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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칼럼 HumanX
권력과 자본이 만들어낸 특권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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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6. 02
공직에서 재벌로, 그리고 다시 권력으로….
한국 사회에서 고위공직자 또는 관료 출신 인사들은 단순히 한 시대의 행정과 정책을 이끌었던 존재를 넘어, 퇴직 이후에도 지속해서 권력과 자본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해 왔다.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 검찰·경찰 고위직, 국세청·금감원 간부 등 국가 핵심 권력 기구의 중추에 있었던 이들이 퇴직과 동시에 대기업의 고문이나 대형 로펌의 고위 자문으로 이동하는 것은 더는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는 이른바 '전관예우'라는 이름 아래 공직에서의 영향력을 사적으로 전이하는 구조적 문제를 낳고 있다.
이들은 공직에 있을 당시 축적한 인맥과 기밀성 높은 정보, 정책 결정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민간 부문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로펌이나 대기업이 이들을 영입하는 것은 단순히 자문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행정부와 사법부 내부의 ‘비공식 경로’를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다. 이 과정에서 공공 권한은 민간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며, 국가 시스템의 신뢰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권층만의 리그, 보이지 않는 권력 거래소
대표적인 사례로는 전직 검찰 고위 간부들이 퇴직 후 대형 로펌에 들어가 수사 관련 사건을 맡아 사실상 ‘봐주기 수사’를 유도하거나, 국세청 고위직 출신이 대기업의 세무 자문을 맡아 세무조사 회피에 기여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금융감독원 간부 출신이 대기업 금융 계열사에 자문역으로 들어가 내부 감시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현상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단순히 개별적 사건에만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 입안 단계부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규제 완화나 정책 변경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전직 고위관료들이 사적 채널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 때로는 정책 방향 자체를 좌우하는 로비 활동을 벌인다. 이러한 구조는 기업과 고위관료 출신 인사 간의 유착을 통해 거대한 사적 이익의 생태계를 형성하며, 일반 시민과 중소기업은 이 특권층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불공정한 시장을 만든다.
대표적인 인물이 한덕수다. 대표적 ‘모피아’(재정·금융 관료) 출신으로, 기획재정부(구 재정경제원) 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뒤 국내 최대 로펌(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활동했다. 한덕수는 고위 관료로서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뒤, 퇴직 후 대기업·로펌 등 민간 부문에 진출해 인맥과 정보를 활용하는 전관예우의 전형적인 경로를 밟았다. 실제로 그는 정부-재계-로펌을 잇는 ‘보이지 않는 권력 거래소’의 상징적 인물로 자주 언급된다.
한국의 재벌 시스템과 전관예우 문화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형성한다. 재벌 기업들은 전직 고위공직자들을 영입함으로써 정부 정책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규제 회피나 특혜 획득에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반대로 고위공직자들은 재임 중 재벌 친화적 정책을 펼침으로써 퇴직 후 안락한 자리를 보장받는 암묵적 거래를 체결한다. 이는 공정한 시장경제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관행이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 정권에서든 진보 정권에서든, 고위공직자들의 퇴직 후 행보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는 전관예우가 단순한 정치적 후원 차원을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특성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전관예우 시스템은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동력으로 작동한다. 고위공직자 출신들이 형성하는 네트워크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을 띠며, 이 네트워크에 속하지 못한 일반 시민이나 중소기업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법적 분쟁에서 전직 검찰 간부가 포함된 변호사단을 고용할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의 승부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이러한 시스템은 청년들에게 공직을 하나의 ‘투자’로 인식하게 만든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 중 상당수가 공공 봉사의 이념보다는 향후 민간 부문으로의 이직을 염두에 두고 공직을 선택하는 현실은 공직 사회의 윤리적 기반을 흔드는 요인이 된다.
이처럼 전관예우는 단순한 취업 연계나 경력 활용 차원을 넘어, 권력과 자본의 밀착을 통해 사회 전체에 심각한 불평등과 불신을 초래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직은 국민을 위한 공공 봉사의 장이어야 하지만, 한국의 경우 공직은 일종의 ‘사다리’로 인식되어 이후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현상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공직자들이 재임 중에도 퇴직 후를 염두에 둔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면, 그들의 정책 결정이 과연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이는 공직자가 개인의 영달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의 미비와 윤리적 책임의 결여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다.
따라서 고위공직자 출신 인사들의 사후 활동에 대한 규제 강화와 더불어, 공직 재직 시 쌓은 네트워크를 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절실하다. 단순히 취업 제한 기간을 늘리는 것을 넘어, 전직 고위공직자들의 로비 활동을 투명화하고, 그들이 관여한 사건이나 정책에 대한 공개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 공직 사회 내부의 문화 개혁도 필요하다. 공직자들이 퇴직 후를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공공의 이익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면, 공직 자체의 사회적 지위와 보상 체계를 재검토해야 한다. 공직을 민간 부문으로의 발판이 아닌, 그 자체로 완결된 가치 있는 경력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인식 변화도 뒤따라야 한다. 전관예우는 단순한 취업 혜택이 아니라, 권력의 사유화와 불공정한 부의 축적이라는 더 큰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와 공정한 시장경제를 구현하려면, 이 고질적인 권력-자본 유착 구조를 해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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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din
8
공직이 종착점이 아니라 민간 진출을 위한 ‘관문’으로 인식되는 한, 우리는 진정한 공공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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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
8
공감합니다. 전관예우는 단순한 특혜가 아니라, 정의와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구조적 병폐입니다.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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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사회
7
한덕수 사례처럼 권력과 자본이 끈끈하게 연결돼 있는 구조를 보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엘리트 공화국’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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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81
2
청년들이 공직을 ‘투자’로 본다는 대목에서 씁쓸했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공직이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없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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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minsoo
5
전관예우는 결국 ‘돈 있는 자’와 ‘힘 있는 자’만의 리그를 만든다. 이 구조 속에서 일반 시민은 언제나 배제됩니다. 이런 구조가 유지되는 이유는 국민이 무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구조가 법과 제도 속에 너무나 교묘히 숨어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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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azzang
2
왜 국민의 봉사자여야 할 공직이 자본으로 가는 사다리가 되었는지, 이제는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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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grang
5
로펌·대기업이 전직 고위공직자를 영입하는 건 단순한 인재 채용이 아니라, 내부자 거래를 위한 ‘접속권’ 확보일 뿐이죠. 퇴직 후 활동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최소한 정보 이용과 로비는 철저히 규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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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5
공직자들의 퇴직 후 재벌·로펌행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되었네요. 이런 구조가 계속된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공정한 사회에 대한 신뢰를 갖기 힘들 것 같습니다. 제도적 개선이 시급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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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sora
6
공직을 ‘투자’로 여기고 들어가는 청년들이 많아진다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공공의 이익보다 사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풍토가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도 구조적 문제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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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MyLife
5
정권이 바뀌어도 이런 관행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순히 법만 강화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공직의 사회적 지위와 보상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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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bok
4
공직은 국민을 위한 봉사의 자리이지, 개인의 사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관예우로 인해 공공의 이익이 침해되고, 사회적 불신이 커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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