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선 이야기] 한일 무역전쟁의 전략적 한계
2019.7.28.
한일 무역전쟁으로 SNS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한일 무역전쟁의 인과관계를 따지지도 않고, 국제 흐름의 이해 없이 판단하고 행동한다. 과거 우리가 겪었던 광우병 파동, 한미 FTA, 천안함 폭침 등 이성적 거대 담론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죽창’, ‘동학혁명’, ‘배 12척’ 같은 자극적인 이야기만 난무한다.
근대화과정에서 스스로 힘이 없었기에 전 지구의 84%가 식민지가 되는 시기에 우리도 식민지가 되었다. 식민지가 되지 않은 이웃 중국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식민지 못지않은 수모를 겪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의 인과관계를 살펴보는 일은 참으로 소중하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지금으로 기준으로 과거의 국제관계를 되돌리려는 노력은 노력만큼 실효성이 없다. 세계사는 중상주의와 제국주의를 거치면서 소멸한 국가와 민족이 수도 없이 많을뿐더러 이합집산으로 한나라가 여러 나라로 분리되기도 하고, 여러 나라가 한 나라로 합치기도 하였다.
서울대 이경묵 교수는 일본과 경제 전쟁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했고, 나도 똑같은 질문을 되묻고 싶다.
“첫째, 일본이 일제 지배를 불법이라고 자인하게 함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얻는다. 둘째, 일제 지배에 대한 배상금을 최대한 얻어내서 일제 지배로 피해를 본 분들의 손해를 배상해주고 한을 풀어준다. 셋째, 우리가 10배 이상 피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에 피해를 주자. 도대체 뭘까요?”
반면에 일본은 뚜렷한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다. 일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한일 협정으로 강제징용의 배상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으며, 위안부 문제는 ‘화해․치유’의 재단으로 완결되었다. 식민지 지배 등 과거사 사과는 공식적으로 5번이나 했으며, 이미 할 만큼 했다.
그러니 한국이 위안부 조약을 파기하여 신뢰를 훼손했고,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1965년 한일 협정에 규정대로 제3국 위원의 중재위원회에 회부를 요청한다. 만약에 한국 정부가 이를 거부하면 ICJ(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 한다는 계획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3개 품목에서 특혜를 거두겠다.
지금까지 내가 이해한 한일 무역전쟁의 인과관계는 이렇다.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한국이 전승국 자격증을 얻지 못하고, 20년간 한일 양국이 국교 정상화를 하지 못한다. 미국은 냉전 시대에 한국과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이해하고 두 나라의 국교 정상화를 강요한다. 1965년 6월 두 나라는 한일청구권 협정을 맺는다.
- 2005년 1월 노무현 정부는 ‘한일회담문서공개’ 민관공동위원회을 열어 한일청구권 협정의 미흡한 부분을 제기하며, “위안부, 사할린 동포, 조선인 원폭피해자”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하여 7만2631명에게 6184억 원의 위로금과 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한다.
- 2012년 5월 대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있었다고 해도 불법 식민 지배로 인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판결을 내린다.
- 2016년 7월 정부는 2005년 민간위원회 후속 조치의 일부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아베 총리의 사죄와 반성, 일본 예산 투입” 등 3개 항목을 합의하고 한일 두 나라가 ‘화해․치유의 재단’을 만든다.
- 2018년 10월 대법원의 재상고심에서 “청구권 협정은 불법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한 협상이 아니라 양국 간 재정적 미시적․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위자료 청구권이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최종 판결한다.
- 2018년 11월 정부는 ‘위안부 TF’를 구성하여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표현 등 일본 측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 하여 ‘화해․치유 재단’의 해산을 결정하고 2019년 7월 최종 실행한다.
우리나라의 전략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미국의 중재, 국제 여론이다. 불매운동은 정부가 주도하지 않았지만 ‘죽창’, ‘동학혁명’, ‘국채보상운동’, ‘배 12척’ 등으로 부추긴 측면이 많다. 그에 따라 국가 자존심 싸움에서 선한 영향을 미치려는 많은 국민이 이에 동참하여 일본 제품은 물론 일본 여행 자제, 서울 한복판에서 렉서스를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미국의 중재 노력은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자유무역에 대한 국제 여론전은 국내 목소리 보다 외국 지성인의 목소리가 더 크다.
전쟁 중에 어떤 전략은 강하게 드러내고 어떤 전략은 숨기는 허실(虛實)이 중요하다. 당 태종은 손자병법 13편 가운데 “허실(虛實)”이 가장 중요하며, 허(虛) 속에 실이 있고, 실(實) 속에 허가 있다. 허(虛) 속에 다시 허실이 있고, 실(實) 안에 다시 허실이 있어 그 관계가 매우 미묘하다.
허실의 오묘함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적을 우리에게 오게 하고 적에게 가지 않는다(致人而不致於人).”이다.
지금 한일 무역전쟁에서 일본은 모든 것을 준비하고 우리를 오게 만들었다.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지점에서 싸움하고자 한다. 상대의 숫자의 많음이 문제가 아니라, 전투의 접점에서 아군의 숫자가 많아야 이길 수 있다. 그것이 일본 첨단 소재기술이다.
나는 여전히 왜 우리가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을 해야 하는지? 그렇게 함으로 얻을 수 있는 우리의 전략적 가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전쟁에 앞서 자국민을 단결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지금과 같은 퍼포먼스는 일본 국민을 자극하여 더 단결하게 만든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는 전쟁의 지속 여부를 국민이 결정한다. 그 나라 국민의 여론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단결한 만큼 일본도 단결하여 우리가 원치 않는 아베의 전략에 휘말려 한국을 백색 리스트에 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낼 것이다.
차라리 '허'의 전략으로 가서 "우리가 일본의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한다."고 홍보하면 일본의 아베가 자유무역을 훼손하였다는 자충수라고 주장할 수 있다.
나는 지금의 우리 전략을 수정했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무역으로 국부의 80%를 이룬 나라다. 국제 사회의 신뢰가 없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나라다. 계약의 신성을 함을 강조함은 물론, 지금까지 국제 스탠다드의 모범국가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큰 노력을 하였는가? 을 강조한다. 일본이 싫고 밉다 하여도 계약은 계약이며 지켜야 할 약속이다. 자존심과 감정만으로 국제 싸움을 할 수 없다.
우리도 우리가 무엇이 유리한지 전략적 장점과 한계를 깨닫고 행동하자. 국내 문제라면 한(恨)풀이하듯 광풍이 불어도 좋지만, 국외 문제는 정확한 사실(fact)과 그 나라 국력만큼 이루어지고 결정된다. 결국, 군사적 전쟁이 아닌 무역전쟁은 그 나라 국민의 지력(知力) 전쟁으로 승패가 결정되며, 우리가 생각의 근육을 키운 만큼 극일(克日)할 수 있다.
“미더운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않다. 착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으며, 변론하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
*참고 및 인용 : 강민구 지음 <인생의 밀도> pp.74-80, 김지지 지음 <한일 청구권 협정> 빛과 그림자 ② 대법원의 ‘사법 자체 원칙’, 20세기 이야기, 2019.7.11., 리링 지음 김승호 옮김 <전쟁은 속임수다. 리링의 손자 강의> pp.427-436, 이경묵 지음 <점입가경 한일 관계: 우리나라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네이버 블로그 ‘다 함께 잘사는 나라’, 2019.7.22., 사진은 아침고요수목원 여름꽃(20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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