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悖倫
중앙일보
업데이트 2010.06.1
청소부 아주머니에게 막말과 욕을 한 여학생을 ‘패륜녀(悖倫女)’, 역시 나이 많은 아주머니에게 욕설을 해댄 남학생을 ‘패륜남’이라고 부르며 비판을 했던 엊그제 우리 사회의 모습이 있었다.
대개 윤리(倫理)라고 하면 고개를 먼저 젓는 사람이 많을 수 있다. 진부하다는 인상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지켜야 할 변치 않는 도리라는 것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윤리라고도 부르고, 윤상(倫常)이라고 일컫는다.
윤(倫)은 ‘무리’라는 뜻이 일차적이다. 사람들이 섞여 사는 사회라는 함의(含意)도 있다. 상(常)은 변치 않는 원칙이라는 뜻이다. 흔히 경(經)과 상을 한데 섞어 경상(經常)이라고 적으면서 사람 사회에서 결코 변치 않는 원칙적인 도리를 지칭했다. 따라서 윤상이라고 한다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늘 지켜야 하는 원칙적인 자세를 말한다. 그런 윤상이 무너지고 지켜지지 않을 때 나오는 말이 패륜(悖倫)이다. ‘어긋나다, 어기다, 거스르다’는 뜻을 지닌 패(悖)가 앞에 붙었다.
조선의 실록(實錄)에는 이 패라는 글자가 자주 등장한다. ‘패역무도(悖逆無道)’는 특히 왕조의 질서를 혼란에 빠뜨리는 사람을 지칭한 말이다. ‘행패(行悖)를 부리다’ ‘패악(悖惡)질을 하다’는 말도 자주 쓰인다. 모두 사회의 근간을 뒤엎으려는 무질서를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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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悖倫)
함성중 기자 승인 2009.11.14
아내는 이따금 내 얼굴과 행동이 선친을 닮아간다고 얘기한다.
그러지 않아도 간혹은 나 자신의 의식에서 그 같은 느낌에 빠져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한 뒤 ‘어어 이건 아버지가 하시던 동작, 어투인 데’ 라는 생각이 스치는 것이다.
아마 이렇게 우리의 삶은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하며 혈통의 역사를 이어가는가 보다.
최근 들어 나를 쏙 뺐다는 말을 자주 듣는 내 아들도 언젠가 이런식으로 나를 닮아가리라.
그래서 혈연으로 맺은 부자 간의 천륜은 법과 도덕의 사회적 틀 안에서 이런저런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인륜에 앞서는 것일 게다.
▲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도리를 그르칠 때 패륜(悖倫)이라는 말을 쓴다.
법 이전에 인간의 탈을 쓰고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절대로 범해서는 안되는 게 패륜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엔 이런 ‘패륜아’들이 갈수록 늘어간다.
강남에서 한 번 살아보겠다는 욕망에 억대의 보험금을 노려 어머니와 누나를 청부살해한 10대 아들이 그렇다.
그 얼마 전에는 사업과 결혼을 하는 데 도와주지 않는다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불에 타 숨지게 한 뒤 경찰에 붙잡힌 20대 아들도 있다.
사실 아들이 부모를 폭행하는 패륜범죄는 워낙 많아 그 수법이 아주 놀랄 일이 아니라면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는다.
그 만큼 비정상적, 불건강한 사회로 치닫고 있다는 얘기다.
▲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정의.사죄 따위를 구태여 따져 든다면 이미 그 관계에 틈이 만들어졌다는 게 아닐까.
그 틈을 억지로 메우려 드는 순간 부자 간은 천륜에서 어그러져 온갖 시시비리를 따지는 인륜의 진창으로 발을 들이밀어야 한다.
효(孝)가 무너지면 가정이 붕괴되고, 이 것이 일상화되면 사회가 온전할 리 없다.
‘동방예의지국’이라던 심볼이 고개를 떨군 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오히려 부모의 재산만 탐내고, 부모가 어려우면 나 몰라라 하는 패악이 만연한 요즘이다.
물질만능과 극도의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 모든 구성원이 공감한다.
그러자면 학교에선 인성교육, 집에서는 가족 간 대화, 사회에선 공동체 인식을 넓혀가는 노력을 우리 모두가 기울일 수밖에 없다.
<함성중 편집부국장대우 사회부장>
hamsj@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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