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피해자의 '처절한 투쟁 기록', 책 한 권에 담겼다 - 오마이뉴스
일제 피해자의 '처절한 투쟁 기록', 책 한 권에 담겼다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장 평전 '어디에도 없는 나라' 출간
23.03.23 14:39l최종 업데이트 23.03.23 22:46l
김형호(demian81)
▲ 이금주 평전 '어디에도 없는 나라'.
ⓒ 표지사진 오마이뉴스 안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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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시민사회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1990년대 초부터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을 상대로 7건의 소송을 제기하는 등 평생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인권회복에 앞장서온 고(故)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장의 평전이 출간됐다.
이금주 회장은 결혼 2년 만에 일제에 의해 사랑하는 남편을 빼앗긴 아픔을 안고, 여생을 일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에 힘써왔다.
그의 남편은 1942년 11월 8개월 된 아들을 남겨둔 채 일본 해군 군무원으로 남태평양으로 끌려간 뒤, 1943년 11월 25일 남태평양 타라와섬에서 미군의 대규모 상륙작전 전투 중 사망했다.
그러나 일제 피해자들은 독재정권하에서 일본을 상대로 한 권리행사 기회마저 봉쇄당했다. 이 회장은 예순아홉 나이에 1988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을 맡은 뒤, 이후 30여 년 동안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한길을 걸어왔다.
1990년대부터는 피해자들을 결집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본격적인 소송에 나섰다. 일본 법정에서의 승소보다, 법정투쟁을 통해 전후 배상 문제를 외면하는 일본 정부를 국제사회에 고발함으로써 일본의 반성을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1992년 원고 1,273명이 참여한 <광주천인 소송>은 이후 대일(對日) 투쟁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이 소송을 시작으로, 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소송>,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등이 합세해 원고로 참여한 <관부재판 소송>, <B‧C급 포로감시원 소송>,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일본 외무성을 상대로 한 <일한회담 문서공개 소송> 등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7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일본 사법부에 제기했다.
법정 진술, 재판 방청, 각종 시위, 일본 지원단체와 연대 활동 등 노구를 이끌고 그동안 일본을 오간 것만 자그만 치 80여 차례, 그 사이 일본 법정에서 '기각' 당한 것만 모두 17차례에 이른다.
한없이 무모해 보이는 그 싸움은 마침내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벽에 하나씩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40여 년 동안 감춰져 있던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되고, 강제동원특별법이 제정된 데 이어, 한국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한 것.
피해자들의 끈질긴 투쟁은 마침내 2018년 역사적인 한국 대법원 배상 판결로 귀결됐다. 과거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인해 국가 간 배상문제는 일단락됐더라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별 손해는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었다.
책에서는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금주 회장이 외롭게 부딪히며 맞서야 했던 고뇌와 투쟁의 기록이 담겨 있다.
특히 이 책에는 자신은 물론 아들과 며느리까지, 나중에는 손녀까지 한 집안 3대가 인권회복을 위해 일본과 맞서 모든 것을 쏟아냈던 숨은 사연들을 접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대한민국 인권상'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2021년 12월 끝내 일본의 사죄 한마디를 듣지 못한 채 102세를 일기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발간사에서 "이 평전은 온갖 고난과 좌절 속에서도 역사적 소명을 위해 온 생을 던진 이금주 한 개인의 기록임과 동시에, 광복 후에도 풍찬노숙해야 했던 일제 피해자들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일을 시작한 첫해 이금주 회장을 처음 만나 이후 일본 소송을 주도해 온 야마모토 세이타(山本晴太) 변호사는 "피해자는 단지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며 "이금주 회장의 인생을 알고, 그 심정을 이해하면, 가해자도 아닌 자가 대신 돈을 내는 식의 '해결방안'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어디에도 없는 나라> 송경자 지음.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엮음. 344쪽. 2만8000원. 도서출판 선인.
일제 피해자의 '처절한 투쟁 기록', 책 한 권에 담겼다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장 평전 '어디에도 없는 나라' 출간
23.03.23 14:39l최종 업데이트 23.03.23 22:46l
김형호(demian81)
▲ 이금주 평전 '어디에도 없는 나라'.
ⓒ 표지사진 오마이뉴스 안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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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시민사회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1990년대 초부터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을 상대로 7건의 소송을 제기하는 등 평생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인권회복에 앞장서온 고(故)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장의 평전이 출간됐다.
이금주 회장은 결혼 2년 만에 일제에 의해 사랑하는 남편을 빼앗긴 아픔을 안고, 여생을 일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에 힘써왔다.
그의 남편은 1942년 11월 8개월 된 아들을 남겨둔 채 일본 해군 군무원으로 남태평양으로 끌려간 뒤, 1943년 11월 25일 남태평양 타라와섬에서 미군의 대규모 상륙작전 전투 중 사망했다.
그러나 일제 피해자들은 독재정권하에서 일본을 상대로 한 권리행사 기회마저 봉쇄당했다. 이 회장은 예순아홉 나이에 1988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을 맡은 뒤, 이후 30여 년 동안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한길을 걸어왔다.
1990년대부터는 피해자들을 결집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본격적인 소송에 나섰다. 일본 법정에서의 승소보다, 법정투쟁을 통해 전후 배상 문제를 외면하는 일본 정부를 국제사회에 고발함으로써 일본의 반성을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1992년 원고 1,273명이 참여한 <광주천인 소송>은 이후 대일(對日) 투쟁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이 소송을 시작으로, 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소송>,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등이 합세해 원고로 참여한 <관부재판 소송>, <B‧C급 포로감시원 소송>,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일본 외무성을 상대로 한 <일한회담 문서공개 소송> 등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7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일본 사법부에 제기했다.
법정 진술, 재판 방청, 각종 시위, 일본 지원단체와 연대 활동 등 노구를 이끌고 그동안 일본을 오간 것만 자그만 치 80여 차례, 그 사이 일본 법정에서 '기각' 당한 것만 모두 17차례에 이른다.
한없이 무모해 보이는 그 싸움은 마침내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벽에 하나씩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40여 년 동안 감춰져 있던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되고, 강제동원특별법이 제정된 데 이어, 한국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한 것.
피해자들의 끈질긴 투쟁은 마침내 2018년 역사적인 한국 대법원 배상 판결로 귀결됐다. 과거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인해 국가 간 배상문제는 일단락됐더라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별 손해는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었다.
책에서는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금주 회장이 외롭게 부딪히며 맞서야 했던 고뇌와 투쟁의 기록이 담겨 있다.
특히 이 책에는 자신은 물론 아들과 며느리까지, 나중에는 손녀까지 한 집안 3대가 인권회복을 위해 일본과 맞서 모든 것을 쏟아냈던 숨은 사연들을 접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대한민국 인권상'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2021년 12월 끝내 일본의 사죄 한마디를 듣지 못한 채 102세를 일기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발간사에서 "이 평전은 온갖 고난과 좌절 속에서도 역사적 소명을 위해 온 생을 던진 이금주 한 개인의 기록임과 동시에, 광복 후에도 풍찬노숙해야 했던 일제 피해자들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일을 시작한 첫해 이금주 회장을 처음 만나 이후 일본 소송을 주도해 온 야마모토 세이타(山本晴太) 변호사는 "피해자는 단지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며 "이금주 회장의 인생을 알고, 그 심정을 이해하면, 가해자도 아닌 자가 대신 돈을 내는 식의 '해결방안'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어디에도 없는 나라> 송경자 지음.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엮음. 344쪽. 2만8000원. 도서출판 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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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없는 나라 - 이금주 평전 송경자 (지은이),(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엮은이)
2023-01-20
정가 28,000원
Sales Point : 10
344쪽
정가 28,000원
Sales Point : 10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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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요즘처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PC도 없는 시대일 때부터 이금주 회장은 개인자동차도 없이 자필로 작성한 조사표 용지를 복사하여 버스나 택시를 타고 다니며 피해자를 방문해 피해 사실을 일일이 기입했다.
그런 식으로 작성한 방대한 양의 조사표가 일본에 전달됐고, 그 후 광주천인소송, 우키시마호소송, 관부재판, BC급 전범소송, 나고야 여자근로정신대 소송, 1988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결성의 기초가 되었다. 야속하게 사람들로부터 비방, 중상을 받는 일도 있었지만, 이 회장은 돈을 위해서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남편을 빼앗긴 원한을 풀기 위해 계속 싸웠던 것이다.
그렇게 한없이 무모해 보이는 그 싸움은 마침내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벽에 하나씩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40여 년 동안 감춰져 있던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되고, 강제동원특별법이 제정된데 이어 한국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한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끈질긴 투쟁은 마침내 2018년 역사적인 한국 대법원 배상 판결로 귀결되었다. 열일곱 번의 좌절을 감수하면서도 다시 부딪혔던 그 집념과 도전이 가능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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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발간사
축사
프롤로그
1장 | 사랑하는 내 남편을 돌려주시오!
짧은 신혼시절, 영원한 이별
제2의 고향 광주
‘삶의 등대’ 성 프란치스코
2장 | 대일 투쟁의 시작 -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출범
69세에 내디딘 대일투쟁의 첫걸음
타라와 섬에서 쏟은 눈물
3장 | 일본의 시간 - 조국이 우리를 먼저 버렸다
‘진사와 배상 청구재판 추진회’ 송두회와의 만남
기나긴 싸움의 시작 ‘광주천인소송’
‘부분 승소’ 끌어낸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소송
광주유족회 ‘은인’ 송두회 타계
일본군‘위안부’ 최초의 승소 ‘관부재판’
‘관부재판지원회’ 하나후사 부부
BC급 전범 2차 소송
‘한일 연대의 상징’ 나고야 미쓰비시 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연극 ‘봉선화’에 얽힌 사연
기각, 또 기각
최고재판소 상고와 ‘금요행동’
근로정신대 동원 주범 후지코시 2차 소송
최고재판소 ‘화해’ 성과의 과제
‘대일 과거청산소송’의 마감
4장 | 한국의 시간 - 차라리 국적을 포기하겠소
‘독립군’ 최봉태 변호사와 맞잡은 손
파란만장한 드라마 ‘강제동원특별법’ 제정
또 하나의 변곡점, 피눈물로 쓴 유서
‘판도라의 상자’ 한일회담 문서공개 백인소송
진상규명위원회 출범과 지원법 둘러싼 갈등
강제동원 피해자 목숨 값 ‘공탁금’
한일회담 문서공개 일본 소송
재일교포 이양수가 거둔 ‘뜻밖의 수확’ 독도
‘선조들의 핏값’ 포스코 상대 청구권자금 환수 소송
5장 | 광주의 시간 - 한일연대의 장
가시밭길 광주유족회
독립인가, 통합인가?
이국언과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결성
통일운동 여정의 인연들
6장 | 내 한 몸 누일 곳 없으니
광주유족회 간판 내리다
이금주를 기억하는 사람들
부록
■ 이금주 회장이 걸어온 길
■ 주요 경력
■ 기타 자료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송경자 (지은이)
전남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언론사와 대학 홍보팀에서 일했다. 지은 책으로 『이제야 세상이 바로 보이네』(공저), 『전남여성 100년』(공저), 『스물두 살 박기순』 등이 있다.
최근작 : <어디에도 없는 나라>,<스물두 살 박기순> … 총 2종 (모두보기)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엮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2009년 광주에서 결성된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전신이다. 미쓰비시로 동원된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함께 손을 잡았다.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1인 시위(2009.10~2010.7)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여자근로정신대’ 문제를 한국 사회에 알리는 데 노력해왔다. 2012년 광주를 시작으로 전남, 서울, 경기, 인천, 전북, 경남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여성 노무동원 피해자 지원 조례가 제정될 수 있도록 앞장서 왔다.
2012년, 2014년, 2015년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을 규합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며, 그중 1건은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2019년과 2020년 광주전남지역 노무동원 피해자와 유족 87명이 일본 11곳 기업을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그 밖에 국내외 강제동원 현장 답사, 학교로 찾아가는 역사강의, 구술 채록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1년 4월 현재의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으로 전환해 활동을 잇고 있다. 접기
최근작 : <어디에도 없는 나라>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제 피해자들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
요즘처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PC도 없는 시대일 때부터 이금주 회장은 개인자동차도 없이 자필로 작성한 조사표 용지를 복사하여 버스나 택시를 타고 다니며 피해자를 방문해 피해 사실을 일일이 기입했다. 그런 식으로 작성한 방대한 양의 조사표가 일본에 전달됐고, 그 후 광주천인소송, 우키시마호(浮島丸)소송, 관부(関釜)재판, BC급 전범소송, 나고야(名古屋) 여자근로정신대 소송, 1988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결성의 기초가 되었다. 야속하게 사람들로부터 비방, 중상을 받는 일도 있었지만, 이 회장은 돈을 위해서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남편을 빼앗긴 원한을 풀기 위해 계속 싸웠던 것이다.
그렇게 한없이 무모해 보이는 그 싸움은 마침내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벽에 하나씩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40여 년 동안 감춰져 있던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되고, 강제동원특별법이 제정된데 이어 한국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한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끈질긴 투쟁은 마침내 2018년 역사적인 한국 대법원 배상 판결로 귀결되었다. 열일곱 번의 좌절을 감수하면서도 다시 부딪혔던 그 집념과 도전이 가능케 한 것이다.
최근 한일 간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이러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피해 체험이나 심정에서 벗어난 해결은 있을 수 없다. 피해자는 단지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이금주 회장의 인생을 알고, 그 심정을 이해하면, 가해자도 아닌 자가 대신 돈을 내는 식의 ‘해결방안’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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