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모’ 일본서 애쓰는 청년들
일본 도쿄의 랜드마크 ‘스카이트리’가 올려다 보이는 스미다구 아라카와 강변. 99년 전 이곳에선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했다. 시신은 다리 밑으로 던져졌다. 매년 9월 첫째 주 토요일 이 다리 아래서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린다. 40년 동안 간토대학살 관련 증언·기록을 발로 뛰며 수집하고 2009년 추도비를 건립한 일본 시민단체 ‘일반사단법인 호센카(봉선화)’가 주최한다. 무거운 분위기의 일반적 추도식과 달리 가수의 공연과 풍물놀이를 곁들인다.
내년 간토대학살 100주기 행사를 준비하는 ‘호센카 100년 추도식 실행위원회 ‘백년’’의 실행위원 상당수는 20~30대이다. 일제의 전쟁범죄와 학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는 다른 일본 시민단체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고령인 점과 대비된다. “일본 청년들은 사회나 정치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세간의 인식과도 거리가 있다. 역사의 진실에 진지하고 열정으로 충만한 ‘백년’의 실행위원들을 지난 2일 호센카 사무실에서 만났다. 우희, 하루미, 엔도, 라치, 모에씨 등 다섯 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학살 현장 돌아보는 ‘필드 워크’로 젊은이 모여
활동 기간(6년)이 가장 긴 재일코리안 3세 우희씨는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조선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가졌다. 관련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관심 있는 청년들을 모아 조선인 학살 현장을 돌아보는 필드 워크를 진행해왔다. 지금 호센카에 모인 청년의 상당수가 우희씨의 필드 워크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나가노시에 사는 하루미씨는 매달 회의 때마다 다섯 시간 걸려 버스를 타고 도쿄로 이동한다. 그는 친구에게 니시자키 마사오 호센카 이사가 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기록’을 추천받아 읽은 뒤 작년 11월부터 모임에 참가하게 됐다. 이 책엔 니시자키 이사가 간토 지역 도서관과 관공서를 샅샅이 뒤져 발굴한 1,100가지 학살 증언이 실려 있다.
조형예술가인 라치씨는 영국 런던에서 유학할 때 역사와 기억을 다루는 예술에 관심을 가졌고, 도쿄로 복귀해 간토대학살에 대해 조사하게 됐다. 현재 도쿄도현대미술관에선 학살을 다룬 라치씨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신민자 호센카 이사로부터 권유 받아 함께 하게 된 엔도씨는 “30년 전에는 조선인 학살과 관련한 내용도 TV에서 보도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역사 인식 없는 4차 한류에 불안… 윗세대도 배워야”
최근 ‘4차 한류’ 바람이 불면서 K팝이나 한국 드라마에 관심을 갖는 일본 청년들이 늘었지만 역사나 정치 문제에도 관심이 뜨거운 것은 아니다. 모에씨는 “가해의 역사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채 순진하게 문화를 즐기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조선인 차별과 가해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는 청년뿐 아니라 일본인 전체의 문제”라며 “나이 든 세대가 젊은 세대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나이 든 세대도 배우고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 확산을 부추겼고, 진상 규명을 줄곧 외면하고 있다. ‘백년’ 실행위원들은 “정부의 책임이 너무 큰데 움직이지 않으니까 우리라도 이렇게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면서 “9월 추도식 때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우리가 이 문제를 잊지 않고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00주기인 내년 이후에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 활동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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