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2

엘리트, 법대, 그리고 공감의 실종 : 단상斷想 | PUM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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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칼럼 HumanX
엘리트, 법대, 그리고 공감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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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5. 01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 법대’라는 이름은 단순한 학벌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곧 권력의 입구이자 기득권의 보증 수표이며, 법과 제도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권한을 사실상 독점하는 이들의 출발선이다. 법조계, 특히 검찰 조직은 그 상징적 정점에 있다. 그들은 ‘정의’를 말하며 공익을 수호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속한 세계는 과연 우리 사회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가? 법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검찰 조직, 특히 서울대 법대 출신 중심의 엘리트 검사 집단은 공감이라는 인간성의 핵심이 모자란 채 법을 기계적으로 집행하고 있다. 법의 중립성과 형식적 합법성에 갇힌 이들은 ‘사람’을 보지 못하고, ‘조문’만 본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법은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는 제도가 되었다.
 
그 출발점은 교육에 있다. 강남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 시장은 수능 중심, 내신 중심, 스펙 중심의 ‘정답 교육’을 정점으로 한 입시 산업을 형성해왔다. 이 교육은 본질에서 창의성, 공동체 의식, 감정의 이해 같은 인간적 성장을 배제하고 오직 ‘맞은 답’을 찾아내는 능력만을 계량화한다. 서울대, 법대는 이 체계의 최종 승리자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 교육의 결과는 냉혹하다. 암기와 경쟁으로만 길러진 지식인은 공감 능력이 무뎌지고, 타인의 삶에 대한 상상력도 결핍된다. 사회는 점점 더 기능적 효율성과 정량화된 판단 기준에 지배당한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인간의 내면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라면, 한국의 엘리트 교육은 오히려 인간성을 억누르고 억압하는 기제가 되어버렸다.
 
이런 엘리트가 검사가 되었을 때,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검사는 단지 법을 적용하는 법률 기술자가 아니다. 그는 한 개인의 삶을 판단하고, 국가의 형벌권을 실행하는 중대한 권한을 가진 존재다. 그런데도 많은 검사는 수사와 기소의 전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 없이 움직인다. 검사들은 진술서의 문맥은 보지 않고, 말의 진정성보다는 형식과 시간, 논리적 정합성만을 평가한다. 사회적 약자의 억울함과 고통, 혹은 피해자의 두려움과 망설임은 조서에선 ‘모호함’으로 치부된다. 그들은 울음을 보고도 차가운 눈으로 조서를 다듬고, 진심을 들어도 ‘정황’으로 분류한다. 이는 개인의 도덕성 결핍이라기보다 제도 자체가 만들어낸 아비투스, 즉 몸에 밴 습관적 감각이다. ‘감정은 변수가 된다.’, ‘사실만 보라’는 검찰 조직의 문화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소거하고, 법적 대상으로만 환원시킨다. 피의자는 법 앞에서 하나의 사건 번호가 되고, 피해자는 증거 일부가 되며, 삶은 텍스트로만 남는다.
 
더 큰 문제는, 이 구조가 정당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대로’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마치 정의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하지만 어떤 법을 어떻게 적용하느냐는 절대적으로 검사의 재량과 선택에 달려 있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검사가 맡느냐에 따라 기소 여부가 달라지고, 수사 방식이 달라지며, 심지어 언론에 흘러나가는 정보까지 달라진다. 이런 선택은 정치적이거나, 조직 논리에 의한 것이거나, 혹은 편견에 기반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한국의 검사들은 자신을 ‘객관적 판단자’로 자처한다. 그러나 법은 언제나 해석의 대상이며, 해석에는 언제나 관점이 들어간다. 그 관점은 누구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가? 누구의 언어로 말해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지금의 검찰 조직은 자신이 대표하지 못하는 세계를 침묵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들 기득권 엘리트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 계층에 대한 과도한 보호와 결속이다. ‘서울대 법대’라는 배경은 하나의 카르텔로 작용하며, 이들은 서로를 감싸고 보호하는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그들이 저지르는 실수나 불법은 실수로 관대하게 처리되지만, 사회적 약자의 같은 행위는 ‘범죄’로 엄격히 처벌된다. 이런 이중 잣대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식 엘리트들은 자신의 판단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으며, 다른 관점과 경험의 가치를 쉽게 무시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의 최고이기 때문에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지성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배우며,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겸손함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지금 전환의 시점에 서 있다. 법을 다루는 이들이 진정으로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법은 더는 정의가 아닌 억압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 억압은 점점 더 교묘하게, 더 정당한 얼굴로 우리 삶 속에 침투할 것이다. 정의란 특정 계층이 독점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가 끊임없이 참여하고 토론하며 재구성해나가는 실천적 과정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이기 때문에, 혹은 검찰의 경력을 오래 쌓았기 때문에 ‘옳다’고 말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닌 통찰, 논리가 아닌 공감, 그리고 권력이 아닌 책임이다. 엘리트란 자신을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공동체를 향해 자신을 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단지 성공한 개인일 뿐, 책임 있는 시민도, 공공의 정의를 지킬 자격자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법과 사회는 정의보다 공감을 먼저 배우지 못한 엘리트들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똑똑한 엘리트’가 아니라 ‘공감하는 엘리트’를 요구해야 한다. 기득권의 성벽을 허물고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이들이 법과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식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먼저 자신의 특권을 인정하고 성찰하는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 진정한 정의는 법조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존엄을 인정하고 공감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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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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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없는 법은 정의가 아니라 억압이라는 말, 정말 강렬하네요. 법조계뿐 아니라 모든 엘리트들에게 필요한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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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oice17
10
모든 검사를 일반화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감하는 검사들도 분명히 있고, 구조적 문제와 개인의 책임은 구분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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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萬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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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은 좋은데 대안이 부족한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공감하는 엘리트를 양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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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ma
삭제된 내용입니다
한강사랑
8
서울대 법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정의의 수호자가 될 수 없다는 지적, 정말 공감됩니다. 결국 법도 사람이 다루는 것인 만큼, 공감 능력은 필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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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ma
9
많은 수의 검사들의 정치화는 대다수의 정권들이 자신들의 칼로 사용했기 떄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선출한 정치권력에 의해 썩기 시작했고 사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중하지만 신속한 검찰과 사법부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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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9
엘리트 교육이 인간성을 억누른다는 지적은 뼈아프네요. 우리 사회가 진짜로 원하는 인재상은 어떤 모습인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서울대 법대라는 타이틀이 카르텔이 되는 현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배경의 법조인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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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工學
6
입시 교육의 구조가 결국 사회 정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결 고리가 신선했습니다. 교육이 곧 사회의 거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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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kdo
7
법대로’라는 말이 정당화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현실, 그 어느 때보다 실감납니다. 법 해석도 권력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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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m
6
법조문을 넘어선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법조인이 필요하다는 말에 깊이 동의합니다. 법은 사람을 위한 도구여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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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gho
4
저는 서울대 법대 출신이 아니지만, 그들 중에도 사회 정의와 약자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개인의 출신 학교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있습니다. 교육 시스템, 사법 시스템을 개혁해야지, 특정 집단을 악마화하는 접근은 또 다른 분열만 가져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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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an
1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모든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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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bin
0
사회적 분노를 특정 엘리트 집단에게 돌리는 포퓰리즘적 글쓰기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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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69
4
대법원이 이제 대놓고 민주당 이재명 죽이기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한덕수를 앞세워 대선판으로 나오네요. 이래도 법대 카르텔이 비약이라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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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
3
검찰청에서 일한 법무관으로서 이 글이 현실을 꽤 정확히 짚었다고 봅니다. 내부에서 보면 더 심각합니다. 수사과정에서 '사람'은 정말 사라지고, 오직 '사건'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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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il-K
2
문제 제기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서울대 법대 출신 중심의 카르텔은 단지 검찰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언론계 전반에 퍼져있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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