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5

Namgok Lee ‘연합정당’ -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좌와 우의 진실한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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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연합정당’ -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좌와 우의  진실한 네트워크

동물계(動物界)의 ‘자기중심성’은 생존의 원리로서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비록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의 냉혹함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생태계 안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동물계로부터 진화한 인류(호모사피엔즈)의 특이함이 이 자기중심성과 심각한 모순을 일으키는 것이다. 인간의 특유한 능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생태계의 최상위 존재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스스로를 위험과 불행에 빠트리는  원인으로 되고 있다.
그 행위능력을 억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인류가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조건은 이 행위능력과 자기중심성의 결합을 변화(분리)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가치체계를 보편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의 다른 한 부분이다. 보통 이 능력은 다양한 종교를 통해 신장되어 왔다.
그러나 종교의 세속화 즉 정치권력과의 결합 특히 근대 이후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제도로서의 종교는 이런 능력을 많이 상실한 반면에 ‘종교성(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숭고지향)’은 인간의 지성의 발전 속에 내재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물신지배와 각자도생의 자기중심성이 지배하는 체제를 바꿀 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그런 상태에서 기후위기와 같은 상황을 만나고 있는 것이 인류의 현주소가 아닌가 한다.


인류의 미래(좁혀보면 나라의 미래)에 대해 아마도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이 주어지는 것 같다.

1. 인간의 과학기술능력(생산력 또는 행위능력)이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간 상호 간에 침범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을 만큼(부족不足은 침범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 물자를 생산할 수 있는가?
2. ‘침범’에 대한 정의(定義)를 보다 정교하게 하면서, 촘촘하게 침범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할 수 있는가?
3. 물질과 제도가 상당 수준으로 진척해도 ‘침범하려는 의식’이  남아 있는 한 교묘한 침범은 막을 수 없고, 이른바 ‘합법적 불공정’이나 ‘부의 세습에 의한 이중화(신분제도의 부활)’를 막을 수 없다.

따라서 ‘침범을 부끄러워하는 의식으로의 진화’가  사회가 발달할수록 더 핵심적인 테마가 된다.
침범을 부끄러워하는 의식이 깊어지면,  ‘서로 양보하고 싶어지는 의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
비로소 ‘원시적 호혜사회’로부터 긴 여정을 지나 ‘리얼 유토피아’를 바라보게 한다.
이 세 가지 즉 물질, 제도, 의식은 서로 유기적으로 보합(保合)하는 관계이다.
지금까지는 이 세 가지가 모순 관계 때로는 길항(拮抗) 관계로 진행되어 왔지만, 지금 단계에서 특히 인류의 선두 부분에서는(한국도 이 범주에 든다) 상호 조화되고 보완되는 관계로 되지 않으면  자유와 행복은 고사하고 존속 자체가 어렵게 된다.

연합정치(합작)가 권력정치의 정치공학을 넘어서 근원적으로 요청되는 배경이다.
그러나 한국의 지금 정치 현실로 볼 때 그것이 무망(無望)해 보인다. 그것이 위기의 핵심이 아닌가 한다.
위기가 기회로 된다는 것은 물극필반(物極必反)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당 체제로 연합정치가 무망하면, 그것을 가능케 할 새로운 정당이 출범하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다.
그 정당은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의 보합 균형 조화를 담을 수 있는 광폭(廣幅) 정당이 되어야 시대적 요청에 응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광폭’이라는 말이 전혀 다른 광폭(狂暴)으로 들릴 수도 있어서, ‘연합정당’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중도(中道) 정당’은 그 정체성이 애매하고 소극적일 수 있어서, 보다 포지티브하고 진취적인 표현으로 ‘연합정당’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좌(左;평등)와 우(右;자유) 그리고 의식전환(문명전환의 핵심)을 추구하는 녹색정치의 삼자가 광폭(廣幅)으로 결합하는’ 정당이다.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진실한 사람들이 진실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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