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0

Yisang Sohn 한국 최초의 퀴어영화 [초록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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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퀴어영화 <초록물고기>.
1. 첫 장면부터 심혜진의 붉은 스카프가 바람에 날려 한석규의 면상을 덮는다. 한석규는 나중에 살인하러 갈 때까지 이 스카프를 고이 간직한다. 스카프는 <데니쉬 걸>이나 <벨벳 골드마인>에서부터 <캐롤>과 <파워 오브 도그>, 더 최근에는 <계절과 계절 사이>에 이르기까지 온갖 퀴어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소재이기도 하다.
2. 문성근은 조폭 두목이라기엔 하나도 안 무섭고 가녀린 인상이다. 부드러운 말투로 부하들을 살살 때린다. 살살 때린 후 손가락 끝으로 얼굴을 어루만져준다. 손가락을 부러트리는 자해공갈을 벌인 한석규를 부하로 받아주는데, 다친 손을 세심히 신경써줄 뿐만 아니라 부하의 어머니 생신까지 챙겨준다.
3. 문성근이 한석규에게 조곤조곤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나, 명계남에게 맞은 뒤 옥상 위에서 한석규를 끌어안는 장면 등은 어떠한 조폭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여러 장면에 걸쳐 한석규에게 스윗한 표정으로 “넌 꿈이 뭐니?” 같은 속 깊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둘의 다정한 대화를 듣다가 <시월애>같은 영화를 보면 흡사 전쟁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다.
3. 절대악역인 명계남은 하나도 안 무섭고 곱다. 예전 부하인 문성근을 바라보는 눈빛이 애처롭다. 자신이 깜빵에 있을 때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은 섭섭함보다 애정이 더 많이 남은 말투로 문성근을 부른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이 기르던 개라며 문성근을 지분거리다가 살살 때린다. 나중에 문성근의 부하에게 죽을 때는 민망한 개구리자세로 죽는다.
4. 한석규는 조폭 똘마니라기엔 하나도 안 무섭고 친절하다. 그윽한 눈빛과 둥글둥글한 말투로 문성근을 모신다. 베리 젠킨스의 <문라이트>에 나오는 게이 범죄조직 같다. “남대문 열렸어요”를 굳이 두 번 반복하여 명계남이 그곳을 보게 한 뒤 죽이고, 시신을 민망한 개구리자세로 고친다. 나중에 문성근에게 배신당해 죽으면서 문성근의 차 앞유리에 거칠게 입술을 부빈다.
5. 송강호는 조폭 행동대장이라기엔 하나도 안 무섭고 유쾌하다. 반짝반짝 블링블링한 셔츠를 입고 다닌다. 어떤 남자를 파묻기 전에 굳이 옷을 다 벗기고 ‘거기’에 대해 깔깔대며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항상 몸을 배배 꼬며 말하는 송강호는 한석규의 등장으로 인해 문성근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명계남에게 간다.
6. 심혜진은 퇴폐미와 소년미를 둘 다 가지고 있는 인물로, 우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불안정한 정서상태를 자주 드러낸다. 화장법과 패션, 걸음걸이 등 많은 면이 일반적인 여성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가 문성근의 애인이자 밤무대 가수라는 설정은 <헤드윅>과 <판타스틱 우먼> 등 성전환자를 다룬 영화를 연상케 한다. 심혜진이 성전환자고 주요인물 모두가 게이라면 <초록물고기>의 의뭉스러움이 전부 해소된다.
7. <초록물고기>의 퀴어함에 쐐기를 박는 인물이 영화 마지막의 오지혜다. 그녀는 문성근과 심혜진을 식당 손님으로 받으면서 시종일관 기쁘고 들뜬 목소리 톤으로 말한다. 손님의 대화에 적극 개입하며, 말할 때마다 몸을 옴짝옴짝 움직이며 웃는다. 오지혜가 가족과 함께 나오는 다른 장면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녀의 들뜬 표정과 반짝반짝 빛나는 눈은 호기심 많은 소녀가 굉장한 것을 발견했을 때 보이는 반응이다. 남들에게 말 못할 특별한 걸 찾아냈다 이거지.
8. 오지혜는 두 손님이 떠날 때 굳이 건물 밖까지 호다닥 달려나와 차를 타고 떠나는 뒷모습을 구경한다. 그러다 오빠(정진영)에게 꿀밤을 얻어맞는다. 정진영은 수상한 게이 커플을 보고도 아무 말 않는 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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