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2

손민석 분단의 책임 미국 측 - 소련 측

(3) Facebook

손민석
  · 
내가 얼마 전에 쓴 글에서 분단의 책임이 미국 측에 있다는 얘기를 한 것을 두고 얼마 전에 소천하신 이정식 교수의 주장을 언급하며 읽고 배우면 좋겠다고 하는 이를 발견했다. 

내가 그걸 모를까? 차츰 구체적인 근거가 갖춰지며 이런저런 변화를 겪기는 하지만 만주와 일본 교환설에서부터 시작되는 걸로 따지자면 이정식은 내가 알기로만 1989년부터 한반도 분단의 책임을 소련에 지우는 주장을 펼쳐와서 학설사적으로 벌써 30여년이나 된 얘기이다. 

짧게 보아도 이정식이 한국정치학회에서 정식으로 이 문제를 갖고 다른 학자들과 난타전을 벌였던 게 2005~2006년이다. 그러니까 최소 17년도 더 된 얘기라는 말이다. 이정식이 소련이 한반도 분단의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며 근거로 내세웠던 게 1945년 9월 무렵에 북조선에 보낸 비밀지령문과 그에 대한 답변으로서의 쉬킨 중장의 비밀 보고서였다. 이러한 주장은 이정식만의 것이 아니다. 1993년에도 벌써 와다 하루키가 이 비밀지령문을 근거로 스탈린이 처음부터 북조선 단독정부 수립을 지시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정식은 이 지령문에 따르면 스탈린은 이미 1945년 9월 무렵에 스탈린과 안토노프 군참모총장이 바실레프스키 극동전선 최고사령관 및 연해주군관구 군사평의회, 제25군 군사평의회 앞으로 보낸 암호전문에서 분단을 기획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무슨 내용으로 되어 있을까? 이 지시문의 제1항은 "북한 영토 내에서 소비에트 및 기타 소비에트 정권의 기관을 수립하지 말 것이며 또 소비에트 질서를 도입하지 말 것"이라 되어 있고, 제2항은 "북한에서 반일적인 민주주의 정당, 조직의 광범위한 블록(연합)을 기초로 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을 확립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를 두고 이정식은 소련이 한반도 분단의 의도를 지녔다고 하면서 그 근거를 당대의 국제질서 속에서 해명하려고 한다. 

 이정식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스탈린은 세계대전에서의 소련의 희생을 여러 지정학적인 이익으로 보상받으려 하였는데 영미는 이를 대단히 경계하며 스탈린의 모든 기도를 좌절시켰다. 스탈린의 마지막 혁명 전략이 소련의 "해양진출"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대서양 진출을 꾀했지만 영국의 강한 반대에 가로막혔으며, 리비아에 지중해 해군기지를 건설하려 하였지만 이또한 영미의 강력한 반대로 좌절되었다. 만약 성공했더라면 흑해뿐만 아니라 터키까지 스탈린의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마저도 좌절되자 스탈린은 극동에서 일본의 전후 영토 분할에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이또한 미국의 반대로 실패하게 되었다. 이에 격분한 스탈린은 동유럽에서 "철의 장막"을 건설하는 한편 기존의 국민당 정부를 지원하던 대중정책에서 일변하여 북조선을 군사기지로 삼아 만주~북조선의 군수기지 시설들을 활용해 모택동의 공산당을 지원해주기 시작했다는 게 이정식의 이해이다.

 소련군이 장악한 만주~북조선에 이르는 동북아 지역을 군사기지화하여 동북항일연군 등의 조선인 사회주의 군대를 중국에 파견하고, 모택동의 팔로군을 만주에서 훈련시키며, 일본제국이 남긴 수많은 군수물자와 군수물자 생산시설들로 중국공산당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이미 분단은 완성되었다는 게 이정식의 주장이다. 이 이정식의 주장을 받아서 보수 우파들, 특히 뉴라이트 학자들이 분단의 책임을 이승만이나 미국이 아닌 "1945년"의 소련의 스탈린에게서 찾는 방식으로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이어왔다.

 그런데 이완범의 여러 연구가 보여주듯이, 이완범은 여러 번이나 직접적으로 이정식의 논의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이미 1944년부터 한반도 분할에 관해 미국측이 전략을 펼치고 있었다. 본래 처음에는 한반도 단일면적에 대한 미소영프 등의 다국적인 지배를 제시하였고, 그에 따라 점령-신탁통치-독립이라는 3단계안이 계획되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세력분배의 문제로 들어가자 미국은 소련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계획을 입안하기 시작했고 동북아 지역의 전후 세력분할을 시도하면서 한반도를 처음에는 미국의 단독점령 지역으로 분류하였다. 한반도를 독점하려고 했던 것인데 이미 소련군이 만주와 한반도를 향해 진군할 준비를 하고 있던 시점에서는 비현실적인 계획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작전계획은 소련군 주둔이라는 현실에 맞춰서 점차 수정되었으며 그에 따라 소련군의 하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이 논의가 이뤄진 포츠담에서 트루먼은 핵무기의 힘을 확인한 직후였기에 기존에 루즈벨트가 소련에 대해 약속했던 모든 전략적 약속들을 처음부터 다시 다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대일전에서 소련의 참전은 불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소련군은 얄타에서의 약속대로 대독전의 승리와 승전기념을 치르자마자 곧바로 군대를 극동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런 소련의 참전을 무의미하게 만들기 위해 1945년 7월 25일경에 38선 부근에 헐선을 그어 소련군의 한계를 설장하고, 1945년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한반도에 대한 모든 논의를 미루어 원폭투하와 소련군 참전 배제를 꾀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여 소련도 원폭투하 직후에 곧바로 참전하며 대일전에서의 지분을 얻으려고 하였다. 트루먼의 소련배제 전략은 실패하였지만 미국은 38선 이남은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완범은 1945년 7월 포츠담에서 한반도를 두고 소련과 미국 간에 어떠한 밀약이 존재했다는 주장을 반박하며 묵계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일단은 미국의 한반도 단독 점령을 가정해놓고 현장의 상황에 따라 한계선으로서의 38선이라는 한계를 설정해두었고 소련도 암묵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소련군의 작전계획의 지도를 들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소련군의 만주 공격 당시에 소련군 작전 지도에서 한반도 전체, 특히 서울까지 포함하고 있던 1945년 6월의 작전지도와 달리 1945년 7~8월의 작전지도에서는 38선 위의 북부 지역까지만 작전지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1989년에 나온 에릭 반 리의 연구는 한반도 침공이 현실화되기 이전의 시점에서 이미 소련이 한반도 북부 지역만을 자국의 세력권으로 상정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완범은 1945년 6월의 작전지도와 1945년 7~8월의 작전지도 사이에는 7월 25일경 포츠담 회담에서 38선을 설정한 것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을 내놓는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이미 소련군의 한반도 침공이 현실화되기 이전부터 한반도의 분할을 상정해두고 작전을 펼치고 있었으며 소련도 그를 묵인하였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만주만 확보해도 좋은데 북조선까지 확보할 수 있으니 딱히 욕심부릴 필요가 없다고 보았을 것이고, 일본의 분할에 오히려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38선의 획정은 전적으로 미국의 책임이었으며 분단에는 미국의 책임이 크다는 게 이완범의 주장이다. 나는 여기에 동의한다.

 더불어서 9월 20일자의 스탈린의 비밀지령문이 소련의 단독정부 수립 의도를 보여준다면, 어째서 이정식은 그 근거로 1945년 9월 14일 소련군 사령부가 발표한 "인민 정부 수립 요강"을 들지 않는 것인가? 이 문서에는 아예 소련군이 "노동자 농민 정권 수립을 원조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노동자 농민 정권'이 사회주의 정부가 아니고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발표에 대한 조선인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스탈린이 보낸 지령이 이정식이 근거로 드는 9월 20일자의 비밀지령문이다. 소련군이 일본 약탈자들을 분쇄하기 위해 북조선에 주둔한 것이며, 조선에 소비에트 제도를 도입하거나 조선 영토를 획득할 생각이 없음을 조선인들에게 밝히라고 보낸 게 지령문이었던 것이다. 물론 당연히 미국이 38선을 획정하여 극동에서 소련의 만주독점과 미국의 일본독점,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세력균형과 분할을 꾀하였던 것처럼 소련 또한 궁극적으로 친소정권의 수립을 꾀하였지만 소련은 적어도 1945년 9월의 시점에서 단독정권 수립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앞서 보았듯이 제1항 자체가 북한의 영토 내에서 소비에트나 소비에트 정권의 다른 기관을 수립하거나 소비에트 제도를 도입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탈린은 제1항, 제2항에 따라 북조선에 단독정권을 세운다든지 소비에트 정부를 세운다든지 하는 생각이 아니라 민족 부르주아지들과 연합하라는 온건한 전략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군사적으로 이미 점령한 상황이기 때문에 당연히 통치기구를 세워야 하는데 그것은 단독 정권을 세우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이정식의 해석은 이러한 차이를 도외시한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식이면 미군정의 설립도 미국이 단독 정부 수립을 시도한 것인가? 

 게다가 이런 해석은 9월 20일 당시에 미소영 3개국의 제1차 외상회의가 열리고 있던 시점이라는 걸 도외시한 해석이다. 이런 시점에 소련이 벌써부터 연합국 간의 합의사항인 한반도 신탁통치 방침 전체를 부정하고자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소가 본격적으로 충돌하는 건 4일 뒤인 9월 24일 일본의 전후처리를 두고 대립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소련은 연합군에게 북한의 여러 항구들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는데 분단정부의 수립을 계획하고 있었다면 이와 같은 구상을 제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스탈린의 의도는 이 훈령에 잘 드러나 있듯이 이란, 그리스-터키, 동유럽, 만주, 한반도 등에 이르는 여러 지정학적인 주변부 지역에서 "우호국가"를 건설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직접적으로 반소(反蘇)를 내세우지 않는 우호적인 정권의 수립을 지향하였을 뿐이다. 분단정부의 수립 방침은 1945년 시점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조선인 민족주의자들, 우익들의 반발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북조선에서의 공산주의 세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소련군의 주둔에도 불구하고 조만식의 주도권은 상당기간 유지되었다. 그래서 손세일은 어디선가 이승만과 김일성을 김구(+김규식)과 조만식과 대비시키며 전자가 국제주의자들이고 후자가 민족주의자라 구별하며 후자가 전자와 달리 미군정과 소군정에 별다른 협력을 하지 않았기에 끝내 실패하고 제거되었다고 비판하였다. 만약 조만식이 달리 행동하였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어느정도 동의가 된다. 예컨대 조만식이 영도하고 있던 북조선5도행정국은 어떻게 볼 것인가? 5도행정국을 단독정부로 이어지는 계보의 맨 첫 부분에 둘 것인가? 이정식에 따르면 그래야만 하지만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이정식의 논의는 내가 알기로 이미 대부분 논파되어 수용되지 않고 있다. 오직 뉴라이트 성향의 사람들만이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주장하며 스탈린을 비난하고 이승만을 옹호하는데 연합국과의 신탁통치안과 분단정부의 수립안이 대립한다는 기초적인 사실인식에서부터 성립할 수가 없는 주장이다. 

 노재봉의 제자인 김영호가 대표적인데 한국의 반反수정주의 성향의 연구자들은 브루스 커밍스를 비판하며 마치 수정주의가 "고개숙인" 것처럼 선전하지만 정치적인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수정주의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패러다임이다. 김영호만 하더라도 스탈린이 한국전쟁에서 주요한 기획자로 움직였다고 하면서도 정작 스탈린의 세계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박명림이 브루스 커밍스를 논파했다고 하지만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기원에 관한 연구는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주도했다는 점을 입증하여 오히려 커밍스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커밍스도 그래서 박명림의 주장이 자신을 논파하는 게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더 잘 입증해주었으며 소련의 문서공개로 자신이 말했던 내전설과 김일성 주도설이 더 확정되었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상황은 1948년을 향해 나아가기는 했지만 확정되지 않은 것이었다. 미국은 확고하게 한반도 남부를 점령하여 소련을 견제할 계획을 갖고 있었고, 소련은 만주를 장악한 이상 딱히 한반도에서 단독정부의 수립을 기획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이완범은 오랜 연구 끝에 자신의 입장을 한반도에서 소련은 소극적이었고 미국이 분단에 적극적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정치적 편견에 지나지 않는 주장이었다. 스탈린의 사회주의 이론을 조금만 알아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 간의 차이를 모를 수가 없다. 이지수 교수 등이 계속 주장해왔지만 별로 먹힐만한 주장이 아니다. 2000년대 후반 뉴라이트가 한참 기승을 부릴 때나 통했던 얘기를 지금까지 하는 건 곤란해 보인다.

 굳이 분단에서의 소련의 책임을 강조하고 싶다면 2010년대의 한국전쟁이나 해방전후사 연구들 중에서 주목할만한 연구인 오코노기 마사오의 <한반도 분단의 기원>에 기초할 수 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한반도 분단의 외적 조건을 강조하지만 미소 간의 이념적 대립이나 지정학적인 이해관계로 보지 않고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간의 대립으로 한반도 분단을 다룬다. 미국이 이상주의를 대표한다면 소련 스탈린은 현실주의를 대표한다. 스탈린은 안보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자국 주변에 여러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안보전략을 수립하였다. 이에 반해 미국은 이상주의적인 집단안보에 매달렸는데, 이러한 미국의 이상주의적인 기획은 영토확보에 매달리던 스탈린의 현실주의에 의해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오코노기의 입장이다. 다시 말해서 오코노기는 냉전과 한반도 분단을 자국 주변에 완충지대를 설정하려는 스탈린 및 소련의 현실주의적인 안보전략이 초래한 비극으로 본다.

 푸틴의 러시아도 마찬가지이지만 스탈린의 소련은 독일과 일본이 부활하여 폴란드와 한반도를 발판으로 삼아 소련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이제는 미제국주의가 일본을 지원하여 소련을 약화시키려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러시아 내전부터 시작해서 2번이나 제국주의 전쟁을 치르고 그 와중에 영미 진영으로부터 버림받고, 또 나치 독일로부터도 버림받았던 스탈린으로서는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들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국내에서 자신만의 다차 속에서 인의 장막을 쳤듯이 자신의 제국도 여러 주변부 민족국가들로 철의 장막을 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전후 미국의 세계전략인 자유무역질서 및 UN 등의 집단안보체제와 충돌하면서 냉전으로 귀결되었다는 이해는 상당히 많이 보이는 이해이다. 

 이와 같은 시각의 장점은 소련의 동유럽 주둔 및 독일 분단과, 만주주둔 및 한반도 분단을 대등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이미 김지배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미국 또한 루즈벨트의 이상주의적인 집단안보 정책을 버리고 미국 중심의 패권적인 질서, 소련과 서로의 세력권을 인정하고 세력균형을 달성하는 정책을 채택하지 않았던가? 베트남전쟁, 한국전쟁 등의 냉전에서의 열전은 그러한 세력균형의 정도를 "시험"하는 몇개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았다. 스탈린은 이란에서 그랬듯이 주변부의 민족해방운동들을 소련의 안보적 기획에 손쉽게 이용하다 버릴 '인간백정'이었지만, 미국도 그 지점에서는 만만치 않았다. 적어도 남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집요하고도 지독했다. 미국이 한국에 많은 '은혜'를 베푼 것과 별개로 세계제국 미국은 냉전기에 못할 짓을 많이도 했다. 

 오히려 오코노기 교수의 지적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점은 냉전이 한반도 분단을 결정지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들이 북조선의 침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민족통일이나 독립을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게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미소의 냉전으로 인한 개입이 없었더라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짧은 내전을 통해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점이 오히려 중요하게 보아야 할 지점이 아닌가 한다. 통일에 대한 전망은 분단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 한국전쟁이 내전인지 국제전인지 여부가 중요한 건 이 맥락 때문이다. 내전 때문이라면 궁극적으로 민족 내부의 합의를 통해 해소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고, 국제전이라면 국제환경의 변동으로 해소된다고 보는 것이다. 커밍스는 본질상 내전이었던 것이 국제전으로 비화되었다고 보기에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을 비판한다면, 박명림은 국제전이라 보기에 단순히 민족간의 화합으로 해결될 게 아니라고 보고 미소의 공동책임을 논하며 평화체제의 수립부터 주장하는 것이다. 
 분단에 있어 미국의 책임을 논하다가 멀리 왔는데 분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지보다 어찌됐든 중요한 건 지금 이 질서를 어떤 식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냉전적 질서 속에서 형성된 '전쟁국가' 한국-'기지국가' 일본-세계제국 미국이라는 협력체제는 
대소전략에서 대중전략으로 변모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과의 연대 없이 이 상황을 타개하기는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6 comments
===

Chang Joon OK
우아….이정식을 언급해주셨던 분에게 감사할 따름이네요..그 분 덕에 손선생님이 이런 값진 글을! 연구의 지형을 촘촘하게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번 많이 느끼고 배웁니다!! 오코노기 마사오의 책은 저도 나름의 논쟁작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리만치 관심이 전혀 없더라고요..ㅠㅠ
Reply1 dEdited
손민석
Chang Joon OK 이미 선생님께서는 다 아실 내용 아닙니까..ㅎㅎ 제가 많이 배우지요. 오코노기 교수의 저작은 논쟁할 거리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냉전과 분단의 기원에 관해서 특히, 제가 느끼기에도 별로 반응이 없더라고요. 역자만 해도 류상영 교수 등의 상당히 급이 있는 분들이고 번역 자체도 일본에서 출간되지마자 10개월도 안돼서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희한합니다. 아마 분단사에 대해 관심이 적어진 것도 크지 않은가 싶습니다ㅠ 나중에 한번 서평 써보려고요ㅎㅎ
Reply1 d
Chang Joon OK
손민석 네 올해 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완역본이 나온다지만…과연 얼마큼의 논쟁이나 치열한 논평이 나올런지요 ㅎㅎ 그냥 의무감에 따른 번역 출간이 아니되길 바라며 ㅠㅠ
Reply1 d
손민석
Chang Joon OK 참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과연 얼마나 파급력이 있을지 걱정되기도 합니다ㅠ
Reply1 d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