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宇衍 구로다 씨의 책 중 1980년대 한일관계
1980년대에 대한 서술에서는 두 사건을 들고 싶다. 첫째는 1982년 “교과서문제”다. 지금은 거의 연례적인 반일 이벤트의 소재가 된 바로 그 문제다. 일본정부가 교과서를 검정하면서 “아시아 침략”을 “아시아 진출”로 고치게 했다는 일부 일본 언론보도에 따라 한국이 크게 반발하였다. 결국은 단순 오보로 밝혀졌지만, 한국에서 “역사왜곡”이라는 말이 보편화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극일”이라는 ‘가슴 벅찬’ 표현도 이 무렵에 처음 나왔다고 한다.
198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여전히 우호적인 태도가 지배적이었다. 필자는 그 예로 1989년 이방자 여사 서거의 예를 든다. 그녀는 조선의 마지막 왕인 영친왕의 부인으로 일본 황족 출신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민족주의적 거부감 없이 많은 이들이 “우리 왕비”라며 애도하는 가운데 장례 행렬을 전송했다고 한다. 필자는 한국인들의 우호적인 태도의 이유로 식민지시대를 체험한 세대가 아직 생존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에 비하면 사회경제적으로 아직 너무나 뒤처진 상황이었음 지적할 수 있겠다.
평자는,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에게 100억 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뜬금없이 막무가내로 내놓으라 하여 결국 40억 달러를 받아내는 것을 보면서, 어린 나이였지만 머리를 갸우뚱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은 맡긴 돈이라도 있는 듯이 ‘경제협력차관’을 요구했고, 1984년에 나카소네 수상은 그를 수용했다. 이런 일도 위와 같은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4 comments
Sung June Park
2005년에 이구 씨가 돌아가셨을 때 모친 이방자 여사에 대해서 어른들이 좋게 이야기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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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역시 전두환 대통령님은
구국의 영웅이셨습니다.
그당시 한국에겐 큰돈이었
습니다. 이것도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Reply1 d
김빅
필자는 한국인들의 우호적인 태도의 이유로 식민지시대를 체험한 세대가 아직 생존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 제 생각에는 일제 병합 시대를 체험한 세대는 반일교육을 받아도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네"로 넘어가지만, 일제 병합 시대를 체험하지 않은 세대는 반일교육만 받고 "일제시대는 오로지 지옥의 시대였구나"라고 생각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북한사람이 북한 노동당 선전만 보고 "남한은 지옥이여"라고 생각하고, 중국 사람은 한국갔다오고 북한 노동당 선전 보면 "남한은 지옥이긴해도 사람사는 세상이기도 해"라고 생각하는거와 같습니다. 즉, 한쪽말만 듣고 판단하면 그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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