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쓰면서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연합군 포로를 학대하는 장면을 그린 스케치들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이 그림은 다른 포로체험자가 그린 거지만, 이른바 전쟁기록화중 상당히 유명한 화가의 그림. 그 호주인과 마찬가지로 타이와 먄마를 잇는 철도설치에 동원됐던 연합군 포로였다.
총검훈련을 하는 조선인 감시원과 일본군인을 같이 그리면서도 구별해서 그린 걸 보면, 당시 그들은 이 양자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전쟁 종료 후에 그린 것이지만 다른 스케치들은 현장에서 그린 것이고, 일본군 눈을 피해 숨겨졌었다가 전쟁이 끝난 이후 공개됐다.
감시원이지만 얼핏 봐서는 구별할 수 없는 군인복장을 하고 있고, 다부진 체격이지만 또 다른 그림에서는 일본군과의 위계 관계 역시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3000 명이 넘는 감시원들 중에 전쟁종료 이후 BC급 전범으로 지목돼 기소당한 사람들이 전체 120 명중 조선인이 35명. 이 중 아홉 명이 사형당했다. 예전에 이 중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NHK다큐를 본 적도 있고, 이들을 그저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당연히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전쟁 당사자들이 기억하는 역사의 한 장면들이 강박증적으로 ‘역사기억’을 강조하는 우리 기억속에는 없다는 점. 그리고 훗날 한국 정부에 의해 ‘피해자’로 규정된 조선인포로감시원 중 한사람은 이들한테 ‘ 사죄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점이다.
연합군 포로 뿐 아니라 타이나 먄마 사람들도 당시한국을 일본군과 함께 싸운 ‘적’으로 기억 한다. 강제동원이었건 아니건, 그건 실제구도였고, 그랬기 때문에 한 역사학자도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조선인을 제국 일본의 식민지 피지배민이 아니라 오히려 거칠고 고압적인 일본군의 형태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새끼' 제국주의자로 인식하고 있었."(윤해동)다고 말한다.
나 자신은 이번에 낸 책<역사와 마주하기>에서 피징용자를 포함 일본국가의 전쟁에 동원된 조선인들의 피해성을 강조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아직 그 부분이 일본인들에게 충분히 인식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해와 피해가 언제나, 칼로 무우 자르듯 완벽히 구별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래야만, 누군가를 가해자로 만든 구조까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고, 거기까지 알아야 반복을 막을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동시에, 가해와 피해가 언제나, 칼로 무우 자르듯 완벽히 구별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래야만, 누군가를 가해자로 만든 구조까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고, 거기까지 알아야 반복을 막을 수 있기 때문.
세상의 모든 지식이 앉은 자리에서 얻어지는 세상인 만큼, 교육에서 필요한 건 일방적 지식과 단정이 아니라 자기머리로 다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비판적/복합적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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