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좌파생활'
강동훈
2020. 10. 23.
이 책은| 슬기로운 좌파 생활을 위한 최고의 좌파 입문서입니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전반에 걸쳐 한국과 독일을 비교해부합니다. 칼은 제법 날카롭습니다. 설사 책은 안보더라도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김누리 교수의 인터뷰나 강의는 꼭 한 번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우리 사회가 불행한 이유를, 적어도 한 가지에서는 손뼉을 치며 맞장구 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해냄출판사
2020.03.06.
목차
- 들어가는 말 “우린 지금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 프롤로그 병든 사회에서 거울 보기
- 제1장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 제2장 대한민국의 거대한 구멍
- 제3장 악순환의 연결 고리를 찾아서
- 제4장 우리는 함께 웃을 것이다
- 에필로그 거울 앞에서 당당하기
- 막리뷰|
1
7 4 '보수 대코리아이비인후과 진보'라는 거짓말
독일의 보수당 대표인 메르켈의 입장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는 보수 중에서도 한참 보수입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교수
우리가 가장 크게 착각하고 있는 한 가지를 김누리 교수는 반복적으로 지적한다. 현재의 민주당 그리고 문재인 정권은 좌파가 아
니라 그냥 보수라는 사실.
소위 '진보’라고 불리는 민주당 계열도 거짓 언어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내놓고 진보를 자처하는 일은 드물지만, 보수 언론이 진보라고 불러주면 진보인 척하는 세력입니다. 이들 또한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면 '진보'와 는 한참 거리가 먼 정파입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펼치고 있는 노동정책, 경제정책, 재벌정책, 복지정책 등을 보십시오.
순진하게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 재벌이 사라질 줄 알았다. 최소한 작은 움직임 혹은 밑작업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수많은 '김정은'들은 여전히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다. 재벌 2세, 3세 들이 애비에게서 물려받은 거대한 기업들을 운영한다. 내 아이들에게 내가 직접 의학을 가르쳐서 아이들이 병원을 차리고 수술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쌤쌤일까? 밝혀지는 순간 나는 쇠고랑
을 찰 것이다. 그건 되고 이건 왜 안될까.
문정권이 들어서면 집 한채 사기위해 평생을 소처럼 때로는 개처럼 일하다 죽는 불행한 인생 스토리가 끝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미친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면 극단적 선택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로 인해 손해를 보고 저항하는 수많은 국민을 내리눌러서라도 정책을 추진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문정권이 그렇게 하면 온몸을 던져 지지해줄려고 했다. 지금껏 그런 일은 없다. 시급 올리는 일로 잠시 시끌 했다.
찔끔찔끔 별 실효도 없는 부동산 정책들만 자꾸 나온다. 결혼한 부부가 본인 집을 소유할때 출산율이 두 배이상 오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 전에, 자기 집 한채가 있으면 결혼율도 훨씬 더 증가한다는 통계자료가 어제 뉴스에 나왔다. 인구 감소로 전세계
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나라 대한민국, 이렇게 꼼지락 거릴 여유가 있는 걸까? 달님이 그냥 보수인걸 이 책읽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난 정말 정치를 모르는 바보다.
보수에 대해 김누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럼 보수란 무엇일까요, 보수주의자는 어떤 가치를 추구할까요?
보수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입니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것이 보수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개인을 공동체보다 더 중시하는 쪽은 자유주의이지요. 그래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구분할 때의 결정적 기준이 개인을 우선하느냐, 공동체를 우선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동체를 중시하면 '빨갱이'라고 공격합니다. 정말로 이런 전도가 없습니다. 보수가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바로 가장 근원적인 공동체로서 민족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대부분 민족주의자인 거지요. 김구 선생이 바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교수
그리고 보수라고 자처하는 국민의 힘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일갈을 날린다.
그런데 지금의 소위 '보수'라는 자들은 어떻습니까 민족을 경시하고 외세에 붙어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무리입니다.
다음으로 보수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역사입니다. 전통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과거에서 배우려는 자세가 보수의 자세이지
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자들은 역사를 두려워합니다. 역사로부터 도망가고, 역사를 왜곡하고 축소합니다. 그런 보수는 없습니다.
또한 보수주의자들은 문화도 중시합니다. 세련된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고, 품위와 품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자들이 쓰고 있는 언어나 보이는 태도를 한번 보십시오. 정말 끔찍합니다.
그렇다. 지금 대한 민국은 보수대 진보가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지배하는 사회다.
수구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수구 守舊
옛 것을 지키려 하는 것.
보수주의는 비록 보수적이라도 긍정적인 변화는 수용하지만 수구는 맹목
적으로 옛 것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보수와는 차이점이 있다. 구체제를
고수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수구는 '반동'으로 불린
다. 게다가 변화를 극단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 확률이 높다.
수구는 과거 기득권세력들, 친일 부터 정치깡패, 군사독재 정권의 잔류라고 볼 수 있다. 이제야 겨우 수구세력이 완전 지배했던 사회에서 몇 걸음 벗어나는 중이다. 다들 알겠지만 사실 여기까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 민족은 정말 쿨하고 멋졌다. 박근
혜 정권때의 촛불 혁명은 지금 생각해도 전율이 인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을 살펴보면, 코로나까지 겹쳐 한숨만 나온다. 우리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식수준은 하늘 끝에 닿아 있다. 하지만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의 의식 레벨은 지상도 아닌 깜깜한 지하세계에 있다. 이 둘 사이의 괴리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물론 황교안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대표가 문재인 정부를 좌파 정부라로 부르는 것은 백번 맞는 말입니다. 그의 눈으로 보면 온 세상이 좌파이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우파는 존재하기 어렵지요. 오른쪽 끝에 서 있으니까요. 그러나 독일의 보수당 대표인 메르켈의 입장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는 보수 중에서도 한참 보수입니다.
죽기전에 온전한 의미의 좌파 정당이 집권하는 변화를 볼 수 있을까? 알짜 좌파가 아니어도 좋다. 좌파 고물이 조금이라도 묻은 정당의 집권을 한 번은 보고 싶다.
2
사회악의 근원은 '대학입시'
이 책은 내게 작은 구원과 같았다. 내 성격이 왜 이모양인지 그 이유를 마흔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이다. 내 성격은 공격적이고 늘 '화'가 많다.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불신을 탑재하고 있으며 여성, 학벌, 사회경제적 계급 등 전영역에 걸쳐 차별적 사고방식, 특히나 천박한 엘리트 카르텔이 20대에 점정을 찍었고 지금도 희미하게 잔존하고 있다. 30대 초반부터 이런 사고방식
의 기원을 찾아다녔다.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다 하필이면 쇼펜하우어에 빠져들면서 증상이 더 심해진 면도 있다. 다행히 이 책을 읽고서 작은 실마리를 찾았다. 조금은 비겁해 보이는 이유지만 내 거지같은 성격이 온전히 내 탓만은 아니라고 위로할 수 있었다.
대학입시를 폐지해야 한다.
김누리 교수가 '대학입시 제도는 사라져야한다'고 주장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그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삐뚤어진 내 성격의 가장 큰 원인을 이수근을 닮은 낯선이가 설명하고 있었다.
저는 '경쟁은 야만'이라는 아도르노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국도 독일처럼 학교에서 경쟁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얼마 전엔 어느 신문 칼럼을 통해 대학 입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상당히 많은 비난성 댓글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먹물, 현실성 없는 꿈만 꾸는 이상주의자라는 식의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기위한 경쟁 체제는 초등학교때부터 시작되었다. "경쟁"에서 이겨야한다는 지상 최고의 과제가 다른 모든 가치들을 불태워버렸다.
내 어머니는 자식교육에 사활을 건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였다. 자식 교육을 위해 그 잘나가던 식당도 접었다.
소도시에서 나름 이름있던 식당이었고 그런 식당을 경영하는 어머니가 내심 자랑스러웠는데, 왜 식당 문을 닫았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어머니의 희생은 나를 죄인인양 옥죄었다. 성적과 등수에 더 집착했다. 내가 생각해도 지독했다.
그 덕분에 성적은 그럭저럭 나왔다. 대신 심각한 사상적, 정서적 불구자가 된 자신을 서른이 되어서 발견하게 됐다. 열두살부터 살벌한 경쟁에 뛰어들면서 지식 습득과 문제풀이와 연관없는 다른 모든 정신영역에서의 성장이 멈춘 탓이라 생각한다. 내 마음은 지금도 사방이 닫혀있다. 그 안으로는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다. 심지어 나 조차도. 이런 마음의 불구자가 결혼하고 가정을 이
뤘다는게 때론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유일한 친구는 아내 뿐이다. 그녀는 내 멘토이자 정신과 의사이자 카운셀러다. 내 코어에는 아내만 출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경쟁 교육을 하지 않는 것, 대학 입시를 폐지하는 것은 사실 비현실적인 구상도, 이상적인 꿈도 아닙니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그런 정신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입시 제도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을 비롯해서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는 대학 입시가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아비투어(Abitur)라고 하는데 대학을 가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거의 대부
분 다 합격합니다.
내가 독일에서 태어났다면 혹은 한국에 대학입시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꿈이었던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었을까?
아니면 편의점 사장이 됐을까? 뭐가 됐든 최소한 정신적인 불구자는 안됐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했을 것이다.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을 알기에 행복의 정의를 찾아 두꺼운 책을 파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 아이들을 더 사랑했을 것이다.
지금보다 친구가 많았을 것이다. 내 아내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 것이다. 일중독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내 어머니는 어땠을까? 지금까지도 정력적으로 식당을 운영했을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경제적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매일 일하는 즐거움에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온 가족이 지금의 행복을 포기한다. 돌이켜보면 너무 웃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10년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행복은 좋은 대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신분처럼 되어버린 대학 서열이 존재하는 상황.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나보다 아랫것들이 생겼다는 가학적이고 저열한 쾌락, 누군가에게 모멸감을 줄 수있는 티켓을 손에 쥔 성
취감. 이런 개떡 같은 건 행복도 뭐도 아니다. 이런걸 고유의 권리인줄 알거나 행복으로 여기는 수구변종들로 가득찬 한국사회.
이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제발 대학 입시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란다. 언젠가 이따위 부끄러운 서열표를 내 손자들은 존재조차 모르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대학입시가 사라지기를 오늘도 내일도 기도한다.
교육이 무엇입니까? 본래 교육, 즉 '에듀케이트(educate)'라는 말은 '밖으로(e-) 끌어낸다(duc-)'는 뜻입니다. 독일어의 '교육하다(erziehen)'도 의미가 똑같습니다. 고유한 재능은 사람 안에 이미 다 들어 있고, 그걸 끌어내는 게 교육이지 '지식을 처넣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한국에서 배운 교육은 사실 반교육(anti-education)에 가깝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반교육적인 교육이 이어지고 있다. 매일매일 지식을 처넣고 정답을 "고른다". 대학은 그 고유의 기능을 잃은지 이미 오래다. 그냥 직업학교다. 지금은 대학이 유튜브보다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는 사람이 거의 없긴 했지만 지금은 전공 분야 하나로 먹고 살기에 벅찬 세상이다. 그런 대학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오만 정성
을 들이는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대학에 대학원에 박사학위까지... 그 열매를 대기업이 낼름 따먹는다. 그러다 단물이 더이상 나오지 않게되면 마흔도 되기전에 뱉어버린다.
아비투어 성적과 같은 비중으로 반영하는 것이 바로 대기 기간이라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정원 제한 학과(학생들이 몰리는 인기 학과)에 입학하기 위해 몇 년을 기다려 왔는지를 비중 있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의대의 경우는 아비투어 성적이 좋지않아도 대체로 3년 정도 대기하면 입학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기 기간 중에는 관련 분야와 연관된 과목을 미리 수강하거나 실습할 기회를 최대한 제공하는 대학이 많습니다.
"수능 성적이 좋지않아도 3~4년 뒤에 의대 입학이 가능합니다." 아비투어 대신 수능시험을 대입해보아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누구든 원하면 대학을 간다. 그냥 "대학"이 있을 뿐, 스카이 따위의 대학서열은 없다.
진리와 학문을 탐구하는 대학.
진리와 학문을 탐구하기 위해 대학에 간다. 그러니 대학 진학율은 30%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학벌이 신분인 사회 대한민국. 민주적 시민의식에 비해 왜 이렇게 이 방면으로는 아직도 조선시대인지 모르겠다. 6.25 전쟁을 포함한 어두운 한국 현대사가 잉태한 기형적 풍조다.
아비투어 성적이 좋아서 들어온 아이들과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끝에 입학한 아이들 중에서 누가 더 좋은 의사가 됐을까요? 이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들이 있었는데, 대기 끝에 들어온 아이들이 졸업 후에 더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꼭 치열한 경쟁을 시켜야 우수한 인재를 기를 수 있다는 우리의 뿌리 깊은 편견을 깨뜨리는 결과이지요.
지금 우리 한국인은 경쟁을 마치 정의의 유일한 기준인 양 절대시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의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의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여기서 독일과 한국의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독일 사회는 그 구성원에게 최대한 많은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는 반면, 한국 사회는 그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하려고 합니다.
의전원,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있다. 기존의 의예과 출신들은 의전원 출신의 의사들을, 심하게 얘기하면 잡놈, 벌레 보듯 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정형외과나 성형외과처럼 전공의가 되기위한 경쟁이 치열한 과일수록 의전원 출신 의사를 비하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내가 몸담았던 이비인후과에서도 없지는 않았다. 끝없는 편가르기. 출신 조사. "수구"는 모든 분야에서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독일 만하임응용대학의 빈프리트 베버(Winfried Weber) 교수는 한국 교육을 살펴보고 나서 "독일은 텐샷(10 Shot) 사회인데 반해, 한국은 원샷(1 Shot) 사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독일인에게는 열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한국인에게는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지금 독일이 이렇게 부유하고 성숙한 사회가 된 것은 바로 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대한 자신의 재능을 실현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반면 한국은 너무도 많은 재능들이 발현되지 못한 채 사장되는 사회이지요.
한국은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일 뿐만 아니라,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사회이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이러한 '이중의 박탈'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도 엄정난 차별과 격차가 존재하지요. 이러한 현실이 우리가 지극히 기형적인 사회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틀린 말 하나없고 단 한챕터도 버릴게 없는 책이다. 특히 뒷편의 독일 통일에 대한 내용도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독일 통일에 대해서도 얼마나 왜곡된 뉴스들이 많은지.... 뒤틀린 사회에서 정신 바짝 차려야한다. 좌파적 사상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병태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가열차게 일독을 권하는 바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