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
혁명에서 ‘신시대’로
이희옥, 백승욱 (지은이) 책과함께 2021-06-30
정가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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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100자평 1편
리뷰 6편
세일즈포인트 1,204
정치외교학 주간 36위
332쪽
책소개
중국공산당 창당 100년을 맞아, 한국의 중국 연구자들이 이론.노선, 경제, 조직, 외교, 노동운동, 젠더 등 다방면으로 100년사를 살펴본다. 시기를 혁명, 건설, 발전 그리고 신시대로 구분해 접근한 것은 중국공산당 100년의 역사적 맥락이 보편과 특수, 혁명과 건설, 지양과 계승의 길항 관계 속에서 역사적 실험을 해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열린 토론과 더 풍부한 논의를 위해 필자들 사이의 상충되거나 논쟁이 될 있는 입장들을 통일하지 않고 살렸다.
중국공산당은 당과 홍군이 국가와 군대를 만들고 운영한 특이한 경험을 가지고 탈냉전 속에서 소련과 동유럽이 몰락했음에도 살아남아 집권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향후 중국의 지속적인 부상과 미국 패권의 상대적 하락에 따라 국제질서의 판도가 흔들릴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역사는 비단 일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세계와 동아시아 지역 그리고 한반도에도 각기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즉,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국가의 의미, 세계 자본주의에 깊게 포섭된 중국의 미래, 중국 사회주의체제의 원심력과 구심력, 한반도 분단체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 등 다양한 토론의 주제가 공론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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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중국공산당 100년, 이해의 확장을 위해 _이희옥
1. 두 개의 백 년과 신시대의 호명
2. 혁명과 건설의 시대
3. 사회주의의 실험: 발전의 시대
4. 신시대에 놓인 도전
5. 이 책의 구성
6. 새로운 토론을 위해
제1장 중국공산당 100년: 혁명에서 신시대까지 _안치영
1. 창당과 혁명을 통한 새로운 국가의 건설
2. 사회주의 건설과 굴절: 중국적 사회주의 건설의 한계
3. 개혁개방과 중국특색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전환과 인민의 정치생활의 탈정치화
4. 신시대와 강대국으로의 여정: 중국적 보편을 향한 역사적 전환
5. 나가며: 새로운 시험
제2장 이론적 논쟁과 노선 투쟁 _하남석
1. 들어가며
2. 공산당 창당과 중국혁명: 어떻게 혁명을 할 것인가?
3. 대약진과 문화대혁명: 어떻게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인가?
4. 개혁개방으로의 노선 전환: 어떻게 개혁을 할 것인가?
5. 당에서 지식인으로: 신좌파 대 자유주의 논쟁
6. 나가며: 논쟁이 사라진 신시대
제3장 사회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_서봉교
1. 들어가며
2. 1921년 공산당 창당에서 1966년 문화대혁명: 공산주의 이상사회 건설의 실패
3. 1978년 개혁개방에서 1989년 톈안먼 위기: 부분적 시장경제 도입의 한계와 부작용
4. 1992년 남순강화에서 1993년 사회주의 시장경제: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 발전을 통한 공산당의 체제 위기 극복
5.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국유기업 구조조정: 자본주의적 소유권 개혁
6.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을 통한 경제부흥의 선택
7.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국부(國富)에서 민부(民富)로의 정책 전환
8. 미·중 무역 분쟁 이후의 중국공산당
제4장 사회동원과 조직화 _장영석
1. 들어가며
2. 혁명기, 사회의 형성과 지원
3. 건설기, 사회의 개조와 동원
4. 개혁개방기, 사회의 복원과 관리
5. 나가며
제5장 대외인식과 외교정책 노선 _강수정
1. 들어가며
2. 중국혁명 시기
3.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4. 개혁개방 이후
5.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6. 나가며
제6장 노동자 조직의 역사와 변화 _장윤미
1. 들어가며
2. 혁명의 시기: 혁명 정당과 노동운동 조직화
3. 사회주의 건설 시기: 당과 공회 간의 긴장과 당국체제의 완성
4. 개혁개방 시기 시장화 정책과 노동계급의 주변화
5. 개혁개방 2.0의 신시대, 노동자 조직의 포섭과 배제
6. 나가며
제7장 문예정책과 근현대문학 _임춘성
1. 문학의 위기와 출로
2. 선전선동 - 사회주의적 개조 - 검열
3. 좌익작가연맹과 〈옌안 문예 연설〉
4. 중화전국문학예술공작자대표대회를 통한 정책의 관철과 사회주의적 개조
5. 사상해방과 검열
6. 중국 근현대문학사에 대한 성찰
제8장 혁명과 젠더 _김미란
1. 들어가며: 중국여성해방을 분석하는 세 키워드
2. 5·4 시기: 민족적 위기와 이슈의 ‘여성화’, 연애와 우생
3. 소비에트 시기: 농촌으로 간 혁명가들, 그리고 젠더갈등
4.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결혼’을 통한 정치와 ‘인민’ 만들기
5. 개혁개방 시기: 인구정책과 이동, 젠더질서의 재구성
6. 나가며
에필로그: ‘신시대’ 중국의 역사 다시 쓰기 _백승욱
1. 역사를 다시 쓴다는 의미
2. 중국현대사 서술의 쟁점: 관료자본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중심으로
3. 세계적 시각에서 다시 보는 중국현대사의 쟁점
4.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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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15
프롤로그 중국공산당 100년, 이해의 확장을 위해
이 책에서 혁명, 건설, 발전 그리고 신시대로 구분해 접근한 것은 공산당 창당 이후 100년사의 역사적 맥락이 보편과 특수, 혁명과 건설, 지양과 계승의 길항 관계 속에서 역사적 실험을 해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100년 전체에 대해 ‘중국특색’을 강조하고, 국가주의와 성장주의를 결합한 부국강병의 역사로 환원하며, 이를 새로운 100년의 역사적 출발로 삼는 시진핑 신시대의 역사 다시 쓰기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P.57
제1장 중국공산당 100년: 혁명에서 신시대까지
2021년 신년사에서 시진핑은 중국이 전면적인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고 했다. 2012년 시작되었다고 선언한 신시대가 창당 백 년이라는 첫 번째 백 년에서 건국 백 년이라는 두 번째 백 년으로의 전환점에서 초강대국으로의 새로운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중국은 권력의 집중화와 당-국가체제의 강화를 통한 새로운 제도를 모색하고 있다.
P.89
제2장 이론적 논쟁과 노선 투쟁
1990년대 후반 중국의 신좌파 대 자유주의 논쟁이 일종의 좌파 지식인 대 우파 지식인의 논쟁의 구도였다면, 2016년에 벌어진 중국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에 관한 논쟁은 좌파 및 진보 지식인 내부의 논쟁이라는 점이 그 특징이며, 중국 대륙 내부의 지식인들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P.97~98
제3장 사회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현재 중국을 둘러싼 대외경제 여건은 과거 어느 때보다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 2016년 중국 위안화에 대한 국제 금융자본의 공매도 공격, 2018년부터 시작된 미국과의 무역 분쟁, 2019년의 코로나 책임론까지 국제 여론은 급격하게 중국공산당에 호의적이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러한 대외경제 환경의 변화는 공산당의 향후 경제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P.154~155
제4장 사회동원과 조직화
격자에 건설된 당 조직은 중국 사회의 요구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는가? 중국의 사회단체는 과연 중국 사회가 정말 원하는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 사회가 원하는 사회 서비스는 과연 중국공산당에 포섭된 사회단체가 제공하는 사회 서비스로 한정되는 것일까? 중국 사회는 중국공산당의 사회관리의 틀 속에서 자신의 요구와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가?
P.164
제5장 대외인식과 외교정책 노선
중국의 부상과 강대국화 추구는 역내·외 국제질서의 재편을 예고하는 것으로, 그 변화는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뿐만 아니라 글로벌 거버넌스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중국 대외관계의 역사에서 중국의 대외인식과 외교정책의 주요한 변화와 계속성을 파악하는 것은 현재 부상하는 중국의 대외인식과 외교정책의 변화가 가지는 함의와 그것이 중국의 대외관계, 더 나아가 국제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P.222
제6장 노동자 조직의 역사와 변화
신계급사회에 균열을 내는 목소리는 자유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주의적인 문제제기에서 왔다. 지난 100년간 공산당이 혁명 정당에서 민족정당으로 변신하고 소수 특권층의 이익이 공고화되면서, 사회주의 원칙은 다시 노동계급의 권리를 주장하게 하고 중국 사회의 고장 난 부분을 들추어내는 날카로운 메스가 되었다.
P.250
제7장 문예정책과 근현대문학
문학에서도 비판적 사유는 존재한다. 선전선동 문학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복잡한 시대적 과제를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자기 자신을 복잡하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던 루쉰이 대표적이고, 사회주의적 개조에 침묵하고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추구했던 선충원, 사회주의적 개조에 동조했지만 새로운 창작성과를 내지 않았던 딩링 등이 있었다. 개혁개방 시기 가오싱젠과 모옌은 같은 노벨상 수상 작가지만 전자는 수상 이전 중국을 떠났고 후자는 남았다. 후자는 민족의 영웅 대접을 받지만 전자에 대한 연구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중국이다.
P.261
제8장 혁명과 젠더
20세기 중국의 여성해방은 5·4 시기에 ‘도시’에서 시작되어 항전 시기에 ‘농촌’으로 근거지를 옮겨 진행되었고 개혁개방 이후에는 ‘농촌’에서 시작되어 ‘도시’ 주도적인 개혁과정을 겪었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여성은 생산노동과 인구재생산의 주체로 호명되었으며 개혁개방 이후에는 도농 분리 호구제가 완화됨에 따라 장소 ‘이동’이 가능해져 계층분화와 함께 젠더 권력관계에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P.298
에필로그 ‘신시대’ 중국의 역사 다시 쓰기
중국의 역사 재해석은 지금도 변화 중인데, 한편에서는 부국강병의 연속성이 강조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특색’의 긴 뿌리가 강조된다. 한편에서 중국의 예외성이 강조되는 특수주의가 두드러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 예외주의가 ‘서구적’ 보편주의의 틀을 재전유하는 우회로로서 작동하게 됨이 확인된다. 여기서 보편주의의 틀을 벗어나는 특수주의란 없음이 다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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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이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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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국제질서의 대분화와 한중관계의 재구성>,<궐위의 시대>,<중국의 길을 찾다> … 총 49종 (모두보기)
중국을 연구하고 있다. 성균관대 정외과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특히 2012년에 설립된 성균중국연구소 소장을 창립 때부터 맡아 국내 최고수준의 연구소로 발전시켰다. 현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로 있고 2013년에는 현대중국학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세종연구소, 동북아역사재단 이사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고, 롯데하이마트 사외이사, 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으로 있으면서 산학 협동연구를 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서울경제에 오랫동안 고정칼럼을 쓰는 한편 외교부, 통일부, 서울시, 경기도 등에 중국관련 정책자문을 하고 있다. 또한 베이징대, 푸단대, 지린대등 10여개 중국대학에서 겸직 및 객원교수로 있다. 과거 나고야대 특임교수, 워싱턴대학 방문학자를 역임했고, 주요 저서로는 『인공지능시대, 중국의 혁신』(2020), 『동북아질서와 한중관계의 재구성(2020)』등을 비롯해 50여권의 편저, 편역을 비롯해 약 100여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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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백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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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세계화와 사회변동>,<비판사회이론 : 경제학 비판>,<1919와 1949> … 총 32종 (모두보기)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동 대학 사회학과 박사. 한신대 학교 중국지역학과 조교수 역임. 주요 저서 『생각하는 마르크스』(2017), 『중국문 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2012), 『세계화의 경계에 선 중국』(2008), 『자본주의 역사강의』(2007) 등. 최근 논문으로 「미국헤게모니 형성기 동아시아 국가간체 계 질서의 변동: 월러스틴의 이론 자원으로 검토한 냉전 형성 과정과 중국 변수」, 「마르크스에게서 재생산 개념의 형성과 체계의 사고」,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계 분석의 세 영역과 세 개의 사회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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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혁명과 건설, 발전의 시대를 지나 ‘신시대’로
다양한 관점과 맥락으로 들여다본 중국공산당 100년사
2021년, 중국공산당은 창당 100년을 맞이했다. 중국공산당은 당과 홍군이 국가와 군대를 만들고 운영한 특이한 경험을 가지고 탈냉전 속에서 소련과 동유럽이 몰락했음에도 살아남아 집권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향후 중국의 지속적인 부상과 미국 패권의 상대적 하락에 따라 국제질서의 판도가 흔들릴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공산당의 성취를 평가하면서 축제와 선전의 열기가 고조되었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사회주의 정체성의 정치’를 강조하는 한편 ‘중국특색’이라는 교조를 주입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역사는 비단 일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세계와 동아시아 지역 그리고 한반도에도 각기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즉,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국가의 의미, 세계 자본주의에 깊게 포섭된 중국의 미래, 중국 사회주의체제의 원심력과 구심력, 한반도 분단체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 등 다양한 토론의 주제가 공론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 책은 중국공산당 100년의 역사를 비판적이고 주체적 시각에서 검토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각 분야에서 관련 연구 성과를 쌓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온 한국의 중국 연구자들이 참여했고, 여러 차례의 공동논의 속에서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같은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을 바라보는 국내 연구자들의 다양한 관점과 견해가 있고, 필자들 사이의 상충되거나 논쟁이 있는 될 수 있는 입장들을 하나의 관점으로 무리하게 통일시키려 하지 않았다. 중국을 보는 서로 다른 시각이 열린 토론을 가능하게 하고, 더 풍부한 논의를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단일정당의 100년 통치,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1921년 7월, 상하이에서 당원 50여 명, 대표 13명으로 출발한 중국공산당은 현재 9000만 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정당이 되었고, 2021년 창당 100년이라는 역사적 계기를 맞았다. 한 정당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은 흔치 않을 뿐 아니라, 단일정당이 혁명당에서 통치당으로, 다시 집정당으로 변모하면서 100년 동안 지배한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중국공산당에 대한 규범적 평가와는 별개로 내구력의 원천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평가가 있었고, 심지어 기업과 사회조직 관리 차원에서도 탐구의 대상이었다. 또한 경제발전이 중산계급을 만들고 이들이 정치적 민주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근대화 이론, 비교정치의 오랜 명제에도 충격을 주었다. 사실 미국이 중국과 체제경쟁을 본격화한 것도 중국이 ‘성공의 역설’에 쉽게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은 공산당 창당 이후 혁명 30년, 건설 30년, 그리고 개혁개방을 통한 발전 30년을 지나 ‘신시대’에 이르는 100년의 역정을 거쳤다. 그러나 ‘신시대’는 ‘구시대’를 전복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100년의 역사적 유산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사회주의에 기초한 재집권과 ‘강제로 열린 근대’를 초극하기 위한 기획이라는 점에서 ‘열린 100년을 향한 분투’라고 부를 수 있다. 이를 추진할 수 있었던 소명의식과 추진동력은 부상한 중국이 가져다준 노선, 이론, 제도, 문화에 대한 ‘네 가지 자신감’에 근거했다. 그러나 이러한 신시대 기획에 ‘백년대변국’으로 불리는 대전환기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과도기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정치공학이 내장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미·중 패권경쟁과 중국의 미래
트럼프 정부와 바이든 정부 모두 ‘중국’을 ‘중국공산당’과 분리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시진핑을 국가주석이 아닌 총서기로 부르는 등 냉전기 체제경쟁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실제로 GDP 기준으로 중국이 미국의 국력을 3분의 2까지 추격했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 회복탄력성을 발휘하면서 그 격차를 더욱 좁혔으며, 두 개의 디지털 플랫폼 경쟁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따라서 미국은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중국의 기세를 ‘지금 여기서’ 막지 못한다면 자신의 패권을 더는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이렇게 보면, 중국공산당 100년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미국의 꿈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꿈이 충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혁명, 건설, 발전 그리고 신시대로 구분해 접근한 것은 공산당 창당 이후 100년사의 역사적 맥락이 보편과 특수, 혁명과 건설, 지양과 계승의 길항 관계 속에서 역사적 실험을 해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100년 전체에 대해 ‘중국특색’을 강조하고, 국가주의와 성장주의를 결합한 부국강병의 역사로 환원하며, 이를 새로운 100년의 역사적 출발로 삼는 시진핑 신시대의 역사 다시 쓰기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해답의 범용화 시대에 정책 대안과 답안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있는 상태와 있어야 할 상태의 차이’를 의미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이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지금 여기서’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공산당의 성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중국의 미래는 세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줄 것인가,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국에서 중국연구를 어떻게 기획하고 조직할 것인가 등과 같은 새로운 질문이 공론장에서 다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책의 구성
프롤로그 〈중국공산당 100년: 이해의 확장을 위해〉
신시대 두 개의 100년 프로젝트를 과거 100년을 결산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100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기획으로 보았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혁명, 건설, 발전, 신시대로 구분하여 지속과 변화를 검토했고, 신시대의 사회주의로의 복귀가 지닌 세계사적 함의를 판독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필자들의 글을 간략하게 추려 소개하고 한국에서 비판적 중국연구의 가능성을 함께 제시했다.
제1장 〈중국공산당 100년: 혁명에서 신시대까지〉
지난 100년의 정치사를 정리하면서 권력의 집권과 분권, 권력 승계제도의 규범화, 당-정관계의 변화를 중심으로 중요한 변화를 관찰한다.
제2장 〈이론적 논쟁과 노선 투쟁〉
주요 시기별로 당내뿐 아니라 당 외부를 포함해 전개된 주요한 이론적 논쟁들과 노선 투쟁의 쟁점을 다룬다. 창당 시기의 논쟁은 ‘문제와 주의’ 논쟁에서 시작해 중국 토착적인 혁명노선 논쟁으로 이어졌으며, 사회주의 건설기에는 소련 사회주의 건설 노선을 둘러싼 노선 논쟁에서 시작해 백가쟁명으로부터 반우파투쟁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문화대혁명 시기 제기된 ‘자본주의하에서 사회주의 길을 걷는 세력’이라는 쟁점이 부각되었다. 개혁개방기에는 진리표준 논쟁과 개혁의 성격이 자본주의적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촉발되었으며, 이후 논쟁은 당 외부로 좀 더 확대되었다가 ‘신시대’ 들어 당 외부의 논쟁은 크게 억제되는 경향을 보인다.
제3장 〈사회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지난 100년의 중국 경제의 역사에서 중국공산당의 경제방침이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 검토한다. 공산주의 이상사회 건설의 계획을 점차 포기하고 시장사회의 요소를 전면적으로 도입해가는 과정으로 한 세기를 검토하며, 이 과정에서 확인되는 이념, 제도, 세계 경제 조건들의 불균형이 초래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제4장 〈사회동원과 조직화〉
‘동원, 개조, 관리’의 관점에서 사회 영역에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지를 검토하며, ‘공건, 공치, 공향’의 기준에서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혁명과 내전 시기 동원과 통제에 초점을 맞추었던 사회조직화는 사회주의 건설기에 도시의 단위체제와 농촌의 인민공사체제를 통해서 동원, 개조, 관리를 좀 더 통합했고, 개혁개방 시기에 앞선 체제들이 해체되면서 ‘사구’가 사회조직화의 틀로 중시되었고, ‘격자로 세분화’하는 주민관리와 ‘정부의 서비스 구매’ 같은 방식이 사회 거버넌스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제5장 〈대외인식과 외교정책 노선〉
시기별 중요한 세계질서 구도와 그에 대한 중국의 외교정책 노선의 대응을 정리해 보여준다. 중국 외교정책의 지속과 변화를 동시에 포착하면서 혁명, 건설, 개혁개방, 세계금융위기마다 어떻게 변용하고 있는가를 밝히고 비서구 사회주의국가의 부상이 기존의 국제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했다. 그러나 중국은 기존의 고립주의 외교를 버리고 강대국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미국과의 전략경쟁에서 지속적인 게임체인저를 찾아, 다극화를 목표로 하는 신형 국제질서를 찾고자 할 것이다.
제6장 〈노동자 조직의 역사와 변화〉
중국공산당과 노동자계급의 관계가 시기별로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검토한다. 혁명기 상하이 등지에서 공회를 건립하며 파업을 주도한 운동을 배경으로 등장한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 건설기에 당과 공회 사이의 관계 설정에 대한 긴장의 시기를 거치며 노동자계급이 당국체제의 목표에 종속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시기나 톈안먼 사건 전후에 기존 공회의 제약을 벗어나는 새로운 노동운동이 분출한 데서 보듯, 노동자계급을 당의 통제하에 가두는 것이 수월하지는 않았고 21세기 들어서도 파업의 고조, 당 통제하의 공회의 변신 시도, 당 외곽의 NGO 조직의 등장 등이 병행하면서 노동문제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제7장 〈문예정책과 근현대문학〉
지식인과 당의 이념적 통제 사이의 관계를 현대문학 논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1942년 〈옌안 문예 연설〉, 1949년 전국 문학예술 공직자 대표대회에서 당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는 문학의 위상을 보여주었으며, 개혁개방은 이런 통제에서 벗어나는 시도로서 ‘사상해방’의 경험을 보여주지만, 톈안먼 사건 이후 다시 통제가 강화된다.
제8장 〈혁명과 젠더〉
지난 100년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첫째, 생산‧재생산‧이동이라는 기준점을 제시하고, 둘째, 태평천국의 난과 캉유웨이 등 전통에서 변신을 시도한 중국 고유의 여성해방 모델에 대한 함의를 부각시키며, 셋째로, 북한의 경험과 중국의 경험을 대조해보고자 한다. 이를 거치며 중국의 경험이 보여주는 복잡성을 드러내고 서구 여성해방의 관점만으로 중국의 지난 한 세기를 판단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에필로그 〈‘신시대’ 중국의 역사 다시 쓰기〉
지난 100년간 공산당의 역사를 여러 측면에서 검토한 다음 중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 다시 쓰기라는 문제를 검토해본다. 혁명사의 정통 견해인 ‘자본주의 맹아론’과 ‘관료자본주의론’에 대한 일국적·경제주의적 재해석의 시도가 이미 20여 년 이상 지속되었음을 살펴보면서, ‘신시대’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지난 한 세기를 ‘중화민족 굴기의 투쟁사’로 재서술하고자 하는 바람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왔음을 보여주고자 했고, 역사에 대한 재해석은 시공간을 가두기보다 확장하는 노력을 동반해야 의미가 있을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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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X 2021-09-26
다른 곳에서 구해 읽은 책. 중국공산당 창당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고 있는 책이다. 굉장히 정리가 잘 됐다. 이제 제2의 마오쩌둥이 되려는 듯한 시진핑 개인에 대해 분석한 책을 더 찾아 읽어
깐도리 2021-07-20
'오성홍기'가 상징하듯이 공산당이 노동자, 농민, 소부르주아, 민족부르주아를 이끄는 것이 고, 건국 직후 토지개혁 속에서 '경자유전'을 원칙으로 삼아 일종의 소농 경제를 보장한 것도 점진주의 gradualism 와 점증주의 incrementalism 적 접근이었다. (-19-)
중국공산당은 1921년 창당되었다. 직접적으로는 1919년 5.4 운동을 뎨기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대중운동과 마르크스주의 학습조직의 형성을 그 기원으로 하며,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소련과 코민테른의 지원이 중요한 조건이었다. (-39-)
민영기업의 끊임없는 자본주의적 이익추구 특성 때문에 민영기업은 필연적으로 공산당과 사회주의 시스템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중국 경제가 발전할수록 공산당의 지위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의 기본 가설이다. (-107-)
1936년 12월 시안사건을 계기로 국공합작이 다시 추진되었다. 1937년 일본의 전면적인 중국 침략으로 국민당 정권의 도시와 농촌의 기반이 급속하게 와해되었지만, 중국공산당은 농촌에서 근거지를 확대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옌안 시기 중국공산당의 토지 정책은 잠시 소비에트 시절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온건했다. (-137-)
중국공산당에게 노동계급은 과연 무엇인가. 노동계급의 조직인 '공회工會'와 당은 어떠한 관계인가. 이 글에서는 100년 정당을 앞둔 공산당 성격의 변화와 통치의 특징을 당과 노동자(조직)의 관계 변화 속에서 살펴본다. (-198-)
2010년대 중반, 한 사회학자가 1950년대에 태어난 중국여성에게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했다."가난이 싫어서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답한 여성은 묻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1927년생인 어머니는 "공산당에게 감사해야 돼. 해방이 되지 않았더라면 네 아버지는 분명 첩을 여럿 들였을 거야." 라고 했고 문맹교육반에 열심히 나가는 자신이 못마땅해서 대문을 잠가버린 시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공산당이 옳아, 엄마는 예전엔 글을 몰랐지만 해방 후 문맹교육 덕분에 지금은 책도 신문도 읽을 수 있단다"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261-)
현재 부상하는 '신시대' 의 함의는 지난 100년의 역사를 '혁명사'로서가 아니라 '투쟁사'로 재정의하는 것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이때 '투쟁사'란 경쟁적인 세계질서에서 한 세기에 걸쳐 '중화민국의 굴기의 투쟁사'일 것이다. 혁명사를 상대화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될 것이고, 그만큼 역사 재해석의 함의에 대해 더불어 고민하기는 더 어려워질는지는 모른다. (-322-)
지금의 중화민국은 1919년 5.4운동이 첫 시작이었다. 청나라의 반봉건주의, 반제국주의 혁명운동 이후, 공산당의 역할과 공산당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가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국민당의 쑨원이 중화민국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공산당에게 세력에서 밀리게 되고, 중국은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트게 된다. 그 과정에서 ,중국은 일본에 의해 잠식되었으며, 복잡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판단할 역사적 근거를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이 가지고 있었던 자부심은 아편전쟁과 중일전쟁으로 새로운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으며, 마오쩌둥 체제가 만들어지면서, 중국인들의 의식구조가 깨어나게 되었다. 중국의 문맹률이 낮아지면서, 중국 사회는 공산당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과 부정적인 시선이 서로 양분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안에서, 서민들의의식구조의 변화, 더 나아가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채택한 흔적들을 엿볼 수 있으며, 중국이 추구하는 대국굴기의 역사에 대해 조망할 필요가 있다. 소위 동아시아 냉전 구조의 적대와 대립를 기초로 한 샌프란스스코조약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고찰하고, 동아시아 주도권을 쥐게 된 미국의 안보체계, 더나아가 중국이 가지고 있는 힘의 역학 구도는 100년의 시간동안 견디면서, 힘을 키워 나가게 된다. 과거 동방의 실크로드를 다시 만들고자 하는 중국은 기회의 땅이자 거대한 리스크가 존재하는 나라였다. 그 하나 하나 알아내고, 냉정의 역사를 이해하면서, 각 세대가 가지고 있는 중국에 대한 시선의 도드라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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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taeho2000 2021-07-17
중국 공산당 100년 : 혁명기, 건설기, 발전기, 신시대
오늘 소개할 책은 책과함께에서 출판한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 1921~2021>이다. 중국과 중국공산당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뷰티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 브랜드를 중국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이 책은 성숙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중관계 발전을 위해 아모레퍼시픽은 AP포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를 축으로 국내 분야별 중국 전문가 교수님들이 본인의 연구분야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각각 교수님의 연구주제를 개별적으로 확인해보니, 오랜 시간 중국을 연구하고 학문적 교류 일환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신 거로 판단된다.
각 논문은 학계 검증도 받았다고 하니, 민감한 중국 주제지만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길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2016년 중국 위안화에 대한 국제 금융자본의 공매도 공격, 2018년부터 시작된 미국과의 무역 전쟁, 2019년의 코로나 책임론까지 국제 여론은 급격하게 중국공산당에 호의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때 중국공산당이 나아갈 길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조언을 전해줄 공저자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수록 순)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안치영 인천대학교
하남석 서울시립대학교
서봉교 동덕여자대학교
장영석 성공회대학교
강수정 조선대학교
장윤미 동서대학교
임춘성 목포대학교
김미란 성공회대학교
백승욱 중앙대학교
이글 일부는 집필진 외 역사 블로거 히스토리님, 경제 미 가드너웹대학교 김성재 교수님의 글에서 참고했음을 알립니다.
중국과 중국공산당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시의적절하다.
주제는 중국공산당의 4기에 맞춰 정치, 경제, 조직, 외교, 문화, 젠더 등 다양한 관점에서 공산당을 조망할 수 있다. 마치 영화 <메멘토>처럼 이전에 벌어진 사건을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해 정보가 중첩되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느낌이다.
1. 혁명기 : 1921년 ~ 1949년
1921년 7월, 상하이에서 50여 명의 당원, 13명의 대표로 출발한 중국공산당은 현재 9100만 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정당이 되었고, 2021년 창당 100년이라는 역사적 계기를 맞았다.
중국공산당이 창단한 1차 공산당 대회장이 있는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에서 창당한 순간 참가인은 옆방의 살인 사건으로 혼비백산 했다고 한다. 중국 공산당은 창립한 천두슈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 일본,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다. 1915년 잡지 <신청년>을 창간했고,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자 마르크스 주의를 좇았다. 중국공산당을 창당하고 총서기로 취임하였다.
천두슈가 활약하는 계기는 1919년 5월 4일 운동이 기폭제인데, 이는 1차대전 승리 후 일본이 중국에 요구한 ‘21개조 요구’를 사건이 관련 있다. (독일 조차지 승계, 여순,대련, 남만주철도 조차 기한 99년 연장, 일본인 정치, 재정, 군사고문 초빙, 특정 지역의 중일 공동경찰...)
중국 국내에 ‘21개조 요구’가 공표되자 중국을 ‘제2의 조선’으로 만드는 식민지화의 기도라 생각해 반대운동이 고조된다.
1915년 대총통 원세개에 강요했으나 1916년 원세개는 급사한다.
1919년 5월 4일 신문화운동의 결과 대중정당의 필요성을 느끼고 쑨중산은 1919년 ‘중화혁명당(중국국민당)’을 창설했다.
천두슈는 <청년잡지>, <신청년> 창간하고, 구도덕, 구문화를 비판하는 신문화운동을 일으킨다.
그가 발굴한 신청년에는 마오쩌둥, 류사오치, 저우언라이가 있고, 김일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1927년 장제스의 4월 12일 장제스의 시안 사변 이후7월 1차 국공합작이 결렬되어 총서기를 사퇴한다.
중국공산당이 혁명기 역사를 다시 쓰려는 이유는 당시 정국을 주도하는 것은 장제스의 국민당이었고, 공산당은 소비에트, 국민당의 하부 조직처럼 운용되었기 때문이다.
1922년 코민테른이 중국에 파견한 마링은 국민당과 중국공산당에 국공합작을 제안했다. 쑨중산도 소련의 도움으로 국민당을 키우고자 했고, 국공합작이 추진되었다. (1차 국공합작)
국공합작의 결과, 중국공산당의 세력이 크게 확대되었다. 1921년 100명도 되지 않던 당원 수는 1924년에 500명이 되지 않았으나, 1925년 말이 되면 2만 명으로 증가했고, 1927년 초에는 5만 8,000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국공합작은 1927년 4월 12일 새벽 국민당이 상해를 점령하고 국민당의 지시를 받은 청방과 국민당의 비밀조직들이 국민당의 정규군과 함께 공산주의자와 노동조합 지도부를 공격하면서 파탄 나고 말았다. (시안 사변)
백색공포 속에서 잔존한 중국공산당 다원 수는 1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1927년 10월 마오쩌둥은 패잔병을 이끌고 후난성과 장시성의 경계에 있는 징강산으로 들어가 소비에트를 수립했다.
그러나 국민당 군대의 공격으로 근거지를 포기하고 1935년 10월을 산시성 북부로 들어갔다. 1934년 장시성을 떠난 1934년 장시성을 떠난 8만 명이 남자와 35명의 여자는 산시성 북부에 도착했을 때 1만 명이 채 안 되었다.
1936년 말 중국공산당 홍군이 점령하여 행정수도가 된 옌안은 인구 1만 명 정도의 가난한 도시였다. 이때 일부 부대는 도보행군으로 1만 킬로미터에서 1만 2,500킬로미터를 이동했고 이를 ‘대장정’이라 하고, 중국공산당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이다.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을 마오쩌둥과 공산당이 겪었던 일을 잘 소개한다.
국민당의 제2차 북벌은 1928년 완료되었다. 국민당은 형식적으로 중국 전역을 통일했다.
공산당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의 침략이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현실화하자, 국민당 내부에서는 공산당과의 전투보다 일본군과의 항일 전투가 더 중요하다는 여론이 비등한다.
1936년 12월 12일 시안사건이 발발한다. 동북군 총사령관 장쉐량이 국민당 정권의 총통 장세를 시안에서 납치하여 구금하고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함께 싸울 것을 제안한다. (2차 국공합작)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장제스와 국민당의 일부 세력은 타이완으로 이주했고,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 선포되었다. 책의 표지 장면은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발표 당시 모습이다.
2. 건설기 : 1949년 ~ 1978년
건설기에서 가장 주요한 사건은 소련에게 뤼순, 다롄 항국의 이용권을 회수하고 한반도의 영토를 확장하고자 스탈린이 제안하는 한국전쟁에 참전한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호 발사 성공으로 미소 우주 경쟁에서 소련이 앞서간다. 중국은 “소련은 미국을 추월하고 중국은 영국을 추월한다”라는 구호로 빠른 발전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것이 대약진운동이다.
1957년 반우파투쟁를 거쳐 1958년 대약진운동은 중국의 낙후한 면모를 바꾸고 이른 시일 안에 공산주의를 달성하고자 한다.
대약진운동은 안타깝게도 엉뚱한 사건으로 시작돼 완전히 실패하고 수천만 명의 비정상적인 사망자를 초래하고 끝난다.
공산당 지도부는 대약진운동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갈등이 심해져 지도부의 균열이 심화하였다. 마오를 지지하는 ‘마오파’, 류사오치를 지지하는 ‘주자파’, 둘다 아닌 ‘소요파’로 나뉘었다. 마오쩌둥은 지도부와의 균열과 수정주의의 출현 가능성에 대한 방지 및 당과 국가기관의 관료주의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대혁명’을 일으킨다.
1966년에서 1976년까지 마오쩌둥을 제외한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을 포함한 모든 것이 비판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사조가 등장했다.
하지만 홍위병을 필두로 극단적인 전통 파괴와 계급투쟁을 통하여 문화와 교육 및 사회적 재산이 파괴되고 전방위적인 피해자를 양산했다.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는 펑더화이의 측근이었고, 이때 펑더화이와 함께 사망했다. 마오쩌둥은 목숨을 같이했던 동료이자 동향 후배인 펑더화이를 실각시켰고,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을 밀어냈다.
문화대혁명 마지막은 저우언라이가 주자파라는 4인방의 비난으로 시작되었다. 어쩌면 마오보다 더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저우언라이에 대한 모독은 중국인을 분노하게했고, 텐안문 광장에서 추모하는 화환을 바쳤다.
다른 유명 지도자 주더도 1976년 7월 사망하고, 7월 허베이성 인구 100만의 도시 탕산에서 시작된 지진이 중국 전역을 휩쓸었다. (탕산 대지진)
1976년 9월 9일 ‘중국의 붉은 별’ 마오쩌둥이 사망했다.
문혁의 시작과 더불어 옌안 시기부터 유지되어오던 2인자로서의 류사오치의 지위는 린뱌오로 대체된다.
린뱌오는 1969년 제9차 당대회에서 당장에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명기된다. 그렇지만 공식적으로는 쿠데타 시도의 실패 이후 망명하다 비행기 추락사고로 몽골에서 사망한 것으로 주장되는 린뱌오 사건 이후 마오쩌둥은 자신의 후계자로 왕홍원, 덩샤오핑, 화궈펑을 차례로 지정한다.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 후 그가 지명한 마지막 후계자인 화궈펑은 화이런탕 사변이라고 불리는 궁정쿠데타를 통하여 문혁 주도세력인 4인방을 체포함으로써 승계를 완료하고 화궈펑 체제를 형성하는 동시에 문혁이 종결된다.
3. 발전기 : 1978년 ~ 2012년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과 4인방이 체포되면서 중국공산당은 새로운 진로를 모색했다.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목표로 ‘대내적 개방’과 ‘대외적 개방’을 시작했다.
베트남전쟁 (1960~1976) 중에 싹튼 냉전기 국제질서의 재편은 중국에게 다른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1971년 베트남과 인도를 거쳐 중국을 방문한 헨리 키신저는 ‘중국이 변하기 전에는 세상이 안전할 수 없다’라고 인식하고, 1972년 닉슨 대통령은 미수교 국가인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주석과 회담하고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중 데탕트(긴장완화)의 시작이었다.
미국은 형식적으로는 동서 화해를 목표로 했지만, 소련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진영의 중국을 포섭할 필요가 있었다. 중국도 문혁의 혼란이 끝나자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1979년 미·중 수교를 계기로 개혁개방을 추진한 중국은 우리가 잘하는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루어간다.
한가지 주목한 사건은 1989년 6월의 텐안문 사건이다. 덩샤오핑의 권력을 잡아 ‘개혁’과 ‘개방’을 외치면서 경제 발전에 힘을 쏟았다. 자본주의 체제를 배우기 위해 인재를 뽑아 서유럽에 견학을 보냈지만, 이들은 중국의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1989년 5월 중국 경제의 발전만큼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학생들은 정부를 비판하고 민주화를 요구했다. 공산당과 정부는 계얼령을 선포해 광장의 국민을 해산시켰다.
그러던 6월 3일 군대가 동원되어 시민에게 총을 쏘았다. 당시 광장에 있던 학생 수천 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던 사건 텐안문 사건이다.
4. 신시대 : 2012년 ~ 2021년
미·중 전쟁에 대한 해답은 내수 시장의 확대였다.
2020년 5월 제시돈 ‘국내·국제쌍순환’정책은 기존의 경제정책과 완전히 상반된다.
이번 빅테크 기업의 해외 상장을 막는 이유중 하나도 중국의 정보 유출을 꺼리는 것도 있지만, 중국의 내수 사장만으로 기업 운영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중국 사회보장시스템의 완성을 적극 지원한 위챗의 텐센트의 기술력과 공산당의 지도력으로 전 국민을 실시간으로 안정적으로 통제하는 중국 정부의 기술을 놀라우면서 두렵기도 하다.
왜 그렇게 국민은 안정적으로 통제해야 하는가? 중국은 역사적으로 혁명에 대단히 민감하다. 국민의 동요는 가능한 빨리 알아내어야 안정적인 정권 유지가 가능하다.
국공내전 당시에도 전세가 확연히 불리한 공산당이 국민당을 이길 수 있었던 주효한 전략 중 하나는 스파이를 이용한 정보 습득이다. 물론 국민 다수를 이루는 농민의 지지가 가장 주효했다.
2012년 시진핑 주석의 집권 이래 그는 갈수록 마오쩌둥의 행적을 연상하게 한다. 중화민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의 독재 정치의 폐단을 잘 알았던 등샤오핑은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해 정치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 기념식 연설에서 차기 지도자는 시진핑이라는 생각을 드러냈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중국 출신의 아이돌은 창당 100주년 기념식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중국 국민은 시진핑의 장기 집권에 대해 장기 독재를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가 차이가 있다.
중국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이 앞으로 어떤 정치를 펼치고 중국을 이끌어갈지 궁금하다.
책에는 다음의 주제로 위에서 소개한 4기에 관해 다양한 분석을 추가한다.
프롤로그 〈중국공산당 100년: 이해의 확장을 위해〉
제1장 〈중국공산당 100년: 혁명에서 신시대까지〉
제2장 〈이론적 논쟁과 노선 투쟁〉
제3장 〈사회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제4장 〈사회동원과 조직화〉
제5장 〈대외인식과 외교정책 노선〉
제6장 〈노동자 조직의 역사와 변화〉
제7장 〈문예정책과 근현대문학〉
제8장 〈혁명과 젠더〉
에필로그 〈‘신시대’ 중국의 역사 다시 쓰기〉
중국에 관한 놀란 기억은 몇 년 전 새해를 맞아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마오쩌둥 주석에게 참배하려는 중국인의 긴 행렬을 보았을 때이다. 하노이의 호치민 묘소에 참배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와 사뭇 다른 비장함이 얼굴에 깃들어 있었고, 수백 미터를 줄 서서 기다리는 그들의 모습을 마오쩌둥 주석이 신과 같은 인물로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여행을 통해 중국에 관해 궁금했던 점은 중국인에게 마오쩌둥 주석과 중국공산당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토지소유권이 없이 사용권을 가지고 어떻게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경제를 발전하게 했는가?
남성과 여성의 가정 내 직장 내 남녀 역할이 한·중·일이 너무도 다른 모습에 놀랐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하나씩 궁금증에 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미국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후발 주자인 소련과 일본의 GDP 수준이 미국의 40%~50%에 이르렀을 때, 경제 정책을 통해 투키디데스 함정을 피했다. 중국의 성장은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되었고, 중국 경제가 미국의 GDP 기준 50%를 넘어 세계 2위로 올라서는 2010년 당시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2021년 GDP 기준으로 미국 22.6조 달러, 중국 16.6조 달러를 나타낸다. 한국도 1.8조 달러로 2005년 이후 13년 만에 10위 이내로 진입했다.
중국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진 시진핑 주석은 창당 100주년 경축대회에 모습을 드러내 “어떤 외국 세력이 우리를 괴롭히거나 압박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누가 그런 망상을 하면 14억 중국인의 피와 살로 만든 강철 만리장성 앞에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개혁개방 이래 중국 최고지도자가 공개 석상에서 외세를 겨냥해 내놓은 가장 강력한 경고장이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미국에 대해 이렇게 강력한 워딩을 사용한 적은 처음이다. 미국을 향해 “중국을 괴롭히면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를 것”이라는 시진핑 주석의 자신감으로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중국을 과소 평가하지 말라”고 한다.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 1921-2021> 시진핑 주석과 중국공산당의 과거, 현재, 미래를 분석하는 좋은 책입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중국공산당100년의변천 #이희옥 #백승욱 #책과함께 #국제정치학 #정치사 #현대중국 #중국공산당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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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력거99 2021-07-23
책 서두에
[[ 2021년, 중국공산당은 창당 100년을 맞이했다. 중국공산당은 당과 홍군이 국가와 군대를 만들고 운영한 특이한 경험을 가지고 탈냉전 속에서 소련과 동유럽이 몰락했음에도 살아남아 집권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향후 중국의 지속적인 부상과 미국 패권의 상대적 하락에 따라 국제질서의 판도가 흔들릴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공산당의 성취를 평가하면서 축제와 선전의 열기가 고조되었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사회주의 정체성의 정치’를 강조하는 한편 ‘중국특색’이라는 교조를 주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혹은 정치 사회적으로 불가분 관계를 가지고 긴 역사를 이어온 중국 공산당이 올해 2021년을 맞이 하여 창당 100주년을 맞이 하였다.
서구 열강들과의 치열한 접쟁과 , 1840년대 아편전쟁이후로 유럽 강대국들의 조차지가 되엇고, 1900년대의 큰 세계 대전 1,2차 대전과 태평양 전쟁을 겪으면서 일본과의 항일 투쟁에도 살아 남아 , 내부 국공내전을 거쳐 하나의 나라로 서기 까지는 지난한 세월을 견뎌 내었다. 단일 정당으로 , 이렇게 까지 큰 조직력을 가지고서 존재 하는것은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없다고 한다. 그간 중국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 졌던 것일까 ? 우리는 근 현대사의 발자취를 쫒으며, 그간 중국 공산당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인민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영향을 주었고 , 대외 국가들의 상대를 어떤 식으로 해 왔는지를 살펴 보면서 , 아울러 , 한국과의 수많은 무역 및 정치 외교 ,사회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간 많은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는 지리적 정치적 관계를 생각 할때 , 또한 중차대한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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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식 명칭은 - 중화인민공화국 이고 , 아래쪽 지도상 남쪽 대만섬은 중화민국으로 지칭 된다.
두나라간 입법부 쳬계는 비숫 하지만 다른 , 전국 인민대표대회가 있고 중화민국은 입법원이 있다.
현 집권여당이고 불리는 정당은 , 중국 공산당과, 민주 진부당이다. 지도자는 중국의 시진핑이 있다.
다시 건국으로 가자면 , 중화민국( 1912~ ) 은 신해혁명으로 건국된 중국 최초의 공화국이고 , 이후 국공내전으로 인해 1949년도 중화인민 공화국이 수립되고 남쪽으로 밀려 타이원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1917-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1919. 5.4 운동 촉발
1921 -중국 공산당 창당
1949 -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950 -한국 전쟁
1956 -중국 사회주의 진입
1976 마오쩌뚱 사망
1989- 테안문사건
1992 -시장 경제 체제 도입
2001- WTO 가입
2008 미국발 금융위기
2010 -세계 GDP2위 ,일본 추월 .
2012-18차 당대회 시진핑 권력 승계
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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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부터 100여년을 거슬러 내려가면서 본다면 중국은 총체적으로 약 30여년간의 혁명시기와 이후 30여년간의 전통적 사회주의 건설 ,그리고 30여년을 개혁 개방에 맞춰 , 근대화를 거쳐 현대사회에 진입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92년까지를 거슬러 간다면 그 해 시장 경제 개방 테새를 갖추었고
일당독재 공산당 정권이라 할지라도 사회주의 정책과 형평성에 맞는 배급을 한다고 하여도 개개별로 뛰어난 인재들과 사업가들의 경제적 욕막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터 엿다.
사실 개혁 개방의 기치로 내세운 , 권력의 분권화도 , 이전 소련의 민주 집중제 모델에 따른 중앙 집권체제 이나 마오쩌뚱으로의 과도한 권력과 개인독재로 문화 대혁명이 발발 하게 되었고, 이후 분권화의 길을 걸어 왓으나 다시금 시진핑 시대에 개인으로의 과도한 권력 집중과 정치적 재 집권화가 쟁점이 되고 있는 요즈음 이다. 이는 어쩌면 , 세계화로 가는 국가들의 연합이나 협업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걸림돌로 작용 할 수도 있고, 다른 면으로는 일사 불란 하게 한몸 처럼 움직 일수 있는 지렛대의 역할도 자처 할 수 있다라는 측면에서는 유리 하게 작용 할 수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 다시금 천년의 세계가를 뒤 돌아 보면 , 서구 열강의 침탈이 있기 훨씬 더 전에는 중국이라는 나라 는 매우 혁신적인 도시 였다 화약을 발명 하고 , 종이를 만들어 내고 , 각종 향신료와 비단으로 서구 후진 ? 국들에게 매혹적인 물산지 중의 하나 였고, 1400 년대로 거슬러 가면 , 유럽의 대 항해 시대 이전에 남 아프리카 대륙을 감싸 돌만큼의 함대와 선박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천하 무적 " 정해 ' 가 있엇던 나라이나 , 왕의 일인 퉁치 하에 , 모든것을 통제 하며 교류를 하였던 이후 , 오히려 창의력과 기술 발전 속도면에서는 빠르게 따라 잡은 유럽의 열강들이 바다를 제패 하고 , 아메리카 대륙은 먼적 발견 하였으며, 화약을 가지고 간 유럽은 화승총을 개발 하였다.
제러드다이아 몬드의 인류 진화학자의 일부 논리에 의하면 , 어떤 체제이건 안으로 닫혀있고 밖으로 개방 되어 있지 않는 사회 구조는 결국 무너져 내리는 수순을 밟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까지 G2의 역략을 유지 하며 지속 경제적 성과를 내고 있는 중국의 미래 그림 ( 일대 일로 등 ) 과의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관계는 는 어찌보면 더욱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보는 날이다.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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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 2021-07-21
이 책은 지난 100년 동안 중국 공산당이 지나 온 국가와 경제 체제, 사회 문화의 변화 과정을 통해 중국 공산당 체제의 현재 모습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다양한 분야에서연구한 내용들을 담은 책이다. 책의 내용과 구성은 중국 공산당의 100년 역사를 여러 분야에서 조명하고있다: 역사, 정치, 경제, 사회학, 외교, 노동계층, 문학사, 젠더 등의 다양한 시각에서 총 8개 단원에 걸쳐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희옥 교수 외 9명의 중국 관련 전문가 집필진이다. --- 얼마 전 뉴스에서 국제적인 설문조사 결과 중국이라는 국가의 이미지가 전세계적으로 나쁘고 비호감 비율이 높은 것으로나타났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미중 무역 분쟁, 전랑외교, 코로나 대처 방식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비호감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과도한 애국주의였다. 과연 중국은 외국에게는 어떤 존재였을까? 중국 정부는 언제부터 외국에비호감적으로 비쳐지게 되었을까? 사실, 여기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와 지배층인 중국공산당을 구분해야하는 전제가 필요하다: 특히, 중국 전체 14억 인구 중에 7%도 안 되는 9200만명인공산당 조직이 나머지 절대 다수(93%)인 인민들을 별다른 큰 저항 없이 이끌고 지배해 올 수 있었을까? 어떻게 보면, 이런 궁금증들에 대한 대답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 책의주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중국 수립에서부터 현재까지 100년 동안 국외 정세에대응하여 벌인 국내 정책의 수립과 이행을 중심으로 주요 시기별 역사적 변천 과정을 이 책에서 담고 있다: 혁명과사회주의 국가 건설 시기, 개혁개방 시기, 신시대로 나누어카멜레온처럼 공산당이 채택하는 정치 이념과 사상, 경제 정책, 사회조직 운동, 교육과 문화 운동의 변화를 서술한다. 오늘날의 중국이 보여주는 이런 행태는 놀랍게도 과거 70년 동안 일어났던유사한 역사적 사건의 반복임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1960년대 급진적 사회주의 경제체제 시행의 실패로 중국 경제체제가붕괴되어 정치적 입지를 잃은 마오쩌둥이 당시 10대와 20대초반 청소년 계층을 선동하여 ‘탈권위’를 목표로 사회개조운동으로 발전되는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의 정치 권력으로 복귀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동시에 중국 역사의10년 동안 교육의 공백기간을 만들어 내고 그 ‘무교양 세대’라는 폐해를 그대로 입은 세대가 지금의 중국 공산당 지도층인 60~70대라는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공산당의 열혈분자인 ‘소분홍’이라고 알려진 중국의 20~30대MZ세대는 다름아닌 50년전 문화대혁명의 주체였던 지금의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고도의 전략적인계산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용되고 있는 현대판 ‘홍위병’의재현이라는 점이다. 또한, 1950년 한국 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유럽에 대한 갈등으로자유주의 비판과 함께 사회주의 이념강화와 중국 전통의 교육, 문화를 강조하는 정책을 취했다는 사실은지금도 ‘중국몽’과 ‘중국식사회주의 체제’라는 형태로 되풀이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일련의 모습들 속에서 현재 중국이 맞이하고 있는 비호의적인 국외 정세는 중국으로 하여금 미중 무역 전쟁의심화와 중화주의 사상에 기반하여 지역적 패권의 강화를 추구하게 될 것임을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중국의 지배층인 공산당의 과거 역사와 행적을 통해 주변국인 우리 입장에서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 힌트를얻는데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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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2021-07-12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
- 현재에서 과거를 보고 미래를 논하다 -
홍콩의 국가보안법 처리를 앞두고 한국, 호주 등 중국 밖 여러 나라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났던 홍콩 독립 지지에 관한 대자보 훼손 사건들이나중국 내에서 나이키, H&M 상품들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불타는 이 극단적인 모습들을 보게 되었을 때 중국에 대해서 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즉 소위 21세기 홍위병은 현재 중국의 문화현상을 설명하는 단순한 신드롬이 아닌, 국가 간 마찰을 초래할 수도 있는, 국제사회가 당면할 수도 있는 미래 문제의 잠재적 요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고, 현재는 과거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무엇이 무엇의 거울이 되었든 간에 아무튼 현재나 과거의 상호 긴밀한 연관성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현재 직면한 문제에 대해 과거 역사에서 지혜와 교훈을 찾으려는 인간의 시도는 그만큼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내가 중국사를 읽으면서 다른 세계 역사에서도 받지 못했던 충격적인 사건이 2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중국의 '대약진 운동'에 관한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가 '문화대혁명'에 관한 것이었다.
- 대약진 운동 중 일부 -
참새의 생태계 내에서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이루어진 제사해 운동 또한 이 기간 내에 장려된 정책이었다. ‘참새가 곡식의 낟알을 쪼아 먹어, 인민의 노동의 결실을 도둑질하니, 해로운 것이다’라는 마오의 말 한마디에 선동된 대중은 합리적 의심 없이 참새를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죽이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새총은 물론이거니와 대량의 독극물을 사용하여 모리, 파리, 들쥐 그리고 참새까지도 멸종시키는데 힘썼고, 각 지방정부와 단위체는 잡아들인 참새의 양과 부피에 따라 포상과 표창하기까지 했다. 참새가 멸종되자, 메뚜기 떼가 전역에서 창궐하였고, 해충이 들끓었다. 자연의 생태학적 균형이 무너지자, 농지는 황폐화가 되었다. 무지한 사람들은 대기근으로 아사자가 속출한 후에야 참새가 곡식의 낟알뿐 아니라, 해충까지 먹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로운 개체였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 문화대혁명 -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한 번의 실각을 경험했던 마오는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사실상 다시 부활한 셈이었다. 마오는 문화대혁명을 정치적인 성격으로 확대시켜 전개해나갔는데, 그가 지향한, 국민의 삶과 인간의 정신 등 그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개조된 완전한 공산주의 사회를 당장이라도 이룰 것처럼 급진적이고 맹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 혁명에 동참하려는 자발적인 세력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들은 마오와 마오의 정책을 보위하고, 마오의 이상향에 심취된 무리, 즉 홍위병(紅衛兵)이었다. 점차 매우 빠른 속도로 그리고 대규모로 결성된 이 조직의 대다수는 마오와 함께 급진적 변화를 추구했던 혈기왕성한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문화대혁명의 구호에 따라 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때려죽이거나, 구태(舊態)로 인식되는 학술자료와 문화재를 파괴하고, 심지어는 공자의 무덤까지 파헤쳐 훼손하기도 하는 등 반달리즘(vandalism)적 행태를 보였다. 또한 반동분자로 낙인찍힌 사람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나타내는 폭력의 과격함과 잔인함은, 이 혁명을 진두지휘하는 당과 마오에게 보이는 충성심의 척도가 되기도 하였다.
하나의 문제로서 '홍위병'은 과거 중국의 기록이 아닌,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사드 경제 보복, 한류 금지 조치, 바이두(Baidu)에 윤봉길 의사의 국적이 중국 조선족으로 되어있는 중국의 동북공정, 김치, 한복에 대한 문제, 1대1로 프로젝트 등 중국이 아닌, 중국공산당이 해왔고, 하고 있는 일들이 턱밑까지 차올라 이제는 우리나라의 정체성까지 흔들어데는데 이르렀기에 중국에 대한 공부와 연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 말하고 싶다.
이 책의 제목이 '현대 중국 100년의 변천'이 아닌,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인 것은 집필진이 중국과 중국공산당을 분리해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을 이끌고 움직여가는 것은 하나 된 중국의 모든 사람들이 아닌, 슬로건을 정하고 지침을 내리는 중국공산당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중국 공산당에 대해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범위는 책 제목의 일부이기도 하듯이 1921-2021이다. 중국공산당이 창당된 1921년부터 시진핑 집권 중인 현재 2021까지 중국 공산당의 백 년간 역사를 들여다본다. 이 책의 구성은 논문의 모음집 형식으로 되어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도 논문의 형식을 이루기에 총 10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각 세부 분야의 전공자이자 전문가이기도 한 10명의 집필진이 각각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공산당 역사를 기술, 앞으로를 전망하고 있다.
이 책의 특이점은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듯이 각 논문에서 논의되는 키워드는 다르겠지만 시기는 통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공산당 100년의 역사를 혁명, 건설, 발전 그리고 신시대로 구분해보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창당하고 난 후 혁명 30년, 사회국가 건설 30년, 등소평에서 시작된 개혁개방 30년 그리고 시진핑 집권기에 선언된 신시대(2017년 제19차 당대회).
또 하나의 특이점은,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한데, 중국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견해를 인정하고, 필자들 사이에서 상충되거나 논쟁이 될 수 있는 입장들을 하나의 관점으로 무리하게 통일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현재와 관련하여 '신시대'에 대한 집필진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볼 수 있다.
단순히 중국의, 중국공산당의 과거만을 늘어놓은 것이 아닌, 그것(중국공산당)이 현존하고 있는 '오늘날'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이 갖는 의미, 국제사회 안에서의 관계 등 쟁점이 되는 키워드와 함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중국을 바라볼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국내 여러 대학에 계신 교수님들께서 집필하셨다(이희옥 성균관, 안치영 인천대, 하남석 서울시립대, 서봉교 동덕여대, 장영석 성공회대, 강수정 조선대, 장윤미 동서대, 임춘성 목포대, 김미란 성공회대, 백승욱 중앙대). 중국에 대한 학문적 통찰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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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21-07-17
2021년 올해는 중국공산당이 창당된지 100주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 세기네요.
한 정당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되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중국공산당은 1921년 7월 1일 상하이에서 50여명의 당원, 13명의 대표로 출발하여 현재는 남북한의 국민을 합친 숫자보다 많은 9000만명의 당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의 정당이라고 합니다.
1919년 우리나라 3.1운동에 영향을 받아 중국에서도 5.4운동이 일어났는데 바로 이 5.4운동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본격적으로 등장한 노동운동과 마르크스주의 학습조직이 형성되어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기치아래 1921년 중국공산당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중국공산당은 대체로 30년 주기로 중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창당 후 약 30년간의 혁명을 통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고, 건국 후 마오쩌둥이 전통적인 사회주의적 모델에 따라 약 30년간 사회주의를 건설하려 하였고, 이후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처럼 30여년 간 개혁개방을 통해 부강한 나라로 성장하였으며, 시진핑 집권이후 미국을 위협할 만큼 강대국으로 발전, 신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에서는 지난 100년간 공산당의 역사를 여러 측면에서 검토한 다음 중국이 어디로 가게 될 지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중국공산당은 비단 일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국이 산적해 있는 경제 불평등 심화 문제에서부터 인권 및 소수 민족 탄압, 코로나 19 발생 부정, 김치 한복 등으로 촉발된 치졸한 역사 문화 공정,
패권 경쟁 등 한반도, 동아시아 그리고 전세계에 이르기 까지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역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진리를요.
특히 2000년대 중국의 부상을 지켜 봤던 중국의 MZ세대들이 21세기 홍위병으로 국수주의적, 극단적 중화사상에 빠져 고립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문혁의 결과를 돌이켜 보건데 이러한 고립의 심화는 결국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까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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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석
dpoornsSeta2m84b14t9542r4244a1l4 5tue6 f7go9:hut256Oagc1t90 ·
최근 20차 당대회를 지켜보다가 작년에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냈던 <중국 공산당 100년의 변천: 혁명에서 '신시대'로>(책과함께, 2021)에서 맡았던 2장 "이론적 논쟁과 노선투쟁"(책 67쪽~94쪽)이 생각나서 일부 내용을 올려봅니다. (각주와 참고문헌은 생략)
1. 들어가며
중국 공산당은 지난 100년간 창당의 전사부터 시작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서 개혁개방 이후 경제 발전의 시기를 거치면서 그 안과 밖에서 끊임없이 논쟁과 노선 투쟁 속에 있었던 정당이다. 흔히 일당 독재 체제와 최고 지도자 일인으로의 권력집중을 보며 공산당을 하나의 단일한 이데올로기와 균열이 없는 일괴암적(monolithic)인 조직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실제 역사를 회고해보면 사회 변화의 곡절을 거칠 때마다 여러 정치사조를 비롯해 ‘주의’와 ‘노선’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때때로 공산당의 노선과 관련한 갈등은 잔혹한 정치적 억압이나 폭력적인 갈등으로 번져나가기도 했지만, 이 노선투쟁을 둘러싼 논쟁은 중국의 사회 성격 혹은 체제 성격을 놓고 어떻게 중국을 변혁시키고 발전시킬 것인가가 그 핵심이었다. 그렇기에 중국의 정치체제는 다당제와 직접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없었던 일당통치의 당-국가 체제이지만, 당 내외의 논쟁과 노선투쟁이 일정하게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해온 측면도 있다.
(중략)
5. 당에서 지식인으로: 신좌파 대 자유주의 논쟁
중국 공산당은 문화대혁명 이후 권력 엘리트들의 합의를 중시하는 집단지도체제를 만들었는데 이는 이후 당 내에 큰 분열이 생겨 집권당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화대혁명 이후 다시 당으로 복귀한 권력 엘리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당내 지배적 통치의 안정성이 깨지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오쩌둥 같이 한 사람에게 많은 권력이 집중되는 방식을 피하는 동시에, 체제에 불만을 느낀 대중운동과 당 내부의 분파가 결합하는 위협을 최대한 방지하고자 했다. 1989년 천안문 사건 당시에도 계엄령이나 진압을 놓고 상무위원회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일부 당 지도부가 학생운동에 좀 더 동조적인 태도를 보이자 덩샤오핑을 비롯한 당내 원로들이 개입하여 자오쯔양(趙紫陽)의 해임과 무력 진압을 결정하며 신속하게 당 내의 분열을 수습하고자 했다. 문화대혁명과 1989년 천안문 사건을 거치면서 중국 공산당은 내부의 노선 대립을 외부로 표출하는 것을 지극히 꺼리게 되었다. 이렇듯 1990년대 들어서 중국 정치 구조가 일부 변화하게 되면서 중국 지식계의 논쟁이 부분적으로 기존 당내 노선 논쟁의 기능을 대체하게 되었다.
실제로 중국 지식인들은 문화대혁명 시기 많은 탄압을 받다가 개혁개방 이후 복권되기 시작하면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다시 내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중국 지식계는 마오쩌둥 시기를 전제적이고 봉건적이었다고 비판하면서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계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이 흐름은 전반적으로 ‘신계몽주의’라고 불렸다. 이 영향 속에서 1980년대에 중국 사회 전체가 민주에 대한 찬사와 열망에 깊이 빠져있었으며, 이는 점차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개조 운동으로 발전했고 체제 변혁을 통해 민주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렇기에 이 주장은 한편으로 1989년 천안문 광장의 학생들에게 사상적 자원이 되었지만, 이 광장의 운동이 무력으로 진압되고 사회분위기가 급속하게 보수화되면서 신계몽주의 사조는 분화하기 시작했다.
한편, 위에서 살펴봤듯이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체제 성격이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는 계속해서 제기되었으며, 그와 관련한 지식인들의 논쟁도 단속적으로 벌어졌다. 그 논쟁의 핵심 주제는 중국이 자신의 체제를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적 제도를 수용하여 변화해나가는 경제적 사회관계들 때문이었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 통치를 유지하는 가운데 시장을 도입하여 경제의 성격을 변화시켜나가는 정책적 전환으로 인해 일견 상호모순되는 정치경제적 속성을 지닌 체제로 전환된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과정을 살펴보자면,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농촌의 탈집체화로 인해 개별 농촌 가구의 수입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개혁의 중심이 점차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가는 동시에 해외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농민들은 도시로 옮겨가 이주노동자인 농민공이 되었다. 도시에서도 1980년대의 이중가격제와 같은 계획과 시장이 공존하던 과도기를 지나 1990년대 초중반에 이르러 보다 본격적으로 서구의 자본주의적 제도들을 도입하게 된다. 무엇보다 1989년 천안문 사건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 이후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기층 사회세력들의 저항은 대폭 억압되었고 중국의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권위주의적 통치 체제와 경제의 시장화의 결합에 기초한 정치적 합의가 생겨났다. 이러한 합의는 1990년대 이후의 중국의 발전 경로를 규정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것은 도시 지역에서의 국유기업 개혁이었다. 1997년 중국 공산당 15차 당대회에서 국유기업 개혁 조치가 발표되었는데, 이 방침은 큰 기업은 정부가 나서서 살리고 작은 기업은 시장의 원리에 따라 구조조정하겠다는 ‘조대방소(抓大放小)’의 원칙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국유기업의 개혁은 노동제도의 변화도 가져와서 기존의 종신고용의 단위(單位) 체제는 해체되고 노동자들에 대한 대량의 정리해고가 이뤄졌으며, 새롭게 노동시장에 따른 고용계약이 이뤄지는 노동계약제가 전면적으로 실시되었다.
이렇듯 사회 전반적으로 큰 변화가 발생하면서 여러 영역에서 비록 수준은 낮았지만 보편적으로 제공되었던 기존의 사회주의적 복지의 시장화, 상품화가 이뤄져 기층 인민의 삶의 안정성이 깨어져나가고 빈부격차가 크게 확대되자 이를 둘러싸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크게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이 바로 잘 알려진 중국의 ‘신좌파 대 자유주의’ 논쟁이다. 이 논쟁에서 다뤄진 쟁점은 중국의 ‘근대성(modernity)’ 문제, 마오쩌둥 시기 및 문화대혁명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지구화(globalization)에 대한 비판적 검토, 향후 중국 정치 제도의 변화 방향 등 굉장히 광범위했지만, 당시 중국 사회의 현실을 놓고 벌어진 논쟁에 국한하여 말한다면, 당시 중국의 개혁방향에 대하여 동조하는 측과 비판하는 측 사이에 벌어진 ‘신자유주의 논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신좌파들은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평등의 확대와 국유기업 개혁 과정을 전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수용하는 것으로 보고 거세게 비판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화대혁명을 비롯해 중국의 혁명적 역사에서 사라진 인민민주의 전통과 제도를 다시 시대에 맞게 복원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반면,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이 문제에 대한 대응에서 두 갈래로 다시 갈라졌다. 자유주의 우파는 개혁과정에서 발생한 빈부격차 등 부정적 결과는 근대화 과정에서 치루는 어쩔 수 없는 대가라고 보며,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며 시장경제를 확대하여 경제발전을 달성하면 이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봤다. 반면 자유주의 좌파는 신좌파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회불공정의 문제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입장인데, 이들은 이러한 문제가 시장경제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경제체제의 전환 과정에서 정치권력이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을 통한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권력 감시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들의 논쟁은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21세기에도 지속되었다.
이 논쟁에 대해서 지식계 내부에서도 여러 평가가 이어졌다. 첸리췬(錢理群)은 자유주의자들은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는 비판했지만, 중국 사회의 자본주의화라는 현실을 은폐했으며, 신좌파는 중국 사회의 자본주의화와 양극화를 비판했지만 마오쩌둥 시기에 대한 긍정적 전유 속에서 진지한 비판이 부족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휘둘리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허자오톈(賀照田)은 이 두 갈래 지식인들이 모두 서구의 역사적 경험과 현실에 의존한 도식적 관념에 의존했기에 중국의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음을 비판하기도 했다.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작은 국가’, ‘시장’이라는 개념으로 문제해결을 하려다보니 중국의 여러 사회 문제들에 현실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고, 신좌파도 서구의 신자유주의 비판 이론을 그대로 수용해 중국의 1990년대 발전 모델을 비판하다보니 마찬가지로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후진타오(胡錦濤)가 집권하고 조화사회론 및 과학발전관의 기치 하에 국내 불평등을 완화하고 생태 문제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제기하며 일부 친민적인 정책을 실시하자 신좌파 대 자유주의 논쟁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서구의 신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대한 불신이 강해지는 반면, 국가 자본주의의 성격이 강했던 중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자 상당수의 신좌파들은 중국의 성과를 강조하는 경향의 중국모델론으로 선회하기 시작했으며, 중국의 전통이나 문명을 강조하는 경향과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담론들이 지식인과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6. 나가며: 논쟁이 사라진 신시대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그나마 활발하게 지식계에서 벌어지고 있던 논쟁도 드물어졌다. 중국 공산당은 시진핑 지도부가 등장한 이후 고위 공직자를 비롯한 당 안팎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것을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로 놓았으며, 최고지도자인 시진핑에게 권력을 집중해 정책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했다. 일명 정층설계(頂層設計)를 내세워 당 중앙의 의제 및 정책 장악을 우선시했으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체제 안정의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2018년 전인대에서는 헌법 수정을 통해 국가주석의 임기제한 규정을 삭제하고 공산당의 영도를 명문화했으며, 2019년 19차 당대회에서는 중국 사회의 주요 모순을 “인민의 갈수록 늘어나는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 증가와 불균형적이고 불충분한 발전 사이의 모순”으로 새로 규정했다. 그리고 당의 새로운 지도 이념으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내세웠다. 사회적 갈등을 협상이나 제도 개선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던 후진타오 시기에 비해 시진핑 시기에는 사회에 대한 감시가 강해졌고 당의 통제 역시 강화되었다. 이 가운데 지식사상계에 대한 검열도 강화되면서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감히 얘기하거나 쓸 수 없다(不敢說, 不敢寫)”는 말이 자조적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당 내부의 논쟁이나 노선 갈등도 기존에 비해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간간이 온라인이나 외신 등을 통해 당 내부 상층 엘리트 간의 권력투쟁이나 갈등과 관련한 루머 등이 나돌기는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물론 억압과 통제가 강해졌다고 해서 모든 논쟁이 사라질 수는 없다. 시진핑 집권 이후 2015년 겨울 광동지역의 노동운동을 지원하던 NGO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벌어지자 다시금 중국의 체제 성격에 관한 논쟁이 촉발되기 시작했다. 21세기 들어서 중국 각지에서는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 보장을 주장하는 파업이나 권리 보호 투쟁이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하지만 후진타오 시기 일정하게 보장됐던 이러한 대중 조직의 움직임이나 지식인들의 논쟁은 시진핑 시기 들어 위로부터의 강력한 압박에 직면했다. 한동안 당의 지배적 통치만 반대하지 않는다면 온라인이나 지면을 통해 중국이 가야할 길에 대한 활발한 논쟁이 벌어졌었고, 여러 노동NGO들의 활동도 조금씩 활기를 찾던 중이었지만, 시진핑 시기 들어서는 이 모든 것이 통제됐다. 이러한 중국 공산당의 통제와 탄압은 다시금 중국 체제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주로 홍콩과 해외에 거주하는 중화권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이 논쟁은 중국의 체제 성격을 신자유주의적 세계체계에 맞서고 있으므로 세계의 진보적 변화를 위한 축으로 간주해야 하는지, 아니면 신자유주의적 세계체계에 완전히 편입되어 있기에 투쟁과 저항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지의 여부를 가지고 촉발되었다. 1990년대 후반 중국의 신좌파 대 자유주의 논쟁이 일종의 좌파 지식인 대 우파 지식인의 논쟁의 구도였다면, 2016년에 벌어진 중국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에 관한 논쟁은 좌파 및 진보 지식인 내부의 논쟁이라는 점이 그 특징이며, 중국 대륙 내부의 지식인들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창당 이전부터 사회주의 시기 내내 논쟁이 이어져왔던 중국 공산당은 문화대혁명과 1989년 천안문사건과 같은 거대한 대중운동을 지나면서 점차 당 내부의 논쟁과 노선 투쟁이 사라졌거나 혹은 그 갈등을 드러내지 않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로는 지식인들의 논쟁이 당내 이론 논쟁과 노선 투쟁의 기능을 일부 대신하기 시작했지만 일명 ‘신시대’에 들어서는 그마저 쉽게 허용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체제 성격에 대한 질문과 논쟁은 기층에서 비록 소수지만 단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제이식 사건을 비롯해 중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와 농민 등 기층의 저항과 일부 재야 지식인과 활동가들의 목소리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그 주인인 노동계급을 탄압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저항하고 있다. 중국의 100년 논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항상 대대적인 논쟁이 벌어지고(放), 이후 다시 수습하는(收) 과정이 반복적으로 벌어졌다. 현재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일단 당 중앙 이외의 목소리들을 누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디지털 기술까지 동원해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통제와 억압 외에 아래로부터의 민의가 반영될 수 있는 통로와 민주적 제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이 여론은 언제든지 다시 활발하게 터져 나올 수 있다. 그 가능성은 다름 아닌 바로 중국 공산당의 100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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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우리가 마주한 세번의 신중국 입력2022.10.28. 오전 5:03 수정2022.10.28. 오후 2:37 기사원문 추천 댓글 본문 요약봇 텍스트 음성 변환 서비스 사용하기 글자 크기 변경하기 SNS 보내기 인쇄하기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 혁명에서 ‘신시대’로 이희옥·백승욱 엮음 l 책과함께(2021) 1921년 7월, 불과 50여명의 당원으로 출발한 중국공산당은 현재 9천만명이 넘는 당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정당이며 지난 2021년 창당 100년을 맞이했다. 미약한 규모로 출발한 정당이 이토록 오래 존속하기도 어렵지만, 한 정당이 이토록 오래 통치한 역사를 찾기도 어렵다. 게다가 그 나라는 55개 소수부족이란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아우르는 하나의 문명이자, 거대한 대륙이다. 소련과 동유럽이 몰락하는 격변의 와중에도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성공적으로 통치하고 있으며, 어느덧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수 있는 중국을 건설했다. 한국의 중국 연구자들이 펴낸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은 중국공산당 100년의 역사를 이론·노선 투쟁, 외교 전략, 경제와 노동, 젠더 정책 등 다방면에 걸쳐 두루 살피고 있다. 중국공산당 100년사를 통사적으로 접근한 책이 아니라 연구자들 각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연구해온 성과들을 가감 없이 엮었다. 이 책은 중국공산당 100년을 혁명기, 사회주의 건설기, 개혁개방기로 구분하고, 현재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끄는 체제를 ‘신시대’로 호명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가 세 차례에 걸쳐 ‘새로운 중국’(신중국)을 만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편의상 지도자의 이름으로 시대를 구분하면 첫번째는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이다.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마오쩌둥은 1949년 10월1일, 톈안먼에 올라 중국공산당이 통치하는 중화인민공화국(‘중공’) 건국을 선언했다. 우리가 만난 첫번째 신중국, ‘중공’이었다. 두번째는 1992년 8월24일 한중 수교로 만나게 된 신중국이다. 한중 수교 직전이던 1월18일부터 다음달 22일까지 덩샤오핑은 중국의 우한, 선전, 주하이, 상하이 등을 시찰하고 ‘남순강화’를 발표했다.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공산당 내 보수 세력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을 두고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로 논쟁 중이었다. 덩샤오핑은 남순강화를 통해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고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며 개혁개방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을 천명했다. 우리가 만난 두번째 신중국, 개혁개방의 중국이다. 지난 2021년 11월11일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 폐회와 함께 중국공산당은 공보를 통해 ‘중국공산당 100년 분투의 중대한 성과와 역사적 경험에 관한 결의’(3차 역사결의)를 채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이어 중국공산당 100년 사상 세번째 ‘역사결의’였다. 7400여자 분량의 공보 중 시 주석의 업적이 절반을 차지했고, 그의 이름이 17차례나 등장했다. 이와 달리 마오쩌둥은 7회, 덩샤오핑은 5회 언급에 그쳤다. 결국 시 주석은 지난 10월 중순, 제20차 당대회를 통해 원로와 반대파들을 축출하고, 최측근을 포진시키며 3연임을 확정 지었다. 이는 우리가 알던 과거의 중국과 다른 새로운 중국, 세번째 신중국의 출범을 의미한다. 흔히 중국을 일당 통치의 당-국가체제, 최고 지도자에게 권력이 집중된 권위주의 체제로 간주하기 쉽다. 그러나 한국의 양당 체제가 보수정당 간의 정권교체에 그친다는 비판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중국공산당 역시 시기별로 당내에서 수많은 주의·주장과 노선의 쟁투를 통해 정권 교체에 준하는 일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갈등은 때로 정치적 억압이나 폭력적인 양상을 빚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의 발전을 견인해왔다. 문제는 지금 우리 앞에 와 있는 중국의 모습이 낯설고 위태롭다는 것이다.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전성원/<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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