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놓고 말해보자면] 일본이 50여차례나 사과했으니 더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일본이 50여 차례나 사과했으니 더 할 필요가 없다며 윤석열 정부의 대일정책에 동조하는 입장들이 보여 너무 답답해서 글을 하나 적었다. 많은 관심과 질정을 부탁드린다.
윤석열 정부를 보면서 매번 드는 생각은 [지윤평] 1편의 제목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매일매일 뉴스를 검색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습관이 되어 하고는 있지만 요즘처럼 회의적일 때가 없었던 듯하다. 솔직히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 정부의 인사들은 도대체가 무슨 말을 하는건가?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이 습관을 갖게 되었는데 박근혜, 문재인은 답답하기도 하고 왜 이런 말을 하나 싶기는 했어도 '결국에는' 이해는 됐다. 이 사람들의 세계관 속에서 이런 발언이 나올 수 있다는 어떤 해소작용이 있었는데 이 정부의 발언들은 그런 게 없다. 무슨 말을 하는거지? 왜 이런 말을 하지?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 장관, 대통령실 등만이 아니라 그 지지자들까지도 그런 소리를 해댄다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 잘못 알고 있는건가 헷갈릴 지경이다. 말이 안되는 소리를 반복해서 당연하다는 듯이 하고 있으니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개인이면 몰라도 집단으로 저렇게까지 단체로 정신이 나갈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내가 보기에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까지도 거기에 부화뇌동하니 답답함은 더 커진다. 학자들이 조용히 있으니 나같은 사람이 중간에서 이런 해설글을 적어야 한다. 이하의 내용은 나의 독자적인 통찰이 아니라 시중에 나온 한일관계에 관한 거의 모든 연구서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참고문헌을 적지 않았다.
1. 한일관계의 교착은 전두환이 예비하였다?
최근에는 무슨 일본에 지금까지 50여 차례나 사과를 했기 때문에 사과를 더 받는 것도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통령실이 사과를 더 받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하자마자 그런 말들이 퍼지는 걸로 봐서는 여론작업을 하는 이들이 있는 듯하다. 말하는 걸 보면 기존의 논의를 전혀 모르는 이들이 그냥 사과 발언 검색해서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한테는 일본이 천황부터 수상, 각료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왜 사과를 했어야만 하는지, 그리고 한국 정부가 왜 그걸 요구했어야 했는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일본이 착해서 사죄 발언 한거고 한국이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정신나간 집단이라 사과를 듣고도 계속 요구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니까, 민주당 등의 민족주의적 정서를 지닌 이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일본이 마음에 안 들지만 하는 너스레를 떨며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표를 정리한 어떤 분의 글을 보고 웃었는데 이분은 자기가 표를 정리하면서도 왜 사과가 "전두환 정부" 때부터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보지 못한 듯하다. 1965년 한일협정 체제가 중요한 건 사실이고 한일관계의 기원이 되었던 것도 맞지만, 지금 거듭해서 사과를 하는 패턴 자체는 전두환 정부 때부터 정착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한일관계의 근원에는 전두환 정부가 있다. 왜 전두환 정부인가? 자주 추천하는 오구라 카즈오의 <한일 경제협력자금 100억 달러의 비밀>(조진구 외 역, 디오네, 2015)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전두환 정부는 박정희 정부에 비해 권력의 정당성이 훨씬 부족하다. 똑같이 쿠데타로 집권했어도 몇 번의 선거를 통해 자력으로 집권한 경험이 있는 박정희와 달리 전두환은 그런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족한 정통성을 메울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였다. 전두환이 이 부분을 메우기 위해 특히 강조했던 게 대일관계에서의 '굴욕'이었다.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한 시도가 앞서의 책에서 나온 100억 달러의 경제협력 자금요청으로 표출되었다. 오구라는 이 책에서 한일관계의 패턴이 전두환의 외교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역사문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박정희 정부 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적극적으로 일본에 과거사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 측이 이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짓고자 했음에도 박정희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넘어갔다. 전두환은 국내의 반일 운동이 반정부 운동으로 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한일 과거사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일례로 재일동포의 법적 지위, 문화재 반환, 사할인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등등을 제기하면서 한일 간의 의제로 삼으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그렇듯이 그때도 일본은 이미 모든 문제가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소되었기 때문에 억지를 부리지 말라고 했다. 법적인 형식에 따라 모든 문제가 해소되었기 때문에 한국 측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게 그때부터의 일본의 태도였다. 이런 벽에 가로막힌 전두환 정부는 어찌됐든 무언가 성과를 내야 했기 때문에 일본의 반성과 사과를 촉구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나온 게 나카소네 수상의 사과발언이었다. 나카소네 수상은 본디 보수주의자이지만 역사인식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진보적이었다. 그는 최초로 중일전쟁의 침략적 성격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전두환의 1984년 방일 때도 천황이 과거사에 대해 '유감'이라는 표현을 쓰도록 이끌어냈다.
문제는 그와 함께 일본 각료들의 "망언"도 본격화되었다는 것이다. 1986년 후지오 마사유키 문부상은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살인죄가 아니라는 극언을 쏟아내면서 한일병합에 대해서도 식민화의 책임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져야 한다고 '망언'을 하였다. 나카소네는 자신의 사과 발언을 무색케 하는 이러한 각료의 망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발언철퇴와 자진사퇴를 요구하였고, 그것을 거부하자 그를 파면시켜버렸다. 이 1980년대를 기점으로 하여 대체로 일본 정부가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거듭 재확인하고 "정부 공식 견해"에 반하는 각료들의 망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패턴이 정착된다. 이 이후로 일본 정부는 법적으로는 1965년에 모든 문제가 해소되었지만 한일 간의 우호협력 차원에서 과거사에 대한 사죄, 사과 등을 거듭해서 재확인하고 그것에 반하는 국내의 극우망언들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한국의 문제제기에 대응하였다. 그러니까 이 이중적인 두 대응방식이 계속 유지되려면 일본은 뭐가 됐든 "도의적 책임"을 표명해야 한다. 우리가 법적 책임은 끝났으니 더 이상 뭘 할 수 없는데 '도의적인 책임'은 지겠다, 이런저런 표명을 하는거다.
그래서 한국 정부 또한 '도의적인 책임'을 거듭 표명하게 유도하면서도 야스쿠니 신사참배 중지, 극우들의 망언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 등도 요구해왔다. 한국 정부가 바보라서 이런 문제를 제기한 게 아니라 한일관계의 패턴 자체가 그렇게 정착되었던 맥락이 있다. 일본은 1965년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민간 차원에서, 그리고 정부의 '일부' 지원 속에서 한일간의 우호관계를 수립하고 식민지배나 침략전쟁 같은 과거사 문제를 내면화하여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한국의 과거사 문제제기에 대응하려 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법적인 체계를 바꿀 수 없었기 때문에 거듭해서 일본의 확인을 받아둘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었고, 그러한 구조는 일본 국내의 우익들의 거듭된 망언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와 극우파의 망언의 이중주 속에서 한국의 도덕적 우월성에 기초한 문제제기가 한일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담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우익의 거듭된 망언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구조'는 집권당인 자민당의 처벌의사가 불분명해지면 한국으로서 별다른 대응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대단히 불안정한 것이었다. 일반의 레벨에서 이 불안정성을 표현한 말이 "사과의 진정성"이었다.
2. 제도화를 위한 한국의 거친 시도
이러한 구조가 바뀌기 시작한 건 2000년대부터이다.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 체제라는 변화시킬 수 없는 "벽"과 마주하여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1990년대부터는 위안부, 징용공 등의 새로운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개인청구권' 등과 같은 "미해결 잔존문제"가 남아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기존의 한일관계를 짓누르던 법적 체계를 돌파해낼 고리를 발견해낸 것이다. 노무현 정부기에는 이 문제를 반복적으로 확인 검토하면서 1965년 체제 하에서 개인 청구권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그것은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국가 간에 집행을 면제한다는 논리라는 것을 확인하며 미해결잔존문제를 일본에게 적극 제기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였다. 제도화되지 못했던 문제를 제도화 할 수 있는 고리를 발견했던 것이다.
내가 한국의 대응에 있어 비판하고 싶은 지점은 아시아여성기금 등의 여러 제도화의 계기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에서 알 수 있듯이 제도화된 수준이 한국이 원하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이유 삼아 아예 무화(無化)시켜버렸다는 것이다. 일정한 수준으로 제도화가 되었다면 그것에 기초해서 보다 높은 수준의 제도화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기민하게 전략적으로 움직였어야 했는데 그렇지를 않았다. 이 문제는 따지고 보면 결국에는 한일 간의 이상적인 미래를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이 없었다는 게, 다시 말해서 진정한 의미의 '이데올로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일관계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이 없다보니 한국의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식민지배의 불법성까지 논의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100년의 한일관계 전체를 부정하게 되었고 일본 측은 식민지배에 대한 내재적 반성을 점차 방기하게 되었다. 상호부정적인 의미의 재생산 구조가 정착해버린 것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도화의 수준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를 놓고 한일 간의 진보좌파세력이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전두환 정부 이래 한일관계는 과거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화가 미진한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도의적 책임'을 거듭해서 확인받는 작업과 그에 대한 일본 내부의 반발, 특히 보수우익들의 반발로 인한 '망언'이 반복되고 그에 따라 다시금 한국의 사과와 사죄 요구가 이뤄지는 등의 재생산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한국은 이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법적인 "배상"의 형태의 사과와 사죄를 요구하였고, 일본 측은 1965년 체제를 내세우며 그러한 요구를 거부해왔다. 이 교착 상태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한국 측은 위안부, 징용공 등의 문제를 들고 나왔고 일본 측은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더 높은 벽으로 대응하였다. 벽에 가로막혀 공회전 하는 와중에 일본의 보수우익과 그에 연대하는 한국의 보수우파들은 한국인들은 "근대적이지 않다"는 식으로, 민주당은 과거 사대부의 재림이고 그래서 명분이나 이런 걸 중시하며 떼법을 요구하고 있다는 식의 이상한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반대로 민주당 등의 진보좌파들은 토착왜구니 뭐니 하는 강한 워딩을 사용하면서 일체의 협상도, 제도화도 거부하며 일본의 백기항복을 요구하게 되었다. 내게는 이 모든 현상이 다 희극적으로 보인다.
3. 한일관계에 대한 좌파 진영의 태도에 대한 제언
새로운 한일관계의 재생산 구조를 만들 계기를 양측 모두가 현명하게 이용하지 못한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신新냉전적 구도 속에서 한국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오겠다며 일본측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지자들은 50여 차례의 사과가 있었으니 더 이상 사과받는 건 무의미하다는 식으로 말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윤석열이 본인을 박정희의 위치에 갖다놓으며 박정희의 한일협정을 따라한다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 결과는 좋지 않을 것이다. 제도화되면 될수록 한일관계는 더욱 어두워질 것이다.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할 지점은 한일양국이 식민지배의 문제와 과거사를 어떠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북조선이 멸망하지 않는 한 북일 관계의 정상화 과정에서도 반드시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과 일본은 세계 최초로 1945년 전후 해방된 피식민 국가로서 선진국 대열에 오르고 있는 한국과 제국주의 국가 출신 간의 관계정상화 및 과거사 해결이라는 세계사적인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것을 전제로 과거 피식민 경험과 제국주의 경험으로부터 어떻게 공동의 역사적 경험, 공동의 제도화 등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토론해야 한다. 단순히 경제적인 이해관계의 해결을 위해서 과거사를 덮는다면, 덮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한일 간의 과거사는 냉전적 압력 속에서도 덮어지지 않았던 심각한 문제이다. 냉전의 두터운 지층을 뚫고 올라온 문제를 본격화되지도, 서로 단절되지도 않은 신냉전(?)의 구도로 덮으려 한다면 덮어질까? 회의적이다.
한일관계의 책임은 한일 양측 모두에게 있다. 일본이 식민지배에 대한 전향적인 반성을 하지 못하는 건 결국 천황제라는 내부의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황의 전쟁책임을 은폐해온 역사(박진우의 <천황의 전쟁책임>, 제이엔씨, 2013을 참고하시오)를 인정하고 상징천황제라는 한계를 어떻게 돌파하면서 일본이 민주적 공화정으로 이행할 수 있는가를 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아시아 유일의 민주적 공화정인 한국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내야 한다.
그런 패기와 큰 그림이 한국에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이 아시아 공화주의의 선봉, 민주적 공화정을 이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작업은 "노동 없는 민주주의"로서의 한국의 민주적 공화정의 한계를 돌파해내는 작업과 연계되어야 할 것이다. 그게 지금 한국의 좌파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민주당이 싫다고 해서 일본이 50여 차례나 사과를 했으니 더 이상 식민지배 문제에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나서는 건 결코 용납될 수도 할 수도 없다.
식민지배의 반성 없이 선진국 일본은 없다. 기존의 맥락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여 제시해보았다. 많은 질정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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