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놓고 말해보자면] 기괴한 너무도 기괴한 '자유주의자(?)' 유시민 -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후기 2부
한국정치+1노동/인권/사회+15사상/철학/역사+11
혁명읽는사람·독서가
2023/03/21
4. "자유주의자" 유시민?
유시민은 자유주의적 국가관이 국가주의 국가론의 안티테제로서 나온 입장이라고 지적한다.(유시민, 2011 : 51) 국가주의 국가론은 "국가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며 개인은 기껏해야 "국가에 종속"된 "국가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데 반해 자유주의 국가론은 개인이 국가에 우선하며 "국가는 개인을 위해 복무"하는 존재로 본다는 점에서 서로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유시민, 2011 : 49) 이렇듯 국가주의 국가관과 대비되는 자유주의 국가관을 유시민은 "기껏해야 악을 저지르지 않는 국가"론이라 요약한다.(유시민, 2011 : 204) 다시 말해서 유시민이 생각하기에 자유주의 국가관은 안보와 국내사회질서만 보장된다면 국가가 무슨 짓을 해도 '용납'하는 국가주의 국가관을 비판하며 국가가 무엇을 하지 못하게 하는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시민은 이 자유주의 국가관이 장 자크 루소와 존 스튜어트 밀이라는 걸출한 두 사상가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일반의지의 사상가로 전체주의의 원조라 비난받는, 사회계약론을 주장한 루소와 "사회는 계약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서병훈 역, 책세상, 2005, p.143)라고 주장하는 밀을 함께 묶었다는 점에 유시민 식의 자유주의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다. 이러한 모순을 적절하게 조합한다면 훌륭한 사상체계가 도출될 수 있지만 아니라면 그때그때의 편의에 따라 상황을 정당화하는 '자의적'인 기제가 되어버린다. 유시민은 이 모순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였을까?
1) 밀의 <자유론>을 사랑하는 유시민?
먼저 밀에 대한 유시민의 해석을 보면 유시민은 밀을 "자유주의 국가론에 가장 넓고 깊은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이라 평가한다.(유시민, 2011 : 62) 무엇이 밀을 그렇게나 중요한 사상가로 만들었을까? 바로 국가가 침해하지 말아야 할 가치에 대해 논했기 때문이다. 유시민에 따르면 밀은 어떠한 경우에도 국가가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이 있다고 주장한 사상가다. 만약 국가가 개인의 자유의 영역에 개입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정당화 될 수 있다면 이것은 오직 한 가지, "자기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만 국가가 그 사람의 의지에 반해 권력을 사용하여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유시민, 2011 : 63) 이 한 가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시도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게 유시민의 밀 해석의 요점이다. 주장만 보았을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실제로 유시민이 밀의 이 말을 언제 사용했을까?
"유 이사장은 지난 13일 유튜브 '알릴레오 시즌3'에 출연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따르면 코로나19(COVID-19) 상황에서 집회를 물리적으로 막는 것은 정당한 제약"이라며 "어떤 사람의 행동이 타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지점에서는 개입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111507583596205
코로나19를 이유로 광화문에서의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에 밀의 <자유론>을 사용하였다. 그가 여기서 사용했던 워딩은 2011년에 적었던 책에 나온 워딩과 같다. 유시민은 한 발 더 나아가서 "(8·15 광화문집회) 방치는 타인의 자유와 복리를 부당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뜻"이라며 "(자유론에 따르면) 집회를 막지 않으면 정부가 의무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 명확하게 드러났지만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대단히 자의적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유시민의 입장을 두고 곧바로 진중권이 튀어나와서 맹렬한 비판을 가하였다.
"그(유시민)는 위해의 원칙에서 재인산성의 정당성을 끌어내나 정작 밀은 이렇게 말한다. “위해나 위해의 개연성이 사회의 개입을 정당화한다고 해서 그게 언제나 그런 개입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즉 위해의 원칙은 제한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얘기. 유시민씨가 필요한 절반만 인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그냥 씹어 드신 것이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23283#home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유시민의 편을 잠깐 들어주자면 진중권이 말한 부분을 유시민은 이미 말했다.
"그러나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고 한 후반부 선언의 지적 소유권은 밀에게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국가는 어떤 경우에도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유시민, 2011 : 64)
이런 의미에서 진중권은 일종의 허수아비를 치고 있다.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해서도 안되지만 어찌됐든 타인에게 해를 끼칠 여지가 있다면 제한할 수도 있다는 게 유시민의 밀 해석이다.
정리해보자면 유시민은 밀의 <자유론>에 따르면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그것을 근거로 코로나가 퍼질 수 있는 상황에서, 다시 말해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시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식이라면 개인의 자유는 계속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진중권은 이 지점을 잘 파고 들었다. 진중권은 유시민의 주장이 밀의 자유론을 '제약론'으로 바꾸는 '지적 사기'라 맹렬하게 비판하며 밀에게는 공리보다도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반박했다. 유시민은 밀이 추구했던 "인격과 인류 번영"이라는 더 큰 가치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인격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사상·표현·결사의 자유"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중권과 유시민의 대립은 거짓된 대립이다. 둘의 대립구도에서 사라지는 지점이 있다. 바로 "시민사회"의 영역이다. 진중권은 밀이 개인을 절대적으로 옹호한 것처럼 주장하고, 유시민은 그것이 국가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과 전체 간의 대립이라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가 우리 눈앞에 주어진 듯하지만 실제의 밀의 주장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유시민의 해석은 특히 밀의 사상이 개체성과 사회성 간의 조화를 꿈꿨다는 점을 도외시했을뿐만 아니라 사회를 곧바로 "국가"로 치환해서 파악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문제적이다.
밀에게 있어서 개체성과 사회성은 현실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이론적으로는 곧바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벤담의 공리주의에 밀의 비판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인데 밀은 벤담 식의 공리주의를 택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자의성', 다시 말해서 효용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것을 문제삼았다. 당장 굶어죽기 직전의 사람에게도 한 편의 시가 한덩이의 빵보다 가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공리주의자들은 시가 주는 쾌락의 안정성 등등의 요인들을 나열한다. 내재적 가치, 객관적 가치가 아니라 더 많은 효용을 제공해준다는 주관적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밀은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사물들 간의 체계에 객관적인 위계질서가 존재한다고 가정하였는데 문제는 그가 그것을 선험적으로 규정하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두루 축적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비교를 통해 동일한 객관적 진리에 도달할 것이라 가정했다는데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서 밀은 객관적인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을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는데서, 경험론적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를 단순히 개인의 자유를 절대시한 사람으로 보기 어렵다. 그는 합리적인 개인이라면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떠한 작용을 할 것인가,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합리성을 기준으로 개인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는 이미 통합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주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보기에 <자유론>은 생각 이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를 상당히 많이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밀은 생각의 자유는 절대시하지만 그것을 표현할 자유, 표현의 자유에는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꽤나 자제를 시킨다. 밀이 <자유론>에서 제시한 예를 따라보면 이 문제가 지닌 복잡함은 더욱 심해진다. 예를 들어 사적 소유권이 강도짓과 같다고 하거나 곡물 중개상이 농민을 착취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밀에 따르면 이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글로 적어서 신문에 쓴다면 그 자유는 허용될 수 있지만, 만약 흥분한 군중들이 곡물중개상의 집을 에워싸고 있는 상황에서 말로써 그러한 주장을 전달하거나 팜플렛 등으로 적어서 시위를 한다면 그러한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 신문에 글을 발표하는 것과 달리 곡물중개상이라는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신문에 글을 주장을 발표하는 것이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은가 싶지만 밀이 보기에 신문이라는 언론매체는 일종의 공론장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토의 과정 속에서 주장의 정당성이 증명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지만, 흥분한 군중무리와 함께 가서 주장을 전달하는 것은 강압에 의한 의지의 표명이 되기 때문에 합리적인 토의가 불가능해진다. 이런 식으로 밀이 타인의 자유와의 관련성을 근거로 개인의 자유를 하나씩 제한해나가기 때문에 나중에 이르면 도대체가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 보장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밀을 비판하는 좌파 이론가들은 반대로 밀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군중을 제어하는 것에 너무 집착하여 사실상 민주주의를 제한하게 된다고 불평하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예컨대 이사야 벌린 같은 사람은 도대체가 밀의 논리를 따른다면 국가의 개입을 차단할 수가 없게 된다고 비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자신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간의 경계는 어떻게 설정될 수 있는가? 밀을 연구한 서병훈 교수조차도 대단히 까다롭게 생각하고 있는 주제인데(보다 자세한 내용은 서병훈, <자유의 본질과 유토피아>, 사회비평사, 1995를 참고하시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렇다. 앞서 보았듯이 밀의 논의는 자신의 '합리성'을 갖고 매순간순간 자유의 경계를 탐색할 수 있는 "합리적인 주체"를 전제로 한다. <자유론>은 그 자체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게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달리 표현하자면 개체성과 사회성 간의 통일을 사유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합리적 개인'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주체가 어떻게 해서 나타날 수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비로소 통합적인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 저작이 내가 보기에는 <대의정부론>과 <공리주의>이다. <공리주의>가 가치체계의 위계질서, 즉 벤담 식의 공리주의가 지니고 있는 공리의 '양적' 측면에 대한 강조를 비판하는 "질적" 측면에 대해 논해준다면, <대의정부론>은 그러한 '질적인' 공리주의를 습득한 개인이 어떻게 합리성을 훈련하며 '합리적 개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밀에게 있어 좋은 정부란 '개인의 자기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부'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사회구성원이 정부,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과정을 통해 그 자신의 도덕적, 지적 자질과 능력을 보다 잘 발전시킬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좋은 정치이자 좋은 정부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소수파의 발언권을 밀이 무엇보다도 중시한 점이 이해될 수 있고, 또 밀이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비밀투표가 아닌 공개투표를 지지한 점도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자유론>에서 제기된 자유의 의미가 <대의정부론>을 통해 실제의 정치제도 속에서 구현되면서 끊임없는 숙고와 공개적인 토론 등을 거쳐 확대되는 과정 속에서 밀의 공리주의가 지닌 질적 의미가 돋보이게 된다. 이렇게 자유가 확대되는 과정과 그를 뒷받침할 합리적 인간의 출현 및 그것을 가능하게 할 조건으로서의 대의제를 갖춘 사회에서는 자기 실현의 수단으로써 노동의 의미가 보다 강조될 수밖에 없다. 노동이 고통이 아닌 자기 실현의 수단으로 기능하게 될 때 임노동의 노예화에 기초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해방 또한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밀의 저작들이 이렇게 하나의 체계로 이어질 수 있게 된다.
밀의 사상을 이렇게 독해한다면 유시민과 진중권이 도외시했던 "사회"가 나타나게 된다. 앞서 두 사람이 논점으로 삼았던 밀의 인용문 전체를 살펴보자.
"나는 이 책에서 자유에 관한 아주 간단명료한 단 하나의 원리를 천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강제나 통제 - 법에 따른 물리적 제재든 여론의 힘을 통한 도덕적 강권 - 를 가할 수 있는 경우를 최대한 엄격하게 규정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 - 개인이든 집단이든 -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단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harm)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수 없다. 본인 자신의 물리적 또는 도덕적 이익(good)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간섭하는 것도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 이런 선한 목적에서라면 그 사람에게 충고하고, 논리적으로 따지며, 설득하면 된다. 그것도 아니면 간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는다고 강제하거나 위협을 가해서는 안된다. ... 다른 사람에게 영향(concern)을 주는 행위에 한해서만 사회가 간섭할 수 있다."(밀, 2005 : 32-33)
유시민과 진중권은 밀이 말한 "여론의 힘을 통한 도덕적 강권"의 영역을 완전히 배제해버린다. 진중권에게 대중의 여론이란 기껏해야 개인을 압살할 '다수의 폭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유시민에게는 시민사회라는 개인과 국가의 "중간적 영역"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 이 둘 모두 근대사회가 개인과 국가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듯이 논의를 하고 있다. 심지어 밀이 "개인이든 집단이든"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집단의 존재, 사회적 중간단체들의 존재를 지적하고 있음에도 그렇다.
나와 같이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이가 보기에 밀은 개인과 공동체 간의 '분열'이라는, 달리 표현하자면 "공사분리"라는 근대인의 분열을 대의제 기구라는 '제도' 속에서 어떻게 해소가능한지 논하지 않고 개인의 "내면"에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간의 분리 자체가 근대사회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근대사회에서는 이것을 해소할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판에 대해 밀은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는 개인이 자신의 "합리성"으로 사적인 이해관계와 공적인 이해관계를 조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개개인의 자신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concern)을 주는 행위"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사유하고 고민할 수 있다고 본 것인데 이와 같은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다. 유시민은 밀의 사상에 내재해 있는 공적 이해와 사적 이해 간의 분열과 대립을 보지 않고 그저 밀의 주장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한 개인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인생을 살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설파한, "자유주의 국가론의 철학적 기둥"이 될 주장을 하였다고 본다.(유시민, 2011 : 66)
이처럼 개인을 규제할 수 있는 주체가 여론 등의 '사회'가 아닌 "국가"로 곧바로 치환되어버리는 유시민의 세계관은 정치에 대한 그의 정의에서도 드러난다. 유시민은 최근의 한 칼럼에서 정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넓게 보면 ‘국가의 기능과 권력의 작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려는 개별적, 집단적 활동’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모든 시민은 이런 의미의 정치를 할 수 있으며 실제로 투표, 정당 가입, 집회 및 시위 참여, 댓글달기 같은 정치활동을 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 군수, 또는 지방의회 의원이 되어 국가의 기능을 바꾸고 권력의 작동방식을 변경하는 일을 직접 하려면 정치를 직업으로 삼고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사람을 우리는 ‘직업정치인’이라고 한다."
http://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5
상당히 특이한 규정이다. 그는 아마도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에 나오는 베버의 정치에 대한 정의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했을 수도 있다. 베버에 따르면 국가란 "특정한 영토 안에서 정당한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을 성공적으로 관철시킨 유일한 공동체"로 그 안에서 행해지는 '정치'란 "권력에 참여하려는 노력 또는 권력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노력을 의미"(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전성우 역, 나남, 2009, p.22) 비슷해 보이지만 한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인용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베버는 '권력 배분'의 문제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갈등'과 '대립', 즉 이해관계의 대립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전제로 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권력을 배분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게 정치의 몫이라는건데 유시민의 정의에서는 시민사회 내부에서의 대립과 갈등이 완전하게 소거되어 있다.
이러한 나의 해석이 근거가 약하다고 볼 수도 있기에 유시민의 문장을 인용해보겠다. 앞서의 베버의 인용문을 유시민은 "베버는 정치를 '국가를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으로 폭넓게 규정"했다고 말한다.(유시민, 2011 : 199) 여기서도 명확하게 보이듯이 누가 국가를 장악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지 여부만이 중요할뿐, 시민사회 내부의 여러 이해관계들을 어떻게 종합하여 그들의 이해관계를 반영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의상 드러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유시민에게 있어 정치란 "국가라는 이름의 '전리품'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아귀다툼'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존 스튜어트 밀을 전유하는 것은 그러한 아귀다툼에도 최소한의 하한선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앞서 보았듯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주의 국가론'을 지지하는 이들이 과거 권위주의 시절처럼 대단히 폭력적으로 이쪽 진영을 억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밀을 사용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공포에 시달린다.
"1948년 제정한 제헌헌법은 현행헌법의 자유권적 기본권을 대부분 담고 있었다. 그러나 1987년 6월 이전까지 국가를 장악한 권력자들은 국민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또는 심각하게 침해했다. 그때 대한민국에는 정의가 없었다. ... 그러나 역(逆)정권교체가 이루어진 2008년 2월 이후 우리는 이 권리의 일부를 다시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네르바 박대성 씨를 비롯하여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으로 입건되고 기소되었던 많은 네티즌들,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가 불이익을 당한 '유모차 부대'와 '예비군 부대' 대원들, 광우병 보도로 인해 장관의 명예를 훼손하여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던 문화방송 프로듀서와 기자들은 자유권적 기본권을 행사했다가 국가의 보복을 당했다."(유시민, 2011 : 227-228)
"전쟁이 끝난 후에도 60년 동안 분단체제에서 살아온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국민들 사이에 국가주의 국가론의 이념적 우위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자유주의 성향의 리더십이 다수의 지지를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유시민, 2011 : 112)
유시민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자이기에 밀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국가주의 국가론에 대한 비판으로, 국가주의 국가론이 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규범을 확보하기 위해 밀을 사용한다. 유시민에게 밀이란 그의 세계관에서 보수우파에 대한 공포를 세련되게 비판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보수우파가 집권하면 무조건적으로 권위주의적인 정치로 후퇴한다는 어떤 공포 혹은 적반하장의 근원에는 이와 같은 공포와 확신이 숨어 있다. 유시민은 그러한 공포를 '밀'의 자유론을 이용해 세련되게 제시해주었을 뿐이다. 국힘당을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약칭 '민정당'이라 부르는 일부 민주당 계열의 언사는 이런 공포와 공명하고 있다. 이 세계관 속에서 국가란 오직 민주당만이 장악하여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수단"이자 '전리품'이며, 선거전이란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전쟁"으로 국가를 쟁탈하기 위한 경쟁의 장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유시민은 자유주의자도 아니지만, 국가주의자도 아니다. 국가주의자라 부르기도 사실 민망한 어떤 기괴한 혼합물을 사상체계로 지니고 있다.
2) "저항권의 대상"인 국가는 사멸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관한 유시민의 이해는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겨냥하고 있다. 그의 루소 해설은 국가와 정부가 다르다는 사실에서부터 논의가 시작된다. 주권은 주권자로서의 시민에게 있는 것이고, 군주 혹은 정부는 국가와 주권자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혹은 대리자에 지나지 않는다.(유시민, 2011 : 58-59) 그런데 만약 정부가 주권자로서 스스로 행세하려고 든다면, "사회계약은 파기되고 모든 시민은 자연적 자유"로 되돌아가게 된다. 더 이상 정부에 복종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정부에 복종하는 것은 법률을 파괴하고 혼란을 키우는 일이 된다. 그렇기에 루소는 시민이자 주권자에게 "정당한 저항권"이 주어져 있다고 말한다.
이렇듯 국가와 정부를 엄격하게 구별하고, 그에 따라 시민의 저항권을 인정하는 현실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적으로는 국가주의 국가관을 지닌 세력, 즉 보수우파들이 집권했을 때 퇴진운동의 정당성을 논하기 위해서이겠다. 다음으로 유시민은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비판한다. "정부가 국가 대신 행동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같은 국가도 정부가 바뀌면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유시민, 2011 : 62) 즉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 말하는 바와 같이 "국가 자체"를 폐기할 필요가 없이진다. 정부만 바꾸면 되는 것이다. 사회혁명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는 거듭해서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은 어떠한 정치적 변화에도 무관심하며, 심지어 대통령을 누구로 뽑는지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고 말한다. 근본주의적인 정치관을 지녔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대체로 이 문제에 관심이 적다. 실제로 관심이 있어도 일부러 무관심한 척하기도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된들 어차피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선거는 어차피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다툼일 뿐이다. 민주주의 정치는 사회혁명에 대한 관심을 오도하는 이벤트에 불과하다. 정치로는 사회를 바꾸지 못한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 정치의 밖에서 사회운동단체를 만들어 대중투쟁을 전개함으로써, 국가가 저지르는 계급적 탄압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진정한 사회혁명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유시민, 2011 : 111-112)
시민사회에서의 사회운동을 "진정한 정치"가 아닌 그저 "주체역량을 보존하기 위한 전술적 행동"으로만 바라보는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정치관은 정치가 오직 국가의 영역, 그것도 누가 대통령으로 뽑히고 어떤 정당이 집권하는가의 틀 내에서만 이뤄진다고 본다는 점에서 대단히 일관적이다.(유시민, 2011 : 112) 오히려 유시민이 보기에 의아스러운 지점은 좌익들은 왜 이렇게 정치에 무관심할까? 왜 민주당과 같은 자유주의 국가론을 지지하지 않고 보수의 국가주의 국가론이 횡행하게 냅두는 것일까? 하는 것들이다. 그는 이 지점을 논파하기 위해 곧바로 "국가는 사멸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포문을 연다.
앞서 우리는 유시민의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에 대한 해석을 비판하며 개혁과 혁명은 선택지를 갖고 고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지점에서 유시민씨께 사과의 말씀을 올려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유시민도 우리의 비판에 동의를 표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해둘 필요가 있겠다. 사회혁명의 길과 점진적 개혁의 길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가? 이것은 처음부터 잘못 만들어진 질문이다. 그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결과가 불확실하고 폭력을 동반하는 사회혁명과 위험이 적고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으며 결과가 즉각적•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점진적 개혁의 길 가운데 사회혁명을 선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점진적 개혁의 길이 봉쇄된 곳에서만 사회혁명이 길을 연다."(유시민, 2011 : 181)
유시민은 우리의 비판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혁명을 택할 리가 있나? 개혁과 혁명은 선택지의 문제가 아니라 개혁의 길을 선택하는 게 필연적이다! 혁명과 개혁은 사전에 우리가 예측하거나 어떤 하나를 택하여 다른 하나를 배제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의 운동 속에서 받아들일지 아니면 운동 속에서 휩쓸려갈지를 고민해야 한다던 룩셈부르크에게 유시민은 호통을 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혁명을 선택할 수 있는가? 다시 생각해보면 룩셈부르크의 비판이 맞는 듯하다. 개혁을 날마다의 "사회주의의 점진적인 도입"으로 여기는 이런 입장에 대해서는 앞서 비판하였다. 중요한 건 "점진적 개혁의 길이 봉쇄된 곳에서만 사회혁명이 길을 연다."고 하는 부분이다.
유시민에 따르면 "국가를, 국가의 기본 질서를, 국가권력의 기능과 작동방식"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모든 것을, 단숨에,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회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고쳐나가는 점진적 개선"이다.(유시민, 2011 : 141) 그는 사회혁명이 때가 되어 조건이 무르익으면 필연적으로 터질 것이라 보았던 마르크스의 관점은 국가가 "단순한 계급지배의 도구"가 아니며 "물질적 이해관계의 대립"이 "사람의 정치적 행위를 결정짓는 유일한 변수"도 아닌데도 그런 것으로 가정하여 성립한 "너무나 낙관적이고 단순"한 사상이라고 비판한다.(유시민, 2011 : 143) 마르크스는 국가의 억압성만 보았지, 홉스의 국가주의 국가론이 지적하였던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모두가 두려워하는 공동의 권력"이라는 성격은 무시하였다.(유시민, 2011 : 145) 그렇기에 "공동의 권력"이 수행하는 기능이 충분히 지속된다면 사회혁명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루소를 자유주의 국가론의 한 축으로 설정한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장해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저항권의 발동을 통해 기존의 정부를 제거하고 새로운 정부를 들여 국가폐지까지 나아가지는 않으면서도 거듭해서 '점진적 개선'을 이뤄나갈 수 있다면 사회혁명의 길은 봉쇄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사회혁명은 언제 터지는가? 유시민은 3가지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비로소 터진다고 말한다. 첫 번째 조건은 "사회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고, 그 사실을 민중이 분명하게 인지"할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첫 번째 조건을 전제로 인민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에게 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앞의 두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폭력이 아닌 다른 모든 수단을 남김없이 행사했다는 사실이 널리 인정"되는 것이다.(유시민, 2011 : 146-147) 민주주의 체제와 같이 정부와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이 민중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 있는 정치질서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수단을 다 사용하였음에도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회혁명이라는 "열벙"이 국가를 덮친다. 어떠한 수단을 사용해도, 심지어 인민의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변화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울 때 이미 국가는 모든 정당성을 상실하고 부패하여 썩어버렸을 것이다. 이런 국가는 툭 치기만 해도 손쉽게 붕괴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혁명은 "국가가 앓는 열병"이다.(유시민, 2011 : 149)
국가가 앓고 있는 이 열병에 대해 치료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점진적인 개혁이다. 유시민은 이를 카를 포퍼의 "점진적 공학"(piecemeal engineering)라는 용어를 인용하여 설명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민주적 간섭주의"라 부를 수 있는 이 '점진적 공학'은 사회혁명과 같은 '유토피아적 공학'과 근본적인 지점에서는 통한다. "제한되지 않는 자유는 자멸"한다는 관점이 그것이다. 다만 포퍼(와 유시민)은 '유토피아적 공학'은 그것을 실현하였을 때 도출될 수 있는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사회 전체를 재구성하는" 일에 필요한 "경험과 지식의 제약" 때문에 위험성이 너무 크다고 비판했을 뿐이다.(유시민, 2011 : 156) 이 지점에서 유시민은 포퍼를 인용하여 "무제한적인 자유"를 비판하는데 구체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자유주의 세력의 일파인 "시장형 보수"이다. 개혁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형 보수를 비판하면서 개혁의 정당성을 도출해내는 게 유시민의 목적이다.
그는 시장형 보수의 대표격으로 하이에크를 꼽는다.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여 약자의 자유를 박탈할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점진적 개혁'의 길이 막히면 끝내 사회혁명이라는 가공할만한, 실행하는 이들조차도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파국이 나타날 것이라 시장형 보수들을 겁박한다. 하지만 유시민은 그 자신이 자유주의자를 자처했듯이 사회주의적인 혁명과 계획경제를 숭배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일단 시장형 보수들을 안심시키려 국가의 간섭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행한다.
"그러면 국가는 어떻게 간섭해야 하는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보호제도의 '법률적 틀'을 설계하는 제도적 간섭이다. 단결권을 비롯한 노동3권의 보장, 해고 보호, 유아노동 금지와 모성 보호, 산업안전과 산업보건을 위한 규제, 법정노동시간 제한, 최저임금제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시장에 대한 국가규제가 모두 이 제도적 간섭에 포함된다. 둘째는 통치자가 설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권력기관을 동원하여 어떤 범위 내에서 조처를 취하는 '대인적•직접적 방법'이다. 이것은 국가권력이 구조가 아니라 과정에 개입하여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부당하게 경제적 약자의 자유를 침해하고 착취하는데도 이를 시정할 법률과 제도가 마땅치 않을 때, 국가는 정치적 권고와 협조 요청이나 국세청,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을 활용한 압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적 간섭주의는 언제나 제도적 방법을 우선적으로 택하며, 이것이 부적합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직접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유시민, 2011 : 158)
우리에게는 마르크스가 단순한 형식적 자유라고 맹렬하게 비판하고 부정하였던,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채택한 이들로 하여금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지게 하였던 "정부를 심판하고 갈아치울 인민의 권리", 다시 말해서 보통선거권이라는 "정치권력의 남용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가 있다.(유시민, 2011 : 159) 그런데 하이에크와 같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인간이 사회를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면서(유시민, 2011 : 175) 어떠한 형태의 사회계획의 도입, 점진적인 개혁의 도입도 모두 전체주의로 귀결될 것이라 부정하고 있다. 하이에크를 숭배하는 시장형 보수들도 하이에크와 마찬가지로 케인즈를 비판하며 어떠한 형태의 시장경제에 대한 개입도 모두 전체주의를 낳을 것이라 부정한다. 이에 대해 유시민은 앞서 보았듯이 그러한 봉쇄는 사회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겁을 준다. 다시 말해서 유시민은 사회혁명이 '가공할만한 폭력'이라 주장하며 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정상적이라면 그것을 택할 수 있냐고 비판하고, 시장형 보수에 대해서는 저 마르크스주의자가 보이지 않냐고 겁을 주고 있다.
나같은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이가 당황하여 "유 선생님, 진정하세요. 마르크스는 인민이 의회를 장악하여 평화적인 권력이행의 경로에 대해서도 말했답니다. 영국의 지배계급과 같이 사회변화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응하는 지배계급이 있다면 별다른 유혈없이도 지배계급의 권력 포기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게 마르크스의 주장이었습니다. 레닌의 경우에는 '국가독점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시대적 조건을 강조하며 그러한 가능성에 부정적이었지만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폭력만을 원한다는 주장은 성립하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말년의 엥겔스는 <프랑스와 독일의 농민문제>라는 문헌에서 사회혁명 과정에서 차라리 유산계급으로부터 그들이 갖고 있는 생산수단을 모조리 사버리자고까지 하였습니다. 엥겔스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그들에게서 몽땅 돈으로 사들인다면 가장 값이 싸게 먹힐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라고 말해도 그는 듣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란 어떻게 보아도 무조건적으로 폭력적이고 무장봉기를 통해 사회 전체를 피로 물들이려 하는 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시장형 보수들을 협박하고 그들로 하여금 개혁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일종의 헤게모니 행사 작용이다.
그는 자유주의자로서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국가주의 국가론을 신봉하는 보수세력을 "배제"하고 끌어들일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 좌파와 자유주의 내의 시장형 보수 양측을 서로 이간질시키는 방식으로, 서로의 존재를 근거로 서로를 대립시키며 유시민의 개혁주의로 수렴시키려는 헤게모니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 헤게모니 전략의 끝은 민주당 중심의 개혁주의적인 진보정당의 길이 될 것이다. 자유주의자라기보다는 극우 파시즘 세력을 배제한 나머지 계파들을 묶으려는 스탈린의 '통일전선론'이 떠오르게 한다. 개인과 시민사회를 도외시하는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통일전선론'이랄까? 기괴한, 너무도 기괴한 유시민식의 자유주의의 진면모가 여기서 드러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유시민의 자유주의는 무언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 는 얘기만 하였다. 국가주의 국가론을 배척하고,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 상정하는 사회혁명을 부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자유주의 내의 분파인 시장형 보수를 사회혁명을 이유로 협박하여 포섭하려 하였다. 이렇게 유시민 식의 자유주의로 헤게모니를 형성하여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다음 3부에서 유시민의 '혼합정체론'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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