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6

송필경 나의 신영복 선생님 그리고 김일성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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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영복 선생님
그리고 김일성주의자.
베트남은 나와 필연이었다.
1974년, 형님이 베트남전 참전한 경험담을 들은 뒤 그 전쟁의 실상을 알았다.
1975년, 대학 때 베트남전쟁이 주제였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그 당시 모든 젊은이들처럼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의식의 전환을 이루는 계기를 맞았다.


1999년, 베트남전쟁 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이 증거에 근거해 밝혀졌다.
2000년, 민간인 학살에 사죄의 의미를 띤 ‘화해와 평화를 위한 베트남 진료단(현 베트남평화의료연대)’이 꾸려지자 그 일원으로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다.
베트남전쟁은 제국주의 야만에 저항한 인류최대의 <혁명> 전쟁이었다.
<혁명>은 로마 스파르타쿠스 이래 ‘자유와 평등’을 향한 인간의 근원적이며 조직적 염원이다.
그래서 아직도 <혁명>에 대한 화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
요즘은 쿠바 <의료 혁명>의 주역 카스트로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
<혁명>에 관한 책은 ‘프레시안 북’에서 나온 10권 시리즈가 좋았다.
(1.마오쩌뚱, 2.로베스피에르, 3.호치민, 4.예수, 5.트로츠키, 6.카스트로, 7.토마스 제퍼슨, 8.시몬 볼리바르, 9.토마스 페인, 10.마르크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책들 모두 신영복 선생의 ‘발간의 글’ 《혁명의 진정성과 상상력의 생환을 위하여》을 공통으로 첫 페이지에 실었다.
다음은 이 글의 일부이다.
『혁명의 시기인 20세기가 지나고, 바야흐로 '이후'와 '해체'를 모색하는 탈주의 시대에 다시 혁명의 기억에 접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거꾸로 가는 귀성여행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탈주를 위한 탐구여행인가.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 여행이 아니라, 혁명이란 무엇이었으며 오늘의 혁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혁명은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이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혁명은 간고성(艱苦性) 굴곡성(屈曲性) 그리고 장기성(長期性)을 그 본질로 한다. 한 점 불꽃을 소중하게 키워가는 역사적 전망을 간직하기도 하고, 인간의 올바른 사상에 대한 철학적 천착을 바탕에 깔기도 한다.
따라서 혁명에 대한 올바른 독법은 거대 담론의 극적 도식을 해체하고 그 속에 묻혀 있는 인간의 진정성에 접속하는 일이다.
그것은 현실과 건너편을 사고하는 일이며 공고한 현실의 벽과 어둠을 넘어 별을 바라보는 성찰이기도 하다.
그리고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이글의 전문은 비록 3쪽 반이란 짧은 글이지만 신영복 선생의 깊이 있는 ‘문체’와 내공 있는 ‘성찰’에 감탄했다.
어떤 망나니는 신영복을 따르면 김일성주의자라 했다.
이른바 대구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당시 가장 커트라인이 높았던 서울 상대를 나온 망나니가 말이다.
신영복 선생의 깊이 있는 성찰에 감탄한 나는 ‘김일성주의자’인가?
허기야 나는 <혁명>의 ‘혁’자만 꺼내도 ‘빨갱이’로 찍어버리는 대구에 산다.
***30여 년 전 절친한 친구에게 무얼 좀 도와줬더니 신영복 선생의 글로 쓴 ‘허송씨에게’란 시의 액자를 선물로 받았다.
내 거실에 자랑스럽게 걸어 놓았다.
어이구, 망나니의 눈에는 내가 어김없는 ‘김일성주의자’로 보이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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