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0

알라딘: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 오에 겐자부로

알라딘: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은이),
박유하 (옮긴이)문학동네2009-12-15



Sales Point : 1,508

8.7 100자평(10)리뷰(34)
248쪽

책소개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며 일본을 대표하는 문인이자 지식인인 오에 겐자부로가 2007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오에 겐자부로 등단 50주년 기념 소설이기도 하다. 

대학 친구이자 뛰어난 영화제작자와 왕년의 아역 스타, 그리고 작가 자신이 함께한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작가 자신을 화자로 내세운 이 작품의 초반부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일흔이 넘은 노인으로서 자신이 겪는 '노년의 곤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명 작가라 해도,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지식인이라 해도 피해갈 수 없는 '나이 듦'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로 인해 버거운 삶의 무게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심경을 토로한다.

소설은 일흔두 살의 노인인 화자 산책을 하던 중 고모리 다모쓰를 만나 30년 전 일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30년 전, 대학 친구이자 뛰어난 영화제작자인 고모리왕년의 아역 스타였던 사쿠라와 함께 화자를 찾아와 영화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사쿠라를 본 순간, 화자는 문득 은사의 사망 이후 줄곧 느껴왔던 한쪽 가슴의 가벼운 통증이 사라졌음을 느끼며, 고교 시절 푹 빠져 있었던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애너벨 리'를 떠올리게 된다.


목차


서장 - 뭐야, 자네는 이런 곳에 있었나?

제1장. 마하엘 콜하스 계획
제2장. 연극으로 혼령을 위무하다
제3장. You can see my tummy.
제4장. '애너벨 리 영화' 무삭제판

종장-달빛을 보면/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고
빛나는 별을 보면/ 애너벨 리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보네

해설 - 인생의 후반부에서 부르는 '문학'찬가
오에 겐자부로 연보




책속에서


P. 11“아직 백살까지는 시간이 있지. 소설도 주제보다는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면 쓸 생각이야.”
“끝까지 못 찾을 수도, 있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소설가로 살겠다는……”
“그렇게 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거다.”
P. 34그때 비로소 나는 여성과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 보고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대 나는 숨이 멎을 듯했다! (…) 나는 와타나베 교수가 세상을 떠난 후로 줄곧 사라지지 않던 슬픔의 증거랄 수 있는 왼쪽 가슴의 가벼운 통증이 사라져 있음을 깨달았다……

P. 136내가 당신을 만나 ‘애너벨 리 영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지막 장면에서 땅박닥에 누운 내 옷매무새가 어땠는지 집요하게 물어봤었죠. 그건 내가 어렸을 때부터 늘 꾸던 무서운 꿈이 어쩌면 ‘애너벨 리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 꿈의 정체가 두렵고 끔찍한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두렵고 끔찍한 것인지 알지 못했어요. 접기

P. 219나는 눈을 감은 채, 내 살찐 어깨로, 노래하는 사람이 흔드는 여윈 어깨가 전달하는 날카로운 것을 충격과 함께 받아들였다. 어머니가 위엄 있는 의상에 큰 가발을 쓰고 ‘메이스케 어머니’의 넋이 되어 울부짓듯 분노에 신음하듯 노래를 계속하던 모습 전체가 기억 속에 온전히 되살아나 지금 나와 함께 있었다. 그러다가 전해오는 압력에 어깨를 맞춰, 나도 몸을 흔들고 있었다…… 접기

오에의 ‘50주년 기념’ 소설은 눈에 띄게 ‘문학’에 대한 오마주이기를 지향한다. 구체적으로 자신을 키운 문학 작품들을 불러내면서 마치 소가 풀을 씹고 또 씹는 것처럼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소화하고 흡수하여 마치 실을 자아내듯 새롭게 읽어내는 것이다. _ ‘해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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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오에 겐자부로 (大江健三郞) (지은이)


일본 소설가.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 1935년 일본 시코쿠 에히메현에서 태어났다. 1954년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했고, 논문 「사르트르 소설의 이미지에 관하여」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발표한 단편소설 「기묘한 아르바이트」(1957)가 <마이니치신문>에 언급되면서 주목받고 이듬해에 단편 「사육」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등단 초기에는 전후 일본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청년들의 방황과 좌절을 그려냈고 60년대에는 미일안보조약 재개정 반대 시위와 학생운동 등 민주주의로 향하는 진보적인 흐름을 작품 속에 그려냈다. 훗날 노벨문학상 수상식에서 대표작으로 언급된 『만엔 원년의 풋볼』(1967)에서는 이러한 주제를 100년 전의 농민 봉기와 연결하기도 했고, 『홍수는 나의 영혼에 이르러』(1973)에서는 일본의 급진 좌파가 몰락하게 되는 ‘아사마 산장 사건’을 다루었다.

한편 1963년 아들 오에 히카리가 뇌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을 계기로 폭력 앞에 놓인 인간에 대해 깊이 성찰하면서 국경을 넘어 사회적인 약자,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작품 속에 그려 냈다. 대표작인 『개인적인 체험』(1964)은 실제 오에 히카리가 태어났을 때의 상황을 기반으로 해서 쓴 소설이다. 이후 소설뿐만 아니라 르포르타주인 『히로시마 노트』 『오키나와 노트』 등을 발표하면서 전후 일본 민주주의의 주요 과제들을 주목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작가 스스로 마지막 소설 3부작이라고 명한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을 발표했고 근래까지 장편소설 『익사』(2009), 단편집 『오에 겐자부로 자선 단편』(2014) 등을 발표하였다. 2023년 3월 3일 별세했다. 접기

수상 : 1994년 노벨문학상, 1958년 아쿠타가와상
최근작 : <작가란 무엇인가 2 (헤밍웨이 탄생 123주년 기념 리커버)>,<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리커버 에디션 한정판)>,<오에 겐자부로의 말> … 총 19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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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옮긴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게이오 대학교와 와세다 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문학을 전공하고,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나쓰메 소세키·문학·근대」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종대학교 국제학부 명예교수. 동아시아역사화해연구소장. 2013년에 출간한 책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논란을 불렀고, 2014년 6월부터 현재까지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학위논문에서 민족주의가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구조를 지적했고, 이후 국가와 젠더의 상관관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근대 일본과 식민지 조선을 연구해왔다. 작금의 갈등을 제국과 냉전의 후유증으로 분석하고 그 양쪽을 함께 넘어서야 한다는 입장에서 국경을 넘어선 시민연대와 역사화해를 모색해왔다. 조직했던 모임으로 한일지식인모임 ‘한일연대 21’, 한일시민모임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의 목소리’가 있다.
주요 저서로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나쓰메 소세키로 읽는 근대』,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한다』,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1460일』, 『귀환문학론 서설引揚げ文学論序説』(일본어)과 공편저 『한일 역사인식의 메타히스토리』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역사와 마주하기>,<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1460일> … 총 3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최신작
작가 인생 50년을 정리하며 써내려간 ‘새로운 형식’의 소설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며 일본을 대표하는 문인이자 지식인인 오에 겐자부로가 2007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등단 50주년 기념 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작가는 만년에 접어들어 이제 ‘노년의 곤경’을 겪으면서도 그만큼 깊어진 삶에 대한 통찰력과 섬세함으로 치유와 위로의 글쓰기를 펼쳐 보인다. 대학 친구이자 뛰어난 영화제작자와 왕년의 아역 스타, 그리고 작가 자신이 함께한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소설은, 그 과정을 통해 상처받은 이들의 고통을 치유하고 그들과 ‘함께’ 써나가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작가가 추구하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만연 원년의 풋볼』 등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을 다수 번역, 소개해온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번역으로 선보인다.

작품 소개

1957년 등단하여 이후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펼쳐온 일본 현대문학의 거장 오에 겐자부로가 2007년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전후 일본 사회의 불안한 상황과 정치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 천황제와 군국주의, 평화와 공존 등을 주제로 많은 글을 발표했고, 스스로 ‘전후 민주주의자’라 칭하며 국내외 여러 사회 문제에 참여해 실천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왔던 작가가 어느덧 만년의 나이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2007년에 발표한 소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는 오에 겐자부로가 등단 50주년을 맞이하여 자신의 작가 인생 50년, 더 나아가 인생 전반을 돌아보고 정리하며 써내려간 작품이다.

작가 자신을 화자로 내세운 이 작품의 초반부에서 오에는 일흔이 넘은 노인으로서 자신이 겪는 ‘노년의 곤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명 작가라 해도,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지식인이라 해도 피해갈 수 없는 ‘나이 듦’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로 인해 버거운 삶의 무게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심경을 토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작품 안에서 말하듯이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면 글을 쓰겠다”는 문학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 있어서일 것이다. 오에는 등단 50주년 기념하는 이 소설에서 나이 듦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한, 더욱 깊어진 삶에 대한 통찰력과 섬세함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애너벨 리’,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름

소설은 일흔두 살의 노인인 화자(작가 자신이다)가 산책을 하던 중 고모리 다모쓰를 만나 30년 전 일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30년 전, 대학 친구이자 뛰어난 영화제작자인 고모리가 왕년의 아역 스타였던 사쿠라와 함께 화자를 찾아와 영화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사쿠라를 본 순간, 
화자는 문득 은사의 사망 이후 줄곧 느껴왔던 한쪽 가슴의 가벼운 통증이 사라졌음을 느끼며, 
고교 시절 푹 빠져 있었던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애너벨 리」를 떠올리게 된다.

영화는 독일 작가 클라이스트의 소설 『미하엘 콜하스의 운명』에 나오는 민중 봉기를 모티프로 삼아 진행되는 것이었다. 화자는 자신의 고향인 시코쿠에서 구전되어오던 농민 봉기 이야기를 중심으로 시나리오를 써나가려고 하는데, 
영화의 여주인공 역을 맡은 사쿠라는 농민 봉기 자체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상에 더 관심을 보인다. 그 속에 녹아 있는 여성의 비애와 고통이 사쿠라의 마음을 끌었던 것이다.

영화 작업을 하면서 화자는 사쿠라에게 고교 시절 그녀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사쿠라는 미국 문화센터에서 보았던 ‘애너벨 리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사쿠라는 패전 이후 미군 후견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는데, 
사쿠라의 미군 후견인이 찍은 그 영화는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벨 리」가 낭송되는 가운데, 하얀 관의를 입은 소녀 사쿠라의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화자는 하얀 관의를 입고 잔디밭에 누워 있던 ‘애너벨 리’ 사쿠라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시나리오를 써본 적이 없는 화자가 작업 제의를 선뜻 수락한 것은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화자도, 영화 주인공인 사쿠라도 영화의 끝부분을 보지 못했다. 
화려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어릴 적부터 자신도 모르는 고통에 짓눌려왔던 사쿠라는 자신의 고통이 영화의 끝부분과 연관됐을 것이라 막연하게 짐작한다.

영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사쿠라가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참여하며 농민 봉기에서의 여성상을 만들어가는 가운데, 뜻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 작업은 무산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사쿠라가 영화를 포기하려 하지 않자, 영화 제작자 고모리는 일종의 충격 요법으로 사쿠라와 화자에게 ‘애너벨 리 영화’의 무삭제판을 보여준다
누구도 보지 못했던 영화의 끝부분, 거기에 사쿠라를 괴롭혔던 고통의 실체가 담겨 있었다…

만년에 접어든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와 치유, 그리고 문학에 바치는 문학

이 작품은
시나리오 작업 및 영화 제작 과정을 담았다는 점에서 ‘영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영화’그 자체가 아니라, 영화 제작 과정을 그리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동의 글쓰기 작업’이다. 
작품에서 화자는 영화의 제작 과정에 참여하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설명할 뿐,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는 않는다
봉기에 참여했던 농민들, 구전 ‘메이스케 이야기’에서 넋두리하는 혼령들, 그것을 연극화했던 화자의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쿠라와 화자, 제작자 고모리, 이야기의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준 화자의 여동생, 그리고 화자의 아내와 아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작업에 참여하며 목소리를 내고, ‘함께’ 영화의 상(像)을, 그리고 소설을 만들어간다. 작가가 말한 ‘새로운 형식’이란 이처럼 모두가 함께 써나가는 이야기를 뜻하는 것일 터이다.

영화(혹은 글쓰기) 작업은 참여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치유’로서 작용한다. 
자신도 모르는 고통에 짓눌려 있던 사쿠라가 ‘메이스케 이야기’에 그토록 강하게 끌렸고 30년이 지난 후까지도 그 끈을 놓지 못했던 것은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치유해줄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다시 영화에 참여하게 된 사쿠라가 부르는 넋두리는 이야기 속 혼령들을 위로함과 동시에 화자까지도 전율하게 한다. 이제 자신의 고통을 치유한 ‘애너벨 리’ 사쿠라는 다른 이들까지도 치유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여러 문학 작품들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작품의 기본 바탕이 되는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애너벨 리」와, 작가의 고향 지방의 농민 봉기 이야기와 맞닿아 있어 소설의 소재로 삼고 싶어했던 클라이스트의 『미하엘 콜하스의 운명』을 비롯하여, 토머스 하디의 『미천한 사람 주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등 작가 오에 겐자부로를 있게 해준 작품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천천히 음미하며 새롭게 읽어나가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 소설은 작가가 자신의 작가 인생 50년을 정리하며 ‘문학’에 바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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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애너벨 리>, <롤리타>, 그리고 그의 장편, <만연원년의 풋볼>을 서가에서 모두 꺼냈다. 오에적인, 아니 오에만이 쓸 수 있는 소설. 김지하가 너무나 아쉬워진다. 아니, 오에가 변하지 않은 것은 일본 사회의 전후 민주주의가 오히려 후퇴했기 때문일까.
생쥐스뜨 2014-02-10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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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라는 다른 분 말씀에 백표 추가.
현실, 역사, 소설, 시, 영화, 시나리오, 구전전승, 연극이 수백년의 시간, 동서양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어떻게 노년까지 이런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김지하가 입으로 똥 싸는 사이에!!!!
cpurple 2015-12-01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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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맞이하는 노년의 수긍과 내려놓음
2015-04-2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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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죄의식과 마주보기. 벅차지는 않지만 적잖아 감동적
swpanda 2010-12-3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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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향한 외침 - 오에 겐자부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저항하는 힘이 감퇴했음을 감안해서 대부분의 질문들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뜻밖의 대화에 휩쓸리게 되면, 그 후에 방금 전 하던 생각으로 되돌아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충분히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 이야기를 복잡하게 하지 않으려면 ‘진실’을 말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아직 백 살까지는 시간이 있지. 소설도 주제보다는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면 쓸 생각이야.”
“끝까지 못 찾을 수도, 있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소설가로 살겠다는……”
“그렇게 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거다.”

ㅡ 오에 겐자부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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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은교》 속 이적요의 대사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처럼 젊음에서도 늙음에서도 우리는 본디 승자가 아니라 수용자이다. 노년은 살아갈 기회는 줄지만 그동안 치열히 노력해왔다면 더 넓게 해석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격동의 시대를 산 두 노장, 박범신과 오에 겐자부로는 여전히 ‘형식’을 고민한다. 박범신은 《촐라체》로 국내 최초로 인터넷 블로그 연재를 한 바 있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는 영화의 형식을 빌려 왔다. ‘형식’ 너머엔 작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갈망’이 자리하고 있다. 박범신 《은교》가 남성 판타지와 늙음에 대한 고민이 강했다면, 오에 겐자부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는 그가 사랑한 포 시집에서 애너벨 리와 나보코프 《롤리타》를 모티프로 가져와 상처받은 여성과 사회의 화해를 이끌려 했다는 차이가 있다. ‘상처받은 개인과 공동체의 화해에 대한 모색’은 오에 겐자부로 작품에서 늘 드러나는 주제이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는 ‘애너벨 리’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한 오에 겐자부로가 쓴 첫 장편 《싹 뜯고 아이 치기》(1958), 노벨상을 받은 《만엔원년의 풋볼》(1967), 그의 장애 아들 히카리, 그가 사랑했던 문학, 시대에 대한 고민을 총망라해 이야기를 펼친다.

그의 고향 시코쿠에서 일어난 1860년 만엔원년에 일어난 농민봉기에 대한 이야기를 개인적 체험으로 종결한 《만엔원년의 풋볼》에 대한 아쉬움을 그는《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에서 일본을 무대로 한《미하엘 콜하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을 통해 다르게 해석해보고자 한다. 알다시피 《미하엘 콜하스》는 영주의 부당한 횡포에 대한 억울함에서 시작되었으나 이후 체제에 대한 항거로 커진 독일의 봉기를 다룬 이야기이자 실화이다. 오에 겐자부로가 쓰는 《미하엘 콜하스》의 주인공은 실제로도 극 중에서도 남성에게 유린당한 ‘사쿠라’라는 여성으로 바뀐다.

“전후 일본에서 왜 봉기가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ㅡ 오에 겐자부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에이전트 대사


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이 부당한 외세에 순종했던 은유는 ‘사쿠라’가 죽은 애너벨 리를 연기하며 잠든 사이 미국 장교에게 성적으로 착취당한 걸 무의식 속에서만 감지한 채 정신 승리로 이겨보려 한 설정으로 제시된다.

“'I'는 죽은 애너벨 리의 몸에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았나요.”

​ㅡ 오에 겐자부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야나기 부인 대사

우리가 아름답게 향유하는 포의 ‘애너벨 리’, 나보코프의 ‘롤리타’, 박범신의 ‘은교’에서 그녀들은 얼마나 주체인가. 아름답고 가냘프며 상처받기 쉬워 더욱 사랑스럽고 신비로운 상징으로 소비되는 건 아닌가 비판받기도 한다. 이 책 제목이 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인지 이제 드러난다. 오에 겐자부로는 《미하엘 콜하스》의 주인공을 봉기의 주동자인 메이스케의 ‘어머니’로 설정해 그녀들이 말할 수 있는 장을 만든다.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 소설에서는 30년의 세월이 흐른다. 짧은가, 긴가.

비디오카메라는, 진한 빛깔의 단풍 햇빛에 반짝이는 숲에 에워싸인 여인들 무리로 들어간다. 사쿠라 씨의 탄식과 분노의 ‘넋두리’는 고조되고, 추임새에 화답하는 사람들은 파도를 이루며 흔들린다. 그 목소리와 움직임의 정점에서, 침묵과 정지가 찾아온다. ‘작은 아리아’가 그곳을 가득 채우면서 사쿠라 씨의 외침 소리가 들리고 소리 없는 메아리로서의 별이 스크린에 반짝인다……
ㅡ 오에 겐자부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마지막 장면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만 그중 누군가는 별을 바라보고 있다’고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그 별은 단순히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에 겐자부로가 쓴 에세이 《읽는 인간》이 단순히 읽은 책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듯. 나는 눈을 감고 세상에 깃든 별들을 책을 읽듯 떠올린다. 아프고 흐릿하지만 환하다.

그리고 도착한 詩 하나.

해군 버스가 지나가면서 그 많은 해군 가운데 하나가 찡긋 웃는다 나도 찡긋 따라 웃는다 머나먼 별 하나가 보이지 않는 다른 별 하나를 향해 그러하듯이……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모른다 우리가 본 것들은 우리가 보고 싶어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란 또 누구인가 지나가는 것들은 제가 지나가는 줄 모르고 자꾸 웃는다 지나가는 그대의 짧은 머리카락이여, 우리가 본 것들은 모두 바람이 본 것들이다.

ㅡ 이성복, 높은 나무 흰 꽃들은 燈을 세우고 25

나도 바로 그렇게 마치 갑자기 시간이 휑뎅그레 비어 있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거기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 시간이 오는 날을 향해서…… 이젠 시간이야 일찍이 그런 적이 없었을 만큼 많아. 앞으로 한 달 남았다고 의사가 말하지만, 한 달이란 어릴 때는 거의 영원에 가까운 시간 아니었나. 그래서 책을 읽네.
ㅡ 오에 겐자부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병상에서 고모리가 겐자부로에게.



불행한 한 인간의 치유 과정 

오에 겐자부로의 등단 50주년 기념작품이라고 한다. 그가 25세에 등단을 했다니 어느덧 75세, 아무리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는 일본이라 하더라도 노익장이다. 참 쑥스럽게도, 그동안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일본 작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는 소설가임에도 여태 사 읽어보길 머뭇거렸다는 걸 고백한다. 그러나 역시 오에 겐자부로.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
작품은 책 속에는 알파벳으로 Kenzaburo라 쓰인 작가가 화자로 등장하고, 다른 작품을 통해 일찍이 탄생에서 중년에 이르기까지 성장과정을 독자들이 다 지켜봐왔던 작가의 아들 히카리도 작품의 서장과 종장에 중요 인물로 활약한다. 자폐증세를 앓는 대신 음악에 천재성을 보이는 아들 히카리와 일흔이 넘은 작가가 시내에서 있었던 콘서트를 보고 귀가하던 중 갑자기 히카리가 간질 발작을 일으킨다. Kenzaburo가 누군가. 10여 년 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소설가이자 양심적 지식인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낸 사람. 순식간에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일본인 특유의 친절 공여에 관한 제의가 쏟아지지만, 5분만 저러고 있으면 괜찮아지니 상관하지 말고 가던 길 가시오, 라는 무뚝뚝한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5분은커녕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히카리를 부축하며 귀갓길을 서두르던 ‘나’의 화면 속에 저 먼 기억 속의 인물 하나가 찍혀 있었던 것. 대학 동창 고모리.
작가가 고모리를 만나면서 순식간에 소설은 본론으로 접어들어 무대가 30년 전으로 바뀐다. 1970년대 중반. <미하엘 콜하스>라는 책이 있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라는 사람이 1810년에 쓴 단편소설로 우리나라에서는 창비가 번역 출간했다. 내가 읽은 책 가운데 유럽에서 민란을 다룬 아주 드문 작품이며, 민란을 소재로 한 것 답게 당시 사회, 정치 등에 대한 비판과 종교 등에 관해 생각할 것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 폰 클라이스트가 1777년 생으로 그의 출생 200년을 기념해 영화인들이 모여 대표작 <미하엘 콜하스>를 각 나라의 상황에 맞게 변형시킨 영화를 세계 각 대륙에서 제작한다는 M 프로젝트를 구상했고,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동학혁명에 맞추어 제작하려 하였으나 박정희 정권이 때를 맞춰 시나리오를 쓰기로 했던 김지하를 잡아들여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화자의 대학동창 고모리가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마침 작업이 없어 쉬고 있던 Kenzaburo가 그의 작품 <만엔 원년의 풋볼>에서 심도 있게 다루었던, 두 번에 걸쳐 시코쿠에서 발생한 민란을 소재로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그래 소설의 본문에는 <만엔 원년의 풋볼>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나오게 된다. 패전 후 불법으로 고급종이를 만들어 화가들에게 팔아 돈을 번 ‘나’의 어머니가 시코쿠에 극장을 짓고 메이지 유신 당시 발생한 민란 가운데 두 번째 사건에 관한 연극을 공연해 스스로 주연을 했다는 것, 1차 민란에서 옥사한 메이스케의 어머니가 죽은 맏아들의 뜻을 이어 소위 ‘환생한 메이스케’ 자신이 다시 낳은 아들과 함께 두 번째 민란을 도모했다가 잡혀 아이는 돌에 눌려 죽고, 어머니는 윤간을 당하고 죽음을 맞았던 향토사적 진실, 그러나 일본 국민이 흔히 그렇듯 공식적으로는 드러내고 싶지 않아하는 불행한 과거를 마치 해원解寃 굿처럼 공연했다는 것이 다시 나온다. (오에 겐자부로야말로 지식인이다. 자신들이 저질렀던 창피한 과거를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이처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익사>에서 큰 상징을 갖는 상해에서 도착한 아버지의 붉은 가방도 <… 애너벨 리…>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리 유사한 내용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애너벨 리…>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1935년생의 ‘사쿠라’라는 여배우가 등장해서이다. 종전과 동시에 고아가 된 사쿠라는 일본, 미국, 멕시코 등지에서 활발하게 영화 활동을 했으며, 특히 미국과 멕시코에서 중요한 조연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미군 장교였다가 종전 후 일본에 머물며 공부를 계속한 데이비드가 그녀를 후원해 아역배우에서 시작했던 터였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살다가 조그만 문제가 생겨 출국당하지 않기 위해 데이비드와 법적 결혼을 해 현재에 이른 여인인데,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의 기억 속에 확실하지 않은 불안 또는 불행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이런 사쿠라가 만엔 원년에 있었던, 특히 두 번째, 민란에 대단한 흥미를 느껴, 영화화 하고, 자신이 환생한 메이스케의 어머니 역할을 하겠다고 주장하면서 소설은 드라마틱한 꼭짓점으로 몰려가는데, 그곳에 어떤 장면이 있을까. 안 알려드림.
겨우 227쪽에 이르는 짧은 장편이다. 게다가 <익사>, <만엔 원년의 풋볼>에서 벌써 충분히 알고 있던 내용이 큰 흐름으로 흐르고 있다. 만일 내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이 책을 읽었을까? 안 읽고 말았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제 늦게나마 읽었다는 게 다행스럽다. <… 애너벨 리…>는 기본적으로 한 불행한 인간의 치유의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번엔 작가 본인, 처자식, 가족, 고향이 아니다. 누구를 위한 치유? 안타깝게도 그것도 알려드리지 않겠다. 오에 겐자부로. 이이의 작품은 믿을 수 있으니 직접 확인하시기를 바라면서.

골드문트 2019-07-30 공감(17) 댓글(0)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환생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이야기는 추악한 아동 포르노가 되고, 그 상처를 잊지 못한 아름다운 소녀는 평생을 악몽과 불안의 나날로 고통스러워 한다. 중년이 된 그녀는 여배우가 되어 야심차게 영화를 준비한다. 영화는 여자의 과거와 점점 다다가면서 내용이 점차 변하고, 고통에 찬 민중 봉기를 이끄는 어머니 역에 점차 동화되어 간다. 전쟁과 성폭력의 고통을 경험한 소녀는 고통받고 유린당하는 민중의 삶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고, 이를 이야기로 풀어내어 관중들과 함께 진혼의 넋두리를 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임을 알게 된다. 그녀의 주변에 있는 남자들- 소설가인 주인공과 영화제작자인 고모리는 아름다운 애너벨 리로 다시 살아나는 그녀의 모습을 힘껏 돕는다. 무대에 오르는 그녀의 모습을 남자들은 끝내 볼 수 없다는 것은, 그녀의 연극이 그녀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사소설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나에겐, 읽기 쉽지 않았다. 이것이 소설인지, 수필인지부터가 헷갈리고, 작가의 가족 및 신변에 대한 이야기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아니, 이걸 왜, 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계속 읽은 이유는, 사쿠라 라는 여자가 무대에 올릴 연극을 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낭낭한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그녀의 `넋두리`와 함께 부르짖으며 합창하는 관객들, 그리고 숲을 메워버릴 듯한 음악 소리, 그리고 쏟아지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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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쉬 2016-08-27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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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only literature, but literature it is.


고등학교 때 미술 과제로 시화를 만들어오는 게 있었다. 마음에 드는 시를 하나 고르고, 그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오는 것. 그림의 주제와 재료, 형식은 모두 자유였다. 당시 내가 고른 시는 에드가 앨런 포의 '애너벨 리'였고, 그림은 만화원고지에 펜촉으로 그리고 스크린 톤을 붙였다. 당시 내 꿈은 만화가였던 터라 곧잘 만화 재료를 이용해서 습작을 하곤 했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그림을 그리고 시를 옮겼는데 생각외로 점수는 형편없었다. 스크린톤을 붙인 만화 그림이 너무 튀었거나, 아님 그림이 형편없었거나...

그 후로 오래도록 애너벨 리를 다시 떠올리지 않았다. 이 책과 마주치기 전까지는...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라니... 뭔가 엽기적인 것 같기도 하고 반전을 예상케 하는 제목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애너벨 리 시 전문에 나오는 표현이라는 걸 다시 시를 찾아 읽다가 알아버렸다. 오랜 시간 흘렀더니 이렇게 잊혀진다. 애석하게도...

오에 겐자부로의 책은 처음이다. 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전후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의 작품을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 그가 쓴 작품들이 내 보관함에서 숨을 쉬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저자가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며 집필한 책이다. 22살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가 2007년에 마지막 작품이라 예상하며 심혈을 기울인 작품. 이 작품의 특징은 앞머리에서 소설 속 소설가와 아들을 통해서 제시된다.


아직 백 살까지는 시간이 있지. 소설도 주제보다는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면 쓸 생각이야. (11쪽)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저명학 작가가 오래도록 소설을 쓰고 있지 못하고 있을 때에, 이미 중년이 된 지적 장애 아들의 질문에 노년이 된 작품 속 주인공이 대답하는 말이다. 설정으로 볼 때 이미 오에 겐자부로 자신의 이야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 대입시켜 실제와 소설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진행시키는 이야기들은 자주 본다. 이 책은 그 형식성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좀 더 특별한 형식을 갖추게 된다. 이야기의 첫 시작은 일흔을 넘긴 노년의 작가가 30년 만에 옛 친구를 만나면서 과거에 미완으로 끝났던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원래 한국의 김지하 시인이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기로 했으나 유신 시절에 투옥되어 계획이 무산되고 작품 속 겐자부로는 그의 석방을 위한 단식투쟁을 하던 장소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맡아달라고 찾아온 영화감독 고모리와 여주인공 사쿠라를 만나게 된다. 실제로 오에 겐자부로는 김지하의 석방을 위해서 애썼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실제 사건과 소설 속 허구가 겹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여기에 또 몇 개의 이야기들이 중복되어 표현된다. 때문에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금세 이야기의 중심축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이 책이 250쪽이 되지 않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만만하게 읽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 속 겐자부로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젊은 시절에 연극을 직접 올린 경험이 있다. 마을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농민봉기 일화를 극으로 올려 지역 주민들에게 큰 반응을 얻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쿠라는 원래 시나리오 예정 중이었던 '미하엘 콜하스의 운명'의 배경을 일본으로 옮겨와 겐자부로 어머니와 할머니가 올렸던 연극의 내용으로 다시 각색할 것을 요구했다. 그녀의 적극적인 주장으로 메이지 유신 직후의 농민봉기 이야기로 시나리를 바꾸기로 합의하는데, 그것을 강력하게 주장한 그녀에게는 또 다른 사연과 상처가 있었던 것이다. 작품 속에서는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상처'와 '치유'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중첩된다. 작가의 평생의 은사인 와타나베 교수의 죽음으로 소설을 쓰지 못하던 그가 사쿠라와 만나면서 다시 작품을 쓸 마음을 먹게 되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연극을 올리면서 가슴에 쌓인 '한'을 풀고, 그 연극을 보았던 주민들도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내는 과정을 겪었다. 가장 큰 상처와 치유의 주인공은 사쿠라였다. 아역스타로 성장한 그녀(그녀가 출연한 영화 제목이 '애너벨 리'다)가 미국인 후원자에게 시집을 가서 그 상속자가 된 채 이 영화의 제작에까지 손을 대며 완성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자신이 알지 못하지만 은연 중 느끼고 있는 과거의 기억과 상처에 대한 치유였다.

그 상처들과 치유들은 한꺼풀 한꺼풀씩 등장하며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의 켜를 쌓는데, 작게 보면 한 개인의 이야기가 되지만 큰 울타리로 보면 전후 일본이 안고 가지만 좀처럼 드러내지 못하는 상처들에 대한 이야기를 묘사한다. 인물들의 설정에서도 현실과 허구가 겹치기도 하고 반영되기도 하지만 주제 의식도 그렇게 대놓고 말하는 것이 아닌 은근히 내비치는 솜씨가 일품이다. 역시 대가답다는 감탄이 나온다.

30년 전에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영화의 작업은, 다시 30년 뒤에 다른 형태로 재차 시도된다. 이제는 과거의 상흔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게 된 노년의 그들이 어깨의 힘 잔뜩 빼고 정말 해야할 말들로 '진짜' 극을 완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쿠라는 '그래봐야 야구, 그래도 야구'라는 말에 빗대어 'It's only movies, but movies it is!'라고 말했다. movie라는 말 대신에 '문학'이라고, 혹은 인생이라고 대입해 보아도 공감하게 된다. 더불어 작가 이름을 집어넣어도 역시 수긍하게 된다. 짧고도 굵은 대가의 작품!

ps. 여담이지만, 문학동네 세계문학 시리즈는 표지가 정말 잘 빠진 듯하다. 블랙으로 통일했지만 표지의 질감과 느낌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해당 작품의 분위기에 잘 드러맞는 듯하다. 표지 때문에 시리즈를 다 갖추고 싶은 욕심이 마구 생긴다. 이러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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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3-13 공감(10) 댓글(8)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왔나?

오에의 최근작이니 초기작만 봤던 나로선 그의 소설이 꽤 변했다는 생각을 한다.
<애너벨 리>라는 시처럼 소설도 서정시마냥 마음에 감겨든다.
하지만 여전한 건 일본이 잘 못 들어선 근대와 전후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다.
시답지 않은 소설을 써대는 일본 작가들과 또 그런 소설만 번역해대는 우리에게 오에는 조용히 고민을 던져준다.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왔나?'를 말이다.

大江建三郞(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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