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중립이냐 동맹이냐 : 한반도 영세중립 통일을 위한 모색 - 김천일보 김천iTV
[논단] 중립이냐 동맹이냐 : 한반도 영세중립 통일을 위한 모색이재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평화학 명예교수)
이재봉 | 승인 2021.03.20
이재봉(원광대 정외과 명예교수, 평화학)
1. 중립의 의미와 조건
‘중립 (中立)’ 이란 말 그대로 ‘가운데 선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간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외교.군사와 관련해서는,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듯, “국가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중간 입장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전쟁 당사국 어느 쪽에도 편들지 않고 중간에 서는 것이란 말이다.
전쟁이 일어날 때만 중간에 서는 게 아니라 평상시에도 다른 나라와 군사적 도움을 주고받지 않으며 영원히 가운데 자리를 지키는 게 ‘영세(永世)중립’ 또는 ‘영구(永久)중립’이다. 국어사전을 빌리자면, “나라가 전쟁이나 군사 동맹에 관여하지 아니함으로써 국제법상 독립 유지와 영토 보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대표적 국가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를 꼽을 수 있다.
중립의 기본 조건은 어느 나라에도 군사기지나 군사물자를 제공하지 않고, 어떤 국가와도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 것이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등 비군사적 분야에서 다른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는 것은 중립에 어긋나지 않는다. 물론 중립을 지키기 위해 자체 군사력을 갖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아니다. 침공 아닌 방어를 위한 군사력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기에 무장 중립도 있고 비무장 중립도 있다.
중립과 관련해 우리사회에 오해가 있는 듯하다.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패권경쟁 사이에 낀 한국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과 무역통상을 확대하는 것을 일종의 중립이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중국과의 교역을 확대하든 축소하든 미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하며 동맹을 유지하는 것은 중립이 전혀 아니다.
2. 중립화 사례와 역사
1) 해외 중립국과 중립주의
세계 최초의 중립국가는 스위스다. 1815년부터 무장 영세중립을 유지하며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있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19세기에 영세중립국이 되었지만 20세기 제1-2차 세계대전을 통해 때 침공당하며 무너져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패전국 오스트리아가 1955년 영세중립을 선언했다. 동남아의 라오스는 1962년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들의 제네바회의를 통해 영세중립국이 추진되었지만 국내 합의 실패로 이루지 못했다. 중남미의 코스타리카는 1948년 독립 이후 1949년 평화헌법을 채택하고 군대를 해산해 국방비를 사회복지비로 돌리며 1983년 비무장 영세중립을 선언했다.
미국은 1776년 건국 초기부터 아메리카 대륙 안에서 영토를 확장하며 대륙 밖에서는 유럽과 식민지 경쟁을 벌이지 않는 고립주의 대외정책을 펼치다,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중립주의를 내세웠다. 그러나 1941년 일본의 침공을 받고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2021년 현재까지 세계 제1의 전쟁국가가 되었다.
2) 조선의 중립화 꿈
조선은 19세기 말부터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중립화가 제기되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1880년대 조선에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자 일본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의 중립화를 제안했는데 중국이 거부했다. 1900년대엔 일본의 영향력 확대에 러시아가 조선의 중립화를 제안했지만 조선을 통해 러시아를 치려던 일본이 받아들일 리 없었다.
고종 정부도 1900년부터 중립화를 추구했다. 1904년 조선이 중립국이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이 무시하고 러시아와의 전쟁을 일으킨 뒤 조선의 외교권과 군사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만들면서 조선의 중립은 약소국의 몸부림과 환상으로 끝났다.
3) 남한의 중립화 구상과 북한의 중립화 정책
남한 중립화는 미군정시대부터 미국 군부나 정부에 의해 몇 차례 제기되었다. 첫째, 미국과 소련이 1945년 한반도를 분단하고 점령한 상황에서, 1947년 미국군부는 만약 미국군대와 소련군대가 철수하면 한반도 영세중립을 보장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트루먼 행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둘째, 1953년 휴전협정을 앞두고 미국 국무부가 한반도 중립화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만들어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했다. 미국군부는 한반도 중립화가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셋째, 1960년 미국의 한 상원의원이 외교위원장에게 미국은 한반도통일 문제를 오스트리아식 중립화로 해결하자고 제안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채택되지 않았다. 넷째, 1976년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하며 관련 부처에 한반도 중립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군부가 주한미군 철수 자체를 거세게 반대했다.
남한 안에서는 1960년 4월혁명 직후부터 혁신정당과 사회단체, 언론인과 문인들이 한반도중립화 통일을 내세우며 활발하게 통일운동을 전개했다. 1961년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며 1970년대까지 중립화운동을 포함한 모든 통일운동을 억압했다. 이런 가운데 정치인으로는 김대중이 중립화에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적극적이었다. 1971년 신민당 대통령후보가 되어 주변 4대강국이 보장하는 통일한반도의 중립화 구상을 밝혔고, 1989년엔 한반도가 통일되면 오스트리아식 영세중립국으로 가게되리라 전망했다. 1999년엔 <한반도중립화 연구소>와 <영세중립 통일협의회>가 출범해 다양한 연구활동을 펼쳐왔다. 2020년엔 <한반도중립화를 추진하는사람들>이란 시민운동단체가 들어서 2021년 3월 1일 ‘한반도 영세중립화 선언’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고 했다.
북한은 당과 정부 차원에서 중립화에 매우 적극적이다. 1980년부터 이른바 연방제통일 방안인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에 중립국가로의 통일을 강조해왔다. “어떠한 정치 군사적 동맹이나 쁠럭에도 가담하지 않는 중립국가” 또는 “어느 대국에도 기울지 않는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며 중립적인 통일국가”가 되는 것이 필연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3. 남한 중립화의 필요성과 군사동맹의 폐해
우리가 영세중립을 이루어야 할 이유는 부질없이 끔찍한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다. 남한은 주변 강대국들의 침공에 의한 전쟁보다 미국과의 군사동맹에 따른 전쟁의 가능성이 크다. 이미 두 번이나 참전했다. 1960년대에 베트남 독립을 방해하고 통일을 반대하며 일으킨 미국의 침략전쟁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크게 도왔다. 2000년대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거세게 반대하고 비난했던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도 뛰어들었다.
미국처럼 전쟁을 많이 해본 나라도 없고, 좋아하는 나라도 없으며, 잘 하는 나라도 없다. 미국은 전쟁을 통해 나라를 세웠고, 영토를 확장했으며, 초강대국이 되었고, 세계패권을 유지해왔다. 1776년 독립선언 이후 2020년까지 244년 가운데 무려 220년 이상 전쟁을 치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만 살펴보면 세계 각지에 약 1,000곳의 군사기지를 운영하며, 150개 이상 지역에서 200개 넘는 전쟁에 개입해왔다. 이토록 호전적인 국가와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강화하면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남한이 영세중립을 이루려면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하고 한미 군사동맹을 폐기해야 한다. 중립의 기본 조건이 “어느 나라에도 군사기지나 군사물자를 제공하지 않고, 어떤 국가와도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역할과 필요성 그리고 득실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 남한의 안보이익에 기여하는가 미국의 안보이익에 기여하는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가 불안을 야기하는가, 한반도 통일에 도움이 되는가 방해가 되는가, 미국 때문에 남한이 전쟁을 피하는가 전쟁에 휘말리는가.....
주한미군은 본디 1953년 7월 정전협정 직후 맺어진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멈추거나 잠시 쉬기로 한 상태에서 전쟁이 재개될 것에 대비해 미군이 머물러있기로 한 것이다. 냉전시대 미국의 반공정책으로 소련의 팽창과 공산주의 확장을 저지하고 봉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북한보다 크게 뒤떨어진 남한에 더 절실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세계적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의 국가이익과 정책목표가 달라지면서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성격과 역할도 바뀌었다. 명목적으로는 북한의 남침을 막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급속하게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기 위한 것이다. 휴전선 근처의 미군부대를 서해안 평택으로 옮기로 성주에 고고도미사일방어망 (싸드, THAAD)을 배치한 배경이다.
탈냉전시대에 이렇게 달라진 한반도 안팎의 안보 환경에서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 남한에게도 지속적으로 필요할까. 전혀 아니다.
첫째,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은 남북관계 진전과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고 있다. 해마다 서너 번 대규모로 열리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북한의 극심한 반발과 한반도 긴장을 불러온다. 참고로 2018-20년 남한의 군사력은 세계 6위, 국방비는 8-10위, GDP대비 군비지출은 5위, 무기수출액은 10위, GDP는 10-12위 등으로 군사력과 경제력이 세계 최상위 5% 안팎에 속한다. 북한은 군사비를 미국의 1/100 또는 남한의 1/10보다 적게 쓰면서도 러시아나 중국 군대와 단 한 번도 연합훈련을 벌인 적이 없다. 미국의 핵 위협에 맞서며 남한에 대한 재래식 군사력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핵무기 개발이나 미사일 시험은 ‘도발’로 비난받는다.
남한은 북한과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화해협력하며 평화통일로 나아가기 원하지만 미국은 종전선언조차 거부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반대한다. 한반도에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정착되면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할 법적 명분이 약해지고 없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외정책 제1목표인 중국 견제와 봉쇄를 위해서는 주한미군 유지와 한미동맹 강화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한반도에서 전쟁 종식과 비핵화를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가 남한에 필요한 이유다.
둘째,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은 한국의 경제번영에도 걸림돌이다. 중국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미국에겐 패권 도전국이 되었지만 한국에겐 최대 무역상대국이 되었다. 한국과 중국의 교역량은 2003년 한일 교역량을 넘어서고, 2004년부터 한미 교역량을 초과했으며, 2009년부터는 한중 무역량이 한미 무역량의 두 배 이상 많아졌다.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남한의 전체 교역량 가운데 약 1/4을 중국이 차지하고, 전체 무역흑자 가운데 적어도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거두고 있다. 또한 2017년 주한미군의 싸드 배치 이전엔 한국방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한미군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려는 미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강화하면 한국의 경제이익에 얼마나 큰 손실을 안겨주겠는가.
4.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전장화
1) 중국의 급성장과 목표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하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 (WTO)에 가입해, 2010년대 초반까지 무려 30년 이상 연평균 10%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2012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무역대국이 되었으며, 2014년엔 미국의 구매력 GDP도 추월했다.
이러한 급속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1990년대부터 국방비를 크게 늘려왔다. 2000년대부터는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연평균 12% 안팎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2010년부터는 미국을 제외한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 군사강국들보다 두 배 이상의 군비를 지출해왔다.
미국에 맞서 해양 전력을 본격적으로 증강시키며 대만해협을 포함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개입을 무력화하는 작전을 세워놓았다. ‘접근반대 및 지역거부 (反介入/区域拒止)’ 전략으로, 중국과 가까운 바다에서는 미국 함대의 접근을 막고, 조금 더 먼 바다에서는 미국 함대의 작전을 방해하겠다는 내용이다.
중국은 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모든 인민이 함께 부강해지는 ‘대동 (大同) 사회’를 이룩하고, 세계일류 군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전 세계를 육로와 해로로 연결하는 ‘일대일로 (一帶一路)’ 정책을 바탕으로 ‘중국의 꿈 (中國夢)’과 아울러 ‘강한 군대의 꿈 (强軍夢)’도 이루겠다는 것이다.
2) 미국의 중국 견제와 포위
미국은 1991년 소련 해체 직후부터 ‘새로운 경쟁국의 재등장’을 막기 위해 대외정책 및 국방전략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해왔다. 1993-2000년 클린턴 정부는 중국을 겨냥해 일본과 안보공동선언을 발표하고, 일본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했다. 2001-2008년 아들 부쉬 정부는 일본의 재무장을 막고 있는 ‘평화헌법’을 수정해 정상적 군대를 가질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도록 촉구하면서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도록 지원했다. 2009-2016년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 회귀 (Pivot to Asia)’ 또는 ‘아시아 재균형 (Asia Rebalancing)’ 정책을 전개하며 한.미.일 3각공조를 강화했다. 그 일환으로 나온 게 한일 위안부재협상, 한일 군사정보교류협정 (GSOMIA), 남한내 싸드배치 결정 등이었다. 2017-2020년 트럼프 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전개하며 미국.일본.인도.호주 4자협력을 강조했다. 경제적으로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인도-태평양 4국에 뉴질랜드.한국.베트남 3국을 더한 ‘경제번영 네트워크 (EPN)’를 추진하기도 하고,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의 G7에 인도.러시아.한국.호주 4개국을 추가한 G11 회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2021년 들어선 바이든 정부는 정권인수 과정에서부터 민주주의 정상회담, 동맹 강화, 인권 중시, 독재정부 대처 등을 내세우며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겠다는 대외정책을 다듬어왔다. 2021년 3월 백악관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 중간지침 (Interim National Security Strategic Guidance)’을 통해서는 ‘대외정책의 최대 급선무’인 중국 견제와 포위를 위해 미국의 ‘최대 전략자산 (America’s greatest strategic asset)’인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 및 호주, 일본, 한국과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만을 지지하고, 홍콩, 신장, 티벳에서 민주주의, 인권,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3) 미국과 중국의 전쟁터 한국
이와 같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은 급속하게 성장해온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기 위해 이미 네 가지 전쟁을 벌여왔다. 첫째, 중국에 대한 연간 3,700억 달러 안팎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무역전쟁이다. 둘째, 5세대 이동통신 및 인공지능 분야에서 중국의 우위를 저지하기 위한 기술전쟁이다. 셋째, 중국공산당 독재를 비난하고 홍콩 민주화 및 신장과 티벳의 인권보장 그리고 대만 독립을 옹호하며 중국을 폄하하고 비난하는 이념전쟁이다. 넷째, 중국의 동중국해를 통한 태평양 진출과 남중국해를 통한 인도양 진출을 봉쇄하기 위한 영해전쟁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와 포위 전략은 급속도로 성장해온 중국이 서서히 쇠퇴하는 미국을 따라잡을 때까지 치열하게 지속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2050년 무렵까지 적어도 20-30년간 그치지 않으리라는 말이다. 이런 가운데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그리고 대만해협에서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이를 무력화하기 위한 중국의 ‘접근반대 및 지역거부’ 전략이 충돌하면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19세기 청일전쟁과 20세기 러일전쟁에 이어 21세기 미중전쟁에서도 한반도는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는 미국군대의 가장 크고 가장 가까운 해외기지가 평택에 있고, 중국을 감시하며 겨냥하는 미군의 가장 가까운 미사일방어망이 성주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이 한국을 제1폭격 지역과 대상으로 삼을 게 뻔하지 않은가.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때문에 한국이 자동적으로 전쟁에 휘말리게 되리라는 뜻이다.
5. 한반도 영세중립 통일의 길
탈냉전시대 미국의 중국 견제와 포위 전략은 한반도 안팎의 정세를 지난날 냉전시대와 비슷한 안보환경으로 되돌리고 있다. 미국-일본-남한의 3국공조와 중국-러시아-북한의 3국협력이 맞서는 ‘신냉전’ 형국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 진전을 막으며 한반도 분단을 지속시킬 뿐만 아니라 남한을 전쟁터로 만들 수도 있다. 우리가 주한미군을 될수록 빨리 내보내고 한미동맹에서 벗어나 한반도 중립화와 평화통일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한국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를 주장하면 ‘친북좌빨’로 간주되고 ‘반미종북’으로 낙인찍히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 받을 수도 있다. 미국이 스스로 돌아갈 리 없고 한국이 먼저 내보내기도 어려운 것이다. 국민의당과 이른바 ‘조.중.동’이 대표하는 한국의 보수극우 집단은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이 남침해 적화통일을 이룰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에 대한 사대와 굴종 및 북한에 대한 왜곡과 편견이 결합된 냉전인식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는커녕 소규모 감축도 거세게 반대하며 한미동맹 해체는커녕 조금의 완화와 갈등에도 두려움을 느낀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연기나 축소에도 반발하고, 한국의 작전통제권 환수도 거부하며, 종전선언조차 반대하지 않은가.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국가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대와 굴종에서 벗어나 자주를 추구하고 군비확장과 전쟁을 거부하며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건전한 시민세력이 나서야 한다. 앞에서 밝혔듯, 세계 최상위 5% 안팎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닌 남한의 자주성 회복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적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종전선언부터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를 주장하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영세중립을 내세우기엔 그 의미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조차 반대하는 ‘수구꼴통’ 세력이 강하지만, 전쟁을 끝내자는 호소와 주장엔 반발하거나 거부할 명분이 적지 않겠는가. 종전선언이 이루어지면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테고, 평화협정과 영세중립 운동이 힘을 얻게 되리라 기대한다.
이와 함께 미국이 과거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하려고 준비할 때마다 남한 중립화와 연계한 사실을 고려하고, ‘북핵문제’가 풀려야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다는 남한의 여론을 감안해, 주한미군 철수와 ‘북한 비핵화’를 동시에 이루는 전략도 필요하다. 참고로, 미국과 남한은 ‘북한 비핵화’만 강조하는 경향이 큰데 북한과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해왔다.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도 한반도 전 지역에서 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적대 관계를 해소하는 ‘실질적 종전’과 ‘미국의 핵위협’과 ‘북한의 핵무기’가 없어지는 ‘한반도 비핵화’였다. 따라서 미국과 남한이 원하는 북한 비핵화와 북한과 중국이 원하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고받는 것이 실현 가능성도 높고 바람직하다.
주한미군이 나가고 한미동맹이 폐기되어 남한이 중립화를 이루면 남북한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를 통한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영세중립을 선언하는 것 역시 실현 가능성도 높고 바람직하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중립화 연방제 통일을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부산시의회 남북교류협력특별위원회 주최 ‘한반도 영세중립화통일을 위한 모색’ 강연 원고 (2021년 3월 8일 부산광역시의회 중회의실)
이재봉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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