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0

‘전라도 천년사’ 출판 봉정식 코앞인데···역사왜곡 식민사관 논란 - 경향신문

‘전라도 천년사’ 출판 봉정식 코앞인데···역사왜곡 식민사관 논란 - 경향신문

‘전라도 천년사’ 출판 봉정식 코앞인데···역사왜곡 식민사관 논란
입력 : 2022.12.18 08:42 수정 : 2022.12.18 13:52박용근 기자



호남 광역 3개 지자체가 24억원을 들여 5년간 편찬작업을 거쳐 완성된 <전라도 천년사> 표지. 전북도 제공

전북·전남·광주 등 호남권 3개 광역 지자체가 손잡고 24억원을 들여 5년동안 추진한 <전라도 천년사>가 ‘식민사관’ 조장 시비에 직면했다.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이용돼 온 <일본서기>에 기술된 내용들이 수 십회 본문에 적혔기 때문이다. 이 책의 출판 봉정식은 21일 열릴 예정이다.

가칭 ‘전라도천년사 바로잡기 전라도민연대(전라도민연대)’는 18일 <전라도 천년사> 내용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결과 전북 남원을 ‘기문국’이라고 다수 표현했으며, 이는 <일본서기>에 기록된 내용을 그대로 받아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라도민연대 측은 “국내 어느 역사서에도 남원이 ‘기문국’이라는 기록이 없다. 전라도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집필된 책에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지명을 쓰는 것은 전라도가 일본의 지배 속에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기문국은 일본이라는 국호를 쓰기 전인 4세기 후반에 야마토 정권이 가야지역을 군사적으로 정복한 뒤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고 6세기 중엽까지 200여 년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일본사기>의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이론이다.


문화재청이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과정에서 기문국을 인용했다가 기문국을 가야 정치체로 수정해 신청했다는 사실을 알려준 공문. 전라도민연대 제공

경향신문이 정보공개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전라도 천년사> 총설 선사고대 단락 77쪽에는 ‘이중 남원은 백제의 주변소국인 기문가야(기문국)로 알려진 곳이었다’고 기술돼 있다. 또 선사고대 3권 178쪽에는 ‘전북 동부지역은 대가야 영역에 속했던 곳으로만 인식하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가야소국인 기문가야를 임실군, 남원시 등 섬진강 유역으로 비정(추정)된 견해가 통설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고 적었다.

전체적으로 선사고대 단락 77쪽부터 251쪽까지 수십 차례 기문국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기문국 논란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정에서도 나왔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2월 유네스코에 제출한 가야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신청서에 남원고분군 조성 정치체 명칭을 기문국으로 기재했다가 반발이 일자 4월 ‘운봉고원 일대의 가야 정치체’로 수정해 다시 전달한 것이다. 정부가 대외적으로 기문국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식민사관을 조장할 수 있음을 공식 인정한 셈이다.

전라도민연대는 <전라도 천년사>는 남원 이외에도 전북 장수군을 일본서기에 나온 ‘반파국’으로 인용했고, 전남 해남군은 ‘침미다례’로 썼다고 밝혔다. 일본 극우파와 일부 한국 사학자들이 주장하는‘임나4현’까지 게재돼 있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올해 초 전북 남원 시민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청서에 기문국 용어를 사용하지 말게 해달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전라도민연대 제공

양경님 전라도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초대형 역사서를 편찬하면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아닌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을 등장시키는 것은 전라도가 일본 속국이었음을 자인하는 꼴이니 통탄할 일”이라면서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앞으로 최종본이 공개되면 얼마나 더 많은 역사 왜곡, 역사 날조 기록이 발견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반면 전북도 이영일 학예관은 “6명의 집필 교수 가운데 5명은 기문가야라는 표현은 추정될 수 있다는 논지의 의견을 가졌고, 한 교수는 기문가야를 주장해 실리게 됐다. 기문이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이지만 남원과 장수 사이에 기문이라는 지명이 분명히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국내 역사서에는 왜 그런 내용이 없느냐는 질문에 “삼국사기 기록을 적은 김부식이라는 분이 취사 선택하면서 다 태워서 기록이 없다. 기문국은 위치나 장소의 명명일 뿐이기 때문에 식민사관을 조장한다는 것은 지나치다. 오히려 <전라도 천년사>가 공개된 이후 이 쟁점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데 학술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전라도 천년사> 역사왜곡에 반발하는 전라도민연대는 19일에는 봉정식 취소집회를, 21일에는 봉정식 저지집회를 가질 계획이다. 전라도민연대 제공

편찬에 참여한 곽장근 가야문화연구소장(군산대 교수)는 지난 7월 전북문화살롱에 게재한 글에서 “운봉고원의 지역성과 역동성, 국제성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가야의 변방으로 본 견해가 지지를 받았으나 최근 고고학 자료가 다양하고 풍부하게 축적됐고, 이를 문헌에 접목시켜 운봉가야를 기문국으로 비정(추정)했다”며 “기문국이 요구하는 문헌의 내용을 유적과 유물이 대부분 충족시켰다”고 주장했다.



한편 <전라도 천년사>는 전라도 정명 천년(2018년)을 기념하기 위해 고려 현종 9년(1018년)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기록할 목적으로 애초 기획됐다가 현종 이전의 역사도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전라도 오천년 역사를 편찬키로 확대된 사업이다. 호남권 3광역 지자체가 공동으로 24억원을 댔다. 모두 34권으로 총서(해설서) 1권과 전라도 고대부터 현대까지 6개 시기별 통사 29권, 전라도 도백 인명사전 등 자료집 4권으로 구성됐다. 213명의 전문인력이 초고를 기술했고 200명의 연구원이 자료조사에 투입됐다. 총투입인원은 600여명에 달해 편찬사에 참여한 인원 규모는 전국 최대였다.
식민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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