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정대협을 믿어야 할까? 박유하 교수를 믿어야 할까?]
- 나는 박유하 교수를 믿고 지지한다.
- 한국의 언론 내지 지식인들의 책임을 묻는다.
-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가지기 전에 우선 사실을 더 알려고 해야 할 것이다.
Park Yuha
15 Feb 2014
Favourites · edrotpsSong8cF2g0u29f9m1 uryh09ffh9ehfh1138ltlbr4au3m604c 85 ·
노트에 올릴 생각이었던 글을,사진과 링크를 함께 올리기 위해 그냥 여기에 올려둔다.마지막에 아시아여성기금이 해산하면서 만들어둔 인터넷자료관링크를 걸어두었다. 영어버전도 있다.사진은 위안부문제 발생 이후 일본정부가 만든 조사자료집. 책임질 생각이 없었다면 이런 자료집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위안부문제에 관한 나의 책을 읽어주셨거나 페북에서의 이야기를 관심갖고 봐주신 분들께는 식상한 이야기일 수 있어 저어되기도 하지만,아직은 대다수사람들이 모르는 이야기이니 그냥 올린다.
긴 글이니 시간되실 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안한 주말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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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진보를 위해---정대협의 무라야마수상 비판에 대해
1.
정대협이 무라야마 전 수상의 방한을 환영하는 언론과, 초청한 정의당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또 2014년2월1 2일자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등 진보매체들 일부는 그 성명을 올바른 `쓴소리`정도로 간주하고 마치 받아쓰기 하듯 보도했다.
정대협이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언젠가부터 한일관계에 관해 언론들이 의견을 묻는 몇 안되는 단체가 되었다. 그 수많은 일본관련 연구소를 제치고,다. 물론, 일본에 관해서는 일본전문가가 말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정대협이 정보와 인식에서 문제가 많은 견해를 이 20년동안 한국사회에 내보내 왔고, 언론들은 자신의 발로 뛰지 않고 그저 앉은 자리에서 앵무새처럼 정대협의 대변인 노릇을 해 왔다는 점이다. 그 결과로, 특히 위안부문제에 관해서는, 이제 일반인들은 물론 여가부와 외교부와 청와대까지, 정대협의 생각에 기반해 모든 것이 움직여진다.
무라야마전수상이 `어떤 인물인지를 재고`해야 한다는 정대협의 말은,일본을 상대로 대화할 의지가 있는지와 `운동`대상에 대한 기본철학에
의구심이 들게 한다. 왜냐하면 무라야마 수상은 이제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것처럼(90년대엔 거의 한국은 주목을 하지 않았으니 그의 진정성이 전달되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린 셈이다. 진정, 한일간의 거리는 가깝고도 멀다..) 이른바 `일본의 양심`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까지 비판한다면 일본의 누구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일까.
정대협이 비난하는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것이, 위안부문제에 사죄의식을 느끼면서도 과거청산을 끝낸것으로 된 약속한 1965년의 한일협정에 위배되지 않도록 `민간기금`의 형식을 띤, 실제로는 비용의90퍼센트가까이가 일본정부의 `국고금`이었다는 것은 작년에 낸 책<제국의 위안부>이외에도 기회있을 때마다 말해 왔다. 말하자면, 기금은 책임을 회피하거나 보상을 하지 않기 위한 면피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보상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한국에 대해 일본은 200만엔의 속죄금(기금이 사용한 `償い金`이라는 단어를 `위로금`이라 번역한다면 일본어를 잘 모르고 있다고 할 밖에 없다)과 의료비등 300만엔,도합 500만엔을 보상금으로 지급했고,61명의 한국인 위안부할머니들이 수령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대부분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언론이 취재하지도 않았고 보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2.
위안부문제가 꼬인 첫번째 이유는 12살 이상 학생들을 `근로정신대`로 동원했던 것을 (성을 제공하는)위안부라고 착각한 것이 발단이지만,사죄와 보상에 관한 한국사회의 오해의 모든 것은 이 기금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되었다.
문제는,이런 시각조차 한국의 독단적인 것이었다기보다는 일본의 일부 급진 운동가들과 관계자들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본다면 위안부문제에 관한 한국의 생각은 실제로는 일본의 소수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형국이기도 하다. 위안부문제 책을 쓰면서 알게 된 건 이 분야 전문가가 한국인으로는 몇사람 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의 논문조차 기반에는 일본인 전문가들의 생각이 깔려 있었다. 전국민이 관심을 갖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고 보면 언론들이 직접 발로 뛰지 않는다고 비판할 문제도 아닐 수도 있겠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모두가 이 문제에 관심이 있었지만, 아무도, 진정한 관심을 가진 이들은 없었다.(물론 이 말은 수사에 불과하다. 진정한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과 사재를 털어서의 활동에 전념해 온 분을 나는 안다. 그 분이 만약 위안부문제의 중심에 계셨다면, 한국에서의 위안부문제 해결방식은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무라야마수상의 사죄가 `말뿐인 사과였다고 할머니들은 생각한다`고 한겨레신문은 말한다. 그러나 그 `할머니`란 누구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할머니들도 적지 않은데도, 그들의 목소리는 늘 묻히고 만다. `국가차원의 책임인정과 실질적 배상등 구체적 조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쓴 이 기자는, 일본수상이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쓴 편지를 보았을까. 기금을 수령한 할머니들에게 지급된 500만엔의 돈이 `실질적`으로는 대부분 국고금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일본은 1965년의 협정에 저촉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처음엔 `200만엔`의 償い金ーー속죄금/보상금은 `국민의 모금`으로 한다고 했지만, 그래서 의료비등 다른 `실질적`지원에 들어가는 비용은 현금으로 하지 않고 영수증을 기반으로 간접지불하기로 했었지만 결국은 그런 원칙을 뒤집고 현금으로 지급한 사실을 알고 있을까.
`민간이 주도`한 형태였지만 다름아닌 무라야마 수상등 정부관계자들이 이사장을 역임했다는 것도, 기금의 성격을 말해준다. 또 기금의 모든 사업은 정부가 체크하고 관리했다.
정대협이 주장하는 `배상`이란 위안부모집을 조직적 `국가범죄`로 인정하고 국회결의를 통한 `입법`에 근거하여 `의무`로서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90년대이후 일본국회에서는 그것을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가능하지 않았고, 단언컨대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위안부문제를 부정해서가 아니라, 1965년 협정의 존재와 `강제연행`에 대한 의구심에 있었다.
3.
위안부들을 군인들이 무작위로 `강제로 끌고 `간 것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다음에도 정대협은 한번도 자신들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수정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어린 학생들은 지금도 위안부할머니들이 `일본군인이 강제로 끌어갔다`고만 생각한다. 그들의 감성을 증오로 물들게 할 뿐 아니라 잘못된 인식으로 언젠가 비웃음을 사게 될 때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걸까. 사실 그건 꼭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일이기도 하다.
`위로금을 받으라고 압박``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미봉책`이라는 판단은 일본정부의 정책수립과정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지 않고 그저 정부가 책임을 회피한다고만 간주한 상상이 만든 것이다. `돈의 문제로 전락`시켰다는 것은 `돈`이라는 물질이,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 인간사회의 습관을 잊게 만드는 의도적인 폄훼이기도 하다.
고노담화가 `철저한 조사`를 안했다는 것도, `범죄규모를 축소했다`는 것도 정대협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그러고 싶었다면 일본국민의 세금을 써 가면서 방대한 량의 자료집을 발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무라야마수상은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해 `말로 표현 못할 잘못`이라고 했다는데 정대협은 그런 상황도 그저 `묵묵부답`의 책임회피로만 본다.
한국이 `덜 자민당 스러운`이를 환영한다는 식의 말에서 보이는 것처럼 정대협은 자민당에는 사죄의식이 전혀 없는 것처럼 알고 있지만, 무라야마 담화는 실은 1992년에 이미`<과거의 역사인식문제>를 국제협력의 과제로 내세`워 `역사를 바탕으로 한 국제교류추진정책` (浅野豊美「歴史を踏まえた国際交流と国民的和解の追求——村山談話成立をめぐる国内政治とその変容」、早稲田大学アジア研究機構第11回国際シンポジウム「過ぎ去ろうととしない過去」에서 발표,2013・11・10、2014年3月号『アジアレビュー』게재예정,이하 같은 논문에서 인용、번역은 박유하)을 정권교체직전까지 해 왔던 미야자와 자민당수의 협력과 지지를 얻어 만들어진 것이었다. 미야자와 수상은 위안부문제가 발생해 한일관계가 시끄러울때 `첫 외국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했고 `전후사상 처음으로 <과거의 역사인식문제>를 아시안확대외무상이나 아펙등의 국제협력기구와 연결시켜 추진할 것을 제창`한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역시 공식연설에서 아시아를 향해 `깊은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했었다.
사실, `자민당과 사회당간의 쟁점은 국회결의를 바탕으로 할것인지의 구체적 보상방식과, 그것을 위한 국민적합의를 만들어내는 방식`뿐이었다. `자민당과 사회당간에 역사인식을 둘러싼 정책적인 접근은, 90년대 초에 이미, 3당합의가 이루어지기 이전부터 시작`되었었고, `아시아 여성기금은 그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것이었다.
고노담화 역시 자민당이 `사회당이 하고 싶어 했던 전후50년을 향한 결의에 친화적인 정책을 내놓은 것이었고 하야하는 자민당총재로서 장래를 내다보며 사회당과의 연계`를 생각한 산물이었다. 그리고 고노외무상은 후에 자민당총재로서 `소수여당이 고집한 전후50년결의에 협력`했고 그 결의가 무산된 이후 대신 무라야마수상이 `무라야마담화를 내놓았을 때 그 담화를 자민당으로서 승인하고 ,당내부를 설득하는 역할을 했`다.
우리에게는 그저 상종못할 우익이어서 역사인식에서 접점이 없을 것처럼 간주되는 `자민당` 안에도 이렇게 사죄인식을 갖는 이들은 있다. 그리고 실제로는 우리생각보다는 많다고 보아야 한다. 설사 현시점에서 다른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 해도,일본인들의 반이 자민당을 지지한다고 했을 때, 그들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문제해결은 어렵다. 하물며 무라야마수상 같은 이들을 비판해서 어떻게 운동이 성공할 수 있을까.
사실은 정대협의 무라야마수상비판은 일본의 소수급진좌파가 일찍부터 했던 이야기의 반복이기도 하다. 그들이 당시 무라야마 수상을 비판한 건 안보정책에서 자민당과 다를 바 없다는 이유때문이었다. 그들은 일본국민 중 극소수일 뿐이고, 중요한 건 극소수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판단이 냉전주의적인 자세에 바탕한 것일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4.
정대협의 위안부문제해결운동은 세계를 설득시키는 일에만 주력해 왔고, 그 주장은 한동안 받아들여진 듯 했지만 이미 여기저기서 균열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과연 정대협은 위안부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정말 해결하고 싶다면 ,지금 필요한 건 20년이상 해결이 되지 않는데도 변함없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운동방식을 되돌보는 일이다. 물론 정대협만이 아니라 한국인 모두가 함께,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정대협의 일본비난은 2000년대 이후, `사죄와반성`을 해 온 이들조차 싸늘하게 돌아서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지금의 `일본의 혐한`의 중심에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잘못된 대처가 있다. 그런데도, 정대협이 말하는 `올바른 인식`이 `국민의 의견`이 되어 장관도 대통령도 정대협의 인식을 자신의 인식인 것처럼 일본에 대해 요구한다. 정대협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언론의 날선`대응이란, 정대협의 인식을 공유하는 일이 아니라 정대협의 인식을 넘어서는 일에서만 가능하다. 이미 충분히 심각하지만, 이대로라면 사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해질 것이다. 그것이 내가 다시한번 정대협과 그들의 생각을 만들고 지원하는 일본의 일부 운동가 비판에 나선 이유다. 그들과 함께 했던 이들의 선의는 의심하지 않기에,가까이 있는 이들이 먼저, 중심에 있는 이들의 문제를 직시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진보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아래 홈페이지에는,국회소위원회의 회의내용도 올려져 있다.
http://www.awf.or.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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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수
그러니까 이런 기생충 같은 인간들이 정대협 문제가 해결되면 자기들의 존재의의라고나 할까, 정치적 입지가 사라지니까 해결을 가로막고 있고 있다는 의심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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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y
조재수
정대협에 주사파가 암약하고 있다는 의심이 드는 글들의 인터넷 글들..링크..http://cafe.daum.net/Europa/3Q5x/9717?q=%C1%A4%BD%C5%B4%EB%BF%CD%20%C1%D6%BB%E7%C6%C4&re=1
CLUSTER1.CAFE.DAUM.NET
정대협 관련 문제라는데정대협 관련 문제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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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y
조재수
아뭏든 통합진보당 주사파 꼴통들이 통합진보당 사태 때에 인터넷 생중계되는 당대회에서도 폭력 난동을 저지르는 꼴을 보고 치를 떨었는데요...이들이 개입되어 있다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악마와도 손을 잡을 집단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정대협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공유해갈께요.
9 y
Park Yuha
조재수 '일본의 급진좌파'라고 썼지만 정대협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일본인들 모두가 꼭 정치적입장때문에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위안부문제해결을 '일본사회의 개혁'과 연동시켜 생각하는 이들이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건 분명하고,그들이 원하는 정권이 될 때까지 해결도 되지 않을 터이니 꼭 의도적이 아니어도 위안부할머니들이 그들을 위한 인질이 되어있는 상태라고는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의 문제에 그대로 대입시키시는 건 곤란하고요..무슨 파라서가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거나 합리적이 아닌 사고를 비판한 겁니다.
조선인위안부가 어떻게 위안부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에도 썼으니 보시지요.
9 y
Park Yuha
조재수 그리고 그런 '개혁'에도 내용이 여러가지 있고 그 자체를 전부 반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9 y
河昇運
위안부 관련 새로운 공부거리이군요. 이말은 약간 이상의 관심을을 가지고 있다는 저 같은 경우에도 제대로 된 정보의 입력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노트에 올릴 생각이었던 글을,사진과 링크를 함께 올리기 위해 그냥 여기에 올려둔다.마지막에 아시아여성기금이 해산하면서 만들어둔 인터넷자료관링크를 걸어두었다. 영어버전도 있다.사진은 위안부문제 발생 이후 일본정부가 만든 조사자료집. 책임질 생각이 없었다면 이런 자료집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위안부문제에 관한 나의 책을 읽어주셨거나 페북에서의 이야기를 관심갖고 봐주신 분들께는 식상한 이야기일 수 있어 저어되기도 하지만,아직은 대다수사람들이 모르는 이야기이니 그냥 올린다.
긴 글이니 시간되실 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안한 주말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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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진보를 위해---정대협의 무라야마수상 비판에 대해
1.
정대협이 무라야마 전 수상의 방한을 환영하는 언론과, 초청한 정의당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또 2014년2월1 2일자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등 진보매체들 일부는 그 성명을 올바른 `쓴소리`정도로 간주하고 마치 받아쓰기 하듯 보도했다.
정대협이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언젠가부터 한일관계에 관해 언론들이 의견을 묻는 몇 안되는 단체가 되었다. 그 수많은 일본관련 연구소를 제치고,다. 물론, 일본에 관해서는 일본전문가가 말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정대협이 정보와 인식에서 문제가 많은 견해를 이 20년동안 한국사회에 내보내 왔고, 언론들은 자신의 발로 뛰지 않고 그저 앉은 자리에서 앵무새처럼 정대협의 대변인 노릇을 해 왔다는 점이다. 그 결과로, 특히 위안부문제에 관해서는, 이제 일반인들은 물론 여가부와 외교부와 청와대까지, 정대협의 생각에 기반해 모든 것이 움직여진다.
무라야마전수상이 `어떤 인물인지를 재고`해야 한다는 정대협의 말은,일본을 상대로 대화할 의지가 있는지와 `운동`대상에 대한 기본철학에
의구심이 들게 한다. 왜냐하면 무라야마 수상은 이제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것처럼(90년대엔 거의 한국은 주목을 하지 않았으니 그의 진정성이 전달되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린 셈이다. 진정, 한일간의 거리는 가깝고도 멀다..) 이른바 `일본의 양심`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까지 비판한다면 일본의 누구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일까.
정대협이 비난하는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것이, 위안부문제에 사죄의식을 느끼면서도 과거청산을 끝낸것으로 된 약속한 1965년의 한일협정에 위배되지 않도록 `민간기금`의 형식을 띤, 실제로는 비용의90퍼센트가까이가 일본정부의 `국고금`이었다는 것은 작년에 낸 책<제국의 위안부>이외에도 기회있을 때마다 말해 왔다. 말하자면, 기금은 책임을 회피하거나 보상을 하지 않기 위한 면피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보상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한국에 대해 일본은 200만엔의 속죄금(기금이 사용한 `償い金`이라는 단어를 `위로금`이라 번역한다면 일본어를 잘 모르고 있다고 할 밖에 없다)과 의료비등 300만엔,도합 500만엔을 보상금으로 지급했고,61명의 한국인 위안부할머니들이 수령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대부분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언론이 취재하지도 않았고 보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2.
위안부문제가 꼬인 첫번째 이유는 12살 이상 학생들을 `근로정신대`로 동원했던 것을 (성을 제공하는)위안부라고 착각한 것이 발단이지만,사죄와 보상에 관한 한국사회의 오해의 모든 것은 이 기금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되었다.
문제는,이런 시각조차 한국의 독단적인 것이었다기보다는 일본의 일부 급진 운동가들과 관계자들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본다면 위안부문제에 관한 한국의 생각은 실제로는 일본의 소수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형국이기도 하다. 위안부문제 책을 쓰면서 알게 된 건 이 분야 전문가가 한국인으로는 몇사람 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의 논문조차 기반에는 일본인 전문가들의 생각이 깔려 있었다. 전국민이 관심을 갖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고 보면 언론들이 직접 발로 뛰지 않는다고 비판할 문제도 아닐 수도 있겠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모두가 이 문제에 관심이 있었지만, 아무도, 진정한 관심을 가진 이들은 없었다.(물론 이 말은 수사에 불과하다. 진정한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과 사재를 털어서의 활동에 전념해 온 분을 나는 안다. 그 분이 만약 위안부문제의 중심에 계셨다면, 한국에서의 위안부문제 해결방식은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무라야마수상의 사죄가 `말뿐인 사과였다고 할머니들은 생각한다`고 한겨레신문은 말한다. 그러나 그 `할머니`란 누구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할머니들도 적지 않은데도, 그들의 목소리는 늘 묻히고 만다. `국가차원의 책임인정과 실질적 배상등 구체적 조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쓴 이 기자는, 일본수상이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쓴 편지를 보았을까. 기금을 수령한 할머니들에게 지급된 500만엔의 돈이 `실질적`으로는 대부분 국고금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일본은 1965년의 협정에 저촉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처음엔 `200만엔`의 償い金ーー속죄금/보상금은 `국민의 모금`으로 한다고 했지만, 그래서 의료비등 다른 `실질적`지원에 들어가는 비용은 현금으로 하지 않고 영수증을 기반으로 간접지불하기로 했었지만 결국은 그런 원칙을 뒤집고 현금으로 지급한 사실을 알고 있을까.
`민간이 주도`한 형태였지만 다름아닌 무라야마 수상등 정부관계자들이 이사장을 역임했다는 것도, 기금의 성격을 말해준다. 또 기금의 모든 사업은 정부가 체크하고 관리했다.
정대협이 주장하는 `배상`이란 위안부모집을 조직적 `국가범죄`로 인정하고 국회결의를 통한 `입법`에 근거하여 `의무`로서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90년대이후 일본국회에서는 그것을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가능하지 않았고, 단언컨대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위안부문제를 부정해서가 아니라, 1965년 협정의 존재와 `강제연행`에 대한 의구심에 있었다.
3.
위안부들을 군인들이 무작위로 `강제로 끌고 `간 것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다음에도 정대협은 한번도 자신들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수정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어린 학생들은 지금도 위안부할머니들이 `일본군인이 강제로 끌어갔다`고만 생각한다. 그들의 감성을 증오로 물들게 할 뿐 아니라 잘못된 인식으로 언젠가 비웃음을 사게 될 때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걸까. 사실 그건 꼭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일이기도 하다.
`위로금을 받으라고 압박``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미봉책`이라는 판단은 일본정부의 정책수립과정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지 않고 그저 정부가 책임을 회피한다고만 간주한 상상이 만든 것이다. `돈의 문제로 전락`시켰다는 것은 `돈`이라는 물질이,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 인간사회의 습관을 잊게 만드는 의도적인 폄훼이기도 하다.
고노담화가 `철저한 조사`를 안했다는 것도, `범죄규모를 축소했다`는 것도 정대협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그러고 싶었다면 일본국민의 세금을 써 가면서 방대한 량의 자료집을 발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무라야마수상은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해 `말로 표현 못할 잘못`이라고 했다는데 정대협은 그런 상황도 그저 `묵묵부답`의 책임회피로만 본다.
한국이 `덜 자민당 스러운`이를 환영한다는 식의 말에서 보이는 것처럼 정대협은 자민당에는 사죄의식이 전혀 없는 것처럼 알고 있지만, 무라야마 담화는 실은 1992년에 이미`<과거의 역사인식문제>를 국제협력의 과제로 내세`워 `역사를 바탕으로 한 국제교류추진정책` (浅野豊美「歴史を踏まえた国際交流と国民的和解の追求——村山談話成立をめぐる国内政治とその変容」、早稲田大学アジア研究機構第11回国際シンポジウム「過ぎ去ろうととしない過去」에서 발표,2013・11・10、2014年3月号『アジアレビュー』게재예정,이하 같은 논문에서 인용、번역은 박유하)을 정권교체직전까지 해 왔던 미야자와 자민당수의 협력과 지지를 얻어 만들어진 것이었다. 미야자와 수상은 위안부문제가 발생해 한일관계가 시끄러울때 `첫 외국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했고 `전후사상 처음으로 <과거의 역사인식문제>를 아시안확대외무상이나 아펙등의 국제협력기구와 연결시켜 추진할 것을 제창`한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역시 공식연설에서 아시아를 향해 `깊은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했었다.
사실, `자민당과 사회당간의 쟁점은 국회결의를 바탕으로 할것인지의 구체적 보상방식과, 그것을 위한 국민적합의를 만들어내는 방식`뿐이었다. `자민당과 사회당간에 역사인식을 둘러싼 정책적인 접근은, 90년대 초에 이미, 3당합의가 이루어지기 이전부터 시작`되었었고, `아시아 여성기금은 그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것이었다.
고노담화 역시 자민당이 `사회당이 하고 싶어 했던 전후50년을 향한 결의에 친화적인 정책을 내놓은 것이었고 하야하는 자민당총재로서 장래를 내다보며 사회당과의 연계`를 생각한 산물이었다. 그리고 고노외무상은 후에 자민당총재로서 `소수여당이 고집한 전후50년결의에 협력`했고 그 결의가 무산된 이후 대신 무라야마수상이 `무라야마담화를 내놓았을 때 그 담화를 자민당으로서 승인하고 ,당내부를 설득하는 역할을 했`다.
우리에게는 그저 상종못할 우익이어서 역사인식에서 접점이 없을 것처럼 간주되는 `자민당` 안에도 이렇게 사죄인식을 갖는 이들은 있다. 그리고 실제로는 우리생각보다는 많다고 보아야 한다. 설사 현시점에서 다른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 해도,일본인들의 반이 자민당을 지지한다고 했을 때, 그들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문제해결은 어렵다. 하물며 무라야마수상 같은 이들을 비판해서 어떻게 운동이 성공할 수 있을까.
사실은 정대협의 무라야마수상비판은 일본의 소수급진좌파가 일찍부터 했던 이야기의 반복이기도 하다. 그들이 당시 무라야마 수상을 비판한 건 안보정책에서 자민당과 다를 바 없다는 이유때문이었다. 그들은 일본국민 중 극소수일 뿐이고, 중요한 건 극소수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판단이 냉전주의적인 자세에 바탕한 것일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4.
정대협의 위안부문제해결운동은 세계를 설득시키는 일에만 주력해 왔고, 그 주장은 한동안 받아들여진 듯 했지만 이미 여기저기서 균열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과연 정대협은 위안부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정말 해결하고 싶다면 ,지금 필요한 건 20년이상 해결이 되지 않는데도 변함없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운동방식을 되돌보는 일이다. 물론 정대협만이 아니라 한국인 모두가 함께,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정대협의 일본비난은 2000년대 이후, `사죄와반성`을 해 온 이들조차 싸늘하게 돌아서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지금의 `일본의 혐한`의 중심에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잘못된 대처가 있다. 그런데도, 정대협이 말하는 `올바른 인식`이 `국민의 의견`이 되어 장관도 대통령도 정대협의 인식을 자신의 인식인 것처럼 일본에 대해 요구한다. 정대협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언론의 날선`대응이란, 정대협의 인식을 공유하는 일이 아니라 정대협의 인식을 넘어서는 일에서만 가능하다. 이미 충분히 심각하지만, 이대로라면 사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해질 것이다. 그것이 내가 다시한번 정대협과 그들의 생각을 만들고 지원하는 일본의 일부 운동가 비판에 나선 이유다. 그들과 함께 했던 이들의 선의는 의심하지 않기에,가까이 있는 이들이 먼저, 중심에 있는 이들의 문제를 직시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진보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아래 홈페이지에는,국회소위원회의 회의내용도 올려져 있다.
http://www.awf.or.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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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수
그러니까 이런 기생충 같은 인간들이 정대협 문제가 해결되면 자기들의 존재의의라고나 할까, 정치적 입지가 사라지니까 해결을 가로막고 있고 있다는 의심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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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y
조재수
정대협에 주사파가 암약하고 있다는 의심이 드는 글들의 인터넷 글들..링크..http://cafe.daum.net/Europa/3Q5x/9717?q=%C1%A4%BD%C5%B4%EB%BF%CD%20%C1%D6%BB%E7%C6%C4&re=1
CLUSTER1.CAFE.DAUM.NET
정대협 관련 문제라는데정대협 관련 문제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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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y
조재수
아뭏든 통합진보당 주사파 꼴통들이 통합진보당 사태 때에 인터넷 생중계되는 당대회에서도 폭력 난동을 저지르는 꼴을 보고 치를 떨었는데요...이들이 개입되어 있다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악마와도 손을 잡을 집단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정대협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공유해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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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조재수 '일본의 급진좌파'라고 썼지만 정대협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일본인들 모두가 꼭 정치적입장때문에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위안부문제해결을 '일본사회의 개혁'과 연동시켜 생각하는 이들이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건 분명하고,그들이 원하는 정권이 될 때까지 해결도 되지 않을 터이니 꼭 의도적이 아니어도 위안부할머니들이 그들을 위한 인질이 되어있는 상태라고는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의 문제에 그대로 대입시키시는 건 곤란하고요..무슨 파라서가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거나 합리적이 아닌 사고를 비판한 겁니다.
조선인위안부가 어떻게 위안부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에도 썼으니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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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조재수 그리고 그런 '개혁'에도 내용이 여러가지 있고 그 자체를 전부 반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9 y
河昇運
위안부 관련 새로운 공부거리이군요. 이말은 약간 이상의 관심을을 가지고 있다는 저 같은 경우에도 제대로 된 정보의 입력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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