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p-um.net/p/community/think/cmb4c6s0u00sh01ahsgsolip2
category-icon
단상斷想
칼럼 HumanX
창녀에서 황후로, 그리고 검찰공화국의 인민들
Views
1711
2025. 05. 26
역사는 때로 기이한 반복을 보여준다. 천 오백 년의 시공간을 넘어 두 여자의 삶이 묘하게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일까. 한 명은 6세기 비잔티움 제국의 황후였고, 다른 한 명은 21세기 대한민국의 김건희다. 테오도라와 김건희. 이 두 여인의 삶은 권력이 어떻게 출신과 과거를 극복하거나, 혹은 그것에 의해 규정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테오도라는 히포드롬 근처 여관집 딸로 태어났다. 당대 콘스탄티노플에서 여관은 단순한 숙박업소가 아니라 온갖 향락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어린 테오도라는 자매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군중 앞에서 몸을 드러내며 생계를 이어갔다. 프로코피우스의 <비사>에 따르면, 그녀는 ‘연극배우이자 창부’로서 콘스탄티노플의 밤을 수놓았다. 하지만 테오도라는 단순한 연예인에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권력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점차 상류사회로 진입했고, 마침내 황태자 유스티아누스의 눈에 들었다. 당시 로마법은 황족이 연극배우와 결혼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유스티누스 1세 황제는 조카를 위해 법을 개정했다. 527년 유스티아누스가 황제에 오르자, 테오도라는 자연스럽게 황후가 되었다.
주목할 것은 테오도라는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녀는 여성의 권익 신장과 사회적 약자 보호에 앞장섰다. 창부들의 처우 개선, 여성의 재산권 확대, 이혼법 개정 등은 모두 그녀의 주도로 이루어진 개혁이었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사회 전체의 변화로 승화시킨 것이다. 532년 니카 폭동이 일어났을 때,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도망치려 했다. 이때 테오도라가 한 말은 역사에 길이 남아 있다. ‘황제의 옷은 최고의 수의(壽衣)입니다. 차라리 여기서 죽겠습니다.’ 결국, 폭동은 진압되었고, 3만 명의 시민이 히포드롬에서 학살당했다.
물론, 세월이 덧댄 미사여구가 포함된 기록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테오도라의 의지가 제국의 운명을 바꾼 순간이었다. 테오도라는 54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가장 중요한 조언자였다. 영토 확장 전쟁, 성 소피아 대성당 건설, 유스티아누스 법전 편찬 등 제국의 모든 중대사에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출신이 미천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민중의 삶을 이해했고, 제국을 더욱 공고히 만들 수 있었다. 천 오백 년 전에는 가능했던 미담이 왜 지금, 한국에서는 사법부를 떡 주무르듯 했는데도 나라의 위신은 악의 지하 세계로 들어간 꼴이 되고 말았을까.
대한민국의 김건희는 테오도라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 잡았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은폐하고, 화려한 스펙으로 포장한 채 대중 앞에 나타났다. 코바나컨텐츠 대표, 전시기획자, 예술가라는 타이틀은 그럴듯해 보였지만, 그 실체는 거짓투성이였다. 김건희의 학력과 경력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논문 표절 의혹, 학위 취득 과정의 부정, 사업체 운영의 투명성 등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특히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은 그녀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공모자였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검찰은 그녀를 기소하지 않았다. 더러운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무죄를 주어 그녀를 죄가 없는 사람으로 치장했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그녀가 국정에 미치는 영향력이었다.
인사 개입, 정책 결정 과정 참여, 외교 활동 등에서 김건희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명동성당 미사 참석, 해외 순방 동행, 각종 행사 참석을 통해 그녀는 ‘사실상의 여왕’ 역할을 자임했다. 김건희 현상의 핵심은 투명성의 부재다. 김건희는 은밀하게 움직인다. 언론의 취재도 제한되고, 공식적인 해명도 없다. 오직 추측과 의혹만이 난무할 뿐이다. 그녀의 실제 역할과 영향력이 무속 기반이라는 점, 굿을 위해 산 짐승의 가죽을 벗겨냈다는 소문은 이 나라에 법도가 무너진 악행에 무감각해진 극단적 범죄가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이다.
김건희는 철저히 이미지 관리에 몰두했다. 그녀는 각종 문화 행사와 자선 활동을 통해 ‘품격 있는 영부인’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가리는 포장지에 불과하다. 김건희의 이미지 정치는 매우 정교하다. 그녀는 언론에 노출될 때마다 신중하게 준비된 모습을 보여준다. 옷차림, 표정, 행동 하나하나가 계산되어 있다. 이는 전문적인 이미지 컨설팅의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 연출은 오히려 국민의 반감을 샀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작위적인 모습들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이런 방식은 이미 문재인의 이미지를 만든 질 낮은 탁현민 스타일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테오도라 시대의 비잔티움 제국에서도 법과 제도는 황실의 권력 앞에 굴복했다. 하지만 그것은 공개적이고 명시적이었다. 황제가 법을 바꾸면 모든 신민이 알 수 있었고, 그에 대한 반발도 공론화될 수 있었다. 반면 2025년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법치주의가 훼손되고 있다. 검찰은 김건희에 대한 수사를 부실하게 진행했고, 결국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서 그녀의 역할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검찰은 ‘고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라는 이유로 기소를 포기했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을 수사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탈출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들은 범죄자 집단인데 오래도 버티고 있었다. 각 사임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는 법의 심판을 받고 수의(囚衣)를 걸쳐야 마땅하다.
이는 단순한 검찰의 판단 실수가 아니다. 권력자의 가족에 대해서는 다른 잣대가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반 국민이라면 훨씬 가벼운 혐의로도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다. 팔백 원에 재판을 받고 친구를 죽였다는 의혹이 짙어도 경찰 친인척의 도움으로 법망을 피해간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 정신이 종이에만 명시된 것이고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사법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김건희와 관련된 사건들에서 법원은 일관되게 관대한 판단을 내렸다. 증거가 명백한 경우에도 ‘악의는 없었다.’ ‘피해가 크지 않다’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판결에 사람들은 검사 장관 등등 ‘자신에게 필요한 남자들과 모두 성관계를 맺은 김건희’라는 소문이 돌았어도 누구도 수사대상이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는 사법부가 정치적 압력에 굴복했음을 의미하고 그 더러운 루머가 근거 없는 소문이 아닐 것이라는 예측까지 가능하게 한다. 검찰의 정치화는 심각한 문제다. 검찰이 권력자의 사병 역할을 하면서 정적들을 제거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이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사법부 인사들의 개인적 일탈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언론의 역할도 문제다. 김건희에 대한 비판적 보도는 극도로 제한했다. 정부 여당의 압박과 광고주들의 눈치로 인해 언론사들은 자체 검열에 나섰고 진실 추적이라는 언론의 기본 사명을 포기한 것이다. 언론은 김건희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하고, 문제가 되는 부분들은 축소하거나 생략하는 보도 행태를 보였다. 이는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임은 물론이고 태생이 친일부역인 조중동의 뿌리 깊은 원죄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언론 자유 지수가 부패 인식 지수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5년, 대한민국에서 김건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남자들의 당연한 권리로 여겼던 성적 일탈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제대로 해명되지 않으면서 국민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권력은 이러한 민심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회피하거나 탄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언론 탄압, 시민단체 압박, 비판적 지식인들에 대한 감시 등은 모두 권력의 오만함 뒤에 숨은 나쁜 버릇을 감추기 위한 실력 행사의 사례들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김건희의 권력은 어떤 민주적 정당성도 갖고 있지 않다. 그녀는 선거로 선출된 적도 없고,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국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이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위기를 뜻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면, 민주주의는 와해 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의사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고, 소수의 의지가 다수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성적 충동으로 인간 사회의 좋은 규범과 체제가 무너지는 것이다.
테오도라는 자신만의 권력을 구축했지만, 그것을 후대에 물려주지는 못했다. 548년 그녀가 사망한 후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급격히 약해졌고, 제국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한 권력은 그 개인이 사라지면 함께 무너지는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김건희의 경우는 다르다. 그녀는 제도권 내에서 은밀하게 권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검찰, 사법부, 언론, 재계 등 사회 각 분야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는 더욱 위험한 형태의 권력 집중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권력이 제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의 영향력이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면서, 향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번 경험한 그 맛, 한번 앉은 그 자리를 내려놓을 인간은 없다. 법은 애초에 감시 기능일 때 힘을 발휘하지만, 법 집행자의 범죄를 덮기 위해 마구잡이로 태어나는 악한 권력 제도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권력 분산과 견제와 균형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테오도라와 김건희. 두 창녀의 삶은 권력의 본질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권력은 그것을 행사하는 자의 출신이나 성별과 상관없이 견제받아야 하며, 투명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테오도라는 제국의 영광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쇠퇴의 씨앗도 뿌렸다. 김건희는 아직 역사의 평가를 받기에는 이르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로 볼 때 긍정적인 유산을 남긴다면 그것은 매춘부의 역할 조정이 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김건희로 상징되는 그림자 권력이 양지로 나와야 한다. 그녀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 영향력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지를 투명하게 검증받아야 한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테오도라도, 유스티아누스도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제도와 관행, 그리고 그 결과는 오랫동안 후세에 영향을 미쳤다. 김건희와 윤석열 정권이 만들었던 권력 구조와 정치 문화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 어떤 유산을 남길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성 소피아 대성당이 지금도 이스탄불에 우뚝 서 있듯이, 권력자의 유산은 오래도록 남는다. 문제는 그것이 후세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이 될 것인가, 아니면 부끄러운 과거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테오도라의 모자이크는 아름답지만 슬프다. 김건희의 초상도 언젠가는 역사의 박물관에 전시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이 그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지금 우리는 먼 훗날 후손의 조상으로서 김건희의 성형 사진을 여러 장 준비해야 한다. 나는 매춘한 적이 없지만, 동시대를 산 우리는 창녀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 부끄럽고 더러운 조상이 될 것이다.
댓글
( 0 / 500 )
쓰기
andante
6
비잔티움은 역사가 되고, 대한민국은 뉴스가 되는 중... 권력은 변했는데, 권력자들의 습성은 그대로인가 봅니다.
대댓글
신고
보라아빠
12
역사 속 테오도라는 최소한 제국을 위해 일이라도 했지, 우리는 지금 뭘 얻고 있는 걸까요? 명품 쇼핑 영수증뿐?
대댓글
신고
AI-74
11
이런 글을 신문 1면에 실을 수 없는 사회가 진짜 문제 아닐까요? 언론이 침묵하면 국민은 눈을 감게 됩니다. 역사 속 테오도라가 아니라, 지금의 김건희를 기록할 역사는 우리입니다. 무관심은 공범입니다.
대댓글
신고
Soundman
4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정을 좌우하는 현실... 대한민국은 지금 민주주의의 ‘속임수 버전’을 경험 중인 듯합니다.
대댓글
신고
myoungsoo
9
왜 주요 언론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습니까? 해외 영부인의 작은 실수도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나라에서, 김건희 관련 의혹은 몇 년째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침묵하는 언론은 사실상 동조자일 뿐입니다.
대댓글
신고
파도
5
테오도라는 황후라도 되지, 우리는 ‘여왕 행세하는 사람’을 견뎌야 하는 현실. 이게 나라냐고 묻고 싶네요.
대댓글
신고
손수미
10
역사 속 여성 권력자의 삶을 통해 현재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짚어주신 점이 인상적입니다. 권력의 사유화와 제도적 견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대댓글
신고
love77
6
테오도라와 김건희를 비교한 시각이 신선합니다. 권력의 본질과 그에 따르는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대댓글
신고
닥터파워
7
두 인물을 통해 권력의 그림자와 그 위험성을 잘 보여주셨습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유산을 남길지,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댓글
신고
jina
9
정치인의 부인은 단지 ‘사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특히 김건희는 국내외 행보를 통해 이미 실질적인 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죠. 그럼에도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라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닌 ‘왕후 정치’의 부활입니다. 시민이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대댓글
신고
知非者
8
단상이라고 하시지만 정말 깊이 있는 사유의 결과물이네요. 특히 '인민'이라는 단어 선택이 의미심장합니다. 시민도 국민도 아닌 '인민'... 이 한 단어에서 글쓴이의 정치철학적 입장이 엿보입니다. 문체도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워서 읽는 재미가 있었어요.
대댓글
신고
origin69
6
정말 예리한 관찰이네요. 권력의 정당성과 그것을 둘러싼 서사의 힘을 이렇게 명쾌하게 분석한 글은 오랜만에 봅니다. 특히 '창녀에서 황후로'라는 표현이 단순한 신분 상승이 아니라 권력 구조 전체의 변화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인상적입니다.
대댓글
신고
misoon
5
와... 정말 통쾌한 글이네요. 평소에 막연하게 느꼈던 답답함을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해주시니 속이 시원합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인상깊어요. 우리가 과연 진정한 주권자인지, 아니면 그저 구경꾼에 불과한지... 생각해볼 문제네요
대댓글
신고
sunbin
4
김건희의 권력 행사 방식과 투명성 부족에 대한 비판에 공감합니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모든 권력은 국민 앞에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댓글
신고
blue
2
팔백 원 때문에 재판 받는 시민도 있는데, 수십억 단위 사건은 무혐의라니... 대한민국 사법 정의 어디 갔습니까?
대댓글
신고
지윤선생
1
'샤넬', '디올'이라는 명품 수의(壽衣)를 입으셨으니, 이제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잘 정리되시라~
대댓글
신고
댓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