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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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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에 대한 마지막 비평글을 남겨두고 있는데 장석준과 김민섭의 <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와 김동춘의 <시험능력주의>를 읽고 있다보니 이것들까지 추가해서 논평을 해야 되나, 약간 고민이다.
글도 써보고 있기는 한데.. 능력주의론 자체가 문제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장석준, 김민섭의 입장이 '지식노동자' 계급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김동춘이 사회적 평가기준의 다양화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이미 내 논지와 겹치는 지점들이 많아서 내가 굳이 쓰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계속 마지막 3부를 올리지 않고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되나.
장석준은 그람시를 공부한 사람답게 '시험능력주의'로 이익을 보는 계층은 고작해봐야 5~10%밖에 되지 않는데 왜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이런 부조리한 제도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가를 논점으로 삼아 주장을 펼친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보편적인 공교육과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갖춘 시험제도에 의해 뒷받침되는 시험능력주의는 지배계층에 속하는 상층 지식중간계급을 만족시키는 것보다도 노동자 계급 및 하층 지식중간계급이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납득하게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노동운동 등의 계급투쟁에서의 패배와 달리 시험능력주의에서의 패배는 그 패배를 내면화하는 기제를 갖고 있다. 동등한(실상 동등해보이는) 출발선과 개인의 능력이 객관적인 수치로 측정된다는 요인 등등이 결합되면서 애당초 문제제기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패배를 내면화하여 저항의 의지를 상실해버린 '수동적 대중집단'이 탄생한다는 게 장석준의 문제의식이다. 이는 김민섭이 다룬 지방대생의 삶으로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김동춘의 <시험능력주의>도 논점은 다소 다르지만 맥락은 비슷하다. 그러니까 한국의 시험 능력주의는 사람의 능력을 정말로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탈락"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합격한 사람이 아니라 탈락한 사람들이 그 패배와 탈락을 내면화하고 자신이 속하지 못한 질서의 '정당성'을 납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김동춘은 평가기준의 다양화와 함께 교육과 노동 문제를 엮어야 한다고 본다. 그는 기본적으로 이미 기업들이 '실적'에 따른 평가기준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경제에서의 평가기준을 시험과 그에 따른 학벌을 기준으로 하지 말고 "실적"에 따르는 방식으로 바꾸는 걸로 하고, 대신에 사회공동체적으로는 연대주의와 공동체주의를 내세우면서 사회통합의 기준으로 시민을 대해야 한닫고 주장한다. 다소 애매한 주장이 아닐 수 없지만 총체적인 제도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주장이다.
둘다 (시험)능력주의가 지금 한국의 지배질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적 기제로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이 상당히 강력하게 작동하여 저항주체의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다만 장석준이 그람시적 헤게모니론에 의거해 하층 지식중간계급과 노동 계급 간의 연대와 조직화를 지향하고 있다면, 김동춘은 제도적 개혁을 내세우고 있다는 데서 차이를 보인다. 사실 내가 쓴 3부의 내용과 겹치는 지점이 많아서 읽으면서 씨발..씨발 했다. 존나 열심히 썼는데 씨빨..
냉소적으로 이들이 제시하는 대안이 실현가능하냐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둘 모두 근대국가 "내부"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 그러니까, 능력주의의 본질은 근대국가가 강력한 구심력을 갖고 원자화된 개인들을 빨아들이면서 일률적으로 기준을 적용해 줄을 세우는 데에 있다. 앞에 서있는 이들은 결국 정치인이 되어서 권력, 부, 명예 다 갖는거고, 뒤에 있는 이들은 그 지배를 받고 사는거다. 그렇기에 박권일까지 포함한 능력주의를 논하는 셋 모두 다원화된 기준과 경쟁압력을 줄여야 한다는 식으로 논의를 펼친다. 한마디로 국가의 강력한 구심력에 대항하는 "평등주의"적인 "원심력"을 형성하자는 말이다. 냉소적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게 되겠나?
한국은 기본적으로 정치문화 자체가 사람들이 국가가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원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의 정치적 효용감은 내가 찍은 정치인이 정치적 반대파를 포함한 기득권이든 적폐든 종북주사파든 아무튼 뭐가 됐든 저것들 치워줬으면 한다. 거기서 정치적 효용감을 느낀다. "이게 나라다." 정치가 개입할 수 없는 독자적인 자율성을 지닌 영역이 존재한다? 그게 원래 시민사회의 영역인데 한국은 이거 봐라, 기득권 야합이다. 난리를 친다. 국가마저도 내가 찍은 정치인 아니면 관료들의 기득권 야합으로 규정된다. 관료의 자율성마저도 무시해버리고 뒤엎으려 하는 걸 문재인 정부가 잘 보여줬다. 이런 정치문화에서 원심력을 지닌 독자적인, 자율성을 지닌 영역들을 만들어서 능력주의에 대항한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미 재생산 구조 자체가 그렇게 굴러간다.
내 대안은 뭐냐? 없다. 장기간에 걸쳐서 개인들의 법적 권리나 이런 게 더 많이 인정받고 조직화를 반복하면서 국가가 사회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다. 장기간에 걸쳐 정당이 꾸준히 시도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급진적인 나의 대안은 내가 말하는 '지역적 자본주의'의 형성과 연결시키는 것이 있다. 사회 내에 국가가 어찌할 수 없는 "타자"가 없다면 아예 외국이라는 "타자"를 데려오는 게 가장 빠르다. 타자 자체를 수입해오는 것이다. 지방의 자립화의 가능성도 그렇고, 개인들이 중앙을 향해 돌진하지 않더라도 다른 경제적 기회나 인정욕구를 충족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도 그렇고 결국 해외밖에 없다. 좌파 정당이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해외로 내보내고 해외의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집단들을 계속 들여와서 국가가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영역들을 계속 만들어가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현실적으로 별 가능성 없는 주장이다. 당장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일본하고도 결합하려 하지 않는 마당에.. 그리고 한국 관료제는 노동력이 유출되는 걸 존나 싫어한다. 개인적으로 들은 얘기가 있다.
아무튼 그러면 이제 능력주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없는 것이다. 나도 글에서 이런저런 얘기 다 적었는데 사실 정말 그렇게 될까요? 하면 딱히 해답이 없다. 어쩔티비! 아무튼 그래서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 3부 글은 지금 계속 만지작 거리고 있다. 장석준과 김동춘의 책을 읽고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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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akyejul.net/bbs/m/mcb_data_view.php?type=mcb&ep=ep993587793575e55ff04653&gp=all&item=md1767992714638ea68565a97&fbclid=IwAR1HesyemfznARZnp86wWVyTLUIQnzRWtn5BUZhpgLudeycuv8ENBvNiJ4g
2023 신년 특별 대담, 김동춘 x 장석준
SAKYEJU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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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신년 특별 대담, 김동춘 x 장석준
2022-12-06 11:18:00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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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신년 특별 대담
“무엇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으며 더 나은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김동춘(『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 저자)
“성장을 통한 분배라는 개발 독재의 논리,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자유주의, 시장이 불균등과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한데 섞이면서, 정치는 노동자와 약자, 빈곤층의 복종과 협력을 요구했다.”
장석준(『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 저자)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인간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 자체다. 그런데도 자본주의와 결합된 모든 경직된 이데올로기들은 인간을 이미 누군가로 좁게 규정한다. 능력주의 안에서 인간은 살과 피를 지닌 인공지능이다.”
시장이 곧 권능이 된 한국에서 정치는 성장의 도구일 뿐 국민의 고통을 돌보지 않는다. 오늘날 마주한 세계 최저의 출생률과 최고의 자살률이라는 극단적 지표는 지금 한국의 고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 개발 독재 30년과 신자유주의 30년을 모두 겪었다. 긴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한 뼘도 나아지지 않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고통과 문명의 발전을 맞바꿨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국민의 고통과 자신의 권력을 맞바꿨다. 이것이 고통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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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신년 특별 대담
일시: 2023년 1월 11일(수) 저녁 7시 30분
장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창비 서교빌딩 50주년홀
모집 인원: 100명
신청 기간: 2023년 1월 3일(화)까지
신청 방법: 신청하기를 통해 신청자 정보와 사전 질문을 남겨주세요.
당첨자 발표 : 2023년 1월 4일(수) *문자 개별 안내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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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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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에 대한 마지막 비평글을 남겨두고 있는데 장석준과 김민섭의 <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와 김동춘의 <시험능력주의>를 읽고 있다보니 이것들까지 추가해서 논평을 해야 되나, 약간 고민이다.
글도 써보고 있기는 한데.. 능력주의론 자체가 문제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장석준, 김민섭의 입장이 '지식노동자' 계급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김동춘이 사회적 평가기준의 다양화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이미 내 논지와 겹치는 지점들이 많아서 내가 굳이 쓰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계속 마지막 3부를 올리지 않고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되나.
장석준은 그람시를 공부한 사람답게 '시험능력주의'로 이익을 보는 계층은 고작해봐야 5~10%밖에 되지 않는데 왜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이런 부조리한 제도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가를 논점으로 삼아 주장을 펼친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보편적인 공교육과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갖춘 시험제도에 의해 뒷받침되는 시험능력주의는 지배계층에 속하는 상층 지식중간계급을 만족시키는 것보다도 노동자 계급 및 하층 지식중간계급이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납득하게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노동운동 등의 계급투쟁에서의 패배와 달리 시험능력주의에서의 패배는 그 패배를 내면화하는 기제를 갖고 있다. 동등한(실상 동등해보이는) 출발선과 개인의 능력이 객관적인 수치로 측정된다는 요인 등등이 결합되면서 애당초 문제제기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패배를 내면화하여 저항의 의지를 상실해버린 '수동적 대중집단'이 탄생한다는 게 장석준의 문제의식이다. 이는 김민섭이 다룬 지방대생의 삶으로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김동춘의 <시험능력주의>도 논점은 다소 다르지만 맥락은 비슷하다. 그러니까 한국의 시험 능력주의는 사람의 능력을 정말로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탈락"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합격한 사람이 아니라 탈락한 사람들이 그 패배와 탈락을 내면화하고 자신이 속하지 못한 질서의 '정당성'을 납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김동춘은 평가기준의 다양화와 함께 교육과 노동 문제를 엮어야 한다고 본다. 그는 기본적으로 이미 기업들이 '실적'에 따른 평가기준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경제에서의 평가기준을 시험과 그에 따른 학벌을 기준으로 하지 말고 "실적"에 따르는 방식으로 바꾸는 걸로 하고, 대신에 사회공동체적으로는 연대주의와 공동체주의를 내세우면서 사회통합의 기준으로 시민을 대해야 한닫고 주장한다. 다소 애매한 주장이 아닐 수 없지만 총체적인 제도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주장이다.
둘다 (시험)능력주의가 지금 한국의 지배질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적 기제로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이 상당히 강력하게 작동하여 저항주체의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다만 장석준이 그람시적 헤게모니론에 의거해 하층 지식중간계급과 노동 계급 간의 연대와 조직화를 지향하고 있다면, 김동춘은 제도적 개혁을 내세우고 있다는 데서 차이를 보인다. 사실 내가 쓴 3부의 내용과 겹치는 지점이 많아서 읽으면서 씨발..씨발 했다. 존나 열심히 썼는데 씨빨..
냉소적으로 이들이 제시하는 대안이 실현가능하냐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둘 모두 근대국가 "내부"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 그러니까, 능력주의의 본질은 근대국가가 강력한 구심력을 갖고 원자화된 개인들을 빨아들이면서 일률적으로 기준을 적용해 줄을 세우는 데에 있다. 앞에 서있는 이들은 결국 정치인이 되어서 권력, 부, 명예 다 갖는거고, 뒤에 있는 이들은 그 지배를 받고 사는거다. 그렇기에 박권일까지 포함한 능력주의를 논하는 셋 모두 다원화된 기준과 경쟁압력을 줄여야 한다는 식으로 논의를 펼친다. 한마디로 국가의 강력한 구심력에 대항하는 "평등주의"적인 "원심력"을 형성하자는 말이다. 냉소적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게 되겠나?
한국은 기본적으로 정치문화 자체가 사람들이 국가가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원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의 정치적 효용감은 내가 찍은 정치인이 정치적 반대파를 포함한 기득권이든 적폐든 종북주사파든 아무튼 뭐가 됐든 저것들 치워줬으면 한다. 거기서 정치적 효용감을 느낀다. "이게 나라다." 정치가 개입할 수 없는 독자적인 자율성을 지닌 영역이 존재한다? 그게 원래 시민사회의 영역인데 한국은 이거 봐라, 기득권 야합이다. 난리를 친다. 국가마저도 내가 찍은 정치인 아니면 관료들의 기득권 야합으로 규정된다. 관료의 자율성마저도 무시해버리고 뒤엎으려 하는 걸 문재인 정부가 잘 보여줬다. 이런 정치문화에서 원심력을 지닌 독자적인, 자율성을 지닌 영역들을 만들어서 능력주의에 대항한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미 재생산 구조 자체가 그렇게 굴러간다.
내 대안은 뭐냐? 없다. 장기간에 걸쳐서 개인들의 법적 권리나 이런 게 더 많이 인정받고 조직화를 반복하면서 국가가 사회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다. 장기간에 걸쳐 정당이 꾸준히 시도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급진적인 나의 대안은 내가 말하는 '지역적 자본주의'의 형성과 연결시키는 것이 있다. 사회 내에 국가가 어찌할 수 없는 "타자"가 없다면 아예 외국이라는 "타자"를 데려오는 게 가장 빠르다. 타자 자체를 수입해오는 것이다. 지방의 자립화의 가능성도 그렇고, 개인들이 중앙을 향해 돌진하지 않더라도 다른 경제적 기회나 인정욕구를 충족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도 그렇고 결국 해외밖에 없다. 좌파 정당이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해외로 내보내고 해외의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집단들을 계속 들여와서 국가가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영역들을 계속 만들어가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현실적으로 별 가능성 없는 주장이다. 당장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일본하고도 결합하려 하지 않는 마당에.. 그리고 한국 관료제는 노동력이 유출되는 걸 존나 싫어한다. 개인적으로 들은 얘기가 있다.
아무튼 그러면 이제 능력주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없는 것이다. 나도 글에서 이런저런 얘기 다 적었는데 사실 정말 그렇게 될까요? 하면 딱히 해답이 없다. 어쩔티비! 아무튼 그래서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 3부 글은 지금 계속 만지작 거리고 있다. 장석준과 김동춘의 책을 읽고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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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akyejul.net/bbs/m/mcb_data_view.php?type=mcb&ep=ep993587793575e55ff04653&gp=all&item=md1767992714638ea68565a97&fbclid=IwAR1HesyemfznARZnp86wWVyTLUIQnzRWtn5BUZhpgLudeycuv8ENBvNiJ4g
2023 신년 특별 대담, 김동춘 x 장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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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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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으며 더 나은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김동춘(『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 저자)
“성장을 통한 분배라는 개발 독재의 논리,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자유주의, 시장이 불균등과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한데 섞이면서, 정치는 노동자와 약자, 빈곤층의 복종과 협력을 요구했다.”
장석준(『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 저자)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인간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 자체다. 그런데도 자본주의와 결합된 모든 경직된 이데올로기들은 인간을 이미 누군가로 좁게 규정한다. 능력주의 안에서 인간은 살과 피를 지닌 인공지능이다.”
시장이 곧 권능이 된 한국에서 정치는 성장의 도구일 뿐 국민의 고통을 돌보지 않는다. 오늘날 마주한 세계 최저의 출생률과 최고의 자살률이라는 극단적 지표는 지금 한국의 고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 개발 독재 30년과 신자유주의 30년을 모두 겪었다. 긴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한 뼘도 나아지지 않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고통과 문명의 발전을 맞바꿨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국민의 고통과 자신의 권력을 맞바꿨다. 이것이 고통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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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신년 특별 대담
일시: 2023년 1월 11일(수) 저녁 7시 30분
장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창비 서교빌딩 50주년홀
모집 인원: 100명
신청 기간: 2023년 1월 3일(화)까지
신청 방법: 신청하기를 통해 신청자 정보와 사전 질문을 남겨주세요.
당첨자 발표 : 2023년 1월 4일(수) *문자 개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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