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1

문학이 '인류 보편적'이길 바랐던 오에 겐자부로 < 오비추어리 김석희

문학이 '인류 보편적'이길 바랐던 오에 겐자부로 < 오비추어리 < 인물 < 기사본문 - 더칼럼니스트

입력 2023.03.20


문학이 '인류 보편적'이길 바랐던 오에 겐자부로
[오에 겐자부로를 추모하며]  김석희 
'일본의 본질' 강조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는 '폐쇄적 일본' 거부...탈민족주의 지향
그의 인류보편적 입장을 한국도 함께 나누길

돌아가시기 며칠 전 술자리에서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선생님 소식을 들었습니다. 출판사 관계자들도 아주 조심스럽게 상황을 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인터넷을 통해 부고를 들었습니다.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오에 선생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방한하셨을 때 한두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동그란 안경과 단아하고 자그마하신 모습이 인상에 남습니다.

삶과 문학은 떨어져있지 않다

오에 겐자부로는 1935년 에히메현(愛媛県)에 태어나 열 살에 일본의 패전을 맞았습니다. 전후 미국의 점령에 의한 강제적 민주화이기는 했지만, 그는 어린 시절 민주주의 사상의 세례를 받으며 자란 세대입니다. 1957년 만 스물두 살, 도쿄대 불문과 재학 중에 <사육>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면서 학생 작가로 데뷔합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군국주의의 가혹함을 일찍 깨달은 그는 세상으로 나아가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던 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삶과 문학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들 히카리군을 양육하면서 절망 속에서 담담히 일어나 그 ‘개인적 체험(1964년에 발표된 오에 겐자부로의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을 세상에 내놓기도 합니다. 그는 1992년의 인터뷰에서 아들의 장애에 '절망했다'고 말한 자신의 ‘천박함’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장남은 후에 작곡가가 됩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삶은 문학이 되었고, 그의 문학은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주었습니다. 장애가 비극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시기에 모든 사람이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 공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아주 개인적인 체험이 인류의 체험으로 남았다고 해야겠지요. 오에 겐자부로는 1994년 《개인적인 체험》, 《만연원년의 풋볼》 등의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합니다.
오에 겐자부로와 아들 히카리.

일본에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의 기쁨을 안겨 준 오에 겐자부로는 한국에서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수식어로 통하는 소설가였습니다. 그는 1975년, 독재정권의 탄압에 항거하던 김지하의 석방을 위해 단식투쟁을 벌였으며, 황석영이 1989년에 방북했다가 1993년에 돌아와 5년간이나 옥고를 치르자 그의 석방을 위해 애쓴 일본인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기억되는 오에 겐자부로는 문학 자체보다 그의 ‘양심’과 ‘실천’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양심’대로 ‘실천’하는 작가를 존경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글을 완성하는 실체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양심과 실천에 대한 찬사는 차고 넘치므로, 나는 오늘 소설가로서의 오에 겐자부로를 기억해 보려고 합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는 달랐던 노벨상 수상 이유와 소감

오에 겐자부로의 노벨상 수상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상상의 세계 속에서 개인적인 것을 깊이 파고 들어감으로써 인간에게 공통되는 것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일본의 첫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수상 이유는 ‘일본인의 심정의 본질을 그린’, ‘대단히 섬세한 표현’이었습니다. 그 일본인의 본질은 애매한 것이었지만 일본 문화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서양인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개인적인 것을 파고 들어감으로써 인간에게 공통되는 것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는 이 말은 오에 문학의 문학사적 의미를 잘 평가한 말이자, 노벨문학상의 흐름이 바뀌었음을 시사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서구 시각의 오리엔탈리즘을 만족시키는 문학이 아니라 개인과 인류 보편성을 연결짓는 문학으로 주목받게 된 것입니다. 문학이 한 지역의 특수성을 대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함으로써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점을 돌아보게 됩니다.

오에 겐자부로가 밝힌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의 제목은 <애매한 일본의 나>였습니다.

“현재 일본은 애매함의 양극으로 갈라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이 양극화가 깊은 상처처럼 새겨진 소설가로 살고 있습니다. 메이지 이래 일본은 한결같이 서양을 배우면서도 전통적인 문화를 지키고, 아시아의 침략자이면서, 서양의 입장에서 보면 불가해하고 애매한 존재였습니다.”

이 강연의 제목은 일본의 첫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아름다운 일본의 나>와 대조되는 제목입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아름다운 일본의 나>가 외부로부터의 이해를 구하지 않는 폐쇄적인 내용이었다고 비판합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 천황이 주겠다는 훈장을 거부합니다.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기관인 천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지난 2005년 5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참가차 방한했을 당시 오에 겐자부로. 사진=연합뉴스

지금 그의 인류보편성이 중요한 까닭

2011년, 오에 겐자부로상을 수상한 작가이며, 오에 겐자부로 자신이 ‘오에 겐자부로 문학의 후계자’라고 칭하기도 한 소설가 호시노 도모유키(星野智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에서는 예술이나 스포츠 관련자가 정치적·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오에 상도 몇 번이나 그런 역풍을 만났고 <정치소년 죽다>라는 우익소년을 제재로 한 소설을 썼을 때, 우익으로부터의 압력 때문에 책을 내지 못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에 상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내가 정치에 대해 의견을 내거나 소설 속에 사회적인 테마를 다루거나 할 때면, 그것은 문학의 일이 아니라고 무언의 압력을 느낄 때가 있지만, 그에 상관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오에 상이 만들어 준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오에 겐자부로의 태도가 호시노를 비롯한 일본 작가들에게만 귀감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과 양심적인 행동과 탈민족주의적 실천이 ‘한국의 입장’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찬양받는데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와 그의 문학이 좀 더 인류 보편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가능할 때 한국의 입장 역시 인류 보편의 타당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니까요.

그는 평생 일본의 과거 전쟁책임, 피폭자에 대한 행정과 사회의 차별의식,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이의 제기 등 사회와 정치 문제에 대해 발언했고, 피해 당사자들과 소통하고자 애썼습니다. 최근, 식민통치에 의한 피해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피해보상 문제를 합의한 한일정상회담이 한일양국의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민감한 문제의 해결일수록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보편 타당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오에 겐자부로는 말하지 않을까요?

오늘, 양심과 실천이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오에 겐자부로를 말해보겠다는 나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는 결국 그의 문학을 매개로 그의 양심과 실천에 대해 이야기하고 말았으니까요. 본의 아니게 문학과 삶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오에 겐자부로 생전의 신념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 되었네요. 그의 작품이 오래도록 기억되고 읽히기를 희망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태어나보니 강원도 평창군 미탄이었다. 서른둘에 처음 국제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 오사카대학에서 언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가, '어쩌다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계정 <문학팔레트>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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