다. 공천 개혁의 방향성은 크게 요약하면 시험능력주의와 경선이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오죽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갈 수 없다 판단했으면 이런 카드를 꺼냈나 싶지만 고민해볼 점은 분명히 있다.
1. 영국의 입헌은 영주들의 관할권을 왕도 침해하지 못한다는 합의로부터 시작이 되어 최종적으로 민주주의까지 발전을 하게 되었다. 기자회견에서 전체주의와 상명하복을 불태워야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의원들의 지역구를 장원으로 표현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이는 약간의 모순이 있는 셈이다.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의원들이 지역에서 쌓은 자산은 인정하지 않고 중앙에서 정한 시험능력주의와 경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전체주의적인 면이 있다.
2. 고려의 지역 귀족들이 조선 초 관훈파까지 이어져 왔는데 유교를 바탕으로한 과거제를 도입하고 지역 관할권 사병 보유 등을 모두 박탈하면서 사라졌다. 이를 대체하여 등장한 사림파가 정말로 관훈파나 문벌귀족보다 나은 사람들이었나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준석처럼 서구적 철학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생각했을 때 말이다.
3. 실리적 관점에서는 고려는 당시 세계 최대 제국을 상대로 9차례 막대한 병력을 동원하며 전쟁을 치렀다. 이는 지역 영주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사림파가 득세한 이후 조선에서는 시험능력주의를 최고로 치고 의병조차 목을 벴기 때문에 국력이랄게 남아있지 않았다. 
4. 반발의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한 것은 기본적으로 북벌로 인해 국경이 분쟁지역화 되면 자신의 세습적 경제적 기반이었던 동북면 영지가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했던 면이 있었을 것이고 박근혜 탄핵도 비슷한 맥락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옳은지를 논하기 이전에 왕도 칠 수 있고 대통령도 칠 수 있다면 당대표도 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은 맞다.
이준석이 당원을 추가로 모으고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어 계속 당의 메기 역할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화해를 위해서는 스스로 이런 부분들도 고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 웰빙 의원들과 법조 카르텔은 극도의 오만함을 내려놓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나?
정치인들끼리 형동생하고 의리 지키는 것, 국민들은 아무 관심 없다. 오히려 역겹게 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최근 주호영 대표도 논란이 되니 김성원 의원을 윤리위 회부를 하겠다고 하는데 이를 즉시 비호했던 본인 스스로도 윤리위 회부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 이 사건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대통령실에  이 사람 왜 뽑았는가에 대해 "선거캠프에 기여해서"는 틀린 답이다. 그건 너네한테 중요한거고 국민들은 관심 없다. 맞는 답은 "우리의 철학에 맞게 국민에게 가장 잘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 판단했다"이다. 정치를 오래하신 분들이 왜 기본도 못할까. 이준석이 강북에 출마하라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고민은 필요하다고 본다. 
황교안, 나경원 계열 법조인들은 제발 사람들이 자신들을 우러러 보고 있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법조인은 더 이상 한국을 움직이는 엘리트들이 아니다. 옛날에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오만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적어도 일반적 수도권 시민의 시선이다. 그래서 수 차례 선거에 참패 해놓고도 발전이 없다. 남탓하지 말고 변명하지 말고 오만하지 않을 수 없다면 사라져주는게 범보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자유-보수의 미래에 대해 깊이 있게 철학적으로 토론했으면 좋겠다. 시험능력주의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여주의다. 특히 정치적 쇼를 넘어선 사상적 철학적 가치적 기여를 충분히 보여달라. 정규재 같은 분들 불러서 유튜브에서 토론도하고 그래라. 그래서 이준석이 직접 데려온 세력에게 존경을 얻고 함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식되기를 기원한다. 동지정치 티슈정치는 본인들이 알을 깨고 나오면 실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 대통령은 본인의 부채를 정치인이 아닌 국민에게 갚을 수 있나?
대통령께서 얼마전에 국민의 숨소리도 들으라고 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이다. 먼저 본인을 대통령을 만든 것은 국민의 힘 정치인들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는 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리더가 구성원의 숨소리를 들으며 리딩을 할 수는 없다. 이미 대통령이 되셨는데 아직도 권력 투쟁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검찰시절의 모습, 후보시절의 모습은 빠르게 버리고 어떻게 나라를 리드해갈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꼭 4번의 "왜"를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5세 입학 왜? 다른나라도 하니까. 그나라들은 왜? 돌봄 부담이 줄어드니까. 왜 줄어야하는데? 교육격차를 줄여야하니까. 왜? 보수당은 교육 다양성이 중요하다 했지만 공교육의 역할은 따로 있다고 보니까. 이렇게 말이다. 그 왜의 끝에 내 권력과 지지율이라는 답이 남아있다면 아직 후보를 못 벗어난 정책이고 그 끝에 국민과 철학이 남아있다면 진행해야할 과제가 될 것이다.
내일 광복절이다. 전 세계가 사회주의 실험과 개헌으로 몸살을 앓았던 2010년대였다. 믿기지 않게도 이 시대에도 또 한 번 사회주의 실험으로 수 만 명의 아사자가 나온 나라도 있었다. 자유-보수 세력은 전세계 문명의 근간 같은 것이다.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당원도 아니고 한낱 중소기업 사장이지만 이 나라를 이끄는 분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미래를 그려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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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young Park

오래전에는 TDD(각 모듈에 대한 테스트를 먼저 짜고 그걸 만족하는 코드를 짜는 방식)가 약간 주객전도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AI로 코딩하기에는 TDD가 최고가 아닐까 싶음. 사람은 테스트만 설계하고 AI가 알아서 그 테스트 만족하는 코드 짜는 방식으로. 테스트만 튼튼하면 코드는 AI가 대충 마음대로 써도 시스템 전체는 척척 잘 돌아갈 것이고. 유지 보수 할 때도 그냥 다시 AI보고 테스트 만족하게 짜라 하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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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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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young Park

수 년 전에 3선 의원 한 분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거기서 나는 국힘이 자신의 이념과 본분은 잊어버리고 음흉하고 비겁한 표 세기를 해서 계속 국회에서 밀려 나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 분 왈 "근데 사람들이 보수 진짜 원하는 지 모르겠다 보수라는 단어 어감부터 해외 right 나 conservative는 좋은데 우리는 뭔가 낡은 것 같고 안 좋다 ..." 물론 좋은 분이라 생각하지만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도 난 페이스북에 매우 오랜기간 반복해서 그 당의 문제는 이념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이 부재한 것이라 했다. 한동훈 전 대표가 제주도에서 이념에 기반하여 이민 아젠다를 제시했을 때 잠깐 희망을 보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오히려 들어오는 신진세력마다 자신들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대안이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반(反)이념으로 물 타기만 반복했다. 그런 비겁한 표 구걸은 김종인 이후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고 상대 편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함으로 승리를 쟁취하는데도 무지성 앵무새 마냥 "중도 외연 확장"만 외쳐 댔다. 그것도 정책이 아니라 표 구걸로.
최근 지지율 상승에 스스로도 놀라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막상 본인들은 지키기를 부끄러워 했던 이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톡 사태의 경우에도 좌익 검열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맞서고 있는 것이다. 1차 탄핵 소추안과 간첩법 등으로 중러북 대 한미일의 대결이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와 중국 북한처럼 일당이 검찰, 감사원, 군부, 법관까지 장악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지 없는 지 드러났다. 북한이 무인기 다섯 대 보내도 우리는 한 대도 보내면 안 된다는 사람들과 국방부의 판단에 따라 적당한 수준에서 대가를 보여주는 것이 맞다 생각하는 사람이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지지율이 오르는 것이다.
물론 한계도 뚜렷하다.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용병과 상대 편의 싸움 속에서 어부지리로 얻었기 때문이다. 국힘은 이번 계기로 이념에 충실한 후 그 이념을 정책으로 승화하는 지혜를 가지기를 바란다. 민주당은 100% 이념적이다. 아니 양곡법보다 더 왼쪽인 법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있나. 그러고도 190석을 확보 했다. 반성 좀 하시길.
원래 도덕경에서는 I told you so 는 하지 말라 한다. 그런데 한 김에 하나만 보태자면 재작년인가 한 작가님에게 내가 윤상현 의원이야 말로 찐윤이라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아무도 안 믿었음. ㅎㅎ 이것도 기자들이 놀라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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