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역사인식 실상과 그 대처에 대해 - (두번째)
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의 역사 인식은 그 나라 정부 및 해당 정권을 지탱하는 세력의 역사 인식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해당 정권의 대표가 표출하는 언행은 모두 사전에 준비된 시나리오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수상이 공식 석상에서 한 발언을 통해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을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이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자, 그동안 일본의 국회에서 수상이 자국 역사 속의 사건을 언급한 사례를 한가지 검토해 보고자 한다.
검토 대상은 지난 수년간 일본 국회에서 이루어진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의 조선인 및 중국인 학살사건’에 관한 야당 국회의원의 ‘대정부 질의’와 그에 대한 일본수상 명의의 답변서이다.
(일본 NGO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의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 제공의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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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6일 193회 국회 (본회의)
- 참의원 민진당(民進黨)의 아리타 요시오(有田芳生) 의원이 제출한 대정부 질문-
<관동대지진 시에 일어난 조선인, 중국인 등 학살 사건에 대한 일본정부의 관여에 관한 질문서(関東大震災時に起った朝鮮人、中国人等虐殺事件への日本政府の関与に関する質問主意書)>
1. ‘중앙방재회의’(中央防災会議: 수상이 주재하는 내각 산하의 재난방지 전문가회의)의 보고서에는 해군 후나바시(船橋)송신소에서 내무성 경보국(内務省警保局) 국장의 명의로 유언비어를 타전함으로서 관헌이 인정하는 형태로 전국에 확대되었다고 한다. 현 정권도 같은 인식인가?
2. 보고서에는 후나바시송신소 소장이 조선인을 살해하라고 허가했고 그 때문에 자경단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인정하는가?
3. 보고서에는 군대와 경찰이 조선인과 중국인을 살해했다고 하는데 인정하는가?
4. 조선인, 중국인의 학살사건에 정부가 관여한 것에 대해 유감 의사를 표명한 적이 있는가?
5. 보고서에서 ‘살해의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고 기록한 근거인 방위성(防衛省) 소장자료 등을 인정하는가?
- 내각총리대신(内閣総理大臣) 아베 신조(安部晋三) 답변서-
* 1~3에 대해: ‘보고서’는 학술전문가가 집필한 것이기 때문에 그 기술에 대해 일일이 정부가 답하기는 곤란하다.
* 4에 대해: 지금까지 유감의사를 표명한 것은 확인할 수 없고, 조선인과 중국인 등에 대한 학살에 일본정부가 관여했다는 것은 정부 내에 기록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유감의사를 표명할 예정은 없다.
* 5에 대해: 방위성 자료의 기술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질문서의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은 볼 수 없다. <지진재해 경비를 위해 병기를 사용하게 한 사건 조사표(震災警備のため兵器を使用せる事件調査票)>는 정부 내에서 볼 수 없으므로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없다.
이상을 통해 현재의 일본정부가 1945년 8월 이전 일본제국이 한반도 등 아시아 주변국을 침략했던 역사 사실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즉 상기 일본 국회의 대정부 질의에 대한 아베 전 수상의 답변서는 역사적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으며, 자기 모순적인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다. 풀어서 보면 다음과 같다.
* 1~3에 대한 답변: 내각 산하 ‘중앙방재회의’의 좌장은 수상이므로 그 기구가 공식 발행한 보고서의 내용 책임은 바로 수상 자신에게 있는데, 학술 전문가가 작성했다고 책임 전가하는 것은 모순됨.
* 4에 대한 답변: ‘중앙방재회의’ 보고서에서 내무성 경보국장, 후나바시 송신소 소장 및 군대와 경찰이 학살에 관여했다고 기술한 것은 1923년 당시 정부 기관의 자료를 인용했기 때문인데, 그러한 자료를 볼 수조차 없다고 하는 것은 진실 은폐에 해당함.
* 5에 대한 답변: 상기 보고서에서 인용한 <지진재해 경비를 위해 병기를 사용하게 한 사건 조사표>는 방위성 자료실에서 소장 중인 자료로서 1923년 당시 군대에 의한 학살을 증명하는 것이다.
즉 일본 정부는, 과거 자국 정부가 발행한 자료에 근거한 정부기관의 보고서나 민간 연구자의 학술논문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해당 자료가 존재하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사실조차 무시하는 왜곡된 역사인식은 2022년 현재에도 연장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한국 정부는 그러한 일본 정부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겠는가. 국제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고 해서, 자국민의 일반적인 역사인식과 상반되는 형태로 임시방편으로 상대의 요구 수준에 맞추며 해결하고자 하는 행위는 가능한 지양해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면, 그와 동시에 관련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장기적인 방책을 필히 수립해 두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1965년의 한국과는 다르고, 일본처럼 간접선거로 정권이 창출되는 나라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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