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3

문화는 어떻게 계급화될까요? < 문화 < 칼럼/에세이 < 기사본문 - 더칼럼니스트

문화는 어떻게 계급화될까요? < 문화 < 칼럼/에세이 < 기사본문 - 더칼럼니스트



기자명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문화
입력 2022.10.22
 
문화는 어떻게 계급화될까요?
[김석희의 “이분법 넘어” - in Betweenness]

"우리는 그런 전시 안 쳐줘요"에 내포된 의미
권위는 계급을 낳고, 폭력처럼 유전되고
거장이 받는 보상, 계급 아닌 '존경'이어야


* in Betweenness : 자아-타자, 자국문화-타문화, 지배-피지배 등 이분법을 넘어서는 공간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은 코너명입니다

나는 이따금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인터뷰 영상을 만듭니다. 마음이 내켜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정기적이지도 않고 형식이 따로 있지도 않습니다. 올 초에는 음악 여행가 신경아 선생님을 모시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신경아 선생님은 『세상 끝에서 만난 음악』의 저자입니다. 이 책은 지중해 국가와 아프리카 북부의 오지를 여행하면서 박물관이 아닌, ‘지금’ 살아서 숨 쉬는 음악들을 현장에서 채록하고 그 과정에서 겪은 일화들을 엮은 책입니다.

클래식이 권위를 갖게 되는 과정은

내가 가장 처음 궁금했던 것은 지구는 둥그니까 세상의 모든 곳은 시작이자 끝일 수 있는데, 도대체 ‘세상의 끝’이란 어디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것은 국가권력의 중앙에서 가장 먼 곳, 오지를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또 물었습니다. 클래식만이 진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은가? 음악에는 고급과 저급이 있는가? 그 대답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정답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클래식 음악은 ‘고급’이라기보다는 ‘권위가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클래식이 17세기에 태동했다고 보는데, 초기 클래식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은 주로 왕실이나 귀족 계급이었고, 그들의 후원을 받아야 음악을 할 수 있었던 음악가들은 일생을 바쳐 기량을 닦았어요. 음악이 정교해지고 권위가 생길 수밖에 없었어요. 클래식 음악이 권위를 가지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교육 시장을 장악했다는 점이에요.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계속 기량을 닦다 보니 ‘교수법’이라든가 ‘기보법’이 체계화된 거예요. 학교에서 점수를 매기게 되면 그 음악은 권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거죠.”
세계 최고 지휘자로 이름 높았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강한 카리스마와 완벽주의 탓에 권위적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고, 나치당원이었던 전력 때문에 사후에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 대답은 사실 음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이 대거 투입되고 그 혜택으로 한 분야에 단련된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들 사이에 위계가 생기고 그 일부가 권위를 가지게 되는 시스템 말입니다. 박사 학위, 자격증, 수상 경력, 이런 것들이 권위를 만들어 줍니다. 아마도 허위경력을 만들고 가짜 박사 학위를 받아내기 위해 부당거래가 생겨나는 현상은 그러한 시스템의 부작용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 현상을 ‘문화의 계급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물론, 수십 년간 수련의 과정을 거치고 일가를 이룬 예술가들을 싸잡아 모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분들을 알고 있고, 또 존경합니다. 저 역시 문화/문학 분야의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부끄럽게도 아직 일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만.

이따금 특별히 학위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너무나 훌륭한 시선을 가진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제 생각에 그런 분들은 따로 학위가 필요 없어 보입니다. SNS는 그런 분들이 활동할 수 있는 폭을 크게 넓혀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전시 안 쳐줘요"라니

나의 지인 중에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갤러리스트가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와 갤러리를 연결했고, 어쩌다 보니 그 전시의 기획까지 맡아 하게 되었으며 그 전시는 대단히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그는 해당 갤러리의 공석이던 디렉터를 맡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중견 화가들의 신망을 얻고, 또 한편으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여 큰 성과를 올렸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으면서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에서 R+V 갤러리의 피카소 작품을 촬영하는 관람객들. 사진=연합뉴스

어느 날 그는 뉴욕에서 찾아온 유명 갤러리스트를 소개받았습니다. 유명 갤러리스트는 그에게 그동안 무슨 전시를 했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갤러리 인스타그램에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고 말하자 유명 갤러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전시 안 쳐줘요.”

나는 이 말에서 다시 한 번 ‘문화의 계급화’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라는 단어와 ‘안 쳐줘요’라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우리’라는 말은 언제나 그런 것처럼 내부의 결속을 보여주는 동시에, 외부를 향한 배타성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그 경계가 문화를 ‘고급’과 ‘저급’으로 나눕니다. 경계란 언제나 보이는 곳에 있지 않고 인식 속에 있습니다. 마치 지도 위에 있는 경계선이 땅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쳐준다’라는 말은 ‘셈을 맞추어 주다’, ‘인정하여 주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안 쳐줘요’라는 말은 ‘인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대의 전시는 셈에서 빼야 한다’라는 뜻이 되겠죠.

나는 이런 상상을 합니다. 어쩌면 뉴욕의 그 유명 갤러리스트 자신도 “우리는 그런 전시 안 쳐줘요”라는 말을 누군가에게서 들은 경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약자일 때 들었던 권위자의 차별적 언어를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시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위치에 올라섰을 때 그 말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죠. 계급화된 언어의 경험은 폭력과 마찬가지로 유전되고 계승됩니다.

그들이 잊고 있는 정말 소중한 사실이 있습니다.

권위자들이 누렸던 그동안의 수고와 노력은 ‘우리’와 ‘너희/그들’을 구분하는 데서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의 진정한 존경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 말입니다.


※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태어나보니 강원도 평창군 미탄이었다. 서른둘에 처음 국제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 오사카대학에서 언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가, '어쩌다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계정 <문학팔레트>를 운영한다.

연관 글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