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6

손민석 | Eunhee Kim 신양반사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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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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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하실 분이 계실 듯해서 살짝 정리를 해주자면 나는 <신양반사회>라는 책을 쓴 사람이 뭐하던 사람인지 잘 모른다. 신분제 어쩌고 하면서 본인이 기존의 역사학 전공자들이 전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고 말하는데 그런 게 있을 수가 없다. 비전공자가 한번 보고 그런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경우는 정말 거의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지 않나? 양반 사족을 386세대와 연결시키는 해석의 조야함을 김성우의 연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해보려 한다.
 기본적으로 조선사는 한영우와 이태진이 양분하고 있다. 후학들의 여러 논의들도 이 두 양반이 해놓은 논의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한영우가 조선사 연구에 기여한 게 많지만 시대사적 구분법에서 그는 "조선 중기"라는 구분법을 도입한 사람이다.(과문해서 그럴지 몰라도 내가 아는 한 그렇다) 보통 1980년대 중반에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회경제사 분야에서 15~16세기를 중세사회로, 17~19세기를 중세 봉건 사회의 해체기로 규정했다. 
 이걸 조선 초기, 중기, 후기로 새롭게 구별한 게 한영우고, 이 한영우의 논의를 이어받아 신분제 논쟁을 재론하며 새롭게 규정한 게 김성우이다. 김성우는 15세기를 조선초기로, 16~17세기를 조선중기로, 그리고 18~19세기를 조선후기로 규정한다. 내가 알기로 대체로 2000년대 초반에 이러한 입장은 확고한 시민권을 획득한다. 김성우의 이러한 논의가 집약된 게 <조선중기 국가와 사족>(역사비평사)이다. "조선중기", "국가와 사족" 이 두 표현에 이미 김성우가 하고자 하는 말이 다 담겨있다. 김성우는 조선초기의 신분제를 양천제로 본다. 그리고 조선중기에는 양천제가 반상제로 변모하면서 국가와 민(民) 사이에 "사족" 집단이 끼어들어 국가 - 민(民)이 국가 - 사족 - 민(民)으로 바뀌었다고 본다. 조선후기에는 이 사족에 대항한 민(民)의 성장이 반상제를 뒤흔들었다. 다시 말해서 양천제(조선 초기) - 반상제의 성립과정(중기) - 사족지배구조의 정착과 민의 도전(후기)로 도식화 할 수 있다.
 1970~80년대의 신분제 논쟁은 양인 - 천민의 2신분제설(한영우, 유승원 등. 나중에 근세론으로 이어짐)과 양반 - 중인 - 상인 - 천인의 4신분제설이 대립하는 구도였는데, 김성우는 15~16세기 이후의 신분제가 양천제에서 4신분제로의 이행이 아닌, 양천제 - 반상제로 이행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2신분제설의 확장을 주장한 것이다. 김성우의 <조선중기 국가와 사족>은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등이 혼합되어 전개된 저작으로 논의를 풍성하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저작이다. 물론 저자가 이후에 입장이 좀 바뀌기는 하지만 적어도 신분제 논쟁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진전을 이뤄냈다고 할 수 있다. 좀더 자세하게 풀어보자.
 김성우에 따르면 조선초기는 민을 양천제로 구별하고 직역을 부여해 군사적 동원 체제를 구성해낸 시기이다. 조선왕조는 기본적으로 고려왕조가 국가 안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성립한 체제이기 때문에 국방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쓴다. 양인과 천인으로 사람을 나누고 양인에게는 군역을 부과하여 동원하는 대신 그들에게 과거에 응시하여 벼슬에 나갈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해주는 국역체제를 갖춘 게 15세기 조선 초기였다. 국가의 제민정책 속에서 국역체제가 건실하게 기능하던 15세기에는 국가가 상당한 수의 양인을 장악하고 그에 따라 사회를 재편하며 군사적 팽창을 이뤄낼 수 있었다. 양반들조차도 국역체제에 종속되어 동원되는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16세기가 되면 연산군을 중심으로 국가 재정 수요가 늘어나고 일반 공민에 대한 수탈이 증대하면서 상당수의 농민들이 몰락하게 된다. 국역체제는 흔들리고 많은 양인들이 양반들의 노비로 전락하는 양소천다(良小賤多)의 사회구조가 나타난다.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대에 이르면 이러한 추세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어 기존의 국역체제는 더 이상 유지 불가능하게 된다. 노비로 전락한 농민들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양반들은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남부 지역을 개발하고 그에 따라 양반들이 점차로 농촌에서 유력층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이들 유력층은 기존의 국역체제에서 벗어나고자 꾸준히 노력했으며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 권한을 사족들이 독점하는 '특권'을 추구하였다. 15세기의 건실했던 국역체제는 앞서 지적했듯이 국방을 위한 것이었는데 국방을 담당할 양인 계층은 대규모로 몰락하고, 사족들의 대규모 농장 운영과 특권의 강화가 나타나며 국역체제, 그리고 국방정책도 형해화된다. 
 하지만 16세기 조선 중기의 양반 사족들의 특권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국가에 의해 취소될 수 있는 것으로 국가는 이들이 국역체제에서 벗어나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양반 사족들은 상민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정예병으로 충원되었으며, 이런 이유로 문관과 무관 간의 차별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국가 권력은 전제국가답게 사족층의 유향소, 서원, 향악 등을 통한 지방자치를 결코 허용하지 않았으며, 일반인에 대한 양반 사족들의 사적인 처벌은 지방관의 권한 아래 놓여 있어 언제든지 지방관들이 양반 사족들을 징벌하여 제거할 수 있었다. 즉, 15세기의 전제국가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하며 양반 사족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진왜란이 터진다. 양반 사족들의 특권 추구로 인해 국역체제가 형해화되고 그에 따라 국방의 공백이 생기면서 임진왜란에서 조선왕조는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천민들뿐만 아니라 일반 상민들도 조선왕조를 버리고 일본군을 택할 정도로 기존의 사회적 모순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는 게 김성우의 평가이다. 하지만 역사에 정의가 없는 것인지 뭔지 양반 사족들은 그들의 이권이 조선왕조의 존속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비를 털고 목숨을 바쳐 왕조를 수호했다. 관군을 능가하는 대규모의 의병이 양반 사족에 의해 조직되어 일본군과 충돌하였고, 군비 또한 대농장을 운영하던 양반 사족들의 재산으로 충당되었다. 조선왕조는 국가의 운명이 양반 사족들에 달려 있다는 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전란에도 불구하고 사족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더욱 강해져서 오히려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정당성이 이들의 특권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김성우는 17세기 전반에 사족의 지위가 그야말로 지배신분으로 상승하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이들의 세력이 국가가 파견한 관리, 수령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이들을 국역체제 내부로 포섭하려는 국가의 노력이 인조대에 이르러 완전히 좌절하면서 사실상 양천제에 기초한 국역체제는 최종적으로 해체가 된다. 이제 양반 사족들은 국정에 참여하고 왕조의 운명을 결정할 유일한 신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령조차도 건드리지 못할 정도의 막강한 위세에 일반 상민들에 대한 처벌과 통제를 행할 권리까지 국가로부터 위임받아 그야말로 특권 신분이 된다. 이른바 반상제의 정착과 18세기까지 이어질 사족지배구조의 성립이다. "민심은 잃어도 사족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된다(民心可失 士心不可失)"이라는 참담하기까지 한 입장이 조선왕조 전제국가에 의해 공인된다. 이 지점에서 양반 사족은 전제국가의 지배를 받는 이들에서 그것의 ‘공범’이 되었다. 
 김성우가 묘사한 사족지배구조의 성립에 이르는 3세기에 걸친 신분제의 변천은 양반의 범주, '양반'과 '사족' 간의 관계(양반=사족인가?) 등의 여러 개념의 변화 과정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들 간의 동류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어디까지 그 동류의식이 미치는지 등의 여러 복잡한 논의들이 이 책에서 논증된다. 일독을 권한다. 물론 지금 저자의 입장은 상당부분 달라져 있지만.. 적어도 신분제 논쟁에 대해 이정도 논의는 알고 접근해야 한다. 손병규 등의 족보 연구나 호적 연구 등을 참고하면 김성우의 반상제로의 이행론이 논한 "특권"도 제한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결국 조선의 양반들은 유럽의 귀족들이나 일본의 사무라이 계층처럼 완전히 특권적인 계층이 되지 못했다. 조선왕조는 국역체제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민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유동적인 신분제를 운영했고 지배계급인 양반은 법제적으로 규정되기보다 사회적인 인식으로 성립되는 가변적인 계급으로 남아 있었다. 조영준의 추계처럼 조선후기에 접어들면 양반들조차도 30년을 채 넘기지 못할 정도로 가계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다. 
 손병규의 "1900년대 광무호적의 사(士)와 민적의 양반 기재"를 참고하면 "지속되는 양반지향"의 움직임이 호적제도의 변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있다. 손병규는 식민지배가 조선인들의 보편적인 욕망, 양반지향의 욕망을 건드렸다고 본다. 이정도로 정리. 여기서부터 출발해서 손병규 등의 호적연구를 중심으로 신분제 논의의 추이를 따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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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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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내 비판이 기분 나쁠 수는 있는데.. 학자가 책까지 냈는데 비판에 제대로 된 반론이 하나도 없고.. 무슨 통일신라 때 길닦았다는 흰소리만 늘어놓다가 너는 마르크스, 헤겔을 유교 경전 읽듯이 읽는다!!(이게 공격?)고 하고 차단해버리면 “나약한 쉐끼..”라는 생각밖에 안 들잖아요.. 저 사람 <신양반사회> 참고문헌 봐봐요. 진짜 빈약하기 그지 없다고.. 내가 이거 읽고 이런 거창한 얘기를 한다고? 너무 황당해서 선의를 베풀어 이런 맥락이 있으니 좀 공부해라 제발.. 그게 그렇게 치명적이었나.. 이거 일부러 어그로 끌어서 책 판매 부수 늘리려는건가? 머리 쓴다 머리 써!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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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김
마르크스와 헤겔이 경전화되면 안 된다면서 본인이 쓴 책은 왜 성서무오설 급으로 우주방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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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김
그래도 본인 책을 변호하면서 거침없이 코페르니쿠스를 끌어대는 엄청난 자존감은 조금씩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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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별김 방어할 게 있나 싶어요. 한번 나중에 읽어보셔요. 되려 저를 비판하실지도ㅎㅎ 왜 이런 걸 그렇게 공들여서 다루냐고. 인정욕구가 많으신 분 같은데 내용은 빈약하고 욕구는 채워지지 않으니.. 좀 안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Reply10 h
별김
손민석 책의 수준이나 실력이야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거지만... 언젠가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책쓰시는 분들께서 "책은 독자가 읽는 순간 이미 내 장악력을 떠난 것"이라는 마인드만 지켜주셨으면 싶더라구요... 물론 의견교환까지는 좋지만 이런저런 의견들에 일일이 빈정상해서 뒤에서 험담을 하고 sns로 뒤끝을 보이고 댓글을 지우고 그래서야;
Reply10 h
손민석
별김 그러게요. 저도 그럴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제 책이 안 나와봐서 그러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ㅎㅎ
Reply10 h
별김
손민석 저는 그게 싫어서 영원히 책 안 쓰고 독자로만 남겠습니다... 농담입니다ㅎㅎ 쓰신 책 얼른 읽어보고 싶네요. 기다립니다. 건강 유의하시구요.
Reply10 hEdited


김희곤
이니 책쓰신 분과 읽으신 분이 대화나누는거 아름답고욥~~
읽어서 읽고 써서 또 쓰는데 뭐가 문제가 나는지요!!!
평이 두러움사 쓰질 마시질..!… See more
Reply8 h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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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이지만 책 원고를 들고 가서 출판사와 미팅을 했는데 여러 번 당황했다. 내가 말문이 막히는 사람이 아닌데 질문에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대중적 글쓰기”에 대해 정말 많이 배우고 왔다. 역시 전문가한테 배워야 한다. 유익한 시간이었다.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 마무리 작업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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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곤
연구자님 기분 좋다고 하실때 저도 기분 좋아집니다!
Reply10 h
손민석
김희곤 하하 감사합니다 🙂
Reply10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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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왜 댓글 쓰고 도망가요. 송준호 이론이 교과서에 반영이 안돼서 주류라고 말하기 힘들단다. 그런 식이면 경제사학계의 정설인 이영훈도 안됐고, 미야지마도 안됐고, 윤해동도 안됐고 된 사람 누구 있나? 김용섭의 경영형 부농론? 1960~70년대 연구로 주류 따지면 어쩌라는건지.. 아니, 학자라는 사람이 내 비판 하나 못 견디면 우째.. 잘가요. 신양반 사회에서 노비로 살아보세요.
May be an image of 1 person, flower and text that says "Eunhee Kim 어느 학자를 인용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주장에 동 의하는 건 아니죠. 헤겔과 마르크스를 공자왈 맹자왈 하 듯 인용하는 사람이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는 게 뭔지 나 알리가 있겠습니까? 송준호의 이론이 거의 교과서에 반영되어 있지 않은데 주류라고 말하기 힘들죠.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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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eongRak Park
    요즘 교과서들엔 주류 연구사/학설사/개념사 최신 동향까지 반영돼서 쓰여진다는 말씀이시군요. 나 뭣하러 힘들게 논문 사이트 구독해놨지 저 바본가봐요(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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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plume de Matante
    끝까지 자기 탐라에선 통일신라 봐도 길이 잘닦였다는둥 하는데 역시 비판 논지를 전혀 이해 못한 느낌입니다. 본인의 의사를 근거 들어가며 논박하고 방어해야지 교과서를 근거로 주류 비주류를 따지는건 참 할 말 없게 만드는 태도네요. 상놈 자처하며 도덕적ㅋ 수동공격하는 것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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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민석
      Laplume de Matante 그런 듯합니다. 딴소리를 하더라고요. 일부러 회피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데 저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ㅜ
  • Ho Jin Lee
    공자 맹자를 얼마나 비판적으로 읽는지 모르는 분이군요.
  • Thomas B. Jeong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 북폭은 당연한 귀결이라던 분...
  • 별김
    자기분야에서는 공부 많이 하신 어르신들께서 꼭 나이 들고서야 문사철에 적당히 달라붙어 얕은 책 한 권 쓰시고, 그 결과물의 체계와 엄밀성이 부족한 것을 "주류 학계"에서 벗어난 창의성이라고 우기고, 더 나아가 비슷한 상황의 어르신들끼리 서로의 저작들을 치켜세우고... 자신들은 서로의 그 치켜세움을 진심으로 믿어버리고... 어차피 이런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차라리 이게 더 "양반놀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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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민석
      별김 ㅋㅋ 그러게요. 말씀하신대로 이거야말로 양반놀음의 전형이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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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aeyeong Kim
    저 사람이 언급하는 교과서가 뭔가요? 고등학교 넘어가서 학부 수준에서 교보재용 기본서를 교과서라 칭하는 건 법학 말고는 못 봤는데. 설마 고등학교 국사책 말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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