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틱] 영혼 바꾸기 / 문강형준
등록 :2012-10-12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최근 몇 년간 한국 드라마에는 영혼이 뒤바뀐 이들의 이야기가 줄을 잇고 있다.
<돌아와요 순애씨>(2006)에서는 바람난 남편의 부인과 남편 애인의 영혼이,
<시크릿 가든>(2010)에서는 두 남녀의 영혼이,
<빅>(2012)에서는 여주인공의 약혼남과 교사인 그녀가 가르치는 학생의 영혼이,
현재 방영중인 <울랄라 부부>에서는 바람난 남편과 그 부인의 영혼이 바뀌었다.
서로 차별화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이 네 편의 드라마에서 영혼이 바뀌는 대상은 모두 조금씩 다르다. 언젠가 또 나올 다른 드라마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혼을 바꿀 것이다.
영혼이 바뀌는 이 드라마들에는 공통의 서사적 관습이 존재한다.
정체성이 우연히 바뀌거나 혹은 정체를 의도적으로 감춤으로써 극의 재미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전형적인 희극의 서사 방식이다. 비평가 노스럽 프라이는 <비평의 해부>라는 책에서 희극의 구조를 ‘원형 비평’이라는 틀로 분석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영혼이 바뀌는 일련의 한국 드라마들 역시 이러한 희극의 서사 구조를 큰 틀에서 공유한다. 동시에 현대를 배경으로 한 만큼 이 드라마들은 한국 사회의 젠더 규범이나 권력관계를 소재로 삼는다.
영혼이 바뀌는 드라마의 반복적 등장은
영혼이 바뀌는 이 드라마들에는 공통의 서사적 관습이 존재한다.
- 이야기는 언제나 영혼이 바뀌기 전에 시작하는데, 주인공들 사이에는 표면화된 갈등이 상존한다.
- 그 갈등이 터져 관계가 어긋나려는 순간, 갈등 당사자들의 영혼이 갑자기 뒤바뀌는 사건이 발생한다.
- 이후에는 그로 인한 자질구레한 소동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 애초에 서로를 결코 이해하지 못했던 인물들은 상대의 몸을 ‘입고’ 난 뒤에 비로소 상대를 이해하며,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 영혼은 다시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고, 애초의 갈등관계들은 회복되거나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해피 엔딩.
정체성이 우연히 바뀌거나 혹은 정체를 의도적으로 감춤으로써 극의 재미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전형적인 희극의 서사 방식이다. 비평가 노스럽 프라이는 <비평의 해부>라는 책에서 희극의 구조를 ‘원형 비평’이라는 틀로 분석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 희극은 부딪치는 인물간 갈등 과정을 통해 어떤 진실의 발견에 이르고, 이로 인해 모두가 화합을 이루는 구조를 가진다.
- 비극의 인물들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파국을 피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희극의 인물들은 소동 속에서도 끝내는 화해와 회복의 길로 들어선다.
- 비극의 악인이 ‘사악’하다면 희극의 악인은 ‘황당’할 뿐이고, 따라서 그는 ‘응징감’이기보다는 ‘놀림감’에 그치거나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여진다.
- 그래서 희극의 한 원칙은 ‘배제’가 아니라 ‘포함’이라고 프라이는 말한다.
영혼이 바뀌는 일련의 한국 드라마들 역시 이러한 희극의 서사 구조를 큰 틀에서 공유한다. 동시에 현대를 배경으로 한 만큼 이 드라마들은 한국 사회의 젠더 규범이나 권력관계를 소재로 삼는다.
- 뒤바뀐 영혼의 남편과 아내는 각자의 성역할을 수행하면서 ‘계몽’의 과정을 겪고, 둘 사이의 권력관계는 영혼의 영역 속에서 역전된다.
- 여전히 주류 담론 속에서 소외된 동성애 코드도 바뀐 몸 탓에 자연스럽게 표면 위로 드러난다. 그렇다고 해서 젠더·권력·섹슈얼리티의 문제의식이 ‘전면화’되지는 않는다.
- 이러한 드라마들은 이런 문제를 다만 ‘코믹하게’ 건드리는 제스처만 취할 뿐이며, 그것을 진지하게 혹은 급진적으로 다루는 법은 없다. 극적인 화해와 회복으로 가기 위해 소동의 강도는 더욱 높아지지만, 마지막에 당도한 그 화해란 다시금 전통적 이성관계의 복원에 그칠 때가 많다. 그 과정에서 변하는 것은 단 하나, 주인공의 ‘마음가짐’뿐이다.
영혼이 바뀌는 드라마의 반복적 등장은
‘소통’이 정치적 슬로건으로 사용되는 오늘 한국의 상황과 공명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서로 상대방의 처지가 되어 대화를 나눠보자는 소통의 요구는 드라마를 통해 아예 영혼을 바꿔버림으로써 가장 극적으로 재현된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소통을 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관계의 창출이 아닌 기존 관계 속에서 ‘진심’의 확인에 그치고 마는
이런 드라마의 한계는 수년 전부터 남발되던 정치적 ‘소통’의 구호들이 어떤 결말에 이를지를 보여주는 거울 같기도 하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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