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6

한국문학이 그린 똥의 얼굴(2): 『분례기』 재론

 1. 들어가며

한국문학이 그린 똥의 얼굴(2): 『분례기』 재론*

방영웅의 『분례기』(1967)는 그보다 40여 년 전인 1925년에 최서해가 그러했듯, “혜성처럼”(김 동인) 출현했다. 출산 당시 뒷간의 똥더미 위에 태어나 이름이 ‘똥예’인 한 여성의 비극적 운명 을 그린 『분례기』가 창간된 지 일년 남짓 된―이후 오랜 시간 한국의 문학장과 사상계를 주도 할―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에 3회에 걸쳐 연재되고, 연재가 끝난 즉시 『창비』 편집인인 백낙청의 “우리말로 쓰여진 가장 훌륭한 작품 가운데 하나”1), “『창작과 비평』 2년 반의 가장 뜻깊은 수확”2)이라는 등의 극찬과 함께 “문단적 사회적 이슈”3)로 부각되었던 사실은 널리 알 려진 바와 같다. 그러나 또한 알다시피, 이 신인 작가에게 쏟아진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70 년대의 급변하는 사회적 상황이 이 작품의 비평적 효용성을 감소시켰을 터인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작품의 의미를 충분히 탐사할 새도 없이 매우 제한된 상투적인 주제만으로 논의를 마감하고 말았던 것은 여러모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분례기』가 다시 비평적 조명을 받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 주로 60년대 문학을 문학사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의 한 과정으로 서였다. 『분례기』에 관한 당대의 비평이나 담론이 2000년대의 시점에서 소환되면서 『분례기』 해석에도 많은 흥미로운 논점들이 제기되었다. 논의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분례기』를 둘러싼 논의의 갈래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분례기』에 관한 모든 비평의 기점이자 준거점이 된 백낙청의 평론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잡지의 「편집후기」라는 특이한 형식으로 쓰여진(「창작과 비평 2년 반」. 이하 「분례기론」), 짧지 않은 길이에 논점도 복잡 한 이 평론의 내용을 1) 농촌소설로서의 「분례기론」 2) 근대화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분례기 론」 3) 리얼리즘의 성취로서의 「분례기론」 ―이렇게 세 가지 토픽으로 나누어 살펴보려 한다. 동시에 이 토픽과 관련된 여러 논의들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분례기』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의 코드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분례기』 해석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다.

2. 의도적 오독: 농촌소설로서의 「분례기론」

“『분례기』=농촌소설”이라는 공식은 『분례기』 해석의 가장 지배적인 코드인데, 위에서 말했

듯 이 공식은 백낙청의 첫 평론에서 기초가 놓였다. 다음 구절이 그것이다.

* 이 글은 「한국문학이 그린 똥의 얼굴(1): 「분지」와 「똥바다」를 중심으로」 (『상허학보』, 65, 2022)에 이어지는 2부이다. 본 논문 전체의 목적이나 취지에 대해서는 1부 참조.

1) 백낙청, 「작단시감―올 문단 최대 수확 ‘분례기’」, 동아일보, 1967. 12. 19.

2) 백낙청, 「창작과 비평 2년 반」, 『창작과 비평』, 창작과 비평사, 1968, 여름호. 368쪽.

3) “분례기를 하나의 문단적 내지 사회적 이슈로까지 삼자고 먼저 나선 것은 필자 자신”이라고 백낙청은

말한다 (위의 글, 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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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작가 자신의 의도가 어떠하였든, 그리고 이 작품에 단 한 명의 진짜 농삿군이 나오든 안 나오든 『糞禮記』는 우리 문학에서 드물게 보는 훌륭한 농촌소설이라 불러서 별 잘 못이 없을 것이다. 春園의 『흙』이나 民村의 『故鄕』에 비해 예술적으로 우월할 뿐 아니라 시대 현실의 反映度 역시 제 나름으로 손색이 없다. (374-375쪽)

“농삿군이 나오든 안 나오든 『분례기』는 훌륭한 농촌소설”이라는 주장은 기이하다. 더욱 기 이한 것은 그런 주장의 근거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라는 접속사 앞의 서술 들이 그것을 말해 줄 법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이 부분은 『분례기』가 보여주는 “건강과 생명 의 승리”에 대해 말한 뒤, “사람이 사는 것이 결국은 그냥 사는 것이지만 또 그냥 사는 것만 일 수도 없음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은 참다운 예술이 하는 최고의 작업”이라는, 그 자 체로는 나무랄 데 없는 통찰을 담은 발언과 함께 “그러므로 『분례기』는 훌륭한 농촌소설”이라 는, 그것도 이광수의 『흙』이나 이기영의 『고향』 같은 한국 근대문학의 고전적 정전을 능가하 는 작품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결국 ‘농민이 나오든 안 나오든 『분례기』는 농촌소설’이라고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의문을 서둘러 봉쇄하기라도 하듯, 그는 『흙』과 『고향』의 권위를 끌어온다. 『분례 기』가 과연 『흙』이나 『고향』에 맞설 만한 작품인가 하는 의문 이전에, 『분례기』의 세계는 그 작품들과 비교하거나 우열을 논할 필요가 전혀 없는 완전히 이질적인 세계라는 사실에 주의하 면 이 대목은 매우 문제적이다. 백낙청과의 대담에서 선우휘가 『분례기』를 가리켜 “김동인의 「감자」라든가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라든가 또는 김유정의 어느 단편의 세계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고 한 지적은4) 정곡을 찌른 것이다. 극단적 환경에 처한 비천한 인물들의 운명적 파멸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이른바 자연주의 소설과 도시 지식인의 계몽적 농촌개량 소설 사이 의 거리가 얼마나 먼 것인지, 『분례기』가 그중 어디에 가까운 것인지 백낙청이 몰랐을 리는 없다.

더구나, “『분례기』의 세계에는 역사적 시간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분명히 해방 몇 년 뒤 의 이야기지만 당시 한국 농촌의 큰 사건이라 할 농지개혁이 어느 인물의 지나가는 말에 한 번 오르는 법도 없고 이때가 6.25 사변 직전 아니면 바로 당시쯤 되리라고 짐작이 가는데도 이에 대해서도 일언반구가 없다”는 점을 이 작품의 “한계”로 지적하면서, 곧이어 “시대 현실의 반영도(反映度) 역시 제 나름으로 손색이 없다”라고 말하는 데에 이르면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 에 없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지만, 시대 현실을 손색없이 반영하고 있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농촌도 없고 농민도 없지만 훌륭한 농촌소설이다’, ‘역사적 시간 이 없지만 시대 현실을 반영한다’ 같은 일종의 모순어법을 그가 굳이 구사하는 이유는 무엇일 까? 다음 구절에 그 답이 있다.

『糞禮記』에서 역사가 빠지고 도시가 빠진 것은 차라리 역사와 도시의 과오인 것이다. [...] 교 통·통신 시설의 발달과 마을마다의 앰프 장치와 〈농촌 근대화〉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농 촌과 도시는 1930년대보다 훨씬 서로 떨어진―거익 남남처럼 되어버린―세계라 할 수 있다.

4) 백낙청, 「작가 선우휘와 마주 앉다」, 『백낙청 회화록』 1, 창작과 비평사, 2007,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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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糞禮記』의 농촌이 기형적인 것은 바로 서울이라는 기형적인 도시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똥 예가 사는 시골의 畸型性이 서울과의 완전한 단절로 특징지어지는 것은 서울의 기형성이 농촌 과의 유기척 유대의 결여에 기인하는 것과 정확히 대응되는 것이다. [...] 오늘의 서울을 비롯한 수많은 후진국 도시들은 [18세기 중국의 매판상인들처럼] 우리 본래의 터전과는 현저한 간격을 두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면에는 석서방과 영철과 똥예의 모습을 그냥 지닌 채 그들 나름의 건강과 미덕은 오히려 잃어버린 우리의 〈근대화〉한 도회인들이 『糞禮記』 속의 狂症을 남의 일로 안다면 그야말로 맑은 정신을 잃은 증세다. (375쪽)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인 레토릭으로 감싸인 위의 진술을 보다 명료하게 요약하자면, ⓵ 『분 례기』의 농촌은 기형적이다. ⓶ 서울이 농촌과의 유기적 유대를 상실함으로써 기형적인 도시 가 되었고 그것이 또 농촌의 기형성을 초래했다. ⓷ 『분례기』는 그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⓸ 이런 기형적 근대화 속에서 원래는 농민들처럼 건강함과 미덕을 지니고 있었으나 근대화 과정 에서 그것을 잃어버린 오늘의 도시인들, 그리고 “서울에 의한 농촌경제의 수탈과 매스콤의 전 파(電波)와 활자 그리고 여성잡지의 원색 화보들을 통한 서울로부터의 집요한 정신 교란 작전 에” 휘말린 농민들 모두 똥예처럼 미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논리적 비약을 무릅쓰고 백 낙청이 『분례기』를 ‘훌륭한 농촌소설’이라고 강변한5) 이유는 여기에 있다. 즉, ⓵~⓸의 논리가 성립하기 위해서 『분례기』는 ‘농촌소설이어야’ 했던 것이다. 왜 그래야 했나? 서둘러 말하면, 『분례기』를 거점으로 60년대 후반의 개발독재와 자본주의 근대화에 대한 문학적 저항의 전선 (戰線)을 구축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다음 절에서 다룬다).

백낙청의 해석 이후 『분례기』에 관한 비평은 대체로 70년대 중반까지 ‘『분례기』=농촌소설’ 의 공식을 증명하거나 모호함을 메꾸는 데에 집중되었다. 대표적인 논자는 염무웅과 신경림이 다. 1970년에 발표된 장문의 평론에서 염무웅은 농촌 수탈과 착취를 기반으로 한 근대화가 도 시와 농촌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가에 관해 긴 역사적·사회과학적 분석을 펄친 뒤, “자본주의 적 제(諸)관계는 농촌에 침투해서 근로농민을 자본주의의 노예로 변조하고 농촌을 자본주의적 도시의 반(半)식민지의 지위로 떨어뜨린다”는 한 농경제학자의 주장과 함께, “비대해가는 도시 가 있음으로 빈사의 지경에서 허덕이는 허약한 농촌”이 있다고 말한다. “약삭빠른 도시인들이 우글거림으로 해서 시골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따뜻한 인정과 소박한 유대관계를 팽개치게 된 다. [...] 이 무서운 기형성은 도시와 농촌을 딴 세상처럼 멀리 떼어놓는다.” 방영웅의 『분례 기』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최근 농촌문학의 부진을 넘어서 ‘비약적 성과’를 보여 주었다는 것이 염무웅의 주장이다.6)

신경림의 평론 역시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초래한 한국 농촌의 기형적 상황을 설명하는 전반

5) 1975년의 글에서 그는 “『분례기』가 시골을 배경으로 했고 짙은 토속적 정취를 담고 있었던 탓에 때로 는 농촌작가로 꼽히기도 하지만 그의 문학이 농민문학이 아니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명백한 것이었다” 고 말한다. 이 말이 “『분례기』는 농민문학이 아니다”라는 뜻인지 “『분례기』는 농민문학이지만 방영웅 의 문학 전체는 농민문학이 아니다”라는 뜻인지는 모호하다. 어쨌거나 ‘농촌의 기형성은 서울의 기형 성 탓’이며 『분례기』는 그것을 반영한 소설이라는 논리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백낙청, 「민족문학 의 현단계」,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II, 창작과 비평사, 1985. 40쪽).

6) 염무웅, 「농촌현실과 오늘의 문학」, 『창작과 비평』, 1970, 봄, 4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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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그런 현실을 반영한 농촌소설들을 검토하는 후반부로 나뉜다. 일제의 토지조사 사업으로 시작된 “한국 농촌의 파괴”는 해방 후 식량정책의 실패, 농지개혁의 불철저성으로 인해 “빈곤 의 악순환”을 이루고, 미국 잉여농산물의 수입에 따른 “자급경제의 종언”과 “영세농의 피폐화” 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을 한국문학이 어떻게 반영했는가를 검토하면서 신 경림은 기존의 “농촌문학에 대한 반성”을 하게끔 한 작가로 방영웅의 이름을 언급한다.7)

염무웅과 신경림의 평론은 직접적으로 『분례기』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분례기』를 농촌소 설로 규정하고 앞서 말한 백낙청의 ⓵~⓸의 논리를 보완하고 있다. 즉, 백낙청이 다소 모호하 게 말한 ‘도시와 농촌의 유기적 유대의 결여’라든가 ‘도시와 농촌의 기형성’이라는 것이 여기 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분례기』에 관한 논의는 70년대 중반 이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농촌문학에 관한 비평이나 학위 논문들에서는 여전히 『분례기』가 농촌문학 의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로 거론되고 또 위의 내용들이 가장 보편적인 준거점이 되어 있는 것 도 사실이다.8)

논점은 『분례기』가 농촌소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아니다. 초점은 『창비』의 필진들이 공유 하고 있는 『분례기』에 대한 다분히 의도적인 ‘오독(誤讀)’이다. 작품의 초입에 이미 “해방이 되 고 이삼년이 지난”9) 시간, 예산 읍내에서 가까운 “호롱골”이라는 장소가 특정되어 있는데도 모든 논자들은 이 작품 내 시공간을 철저히 무시한다. 백낙청이 ‘해방 직후의 이야기인데도 농지개혁을 비롯한 당대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가 없는 점’이 『분례기』의 ‘한계’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시대 현실을 손색없이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그가 말하는 ‘시대 현 실’은 ‘매스컴의 전파와 활자에 의한 정신적 교란’을 겪고 있는 60년대 후반의 농촌 현실이다. 염무웅 역시 『분례기』를 통해 60년대 한국 농촌과 농민의 기형성을 읽는다. 설마 1940년대의 한국 농촌이 ‘매스컴의 전파로 농민의 정신이 교란될 정도’라든가, 서울의 자본주의적 근대화 가 ‘농민을 자본주의의 노예로 변조시킬 정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요컨대, 이들 은 『분례기』가 발표된 60년대 후반의 현실을 작품 내 시간인 40년대 후반에 투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오독이지만, 이것만으로 이들의 해석을 오독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평한 처사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분례기』에서 묘사되고 있는 생활상은 굳이 ‘40년대 예산읍 근처의 특 정 마을’을 배경으로 읽지 않고, 가령 서울 변두리 어느 동네의 1930년대 혹은 60년대의 세태 를 그린 소설로 보아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분례기』의 배경을 60년대의 현실로 바꾸어 읽으면 『분례기』는 근대화로 인한 농촌의 기형성을 반영한 소설이 되 는 것일까? 문제는 여기에 있다.

『창비』의 논자들처럼 『분례기』를 (40년대가 아닌) 60년대 농촌의 기형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읽으려면 그 기형성이 무엇인지, 그것이 서울의 기형성과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현실이 『분례기』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 았다. 설명할 필요 없이 누구나 현실에서 목격하는 상식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고 실제로 그렇 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른 산업화의 급속한 진행과 농촌인구의

7) 신경림, 「농촌현실과 농민문학」, 『창작과 비평』, 1972, 여름, 271~278/285쪽. 8) 신경림 편, 『농민문학론』, 온누리, 1983, 참조.

9) 방영웅, 『분례기』, 중앙일보사, 198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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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에 따른 서울의 비대화 등 나날의 삶에서 피부로 느끼는 현실만큼 생생한 것은 없었을 터 이고, 그러니 『분례기』가 실감나게 그려내는 “너절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의 삶”10) 그 자체가 당대 농촌 현실의 기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흔하디흔한 ‘너절 한 인간들’의 이야기가 특정한 장소(서울/농촌)와 특정한 시간(1940년대~1960년대)의 특수한 반영 (농촌문제)이라고 주장하려면 그에 합당한 근거들이 제시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너절한 삶”이 농촌의 기형성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창비』 필진의 논지를 종 합해서 추측하자면, 농촌의 기형성이란 ⓵ 농촌경제의 파탄에 따른 농민 생활의 빈곤 ⓶ 생활 문화와 의식의 전근대성(게으름, 술과 도박, 가부장적 질서,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과 폭력) ⓷ 도시/ 농촌의 격차에 따른 근대적 환경의 열악함(생활환경의 불결, 개인위생 및 청결의 문제, 근대적 제도 나 시설의 미비) ⓸ 도시문화의 유입에 따른 농민적 ‘건강성’의 파괴 ―이런 것들로 정리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순서는 단지 논의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그러면 『분례기』에는 이 런 현실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

첫째, 농민 생활의 빈곤 문제를 보자. 주인공 ‘똥예’라는 이름의 유래, 죽으로 끼니를 잇는 똥예네의 곤궁한 정경, 그리고 “백치, 소경, 벙어리” 등으로 이루어진 이웃 철봉네의 그로테스 크한 형상 등, 서사 도입부의 강렬한 자극적 묘사는 이 소설 전체에 드리워질 비참한 가난의 그림자를 예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분례기』 안에 빈곤한 농촌 생활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초가집 이엉을 잇지 못해 비가 줄줄 새는 집은 “오십여호”가 모여 사는 호 롱골 마을에서 똥예네 집이 유일하고, “저녁에 풀떼기 한 그릇씩 먹고” 아침에 한 이불 아래 나란히 누워 “초라한 몰골”을 드러내는 것도 똥예네 뿐이다. 그렇다고 기아 상태로 내몰린 “빈사의 지경”(염무웅)은 아니다. 노름방 개평꾼으로 소일하는 똥예 부친 석서방이 어쩌다 운이 좋아 한몫 잡으면 쌀밥도 배불리 먹고 고기도 먹는다. 요컨대, 똥예네의 빈곤은 호롱골 주민들 이나 똥예의 시집인 노랑녀집에 견주어 예외적이며, 그 예외성은 똥예가 겪어야 할 비참한 운 명의 징표일 수는 있어도 소설 내 인물들의 일반적인 처지와는 거리가 멀다.

시선을 또 하나의 주무대인 노랑녀집과 예산 읍내로 돌려보자. 노랑녀집의 여유로운 살림살 이와 예산 읍내의 번창함에 대한 빈번한 묘사는 소설의 도입부에서 각인된 빈곤의 이미지를 가볍게 지워버린다. 읍내 번화가인 “본정통”에는 “극장, 양복점, 철물점, 자전거포, 인력거 정 류장, 중국 비단 상점, 음식점” 등의 “목조 이층이나 단층으로 된 건물들이 양쪽으로 죽 늘어 서” 있고, “군청, 경찰서, 읍사무소, 세무서, 은행, 성당, 교회, 버스 대합실, 농업학교, 국민학 교” 등이 있는 읍내에서 “역전으로 나가는 신작로를 따라가면 실과학교, 제사회사, 전매지청”

10)

11)

있다.11) 시집간 똥예는 동네 여자들처럼 “머리 파마”를 하고 싶어하고 노인들은 저녁이면

백낙청, 「창작과 비평 2년 반」, 373쪽. 그는 ‘너절한’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선우휘와의 대담에 서도 『분례기』의 “너절한 장면들”,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시골 사람들이 사는 데에 있어서 한없이 너절하면서도 도외시할 수 없고 또 실제로 어떤 생생한 것들이 담겨 있기도 한 이런 요소들”, “방영 웅 씨의 작품에서 너절한 요소들을 좋게 평가하는 것은 [...] 너절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 우리 시 대의 단면”이 “포착”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등의 발언을 한다. ‘너절함’이 꼭 ‘기형성’을 뜻하지는 않겠 지만 그나마 짐작할 수 있는 설명은 이것이 전부다. (「작가 선우휘와 마주 앉다」, 36-37쪽).

예산은 한국 최초의 지방은행인 호서은행(1913), 제사공장과 제사학교의 설립(1926), ‘예산 사과“로 널 리 알려진 과수 농업이나 담배 농사의 발달 등으로 식민지기에는 도청 소재지인 공주를 제치고 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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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둑 가에 밀대방석을 깔고 앉아 시조가락을 읊는다.” 밤이면 “불빛이 환한 본정통”의 “밝 은 전등이 달린” “극장 안에는 사람들이 와글거린다.” 노랑녀집과 울타리를 맞대고 있는, “멋 쟁이 젊은이나 돈 많은 늙은이가 기생들을 옆에 앉히고 호화판으로 노는 요릿집인 조선관”에 는 날마다 손님이 끊일 새가 없다. 개울 건너편에는 백씨네 큰 과수원이 있다. 석서방 부부의 대화에 등장하는 예산 장날은 “포목점, 떡전, 대장간, 쇠전, 옹기전, 싸전, 푸줏간, 어물전” 등 이 펼쳐지는 활기찬 공간이다. 이 장터에서 국밥 가게를 열고 있고 “밭도 몇백 평” 갖고 있는 노랑녀집은 살림이 유족할 뿐 아니라 인심도 후하다. 석서방은 아무 때나 자기 집처럼 노랑녀 집에서 밥을 먹고, 거리를 떠도는 광인 옥화도 노랑녀네 장가게에서 잠을 자고 그 집에서 밥 을 먹는다. 제정신 아닌 상태로 출산을 하고 속곳바람으로 가랑이에 피가 말라붙은 채 악취를 풍기며 돌아다니는 옥화를 씻기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히도록 똥예에게 분부하는 사람도 노랑녀 다. 도시의 수탈에 의한 농촌경제의 파탄을 유추할 수 있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노랑녀집에서 지척 거리인 호롱골의 사정은 어떤가? 대부분의 가호(家戶)가 농업에 종사할 터이지만 농사 현장이나 농사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그려지는 법은 없고, 똥예네처럼 궁핍한 상황도 묘사되지 않는다. 모녀 단둘이 사는 봉순네의 형편이 어렵기는 하지만 똥예네 만큼은 아니고, 무엇보다 이웃 마을의 훤칠한 총각과 혼인을 앞둔 봉순이의 행복한 일상은 똥예의 부 러움을 산다. (강간을 당하고 자살함으로써 무대에서 곧 사라지는 봉순의 소설 내적 역할은 매우 중요 하다. 이 문제는 뒤에 다룬다.) 호롱골의 풍요와 마을 공동체의 안정된 유대관계를 완벽하게 보여 주는 것은 ‘상여(喪輿) 잔치’ 장면이다. 다음 장면을 보자.

호롱골에선 벌써부터 계획했던 새 상여를 이제야 겨우 장만했다. 쌀이나 잡곡을 한 되씩 낸 집 도 있는가 하면 대나무안집이나 최참봉네선 쌀 두 가마니씩을 선선히 내놓았다. 이렇게 동네에 서 갹출한 곡식과 가난한 이웃 동네에 팔아버린 헌 상여 값을 합치면 새 상여를 장만하고도 얼마간의 여분이 있었다. 이것으로 무얼 할까 하는 동네 사람들의 중론 끝에 결국 상여집까지 새로 짓기로 합의가 되어 전에 있던 상여집을 헐어버리고 바로 그 자리에 반듯한 상여집을 새 로 지어 놓았던 것이다.

“예산군 내서는 우리 동네 생여가 젤 좋다구. 낼 생여잔치 헐 때 보라구 얼마나 근사한가. 정 말 멋있지.”

석서방의 기분은 금세 밝아졌다. 상여를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 모양이다. (134쪽)

전통사회에서는 “마을 상여가 있고 그것을 써서 상을 치를 수 있는 것 자체가 사실상 ‘호 사’였다. [...] 마을에서 상여를 마련하는 일은 주민들의 염원 중 하나였다. 하나의 마을로 독립 된 격을 갖추려면, 그리고 재원만 마련된다면, 마을 상여를 장만하는 것은 일종의 당위로 여겨 졌다.” 따라서 “격을 갖춘 하나의 마을이 된다는 것은 또한 하나의 마을 상여를 가지는 일이 기도했고,이를할수없으면같은처지인이웃마을과힘을합쳐야했다.”12) 상여를“생각만

경제권의 중심지가 되었고, 해방 직후까지 경제적으로 매우 활기찬 지역이었다. 『한국의 발견―충청남

도』, 뿌리깊은 나무, 1983, 189-190쪽.

12) 안승택, 「근현대 향촌사회에서 상여를 메던 ‘아랫것들’과 공동체의 ‘살갗’: 경기 남부의 사례」, 『한국

문화인류학』, 한국문화인류학회, 2019, 7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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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신이 나는” 석서방의 심정은 이로써 이해할 수 있다. 한편 호롱골 마을 상여의 재원은, 쌀 두 가마니를 낸 부잣집도 있지만, 동네 사람 모두가 조금씩 갹출한 곡식을 바탕으로 “가난 한 이웃 마을”에 헌 상여를 판 돈으로 마련되었다. 돈이 남아서 상여를 보관하는 ‘상여집’까지 새로 짓기로 하였고 이 모든 일은 “동네 사람들의 중론 끝에” 결정되었다. 이 간단한 정보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호롱골은 마을 상여를 주민들이 모은 기금으로 장만할 만큼 유 족한 마을이라는 것, 둘째 마을의 공사(公事)를 합의에 의해 결정하고 수행할 만큼의 결속된 질서가 유지되고 있고 그 질서를 깨뜨릴 어떤 내부적 갈등이나 분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다.13)

상여 잔치는 과연 석서방의 들뜬 기대를 충족시킬 만하다. 지글지글 타는 횃불이 환하게 비 치는 넓은 마당, 마당이나 축대 위, 밭둑 위에서 잔치를 구경하는 마을의 남녀노소들, 마당 한 가운데 놓인 “대궐처럼 으리으리한 꽃상여”, 제상(祭床) 위에 차려진 온갖 과일과 떡, 김이 펑 펑 나는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동태국,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삼십여명이나 되는 농악대”가 울려대는 “꽹가리, 징, 북, 소고, 장구, 자바리, 피리 소리”, 밤하늘에 퍼지는 풍성한 음식과 술 의 냄새, “씹는 소리, 마시는 소리, 웃는 소리,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찬 마당, 떡과 과일로 볼 이 메인 채 이리저리 뛰는 아이들, 서로 상여를 타겠다고 싸우는 노인들, 왁자한 웃음소리, 제 사를 마치고 요령 소리와 함께 상두꾼들에 들려 서서히 일어나는 꽃상여, 사람들의 탄성, 딸랑 거리는 요령소리, 구성진 상여소리와 함께 떠나가는 꽃상여, 상여 뒤를 따르는 남자들 ―『분례 기』 전체에서 가장 감각적이고 사실적인, 7페이지에 걸친 상여 잔치의 섬세하면서도 아름다운 묘사는 전통적 농민 축제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특히 상여의 형상을 묘사하는 부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민속학적 자료로도 쓰일 법하다.)

40년대든 60년대든 『분례기』 안에서 당대 농촌경제의 파탄을 읽으려는 독자는 풍요와 안정 의 감각에 싸인 농촌 생활의 이런 묘사 앞에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백낙청이 ‘한계’로 지 적했듯이, 『분례기』에는 당시의 핵심적인 농촌문제, 즉 “식량정책의 실패, 농지개혁의 불철저 성으로 인해 빈곤의 악순환”(신경림)을 거듭한 40년대 후반~50년대 초 한국 농촌의 일반적 사 정이14)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상식과 크게 어긋나는 현실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

 13)

14)

1960년대 심지어는 1980년대까지도 한국 촌락공동체 내부의 핵심적인 갈등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봉 건적 반상(班常) 차별이었다. 많은 농촌 마을이 여전히 반촌/민촌으로 나뉘어 있었고 상여를 메는 일 에서 온갖 잡역(雜役)에 이르기까지 양반집에 대한 상민의 무상 부역(賦役)이 인습적으로 행해지고 그 것이 많은 갈등과 분규를 낳았다. (위의 글 참조). 상여 메기 이외 각종 노역에 대해서는 이만갑, 『한 국 농촌의 사회구조』, 한국연구도서관, 1960. (이 책의 요약본은 「1950년대 한국 농촌의 사회구조」, 박 지향, 김철, 김일영, 이영훈 엮음,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2, 책세상, 2006).

40년대 후반 도시 및 농촌의 식량 사정에 관한 실증적 연구는 최영묵, 「미군정의 식량생산과 수급정 책」, 『역사와 현실』 22, 한국역사연구회, 1996. 이 글에서 인용한 1949년 『경제연감』 및 당시 조사에 따르면, “해방 후 수삼년간 농민은 물론이요 도시민까지 식생활을 만족히 하고 식량 이외에 濫費하고 도 식량부족이란 문제가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그럼에도 미군정의 미곡 공출과 배급 정책의 실패는 “도시 민중의 9할 이상이 파탄에 陷”하여 46년 ‘10월 대구 사건’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저항 및 “농촌 빈농의 심각한 식량문제”를 초래하였다. 한편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1960년대의 식량 사정도 크게 나 아지지 않았고 ‘보릿고개’가 연례적으로 반복되었다. 5·16 군사정권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 고”의 해결을 ‘혁명공약’의 하나로 내걸었다. 그러나 식량 확보를 위한 양곡 증산계획은 1967~68년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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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곳은 언제 어디의 농촌인가?

둘째,『분례기』속의 생활문화나 농민의식의 전근대성에 대해 살펴보자. 식민지기 이래 수많

은 농촌 활동가들과 농촌문학이 주제로 삼아왔던 농민의 불합리한 생활 태도와 전근대적 의식 은 『분례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똥예의 남편 영철은 도박과 술에 절어있고, 석서방 역시 영철에게 개평을 얻어 도박으로 소일한다. 석서방댁은 너무 게을러서 겨울에는 “찬 옷을 입기가 싫고 더우면 더워서 옷 입기가 싫다”며 거의 벗은 채로 지내고, “세수도 몇일 만에 한 번씩 하고”, 이이들이 굶든 말든 관심이 없다. 그러나 석서방댁의 게으름은 『분례기』 전체에서 극히 예외적이다. 똥예도 매일같이 나뭇짐을 하러 다니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느라고 쉴 새가 없다. 똥예의 시집인 노랑녀집은 장날이면 장가게 영업 준비를 위해 온 식구가 눈코 뜰 새 없 이 바쁘다. 하다못해 석서방마저 바쁘다. 영철의 뒤를 따라 노름방을 들락거리기 바쁘고 어쩌 다 한몫 잡으면 저 혼자 탕진하지 않고 처자식을 위해 식량과 옷가지를 사들인다. 한편 농한 기 농촌에서의 도박은 오래된 악습이지만 농촌에서만 도박이 성행했던 것은 아니고, 또 『분례 기』 속의 도박은 이기영의 『서화(鼠火)』(1933)에서처럼 소설의 핵심 모티브도 아니다.

남편의 아내 구타를 비롯한 가정폭력과 가부장적 질서 역시 『분례기』 속에 만연해 있지만 이것 역시 농촌문제가 아니며, 근대화의 부산물은 더욱 아니다. 가부장제와 관련하여 노랑녀집 은 대단히 흥미로운 장면들을 보여준다. 노랑녀집의 가장은 “조병주”라는 이름의 문패가 말해 주듯 조서방이며 노랑녀는 그의 아내다. 그러나 실제적인 가장은 노랑녀다. 그녀는 가업인 장 가게를 운영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한다. 노랑녀집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손님은 덕산온천 이나 수덕사 등지로 “다꾸시”를 타고 놀러다니기 좋아하는 기생 출신의 동네 “아우들”인데, 그 들이 꽃놀이를 가자고 노랑녀에게 몰려와 조를 때 노랑녀가 허락을 구하는 것은 가장인 조서 방이 아니라 그녀의 “샛서방”인 채서방이다. 애교 많은 바람둥이인 채서방은 노랑녀와 한 집 에 동거하다시피 하며 아침부터 밤까지 노랑녀의 곁에 붙어있다. 노랑녀의 딸인 동평이는 채 서방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본부(本夫)인 조서방은 새끼꼬기, 거름 나르기, 지붕 고치기, 밭일 등 새벽부터 밤중까지 일만 하는 “소 같은 사내다.” “조서방 은 자기를 옆에 앉히고 두 년놈이 발딱 까진 몹쓸 짓을 해도 가만히 있을 작자다. ‘주인집 마 님이 서방을 갖고 노시는데 뭘...’하는 식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궂은 가사노동을 도맡 아 하는 남편(조서방), 중요한 집안일(가게 운영, 아들의 결혼)을 결정하는 아내(노랑녀), 그녀의 옆을 떠나지 않는 “샛서방”(채서방), 이 기이한 그림은 전통적 가부장 질서(조용히 가사에 전념 하면서 ‘시앗’을 보아도 투기(妬忌)하지 않는 믿음직한 ‘조강지처’, 손님을 맞이하고 가정을 통솔하는 남 편, 집 가까이 혹은 한 집안에 기거하는 곰살궂은 ‘첩)의 정확한 역상(逆像)이다. 그러나 아무 의미 없는 역상이다. 마치 남녀의 역할을 바꾸어 보여주는 소극(笑劇)이 가부장제의 인습을 뒤집고 희화화함으로써 순간적인 웃음과 쾌감을 주는 듯 하지만 일시적인 쾌감에 그칠 뿐 오히려 가 부장 질서의 재강화(“남편과 아내를 바꿔보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워!”)로 이어지는 것처럼, 노랑녀 집의 일상 역시 남녀가 바뀌었을 뿐 가부장제의 질서나 억압 자체는 전혀 훼손되지 않는(아들 존중, 딸/며느리에 대한 극심한 차별, 조서방의 희생, 똥예에 대한 영철의 폭력 등) 가족관계를 재현한

재 극심한 가뭄으로 난관에 부딪혔다. (https://theme.archives.go.kr/next/foodProduct/view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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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런데 가부장적 질서 역시 농촌문제가 아니다. 요컨대, 『분례기』 속에 그려진 생활문화의 전근대성은 농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산업화에 따른 농촌 착취의 결과는 더욱 아니라는 말이다.

셋째, 생활환경의 불결함이나 개인위생의 불철저함에 대해 보자. 『분례기』를 오래 기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마도 이 작품 안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똥, 오줌, 변소, 성기(性器) 등에 관한 노골적 묘사일 것이다. 똥 누러 갔다가 변소 바닥의 똥무더기 위에 아이를 낳은 석 서방댁 이야기, 그래서 이름이 ‘똥예’인 주인공이 산에 나무하러 가서 나무와 바위, 풀, 꽃 등 과 대화를 나누며 말라버린 검은 똥의 냄새를 맡는 장면,15) “방금 끌려온 황소”의 “빨간 똥구 멍이 이쁘게 벌어지며 검은 것이 칠드럭 땅에 떨어”지고 “넓적한 개떡처럼 변하며 김을 모락 모락” 내는, “소똥과 돼지똥이 널려있고 땅이 핏자국으로 얼룩진” 마을 안 도축장 묘사 등에 서 독자는 소설의 전체 공간을 덮고 있는 불결함에 충격을 받는다. 특히 부엌이며 천장이며 집안 곳곳에서 쥐들이 난동을 부리는 시집의 돼지우리 옆 변소에서 똥을 누던 똥예가 똥독 아 래서 자기를 쳐다보는 쥐를 발견하고 거름 바가지로 똥독을 휘저으며 쥐를 공격하는 장면에 이르면 역겨운 불결의 이미지는 극대화된다. 『분례기』는 똥에서 시작해서 똥으로 끝나는 이야 기인 듯한 인상을 독자는 받는다.

똥예네 식구들의 불결한 신체도 세밀하게 묘사된다. 하루의 가사노동을 마친 똥예의 마지막 일과는 동생들의 “걸레 같은 옷” 속에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보리 만한 이”와 “하얀 서 캐”, 자기 저고리의 “실밥에 끼어 있는 통통한 이”를 잡는 것이다. 한편 시집가기 전날 똥예 는 “손잡이가 달린 거울을 뒷문 문설주에 거꾸로 기대 놓고 [...] 얼레빗을 집어들고 머리를 빗 는다. 구정물이 머리꼬리로 흘러내리는 것을 손으로 쭉 훑어버린다.” 이런 정경들에서 독자가 농촌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가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개인 신체의 불결함이나 위생 문제도 똥 예네 식구들 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똥예네의 사례를 다른 인물들의 경우로 일반화할 근거 도 없다. 시집가서 의식주의 걱정이 없게 된 똥예는 장롱 가득한 고운 옷도 마음대로 꺼내입 고 화장도 하는 만큼 땟국물이 흐르는 머리를 그대로 하고 있을 리는 없다. 그런가 하면 “밥 을 해서 굴려도 흙 하나 묻지 않을 만큼 반드르르한 부엌 바닥”과 “환한 무늬의 벽지를 깨끗 이 발라놓은 커다란 이칸방”을 지닌 용팔 부부의 집은 그 집이 소와 돼지의 똥 그리고 핏자국 으로 얼룩진 도축장 옆에 있다는 사실과 대비되어 기괴스러울 정도의 서늘한 청결감을 전달한 다. 용팔의 처 병춘을 언제고 목욕하러 가는 길에 데리고 가서 반드시 벗은 몸을 확인하고야 말겠다고 빨래터에 모여 수다를 떠는 동네 과부들의 대화 속에서도 불결한 개인위생을 연상하 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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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은말라서검다.똥예는또다른자신을발견한듯몹시반갑다.바짝그앞에다가앉아한참동 안 똥을 쳐다본다. 똥예는 코를 대본다. 냄새가 없다. 아무 준비, 생명도 없다. 마른 풀들만 우거진 속 에 외로이 앉아 있는 똥”(14쪽).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나무, 꽃, 풀 등과 교감하면서 똥을 들여다보며 냄새를 맡기까지 하는 똥예는 자연에 결박된 존재로서의 야성 적·원시적 이미지를 형성하고, 이것은 자본주의 문명의 어지러운 질주에 신물 난 도시 지식인-독자의 리비도적(libidinal) 충동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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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는 하지만 어쨌든 똥오줌과 관련된 불결함의 묘사는 당대 생활환경의 사실적 반영이 라고 해도 좋을 것이디. 논점은 그것이 농촌의 특수성, 즉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보여주는 것 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도시 근대화의 성과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60년대 후반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분뇨나 오수(汚水) 처리에 관한 한 서울의 상황은 농촌에 비해 결 코 나을 바가 없었다. 1950~70년대 서울의 인분 수거와 처리 현황을 면밀하게 검토한 사회학 자 소준철에 따르면, 1970년대 초반까지도 “똥오줌을 처리하는 일은 서울의 운명과 직결된 문 제였다.”16) 1950년대 143만 명이던 서울 인구는 1960년에 244만 명, 1967년에 350만여 명, 1970년 550만 명으로 급증했고 이 인구가 방출하는 분뇨의 양은 처리능력의 한계를 초과했다. 불완전한 하수 시설은 생활 하수와 공업폐수 및 재래식 변소에서의 분뇨를 처리하기에 너무나 미흡했고 서울의 중심하천인 청계천과 한강은 수백만 인구가 쏟아내는 똥오줌을 그대로 받아 냈다.17) 한 마디로, “서울은 똥으로 넘쳐났다.”18) 인분 비료를 사용하는 농촌에 비해 서울 시 민은 훨씬 더 직접적 상태의 똥오줌에 노출되어 있었다. 60년대 들어 인분 비료의 사용이 줄 어들고 화학비료의 소비가 증가함으로써 인분의 재활용 경로가 좁아짐에 따라 ‘갈 데 없는 똥’은 농촌에서도 처치 곤란한 오물이 되었다. 이런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분례기』에 흘러 넘치는 똥오줌의 불결한 이미지가 당대 도시에 대비되는 농촌 생활환경의 낙후성을 반영한다 고 말할 수는 없다.

(넷째 농민의 ‘건강성’에 관한 문제는 뒤에 논한다). 위에서 보듯, 『분례기』에는 어떤 농촌의 이야 기도 어떤 도시의 이야기도 없으며, 어떤 시대 현실의 반영도 없으며, 어떤 농촌 착취의 흔적 도 존재하지 않는다. 『창비』의 평론가들이 그 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럼에도 그들은 『분례기』의 서사를 ‘자본주의적 수탈과 착취로 기형화한 한국 농촌’의 전형으 로 읽었다. 이 오독의 의도는 무엇일까?

3. 잘못된 내기: 저항으로서의 「분례기론」

권보드래는 그 의도를 한 마디로 집약해 제시한다. 즉, 『분례기』는 “발견되어야만 했던 텍스 트”19)라는 것이다. 『분례기』는 “몰역사적인 무명성(無名性) 혹은 불결성의 세계를 통해 빈곤이 순치될 수 없는 현실이자 개념임을 웅변”함으로써, “아직 문학적 자기인식을 충분히 정련하지 못했던” 60년대 후반 『창비』 편집진의 “열광”을 끌어내었다. “개발독재 정권의 근대화론에 대 한 대결의식이 주조음”이었던 『창비』의 지향이 “외래 취향 같은 것을 청산”하고 “토착화 과 정”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던 시점에, 『분례기』가 보여주는 “불결성의 그로테스크한 육체 그 자 체”는 “상승-초월 욕망 자체의 차단으로 ‘개발’을 봉쇄하고자 하는” “정치적 불온성”으로 받아

16) 소준철, 「1953~1973, 서울의 똥」, 『똥의 인문학』, 역사비평사, 2021, 57쪽.

17) 1969년에는 한강에 방류한 똥오줌 때문에 물고기들이 폐사하여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고, 1980년대에

도 ‘분뇨 처분장’의 저장량이 넘쳐 분뇨의 일부를 한강에 그대로 방류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현실

이었다. 위의 글, 66-67쪽.

18) 위의 글, 57쪽.

19) 권보드래, 「4월의 문학혁명, 근대화론과의 대결」, 『한국문학연구』 39, 한국문학연구소, 2010, 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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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졌다는 것이다. “대다수 대중이 개발독재에 투항하고” “문학 역시 대안적 경로를 마련하 지 못하고 있던” 시기에, “방영웅의 원시주의”는 “개발로 순치될 수 없는 ‘불결’의 육체성을 고스란히 전시함으로써 조국 근대화의 선전술을 타격”하는 것으로 비쳤고, 그런 의미에서 『창 비』와 『분례기』의 만남은 “필연적”이었으며 『분례기』는 ‘발견되어야만 했던 텍스트’였다는 것 이다. 이런 해석을 통해 권보드래는 『분례기』의 문학사적 의미를 “1960년대와 70년대를 매개 하는 역할”로 정리한다. 즉, 김지하의 「오적」과 황석영의 「객지」, 신경림의 「농무」 같은 70년 대의 새로운 “지렛대를 발견했을 때 『분례기』의 그로테스크한 불결성과 몰역사성은 ‘미달’로 보일 수밖에 없”었고, 『분례기』의 역사적 의미는 다했다는 것이다.

김영찬은 권보드래의 이러한 논리가 “실로 매력적”이긴 하지만, “백낙청의 의도나 전체적인 논지와는 동떨어진 정반대의 맥락을 구성하고 있다”20)고 비판한다. 김영찬에 따르면, 백낙청은 『분례기』의 ‘불결성’을 ‘저항의 지점’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양될 필요가 너무도 역력한 삶”21)의 한 국면, “즉 근대적 시민의식으로 정화되고 극복되어야 할 기형적인 것”22)으로 보았 다. 그런 ‘너절한 기형성’을 지양하고 순치하는 방안으로서 백낙청은 “도시와 농촌의 유기적 유대”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따라서, 『분례기』를 통해 『창비』의 논자들이 ‘개발주의에 대 한 저항’의 거점을 찾으려 했다고 의미 부여하는 것은 그들의 논지와는 전혀 상반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분례기』는『창비』편집진에 의해 ‘발견되어야만 했던 텍스트’ 가 아니라 오히려 ‘오해된 텍스트’였다.”23)

권보드래가 백낙청과 『창비』의 의도를 과잉해석한다면 김영찬은 그것을 축소하거나 혹은 초 점을 바꾸는 듯이 보인다. 백낙청 특유의 모호하고 복합적인 레토릭은 단선적(單線的) 해석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지만, 『분례기』에 관한 그의 논지가 예의 “너절한 삶”으로부터 단지 ‘반 (反)개발주의’의 ‘정치적 불온성’만을 읽어내는 데에 중점이 놓여있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김영찬이 지적하듯, 『분례기』가 드러내는 삶의 “기형성”은 마땅히 “지양”될 필요가 있음을 백 낙청 스스로 언명하기 때문에도 그러려니와, ‘불결한 육체의 전시’가 ‘조국 근대화의 선전술에 대한 타격’이라는 해석은 정반대의 경우, 즉 불결성의 전시가 오히려 근대화의 필연성과 개발 의 욕망을 한층 부추길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성급한 비약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백낙청이 말하는 “도시와 농촌의 유기적 유대”라는 문제의식이 반 (反)개발주의의 의미를 전혀 내포하지 않은 것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그 말 자체가 이미 도 시와 농촌의 유기적 유대가 파괴된 ‘기형적 근대화’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논의 가 염무웅, 신경림 같은 『창비』 필진들로 확대되면서, 앞서 살폈듯이, 『분례기』를 포함한 농촌 문학을 지렛대로 당대 박정희 정권의 ‘조국 근대화’에 대한 전투적인 대결의식이 전면화되는

20) 김영찬, 「반복과 종언 혹은 1960년대 문학/문화연구의 문제들」, 『사이間SAI』,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2013, 654/655쪽.

21) 백낙청, 앞의 글, 374쪽.

22) 김영찬, 앞의 글, 654쪽.

23) 위의 글, 655쪽. 이 ‘오해’(또는 의도적 오독)의 바탕에도 역시, 이 글의 1부에서 논의한, 한국 근대화

의 ‘타율성’ 및 자본주의 발전의 ‘기형성’에 대한 4·19 세대의 비판적 역사의식, 즉 ‘식민지 수탈론’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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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을 보면, 백낙청을 비롯한 『창비』 논자들의 『분례기』 독해에 반(反)개발주의의 정치적 의 도가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문제는 그런 의도가 제대로 과녁을 맞혔느냐에 있을 터인데, 『분례기』에 대한 백낙청의 비 평을 꼼꼼히 분석하는 또 다른 논문에서 김영찬은 반(反)개발주의적 해석을 일부 수용하면서 그것을 보다 본질적인 차원으로 확대한다. 그에 따르면, 백낙청의 궁극적 의도는 “뛰어난 예 술은 이미 그 자체가 정치적이며 그 정치성을 실현하는 유일한 최상의 방법이 다름 아닌 리얼 리즘”24)임을 논증하는 것이었다. “『분례기』에 대한 『창비』의 의도와 분별은 ‘리얼리즘’에 대한 담론적 구상과 처음부터 뗄 수 없이 결합된 것”이며, “그 ‘리얼리즘’은 1960년대 후반 한국의 근대와 개발주의에 대응하는 어떤 문학적 전략의 구상과 관련”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기형 적 근대화’에 대한 문학적 저항은 리얼리즘의 예술적 성취로 가능한 것이었고, 소설 『분례기』 는 그것을 입증하는 최상의 사례로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김영찬의 (다소 과격하지만 꽤 ‘매 력적인’) 비유에 따르면, “『분례기』는 한국적 근대화에 대응하는 미학적 실천으로서 리얼리즘의 한국적 가능성을 제기한 백낙청의 내기를 지탱해준 일종의 ‘판돈’이었다.”25) 나는 이 비유에 동감한다. 그런데 만일, ‘판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기’가 문제였다면? 그 ‘내기’ 자체가 잘못 벌어진 것이었다면?

4. “어쨌든 함께 사는 것이다”: 리얼리즘의 성취로서의 「분례기론」

백낙청은 『분례기』의 어떤 점을 가리켜 “춘원의 『흙』이나 민촌의 『고향』에 비해 예술적으로 우월”한 “놀라운 예술적 에너지”를 지닌 작품이라고 한 것일까? 위에서 말했듯, 김영찬은 백 낙청의 「분례기론」을 농촌소설이나 반(反)개발주의와의 관련에서가 아니라 백낙청 자신의 리얼 리즘론을 설파하기 위한 하나의 이론적 전략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한다. “백낙청이 『분례기』에 서 보고 있는 리얼리즘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감’이다”라고 김영찬은 말한다. 예술이 란 것 자체가 “한 개인의 실감에서 우러나와 다른 개개인의 실감에 호소하는 것”26)이라든가, “리얼리즘 소설의 특징은 작품의 실감이 [...] 몇몇 사람만의 실감이 아니라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실감이 되고자 한다는 점”27)이라는 등 다른 글들에서의 진술에 비 추어 볼 때, 백낙청에게 있어 ‘실감’의 소통과 공유는 “예술의 본질을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 이자 “작품의 성취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28)이었고,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는 최상의 사례가 『분례기』였다는 것이다.

한편 백낙청의 말에 따르면, 『분례기』는 “한국의 시골뿐 아니라 한국 사람들 모두의 내부에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 사정없는 진단”으로서 그 ‘실감’은 “적확하고 밀도있는 언어”, “능 란한 토속어의 구사나 한국적 생활감정의 포착”, “우리말 하나하나가 적시적소에 살려져 있다

24) 김영찬, 「방영웅의 『분례기』와 백낙청의 리얼리즘」, 『겨레어문학』, 겨레어문학회, 2016, 56쪽. 25) 위의 글, 51쪽.

26) 백낙청,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창작과 비평사, 1978, 352쪽. 27) 백낙청, 「한국소설과 리얼리즘의 전망」, 위의 책, 239쪽.

28) 김영찬, 앞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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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실”29) 등에서 우러난다. 백낙청의 글 전반부는 이처럼 리얼리즘의 핵심적 특징으로서의 ‘실감’을 통한 『분례기』의 예술적 성취를 강조하는 진술들로 이루어져 있다. 위의 서술들로부 터 백낙청이 말하는 『분례기』의 ‘실감’이란 1) 몇몇 특수한 사람이 아닌 모든 한국 사람들에게 소통되고 공유되는 감정을 2) ‘치밀하고 정확한’ 사실적 묘사, 특히 ‘우리말’이나 ‘토속어’의 구사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30)

『분례기』에서 드러나는 ‘실감’의 효과를 통해 백낙청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 엇인지는 글의 후반부에서 명료해진다. 백낙청이 『분례기』에서 읽어내는 최대의 “예술적 성 과”는 한 마디로 작가와 인물들의 “건강함”이다. 백낙청에게 『분례기』는 “너절한 삶”들이 보 여주는 “건강과 생명의 승리”의 기록이다. 똥예가 구정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를 빗는 장면의 집요하고도 세심한 묘사, 콩조지가 옥화를 겁탈해 낳은 아이를 용팔의 집에 업둥이로 밀어넣 자 용팔이 도축장에서 선지피를 가져다 병춘의 허벅지와 방안 여기저기에 묻히면서 병춘이 해 산한 것처럼 꾸미는 장면 등을 가리켜 백낙청은 “한마디로 ‘건강하다’고 부르고 싶다”고 말한 다. “그것을 ‘건강’이 아니라 ‘병적인 것의 예술성’이니 ‘미학적 불건강’이니 하는 식으로 말하 는 것은 예술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그는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건강성’은 작가에게서만 아니라 주인공 똥예에게서도 보인다. 친구 봉순의 자살에 충격을 받아 죽기를 결심한 똥예가 용팔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용기와 희망을 얻는 장면이 그렇다. 한편 “능동적 역사창조라든가 사회적 발전에의 의지와는 절연된 채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을 그린 『분례기』의 서사는, “역사적 시간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회의 [...] 생태를 선명히 부각시키기 위한

 29) 30)

백낙청, 「창작과 비평 2년 반」, 369쪽. (이하 이 글의 인용은 따로 표시하지 않는다).

김영찬은 백낙청의 ‘실감’이란 용어가 “다소 소박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면서 “‘리얼리티’ 혹 은 삶과 현실에 대한 현실적 감각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거나, “사실주의적 기율에의 충실함 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라는 등으로 정리하고 더 이상의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앞의 글, 47/48쪽).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되는 실감”, “한국 사람들 모두의 내부에 존재하는 세계”라는 등의 말 이야말로 ‘실감’과는 거리가 멀다. 다분히 추상적·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이런 ‘실감’이 리얼리즘의 성 취를 가늠하는 기준이라면, 이것은 다음 대목에서 그가 로렌스를 빌어 말하듯, “객관적 실체”의 재현 이 진정한 예술의 사명이라는 그 자신의 논리와도 어긋나는 것이다. 특히, 『분례기』의 “실감”을 높이 는 요인 중 하나는 “현재형 서술법”인데, 그것은 “서구소설에서 배워온 게 아니라” “김동인이 과거형 서술법을 도입하기 전에 우리나라 설화와 소설들이 쓰던 현재형”이라는 발언은 문제가 많다. ‘김동인 이 과거형을 도입했다’는 널리 공유된 오래된 오해는 그렇다쳐도, ‘서구소설이 도입되기 이전 우리나 라 설화와 소설이 쓰던 현재형 서술법’이란 무슨 말인가? 백낙청은 ‘현재형/과거형’ 등 언어를 시제 (tense)나 품사 같은 근대문법 체계로 개념화하는 일이나, ‘우리말’ 혹은 ‘우리말의 순수성(예컨대, 토 속어)’ 등을 이상화함으로써 ‘국어’를 ‘발명’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투명하고 균질적인 (것처럼 보이 는) 문어(文語)에 의한 글쓰기 규범의 통일, 즉 근대적 언문일치체의 확립을 전제로 한 것이며, 그 언 문일치의 체계는 서구 및 “서구소설”로부터 왔다는 것, 다시 말해 애초부터 서구적 기원을 지닌 근대 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분례기』는 물론 『흙』, 『고향』 같은 소설의 ‘리얼 리즘’ 역시 이러한 언어의 근대적 전환 없이는 태어날 수 없다는 인식도 전무하다. 『분례기』를 통해 반(反)근대적 리얼리즘 문학의 거점을 확보하려는 백낙청 및 『창비』 논자들의 시도가 근대(화)에 대한 ‘관념적 거부’와 ‘실제적 수용’의 무의식적 혼재라는 양상으로 자주 귀결되는 것은 이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어의 근대적 기획, 즉 ‘국어의 발명’에 관한 총체적이면서도 정교한 논의는 김병문,

『<한글 마춤법 통일안> 성립사를 통해 본 근대의 언어사상사』, 뿌리와 이파리, 202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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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수단”으로서 “역사창조의 차원이 제거된 세계의 실상을 끔찍하리만큼 사정없이 보여준 다”는 것이다. 이것을 “『분례기』의 한계라 부를 수는 있어도 예술적 결함이랄 수는 없다”고 그는 말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백낙청은 “농사꾼이 나오든 안 나오든 『분례기』는 훌륭한 농촌소설”이라 는 예의 발언을 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보기에 ‘능동적 역사창조의 차원이 제거된 삶’, ‘광증으로 이어지기 전에 지양되어야 할 필요가 너무도 역력한 삶’은 농촌만이 아 니라 도시의 삶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역사적 시간’이 배제된 『분례기』 속 농촌의 삶은 근대화의 속도전이 벌어지는 현대 도시의 모습, 광증으로 치달을 것이 뻔한 도시인의 모 습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는 것이 백낙청의 『분례기』 독해의 핵심인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역사적 시간을 의식하지 못하는 어둠과 무지의 삶 속에서도 간직되고 있는 ‘시골 사람들’의 ‘건강한 생명력’ ―백낙청이 『분례기』의 ‘끔찍한 세계’ 속에서 읽어내고자 했던 것도 그것이었 다. 그가 ‘도시와 시골의 유기적 유대’를 그토록 강조했던 이유, 주인공의 광기로 끝을 맺는 작품의 결말을 그토록 불만스러워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나는 이 불만에 동의하지 않는 다. 지금부터 그 점을 살펴보자.

‘세잔느의 사과’라는 소제목 이하의 부분은 백낙청의 의도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면서 동시 에 그의 「분례기론」을 일관하는 논리의 소스(source)가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현대 프랑 스 미술은 세잔느에 이르러 비로소 진짜 실체, 말하자면 객관적 실체로 되돌아가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라는 D.H.로렌스의 에세이를 길게 인용하면서, “인간과 대지를 있는 그대로 보 는” 작가의 노력이 얼마나 “혁명적”인가를 강조한다. 그가 인용하는 로렌스에 따르면, “세잔느 의 사과는 사과에 개인적인 감정을 전혀 스며들이지 않고 사과가 그것대로의 독립된 실체로서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려는 최초의 본격적 기도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잔느가 열어젖힌 세계 를 이해하지 못하는 “산송장들”이다. “우리는 그림자밖에 모른다. [...] 우리의 본능과 직관은 죽어있고 절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의를 몸에 두른 채 걸어다니고 떠들고 먹고 웃고 생식하고 배설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해진다: 방영웅의 『분례기』에 열광하는 백낙청은 세잔느의 사과에 열광하는 로 렌스에 다름 아니다. “사과에 개인적인 감정을 전혀 스며들이지 않고 사과가 독립된 실체로서 존재하도록 내버려두는” 세잔느의 노력은, “너절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을 일체의 작가적 개입 없이 선명하고 정확하게” 그려내는 방영웅의 “용기”와 짝을 이룬다. 『분례기』가 이룬 예술적 성공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것을 “‘병적’이니 ‘불건강’이니 하는 식으로” 매도하는 한국 “문단 의 타성”은, “진짜 실체”를 보지 못하고 “그림자밖에 모르는” 유럽의 “산송장들”에 비견할 만 하다. “본능과 직관이 죽어있기 때문에” “진짜 실체”와 직면하면 “아파서 소리를 지르면서도” “수의를 몸에 두른 채 먹고 웃고 배설하고 있”는 “부르주아 송장들”에 대한 로렌스의 개탄은, “본래의 터전과는 현저한 간격을 두고” “저마다의 갯짐을 옆에 낀 채 외모는 번듯한 남녀시민 으로서 서울의 분주한 나날을 더욱 시끄럽고 어지럽게 만드는” 도시인들에 대한 백낙청의 한 탄과 공명한다.

문제는 세잔느의 사과나 방영웅의 『분례기』가 “진짜 실체”를 그린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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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는 번듯한 채 광증으로 치달을 게 뻔한(백) 산송장 같은 현대인은 본능과 직관을 상실한 채(로), 자기기만과 상투형에 사로잡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백) 이데아의 무덤 속 에 갇혀 있다(로)”는 로렌스-백낙청의 인식, 그리고 그 광증은 “두뇌가 아닌 몸의 본능(로), 너 절하기 짝이 없는 삶에 간직된 생명력과 건강(백)”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는 백낙청-로렌스의 시선, 문제는 여기에 있다.

백낙청-로렌스의 시선이 『분례기』 해석에 결정적으로 투영되었다는 사실은 1978년에 백낙 청이 로렌스의 장편 『무지개 Rainbow』에 관해 발표한 논문에서도 확인된다.31) 이 글은 로렌스 문학에 대한 자상한 해설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10년 전의 「분례기론」에서 별다른 설명없이 남 겨졌던 “역사창조”, “역사적 시간”, “건강한 생명력” 등의 말이 지닌 무게를 짐작케 하는 글이 기도 하다. 삼대(三代)에 걸친 주인공 가문의 삶을 그린 소설 『무지개』를 분석하는 이 글에서 끝없이 범람하는 (심한 경우에는 한 페이지에 예닐곱 번씩 반복되는) “창조적 삶”, “창조적 개인”, “창조적 행동” “창조적 모험” “역사적 시간” “역사창조” “건강한 생명력” 등의 어휘는 백낙청 이 로렌스를 빌어 『분례기』에서 무엇을 읽으려고 했던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그의 논지를 요 약하면 다음과 같다: 『무지개』 속 개별 인물들의 삶은 산업화의 진전과 전통사회의 쇠퇴라는 ‘역사적 시간’ 또는 ‘역사적 구조’의 산물이다. 등장인물들은 역사적 시간 속에서 각자 변화의 계기와 욕망에 따라 저마다의 성취와 좌절을 경험한다. 1세대가 겪는 ‘창조적 모험’에 이어 2 세대 역시 기존 사회에 대한 싸움을 통해 또 다른 성공과 실패, 즉 자기 나름의 ‘역사창조’를 행하고 3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이 진정한 ‘건강함’이자 ‘생명력’이다. “창조적 개인”이란 “온갖 기쁨과 괴로움의 체험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자기 이해에 도달하는” 인간을 가리킨다. 로렌스는 자주 “being”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는데 이것은 실존(existentia)이나 본질(essentia)이 아 니라 “삶다운 삶, 어떤 인간이나 개체가 가진 진정코 ‘그것답게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리얼 리즘 소설의 성패는 심리묘사나 줄거리가 아니라 “진정으로 삶다운 삶을 성취했는가, 그 본원 적인 ‘임’(being)의 차원에 도달했는가”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렌스의 『무 지개』는 주인공 어슐라(Ursula)의 ‘자기 극복’과 ‘재기’라는 사건(action)을 통해, “인류 전체를 위 한 갱생의 약속”, “인류 전체의 역사가 크게 방향전환을 하리라는 믿음과 희망”을 표현하는 진정한 리얼리즘 소설이다.

백낙청의 이러한 『무지개』 해석이 얼마나 타당한가는 지금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며, 또 나 자신은 그럴 능력도 없다.32) 하지만 백낙청이 『무지개』에서 읽어낸 ‘창조적 개인의 창조적 모

 31) 32)

백낙청, 「小說 “무지개”와 近代化의 문제」, 『창작과 비평』, 1978 여름, 241-270쪽.

이 글에서 백낙청은 『무지개』에 대한 기존의 비판들을 하나씩 논파한다. 로렌스의 사실주의·자연주의· 낭만주의·원시주의·신비주의적 경향을 들어 그를 “반리얼리즘 작가”로 비판하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모든 개별적 사건들이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 안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지개』는 관념소설·상징소설·알레고리도 아니다. 한편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들어 이 소설을 교양소설, 가족사 연대기 소설, 사회소설 등의 범주에 넣는 경향도, 루카치가 말하는 “자아와 세계의 구분 자체가 [...] 삶의 참모습을 망각한 피상적 인식”이라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로렌스 문학에 대한 통념적 “오해” 를 강하게 부정하는 백낙청의 이러한 견해는 이미 「시민문학론」(『창작과 비평』, 1969, 여름)에서도 개 진된 바 있다. 이 글에 따르면, 로렌스 소설은 “프리미티비즘이 아니고 현재 상태의 인간 및 인류사회 를 근본적으로 초극되어야 할 존재로 파악하지 못하는 모든 문명비판”에 대한 반비판이다. 로렌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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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을 통한 새로운 역사창조의 희망’이라는 리얼리즘 소설의 규준이 『분례기』 해석에 얼마나 타당한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백낙청의 말에 따르면, 『분례기』 속의 삶은 “사회적 발전의 의지와는 절연된 채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역사적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 “역사창조의 차원 이 제거된” 세계다. 그러나 그런 세계의 “끔찍한 실상”을 “사정없이” “있는 그대로” “정확하 게” 그려낸 작가의 솜씨야말로 “건강한 것”이며, 그런 뜻에서 『분례기』는 “정밀한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것이다.

‘역사창조’ ‘역사적 시간’ ‘건강한 생명력’ 등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가 여전히 모호 하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더 근본적인 의문들이 있다. 첫째, 그 “끔찍한” 세계를 보며 “역사 창조의 차원이 제거되었다”고 개탄하는 ‘그’는 누구이며, 그 ‘역사’란 누구의 어떤 역사인가? “시골 사람들”의 ‘너절하고 끔찍한’ 삶을 보면서 도시인이 잃어버린 ‘건강성’을 발견하는 ‘그’ 의 시선에, 식민지 원주민이나 자기 사회 내부의 하층민들에게서 근대 극복의 유토피아를 꿈 꾸던 (로렌스를 비롯한) 서구 제국의 예술가 및 식민지 지식인의 인종주의나 오리엔탈리즘의 그 림자가 어른거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아래 각주 38 이하 참조).

둘째, ‘인류 전체를 위한 갱생의 약속’과는 거리가 멀고, ‘기존 사회와의 싸움’을 벌이는 ‘창 조적 개인’이 출현할 여지도 없는 『분례기』의 어디에 ‘건강하고’ ‘정밀한’ 리얼리즘의 가능성 이 있는가? 백낙청의 『무지개』 해석에 따르면, 그 가능성은 개인의 일상생활과 집단의 습속을 역사적 시간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묘사하는 (로렌스 같이 위대한) 작가의 능력에서 나온다. (그리 고 아마도 이것이 범용한 자연주의 작품과 진정한 리얼리즘을 가르는 기준일 것이다). 『분례기』가 백낙 청이 제시하는 진정한 리얼리즘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그 ‘끔찍한 세계’ 안에서 한 ‘창조적 개 인’이 ‘창조적 모험’을 통해, 자기 나름의 성취면 성취 실패면 실패를 체험하고 ‘궁극적인 자 기 이해’에 도달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최소한의 소설 내적 근거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분례기』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 작가에게도 애초부터 그런 구상은 없었다는 것을 백낙청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터이다. 요컨대, 그가 제시하는 진정한 리얼리즘의 규준에 따른다면 『분례기』는 애초에 논의의 대상조차 될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해야 옳다.33) 그럼에도, 백낙청은

공학자의 원숙한 안목이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로 독자를 인도하는 모범적 사례로서 이 논문들 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성실한 독자라면, 백낙청이 “오해”라고 말하는 로렌스 비판론자들의 견해도 경청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로렌스 비판론에 따르면, 유럽 자본주의 사회의 타락과 합리주의 질서에 대한 로렌스의 혐오와 환멸은 기계문명에 물들지 않은 원초적 ‘본능’이나 ‘힘’에 대한 갈망으 로 이어졌다. 로렌스는 현대세계의 “타산적 권력의지”나 “두뇌적 의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진짜 건 강한 생명에의 의지와 리비도적 힘(libido-power)”이 살아 숨쉬는 세계를 꿈꾸었고, 그것은 특히 후기 의 이른바 ‘지도자 소설’, 즉 『아론의 지팡이』, 『캥거루』, 그리고 『날개돋친 뱀』 등에서처럼, 유럽 내 후진국(이태리)이나 유럽 바깥의 전근대적 식민지(호주, 맥시코) 사회를 무대로 유토피아의 건설을 몽 상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이 소설들에 나타나는 남근숭배, 가부장주의, 여성혐오, 권위주의, 파시 즘, 인종주의 등을 비판하는 연구들은 대단히 많다. 흔히 비(非)-파시스트 작가로 일컬어지는 로렌스, 헉슬리, 버지니아 울프 등의 작품에 자주 드러나는 “리비도적이며 관능화한 파시즘”의 이미지를 분석 하면서 서구 현대문학과 파시즘의 본질적 상관성을 밝히는 로라 프로스트(Laura Frost)의 학위논문 (“Fascism and Fantasy in Twentieth-Century Literature”, Columbia University, 1998)은 제3세계의 땅과 원주민을 ‘원시화·자연화’함으로써 예술적 혁신의 방법을 모색한 서구 예술의 경향을 로렌스가 대표한 다는 주장의 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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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례기』에서의 ‘역사적 시간의 배제’ ‘역사창조의 가능성의 결여’라는, 그 자신의 리얼리즘론 에서 보면 가장 치명적일 결함을 “결함이 아니라 한계”라고 주장하면서 『분례기』는 “정밀한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강조한다. 그 결과, 시종일관 뭔가 억지스럽고 부조화한 느낌을 버릴 수 없는 백낙청의 「분례기론」은 다음과 같은 납득하기 어려운 발언으로 이어진다.

시집을 잘못 왔다거나 시집오는 날 상여집에서 옷을 갈아입었다거나 마음을 붙였던 쥐가 죽고 저도 남편한테 몹시 맞았다고 해서 미칠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똥예가 미쳐서 떠나 버리는 것은 똥예 자신의 생명력의 어처구니없는 실종을 뜻할 뿐 아니라 작가가 그처럼 정성스럽게 그 리고 무자비하게 그려내었던 여러 인물들의 삶을 일거에 부정하는 것 (373쪽) (강조는 필자).

“미칠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라니! 남보기에는 하찮기 이를 데 없는 이유로 사람은 죽을 수 도 있고 미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렇게 죽거나 미친 사람에게는 남이 헤아릴 수 없는 그 나 름의 ‘리얼’이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이 발언은 “무자비하게” 무시한다. 결국 “실종”된 것은 똥예의 삶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언제나 임박한 이면(裏面)”이면서 언제나 “한없이 뒤로 물 러나는” 광기의 “아련한 본질”34)에 대한 그의 사유다. (광기에 대한 이런 ‘오만과 편견’에 관해서는 뒤에 논한다). “시집을 잘못 온 것”, “상여집에서 옷을 갈아입은 것”, “남편한테 몹시 맞은 것” 때문에 똥예는 미쳤다고 말하면, 똥예는 정말 ‘미치고 환장할’ 것이다. 이것은 거의 죽음에 이 를 정도로 극심한, 똥예의 실성의 직접적 원인인 남편의 폭력을 “시집을 잘못 왔다거나 상여 집에서 옷을 갈아입은” 일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다.35) 나중에 그는 “작품의 끝부분을 탓하는 것[은] 똥예와 광증의 상관성을 부인해서가 아니라 똥예를 광인으로 만드는 것이 그 상관성의 너무나 안일한 표현이기 때문”이라는, 위 발언의 과격성을 다소 완화하는 듯한 말을 덧붙인 다. 미칠 이유는 있었겠지만 미치는 것으로 끝낸 것은 잘못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끝 을 맺어야 했나? 이 지점에서 백낙청의 「분례기론」은 비평가의 이념과 주관이 작가와 작품을 계도(啓導)하고 지시하는 이른바 ‘지도비평’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33)

34) 35)

백낙청이 제시하는 기준에 근접하는 한국문학 작품은 염상섭의 『삼대』일 것이다. 백낙청은 『분례기』 의 ‘건강’은 『삼대』의 ‘건강’과는 “느낌이 다소 다르다”는 식으로 『삼대』를 스치듯 언급한다. 한 해 뒤의 「시민문학론」에서 그는 『삼대』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불철저한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으 로 평가한다. ‘소시민 문학’에 대한 대타의식 또는 백낙청 사상의 한 축으로 생각되는 어떤 종교적 이 상주의―그가 로렌스에 심취하는 이유도 될 법한―가 이러한 유보적 평가를 낳았을 것이다. 한편 『분 례기』는 김승옥의 작품세계와 가까우면서도 “소시민의 세계와는 완연히 다른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 준” “시민문학적 의의”를 지닌 작품으로 다시 강조된다. 『삼대』와 『분례기』의 이런 현격한 차별에서 그의 균형감각은 크게 흔들리는 듯하다.

미셸 푸코, 이규현 역, 『광기의 역사』, 나남, 2003, 315/684쪽.

소설의 내용에 비추어보면, 똥예는 시집을 잘못 왔다거나 상여집에서 옷을 갈아입었다고 비관하지 않

는다. 자신을 “버린 몸”이라고 생각하는 똥예는 상대가 썩 흡족하지는 않지만 시집을 가게 된 사실 자체를 기꺼워한다. 상여집에서 옷을 갈아입은 것도 그녀가 원해서 한 일이고, 그 사실에 우울해하는 것은 똥예의 부친인 석서방이다. 이 장면은 똥예의 비극을 예시(豫示)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 포석일 뿐 똥예의 감정이나 태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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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예는 미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천하고 너절하고 그러면서도 사 람이 사는 것임에는 틀림없는 삶을 온전히 물려받는 것이며, 그것은 또 실제로 그녀가 건강한 시절에 그랬듯 질병과 불구와 죄악과 죽음을 늘 가까이 두고, 미칠 수 있는 가능성도 늘 지척 에 느끼며 살아가는 것,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석서방 내외 같은 말도 안 되는 부모의 딸로서 사는 것이요 승봉夫妻와 철봉母子의 이웃으로 상여 타고 시집가고 상여 타고 저승 가 는 것이 더없는 꿈인 호롱골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며 읍내에서는 노랑녀·채영감·조서방·배 불뚝이 노파·동평이 그리고 물론 영철과 어쨌든 함께 사는 것이다. 미친년 옥화와 야릇한 일체 감마저 느끼는 것도 이런 삶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똥예와 옥화의 일체감 그리고 똥예와 용팔의 관계를 감안한다면 콩조지와 옥화의 사이에서 태어나 콩조지가 병춘에게 〈모종〉을 해주 는 용팔의 아들 무문이와도 핏줄이 닿는 셈이고 이 모든 인물들과 일종의 혈연관계에 얽혀 사 는 셈이 된다. (373-374쪽) (강조는 필자).

똥예는 미치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는 “말도 안 되는 부모의 딸”로서, “소경, 백치, 벙어리” 로 이루어진 “짐승” 같은 철봉이네의 이웃으로서, 폭력과 학대가 일상화된 시집의 며느리로서 “어쨌든 함께 사는 것”36)으로 그려져야 했다는 것이 백낙청의 주장이다. 그렇지 못한 것은 『분례기』 속 “모든 인물들의 삶을 일거에 부정하는” 잘못이라는 것이다. 특히 똥예-용팔-콩조 지-병춘-무문이가 “일종의 혈연관계”를 이루게 되었다는 ‘폭언’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백낙청은 용팔이 똥예와 “촌수도 알 수 없는 먼 친척”이라는, 특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기억 되지 않는 짧은 서술에는 유의하면서, 똥예의 삶과 운명을 결정짓는 서사의 핵심 모티브인 용 팔의 똥예 강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 대신 그는 분명치 않은 똥예와 용팔의 “혈연 관계”를 “감안”하여 똥예와 나머지 인물들과의 “혈연관계”를 상정한다. 그런데 콩조지와는 무 슨 혈연관계인가? “지랄병” 환자인 콩조지는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도축장의 백정들로부터 치 료를 빙자한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이면서, 병춘을 강간하려다 그녀의 거센 저항에 부딪쳐 포기하고, 만만한 상대인 옥화를 강간하여 임신케 하고는 출산일에 아이만 받아들고 산모인 옥화는 다 쓴 물건처럼 버리고 떠나는 교활하고 잔인한 가해자이기도 하다. 콩조지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애태우는 용팔·병춘 부부의 집에 갓난아이를 업둥이로 밀어넣고 용팔 부부는 기뻐하며 이 아이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하여 ‘무문이’라는 이름의 갓난아이를 매개로

36) ‘어쨌든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은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백낙청의 리얼리즘론을 지탱하는 중요한 관점으로 보인다. 작품의 ‘실감’은 “어쨌든 남과 함께 살고 있고 살아야만 하는 현실의 기준”에 맞아 야 한다는 또 다른 언급(「한국소설과 리얼리즘의 전망」)에서 그런 점이 엿보인다. 백낙청의 이러한 지 적은 작가에게 큰 영향을 끼친 듯하다. 아무 계기도 없이 불쑥 ‘함께 살아야 한다’는 식의 다짐을 외 우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혹은 그것을 말하는 것만이 소설의 의도인 것 같은 작품들이 나타난다. 도시 빈민의 ‘너절한 삶’을 묘사하는 「살아가는 이야기」(1974)라는 단편은 “그렇다.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 가는 것이다”라는 느닷없는 독백으로 끝나는데, 이 소설이 실린 단편집의 후기에서 작가는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리얼리즘”이라고 말한다. 친척의 상을 당해 잠시 귀향한 주인공의 회상을 그 린 스케치 형식의 소품인 「눈 속의 상여」(1985)라는 단편은, 여럿이 눈길 위로 상여를 밀고 올라가는 모습을 본 주인공이 이승만의 연설(‘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을 떠올리면서 “단결과 화합의 참 모습”에 감동하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이 결말 역시 너무나 돌발적이어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다. “어쨌든 함께 사는 삶을 그려야 한다”는 백낙청의 리얼리즘론이 작가에게 큰 심리적 부담으로 작 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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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화-콩조지-병춘-용팔-똥예-무문이 사이에 “일종의 혈연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말하자 면, 똥예에게는 이제 (“말도 안 되는”) 부모뿐 아니라 (강간으로 뒤얽힌) 또 다른 “핏줄”까지 생겼 는데 왜 미치는가, 미칠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그러니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어쨌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 (“말도 안 되는”) 혈족주의적 발상의 결론이다.37)

업둥이를 들이고서 해산방을 꾸미는 용팔 부부의 모습을 “건강한 생명력”의 표현으로 해석 하는 것이 진정성을 얻으려면 똥예, 병춘, 옥화 등의 여성이 당하는 온갖 형태의 폭력에 대한 성찰이 수반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분례기론」의 전체에 걸쳐 그는 단 한 번도 용팔, 영철, 콩조지를 비롯해 소설 내에 미만한 남성들의 폭력에 대해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온통 “죽음과 정신이상의 경지에 가까이 갔던 시련을 이겨냄으로써” “궁극적인 자기 이해에 도달한” “창조적 개인”의 “능동적 역사창조”라는 주제에 집중되어 있는 한편, 그 런 삶을 그려내지 못한 『분례기』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다.

백낙청을 비롯한 『창비』 논자들의 『분례기』 해석이 지닌 이런 성맹적(gender-blinded) 관점에 대한 “사정없는” 비판은 손유경, 김우영, 소영현에 의해 제기되었다. 손유경은 “민중의 건강 성”을 핵심요소로 하는 『창비』 민중문학론의 형이상학적 모순과 불투명성을 짚어내면서 “폭력 과 강간으로 얼룩진 『분례기』의 세계에서 원초적 생명력을 발견했다는 것은 결국 지식인의 자 기 구원에의 욕망을 폭로한 셈”38)이라고 지적한다. 김우영에 따르면, 『분례기』의 리얼리즘은 “‘리얼’이라는 명명으로 수행된 남성 작가와 비평가의 ‘픽션’”39)일 뿐이다. 『분례기』에서 농촌 현실의 전형성을 발견하려는 남성 비평가들은 소설 내 똥예를 비롯한 여성의 삶에는 눈을 감 는 대신,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건강한’ 농촌의 성(性)을 발견한다. 작가는 농촌 을 ‘리얼’하게 형상화한다는 명목하에 농촌 여성이 겪게 되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상황을 불 결함과 혐오로 자연화하여 형상화”하고, “비평가들은 불결함을 민중적 순수성과 순결함의 표 상으로, 도시의 퇴폐성과 다른 ‘건강한’ 것으로 이해”40)했다는 것이다. 백낙청의 「분례기론」 및 70년대 비평의 전체적 경향은 “폭력적 남성성으로 채워진 세계”를 “비평적 시야에 의해 건 강성으로 호명”41)하는 것이었다는 소영현의 지적 역시 정곡을 찌른다. 그녀가 주목하는 것은 “민중의 건강성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노동과 젠더의 재배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민족· 민중문학 안에서 여성의 노동은 개별적이고 일상적인 것으로 비가시화 하는 반면, 남성의 노 동은 민중의 주체성과 건강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각됨으로써 노동의 문학적 재현에서도 젠 더에 따른 위계적 분할이 고착되었다는 것이다.

 37)

38)

39)

40)

41)

“어쨌든 함께 살아야 한다”는 주장과 더불어, 똥예와 주변 인물들을 ‘핏줄’로 연결하는 이 발상은 ‘혈 연-가족-마을-사회-민족-국가’라는 연쇄적 관념의 자연성을 암시한다. 문제는 이 관념에 내포된 가부 장제의 가족 신화와 자본주의 윤리다. (아래 각주 47 참조).

손유경, 「현장과 육체-『창작과 비평』의 민중지향성 분석」, 『현대문학의 연구』, 한국문학연구학회, 2015, 55쪽.

김우영, 「초기 『창작과 비평』과 『분례기』의 의미」, 『한국현대문학연구』, 한국현대문학회, 2016, 396 쪽.

위의 글, 393-394쪽.

소영현, 「비평시대의 젠더적 기원과 그 불만―『분례기』에서 「객지」로, 노동 공간의 전환과 ‘노동(자) 남성성’의 구축」, 『대중서사연구』, 대중서사학회, 2018, 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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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에서 레이 초우(Rey Chow)는 제3세계의 땅과 인간들을 원시화함으로써 스스로를 ‘문명인’으로 위치 지우고 그 비문명 사회의 원시성과 생명력을 통해 문명사회의 질병을 치유 한다는 피카소, 고갱 등의 화가들과 조이스, 로렌스, 헨리 밀러 같은 작가들에게서 나타나는 서구 현대예술의 경향을 “원시적 열정”으로 명명한 바 있다.42) 주목할 것은 그녀의 비판이 서 구 예술의 제3세계에 대한 타자화만이 아니라, 제3세계 내부의 식민주의를 향하고 있다는 점 이다. 초우에 따르면, “중국의 근대문학은 중국 지식인이 자기 사회 내부의 억압받는 계급(특히 하층 여성)을 근대문학의 소재로 발견하고 원시화함으로써 확실하게 근대화되었다”.43) 한국 근 대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식민지 조선의 근대문학은 ‘원시적인 삶’의 형상으로 흘러넘친다. 식 민지의 남성-작가 엘리트들은 농촌의 하층 여성, 백치, 장애인, 매춘부 등의 ‘벌거벗은’ 육체를 형상화하고 한국 문학사는 이 비체(abject)들의 “너절한 삶”에 ‘민중의 건강성’이니 ‘생명력’이니 하는 등의 미적 가치를 부여하는 “틀에 박힌 문학사 서술”44)을 계속해 왔다.

이 문제는 ‘김동인이나 김유정의 세계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선우휘의 지적(각주 4)을 뿌리치고 『분례기』를 이광수의 『흙』이나 이기영의 『고향』과 같은 계열에 배치한 백낙청의 의 도가 부딪친 난관 혹은 모순과 관련된다. 백낙청이 『분례기』를 1920년대의 이른바 자연주의 문학에 대비하기를 꺼린 이유는 자연주의 소설이 운명이나 환경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삶의 이야기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똥예를 “운명의 인간”으로 보면서 그 “운명과 삶 자체의 허무함” 을 그리는 데에 집착하는 작가의 태도를 질책하는 대목에서 그 점을 엿볼 수 있다. 『분례기』 안의 불결성이나 외설적 묘사가 지닌 ‘건강함’을 상찬하면서 그는 (자연주의 소설에 대한 상투적 인 ‘건강성’ 담론과 자신의 그것은 다르다는 것을 암시라도 하듯) 뜻밖에 이상(李箱)의 ‘건강함’을 거 론한다.45) 그 밖에 그가 『분례기』의 건강함을 강조하기 위해 거론하는 작가와 작품은 이광수, 이기영, 염상섭, 홍명희 등의 『흙』, 『고향』, 『삼대』, 『林巨正』 같은 근대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고전으로 꼽히는 것들이며, 김동인이나 김유정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광수의 『흙』이야말로 ‘병든 도시(인) /건강한 농촌(민)’이라는 허구적 이분법을 기본 모티브로 하는 한국 농촌소설의 기원이자 전범이며, (이광수와 정면으로 대립하는 작가로 알려졌지 만 실은 이광수의 충실한 에피고넨에 지나지 않는) 이기영의 『고향』을 비롯한 농민소설 역시 그런 허구를 극단적으로 추구한 남성-지식인의 노스탤지어와 센티멘탈리즘이 끝없이 분출되는 신파

42) 43) 44)

45)

46)

무대일 뿐이다.46) 그뿐 아니라 이 소설들이 지향하는 농촌계몽은 가난과 무질서를 도덕적

레이 초우, 정재서 역, 『원시적 열정』, 이산, 2004, 참조.

위의 책, 43쪽.

“틀에 박힌 문학사 서술”이란 말은 레이 초우의 표현이다. (위의 책, 같은 곳). 김동인, 나도향, 현진 건, 김유정 소설 등에서의 여성 섹슈얼리티의 전유 양상에 대해서는 이혜령, 『한국소설과 골상학적 타 자들』, 소명출판, 2007, 17~44쪽.

이상의 건강함이 무엇인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한편 「시민문학론」에서 그는 이상을 삼일운동 이후 “최소한의 양심과 현실감각”을 보여준 “건전한 良識人”으로 높이 평가한다. 그것이 『분례기』의 건강 함과 어떻게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알다시피, 『흙』과 『고향』 모두 도시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귀향하여 농촌계몽에 헌신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도시는 죄악과 타락의 장소이며 농촌은 건강과 생명의 공간이라는 관념은 이 소설들을 일 관하는 남성-엘리트-작가-주인공의 움직일 수 없는 신념이다. 『고향』의 여주인공은 “농민과 노동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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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함이나 사회적 해악으로 규정한 초기 자본주의의 형식과 윤리47)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 에서, 『분례기』를 농촌소설의 뛰어난 리얼리즘적 성취로 평가하는 『창비』 논자들의 시도는 자 신들의 뜻과는 정반대되는 해석 지평에 작품을 올려놓는 것이었다. 요컨대, 『분례기』라는 ‘판 돈’은 리얼리즘이라는 ‘내기’에서는 (장기판의 말을 바둑판에 올려놓듯) 통용되지 않는 물건이었 다. 결국 ‘판돈’이 아니라 ‘내기’ 자체가 문제였던 것 ―(루카치를 패러디해 말하면), 다시 “문제 는 리얼리즘”이었다.

5. 호롱골 팬옵티콘: “때려잡을 때는 때려잡구 세워줄 때는 세워줘야”

전통적 반영론의 관점으로 『분례기』를 읽을 때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다. 무수한 오해의 더미들을 걷어내고 작품이 말하지 않은/못한 침묵의 흔적에 빛을 비추어야 한다. “소경, 벙어 리, 백치, 광인” 등 불결한 비체들의 꿈틀거림과 그것을 누르고 은폐하는 또 다른 힘의 보일 듯 말 듯 한 마찰을 지켜보아야 한다.

똥예를 겁탈하고 그녀의 삶을 파멸로 몰아넣는 용팔이는 이 소설이 은폐한 침묵의 소리를 듣는 데에 결정적 실마리를 쥔 실제적 주인공이다. 기존의 비평들이 이상할 정도로 주목하지 않은 이 인물의 형상은 『분례기』를 새로운 각도에서 읽게 하는 단서다. 『분례기』는 용팔과 똥 예의 이야기며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똥예의 강간으로 시작해서 실성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우선 최초의 사건을 보자.

똥예는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울고 있다. [...] “엄니 난 워티기 살어, 엄니야...” 똥예의 처절한 울부짖음은 산 전체에 메아리 되어 어두운 하늘로 올라간다. [...] “왜 고자가 아니라구 말하지 안했유.” 똥예는 용팔 쪽에 소리치고 얼굴을 땅에 박으며 격렬한 통곡을 한다. 그러나 용팔은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지 구김없는 표정이다. (20쪽)

똥예의 울음은 곧 멈춘다. 그녀는 눈물을 씻고 머리를 쓸어넘기고 흙 묻은 옷을 툭툭 털며 일어나 “아저씨, 같이 가유, 혼자만 가면 워쩐댜” 하며 용팔을 뒤따른다. “용팔에 대한 증오심

은 고

47)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노해서 벌을 준지도 모른다. 하루종일 하라는 나무는 하지 않 막 피어난 꽃들을 모조리 짓밟아 놓았으니”라고, 스스로에게 잘못을 돌리는 똥예의 모습에

위해서 [...] 미개한 인간을 위해서” “로빈슨 크루소가 되자”고 외친다. 이기영의 친일-국책소설의 하 나인 『처녀지』의 주인공 역시 스스로를 “로빈슨 크루소”에 비유한다. 이들에게 농민은 무인도의 ‘미개 인’인 ‘프라이데이’―로빈슨 크루소에 의해 그렇게 명명된―이며, 그들의 사명은 이 미개인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한 상론은 김철, 「프로레타리아 소설과 노스탤지어의 시공(時空)」, 『식민 지를 안고서』, 역락, 2009, 참조.

17세기 유럽에서 가난과 광기는 도덕의 문제로 변화했고 노동은 도덕적 인간의 책무로 신성화되었다. 18세기 후반 산업사회의 태동과 더불어 ‘인구’의 관점에서 ‘빈민’은 값싼 노동력의 원천으로서 “국민 국가의 몸통을 형성하는” 요소로 새롭게 개념화되고, 가부장제 신화를 바탕으로 한 ‘가족’은 인간집단 의 가장 본원적이고 순수한 형태로서, 사회의 기원이자 사회 안보(安保)의 마지막 거점으로서 신성화 되었다. 푸코, 앞의 책, 130~137/ 183~185/ 627~643/ 7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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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독자는 작가가 공들여 묘사한 대로 산과 들을 누비는 천진무구한 ‘자연인’ 소녀를 떠올리 기 십상이다. 용팔을 따라 나무를 하러 다니는 그녀의 일상은 사건 이후에도 변화가 없고, 용 팔에 대한 원망도 보이지 않는다. 다음 사건이 벌어질 때까지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똥예가 몸서리치게 깨닫는 것은, 행복한 결혼을 앞두고 똥예의 부러움을 사던 친구 봉순이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하고 나무에 목을 매 자살한 사건에 서다. 이장을 비롯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 봉순의 시신을 부여안고 울부짖는 봉순모와 그를 위로하는 동네 아낙들, “덤덤한 표정”으로 장례 준비를 의논하는 동네 남자들 ―음울하 고 비통한 분위기지만 한편으로는 장례 물품을 사러 읍내로 사람을 보내고 염습을 준비하고 밤샘용 음식과 술을 마련하는 등 부산스러운 움직임들이 이어진다. 똥예는 숨죽이고 서서 홑 이불로 덮인 봉순의 시신과 주위 사람들의 움직임에 신경을 집중한다.

이 장면에서 주의해 볼 것은 아무도 가해자가 누군지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깊은 밤도 아 닌 시각에 마을 한복판에서 동네 처녀가 폭행을 당하고 목을 매었다. 시신은 아직도 따뜻하고 몸에는 폭행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다. 동네 남녀노소가 모두 모여들어 수런거리는 중에도 가해자가 누군지 묻거나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딸 죽인 놈이 어떤 놈이여, 아이구 내 딸아” 하는 봉순모의 절규는 분노의 표현이지 의문의 표시는 아니다. 아낙네들은 집으로 돌아가며 봉순모에게 위로를 전한다. “엎질러진 물이여,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구 산 사람이나 살아야지”, “그만 일어나, 그런다구 봉순이가 살아나나” 등등.

이 순간, 가해자를 묻지도 찾지도 않는 침묵 속에서 이 공동체를 지배하는 율법이 냉혹한 얼굴을 드러낸다: “정조를 더럽히면 죽는다!” 똥예가 본 것은 그것이다. 원인이 아니라 결과만 을 묻는, 책임은 오롯이 여자에게만 부과되는 ‘정조의 율법’ ―그녀는 공포에 질린다. 혀를 빼 문 봉순의 시체가 “너도 새것이 아니면서 왜 뻔뻔스럽게 살아있냐고 소리치는 것 같은” 환상 에 시달리며 그녀는 논둑을 달려 용퍌의 집이 보이는 개울둑에 멈추어 선다.

논엔 히끗히끗하게 물이 차 있고 그 속에서 수많은 개구리들은 똥예를 향하여 일제히 삿대질하 며 고함치며 욕을 하며 저주를 퍼붓고 있다. ―끼아굴어루레얄꿀레륜낄리야꿀끼야알끼울끼아꿀. ‘요 뻔뻔스러운 년아 봉순인 죽었는데 왜 넌 안 죽니. 저년은 죽일 년이다. 때려죽여라’ (96쪽)

밤새 악몽에 시달린 똥예는 자기도 죽기로 결심한다. 이 결심은 물론 “죽고 싶다”가 아니라 “죽어야 한다”는 강박, 보이지 않는 강요에 의한 것이다. 용팔을 따라 나무하러 가는 길에 똥 예는 비로소 용팔에 대한 증오심을 일으킨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용팔의 뒤통수를 노려본 다. 그곳을 돌멩이로 힘껏 까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한다.” 똥예는 자살하려고 높은 바위 위를 기어오른다. 그러나 바위 위에 올라선 것은 죽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용팔의 눈에 띄기 위해서 이다. “죽긴 왜 죽냐?”고 속삭이는 꽃과 풀들의 소리는 똥예의 살고 싶은 욕망을 대변한다.

‘죽어야 한다’는 강박과 ‘살고 싶다’는 욕망 ―똥예의 목숨을 건 내적 갈등을 그리는 이 대 목은 『분례기』 서사에서 드물게 긴장도 높은 극적 순간이면서, 똥예의 비참한 삶이 ‘운명’이 아니라 시종일관 거대한 사회적 기계-장치에 포획된 어떤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죽을 용 기가 나지 않아 바위에서 내려온 똥예는 용팔을 본 순간, “피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지게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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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를 뽑아들고 용팔을 후려치다가 풀밭에 퍼질러 울음을 터뜨린다.

“여자는 정조를 잘 지켜야 하는거지만 봉순이는 바보여” [...]

“그럼 왜 날 버려놨유, 잉...”

똥예는 와,울음을 다시 터뜨리며 용팔을 작대기로 후려갈긴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표 정을 굳히고 저 할 일만 하다가 똥예가 제풀에 울음을 그칠 무렵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때려잡을 때는 때려잡아야 허구 세워줄 때는 세워줘야 하는 법여.”

이 말은 도수장에 있는 獸魂㙮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지난 동짓날부터 이 물건만 보면 웃음 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똥예는 이 말뜻을 알 수 없다. 눈을 껌벅이며 소리친다. “뭐라구유"

그러나 용팔은 다른 말로 바꿔버린다.

“지난 겨울에 폈던 꽃이 지금 또다시 폈잖어. 그러니께"

그러니께. 똥예는 용팔의 말을 흉내내어 중얼거려 본다. 그러니께 왜 죽으려고 하느냐, 옳은 말 씀이다. 똥예의 마음은 용팔의 단 한마디에 봄눈이 녹듯 탁 풀이진다.

―봉순이 죽었다구 내가 왜 죽는댜, 남이 장에 간다니께 무릎팍에 망건 쓰는 꼴이지. (105-106쪽)

용팔의 말 한마디에 “봄눈 녹듯” 마음이 풀어진 똥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뿐사뿐” 발걸 음도 가볍게 “신랑 점(占)”을 치러 향천사로 향한다. 용팔은 똥예의 그런 움직임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는다.” 똥예의 갑작스런 심경 변화의 개연성 여부를 따질 필요는 없다. 똥예를 죽 음 일보 직전으로 내몰고, 말 한마디로 다시 살리는 용팔이라는 존재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은 이것이다.

이어지는 2부와 3부에 묘사되는 똥예의 삶―남편의 도박과 일상적인 폭행, 시댁 식구들의 구박, 마음 둘 곳 없는 고독감, 간통의 누명, 가혹한 폭행 끝에 실성한 채 쫓겨나는―은 작가 자신이 말했듯, “이 땅에 너무나 많은” “똥처럼 천한 인간”이 겪어야 했던 “운명”48)의 전형처 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말을 따라 『분례기』를 한 천진한 시골 처녀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 읽고 만다면, 그것은 『분례기』에 존재하지도 않는 농촌 현실이나 당대의 역사 적 상황을 억지로 꿰어맞추는 것과 마찬가지의 소득 없는 독해일 뿐이다.

“너절하기 짝이 없는” 삶의 서사 안에서 쉴 새 없이 반복되는 소리가 있다. 은근하면서도 깊고 분명한 그 소리를 들어보자. 첫 월경을 하던 날 똥예는 어미로부터 “내가 너만은 천하없 어도 꽃가마를 태워설랑 돈 잘 버는 신랑헌티 시집을 보내줄 테니께 너는 정조만 잘 지키면 되는 거여”라는 훈계를 듣는다. 일종의 성인식 같은 이 장면에서 석서방댁은 “열 지집 몽땅 줘 봐라. 싫어하는 사내가 있나. 사내란 건 몽땅 도둑놈”이라는 오랜 ‘지혜’를 전수하면서 똥 예에게 ‘정조를 잘 지킬 것’을 힘주어 당부한다. 용팔에게 강간당하고 자신이 더는 ‘새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축된 똥예는 봉순의 죽음 앞에서 ‘정조를 더럽힌’ 결과를 목격하고 공포에 질린다. 봉순은 그렇게 소설 무대에서 사라지지만 이 사건의 영향은 똥예의 몸과 마음 깊이 새겨진다. 영철에게 얻어맞고 침울해진 똥예에게 시어머니인 노랑녀는 “부엌에 와선 부엌데기

48) 방영웅, 『분례기』, 홍익출판사, 1968, 4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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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되구 잠자리에선 갈보처럼 해야 하구, 밥 먹을 때는 기생이 되야 그게 알짜 지집여”라는 또 하나의 오랜 ‘지혜’를 위로 겸 전한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반항적 인물일 (백낙청이 강조 하는 “개인적 창조”의 가능성을 지녔을지도 모를) 시누이 동평이 같이 가출하자고 꼬드길 때, “부 부싸움은 칼로 물 베긴디 한번 싸웠다구 어디루 나간댜. 난 죽어두 이 집 귀신여”라고 말하는 똥예의 단호함은 반복되는 훈계와 위협, 그리고 포상(열녀문, 정절문 따위)과 행복에의 약속 등 으로 짜인 이 오랜 율법에 그녀가 얼마나 완벽하게 순치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자살할 결심 을 버리고 새 삶을 향해 씩씩한 발걸음을 옮기는 앞서의 장면은 그 율법의 ‘종속적(subjected) 주체(subject)’로 재탄생하는 똥예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똥예만이 아니다. ‘정조의 율법’은 『분례기』의 사건과 인물들의 내부를 지속적으로 관통하는 일종의 통주저음(通奏低音, Basso continuo)이다. 어미로부터 물려받은 칼을 늘 허리춤에 차고서 여러 번의 강간 위기를 돌파하는 용팔의 처 병춘의 에피소드는 거의 『삼강행실도』나 『열녀전』 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게다가 연속사극류가 지어낸 ‘은장도’ 이미지까지) 우스꽝스러운 설정이기는 하지만, 『분례기』의 세계가 실상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 대의 뒤쪽에서 들릴 듯 말 듯 울리던 이 통주저음이 급격한 긴장과 파열의 쇳소리를 내면서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분례기』의 클라이맥스, 즉 똥예가 실성하는 마지막 장에서다.

영철의 심한 폭행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똥예는 노랑녀와 식구들의 노력으로 겨우 정신을 차 린다. “그러나 똥예는 하앟게 희번덕인다. [...] 바들바들 경련이 지나가는 입가엔 히쭉히쭉 웃 음이 흩어진다.” 실성한 똥예를 둘러싸고 식구들이 걱정하고 있는 사이 노름방에서 큰돈을 잃 은 영철이 집에 돌아온다. 영철의 노름방 심부름꾼 승원은 마음 붙이고 있던 처녀쥐를 보살피 러 한밤중 집 울타리 근처에서 부시럭거리던 똥예를 보고, 그녀가 남몰래 “샛서방”을 만나는 것으로 오해하고 영철에게 고자질한다.

영철이 방으로 들어가자 노랑녀는 근심스럽게 앉아 있다가 ‘네 이놈의 새끼야’ 영철에게 욕을 퍼부었고 배불뚝이 노파는 똥예가 헛소리한다고 중얼거린다. [...] 똥예는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그대로 누워 있다. [...] 자고 있는 모양이다. 영철은 손가락으로 똥예를 가리키며 고함친다.

“저 쌍년이 한밤중만 되면 조선관으로 넘어가서 어떤 개새끼랑 붙고 온다누먼.” (284쪽)

이것으로 사태가 뒤바뀐다. 가련한 피해자는 순식간에 불측한 “화냥년”이 된다. 영철의 폭행 은 정당화되고, 영철을 꾸짖던 노랑녀는 똥예에 대한 동정심을 거두고, 외조모 ‘배불뚝이 노 파’는 똥예의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몽롱한 상태의 똥예는 즉시 깨워져 한밤중에 밖으로 쫓겨 난다. 똥예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순식간에 증오와 혐오로 뒤바꾸는 이 인물들의 급작스럽고 도 기계적인 동작은 흡사 누군가에게 조종되는 인형 같은 느낌을 준다. 누구에게?

똥예는 쫓겨나와 새벽길을 걷는다. 나무하러 가던 용팔이 똥예를 발견하고 그녀의 집으로 데려온다. 노랑녀집에서와 같은 반응이 더 강렬하고 집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시집간 지 얼 마 됐다고 서방질을 하냐’, ‘호롱골 망신을 시키는 천하에 몹쓸 년’ ―“노인들” “과부들” “젊 은 아낙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온통 이렇다. “죽은 봉순이 생각을 해서라두 그렇지. 저런 년 은 동네서 쫓아내야여”라는 말은 이 규탄의 종착점이다. 똥예도 봉순이처럼 자결했다면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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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받으며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똥예의 더러운 몸과 혼미한 정신은 용서 받을 수 없다. 호롱골 주민들은 “똥예를 쫓아내라”고 시위를 하는 것 같다. 누구에게?

“젊은 아낙들”의 반응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그들도 똥예를 욕하기는 하지만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표정엔 흡족함이 넘쳐 있다.” “똥예는 서방 맛에 미쳐 샛서방까지 보았으나 한 서방밖에 모르는 저희들이 새삼 자랑스러워지는 것이다.” 이들의 관심은 “똥예를 쫓아내 라”는 외침이 아니라, 지금껏 성실하게 지켜온 자기의 ‘정절’을 고백하고 인정받는 데 있는 것 같다. 누구에게?

똥예 부친 석서방의 반응은 또 다르다. 노랑녀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들은 석서방은 “무엇보 다 [...] 영철을 보기가 죄스러워 황황히” 그 집을 나온다. “맞아야 싸지, 맞아야...” ―이것이 그의 결론이다. 똥예가 ‘서방질’을 한 것은 시집가는 날 상여집에서 옷을 갈아입다 귀신에 씌 였기 때문이고, 상여집 문을 열어준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기 때문에 모든 잘못은 결국 자기 한테 있다는 식으로 그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사태의 결말을 수용(“아가리가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하고 굴복(“맞아야 싸지”)하는 듯하다. 누구에게?

분노를 터뜨리든, 은근한 쾌감과 함께 자신의 결백을 과시하든, 억울하지만 인정하고 무릎을 꿇든, 이들 모두가 마주하고 있는 대상은 여성의 신체와 섹슈얼리티를 관장하고 규제하고 만 들어내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권력, 바로 다름 아닌 초자아의 얼굴―봉순의 시체 앞에서 똥예가 보았던―이다. 보다시피, 이 얼굴은 『분례기』 서사가 끝나는 이 지점에서, 어떤 통제나 지시 없이도 스스로를 규율하고 반응하는 잘 길들여진 신체들의 움직임을 통해 소설 바깥의 구경꾼(독자)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동시에 독자는 『분례기』의 무대가 외부와 철저히 단절 된 세계―백낙청이 ‘도시와의 유기적 연대의 결여’라고 개탄했던―임을 깨닫고 경악하게 된다. 그렇다. 호롱골은 팬옵티콘의 감옥인 것이다!

방영웅은 (전혀 의도하지도 자각하지도 않은 채), “지속적이고 철저하며 어디에나 있고 모든 것 을 보이게 만들면서 자신은 보이지 않는” 팬옵티콘 시스템이 20세기 한반도의 호롱골이라는 공간과 인간들 가운데 생생하게 작동하고 있는 현실을 그려낸 것이다. 완전하게 격리된 이 공 간을 지배하는 ‘정조의 율법’은 왕이나 군주의 인격으로 표상되는 거대한 주권 권력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지각 대상으로 만드는 얼굴 없는 시선” 및 “도처에 매복되어 있는 수천개의 눈” 으로 “사회의 하층 지대에 모세혈관처럼” 스며들어 “가장 미세하고 가장 멀리 떨어진” “개인 의 신체와 행동을 통해 그 효과를” 드러내는 “권력의 그물망”49) 그 자체다.

『분례기』의 무대가 팬옵티콘 감옥의 유비일 수 있음은 용팔을 통해 다시 확인된다. 용팔·병 춘 부부가 사는 집은 “조금 전까지 살아있던 황소가 뻘건 고기짝이 되어 나오는” 도축장 옆 함석집이다. 작가는 그들이 왜 거기에 살고 있는지, 나뭇짐을 파는 것 말고 용팔이 어떻게 생 계를 유지하는지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의 집과 호롱골은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 주 보고 있지만, “용팔의 집에서 살인이 나도 호롱골에선 잘 모른다”고 할 정도로 “오가는 사 람이 거의 없는” 곳이다. ‘고자’라는 소문만 무성할 뿐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모른다. 용팔은 똥예를 겁탈하는 최초의 사건 이외 서사의 전개와 관련된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상여 잔

49)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 1996, 313~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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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서 피리를 불며 풍악을 이끄는 역할을 하면서도 그는 아무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50) 가까이 존재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는 누구인가?

호롱골이 팬옵티콘의 감옥이라면 이 사내야말로 자신의 모습은 감춘 채 모든 것을 내려다보 는 중앙탑 안의 인물, 즉 간수(看守)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용팔이 등장하는 장소가 거의 언 제나 “호롱골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삽티고개”라는 사실은 놀라움을 안겨준다. 용팔은 매일 삽티를 넘어 나무를 해오고 다시 삽티를 넘어 집으로 돌아온다. 아침이면 고개 위에서 사라졌 다 저녁이면 고개 위에 나타나는 용팔의 모습은 소설 내에서 수시로 묘사된다. 매일 아침저녁 높은 곳에서 외부와 격리된 호롱골과 그 주민들을 내려다보는 인간 ―‘간수’는 그에게 부여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명칭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를 이 소설의 ‘실제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간수 이상의 존재다. 『분례기』에 흘러넘치는 “너절한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예외적·초월적 존재로서의 그의 모습은 이 소설을 ‘이야기’ 이상의 것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다. 펄펄 끓는 물 속으로 던 져진 채 꿈틀거리는 짐승들, 쇠갈고리에 꿰어 벽에 매달린 사체들, 잘린 목, 갈라진 배, 뜨거 운 김을 뿜으며 쏟아지는 내장 ―작가는 피와 오물로 뒤덮인 도축장 안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묘사한 뒤, 커다란 이칸방과 반들반들한 부엌을 지닌 정갈하고 고요한 용팔의 집을 그린다.

이 두 공간의 그로테스크한 대조에서 용팔에게 아들 같은” “싱싱한 정기가 어려 있는” 용팔이 (呪術) 행위를 치르듯이 벌이는 기이한 성행위 이미지를 얻는다. 거듭되는 이 이미지는 실성한 서 용팔이 나타나는 마지막 장에서 극대화된다.

부여된 모종의 탈세속적 분위기는, “산신령의 병춘과 함께 엄숙한 제례(祭禮) 의식이나 주술 장면에 이르러 일종의 반신반인적(半神半人的) 똥예가 새벽길을 걷고 있을 때 삽티고개 숲에

송글송글 맺힌 이슬방울을 떨어뜨릴 듯이 맑은 바람이 불고 있다. 싱싱하고 조용하다. [...] 금 방 신선이라도 나올 듯 그윽한 정기가 어려 있다. 정말 신선이 나오고 있는가. 산새들이 푸릉 푸릉 저만큼 날아가자 바로 그 자리에서 용팔이 나오고 있다. (291쪽)

‘신령스런 정기’로 감싸인 용팔의 초월적 이미지는 이것만이 아니다. 자주 반복되는 다음 묘 사는 『분례기』의 비밀을 담고 있는 블랙박스다.

⓵ 용팔은 푸푸 세수하며 ‘獸魂塔’을 힐끗힐끗 쳐다본다. [·...] 그러나 ‘獸魂塔’이란 글자 외엔 아무것도 씌여 있지 않은 싱거운 물건이다. 용팔은 얼마 전부터 이것을 쳐다보고 빙긋이 웃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똥예의 순결을 밟아놓았던 지난 동짓날부터였다. (61쪽)

⓶ “때려잡을 때는 때려잡아야 허구 세워줄 때는 세워줘야 하는 법여.” 이 말은 도수장에 있는 獸魂㙮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지난 동짓날부터 이 물건만 보면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105쪽)

⓷ 용팔은 일손을 멈추고 산속으로 더 쓸어가는 똥예를 돌아보고 빙긋이 웃는다. (107쪽)

⓸ 어둠 속에 서 있는 獸魂㙮을 잠시 쳐다보고 도수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똥예를 잡아먹었

50) 용팔이 짧게나마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아내인 병춘, 그리고 똥예뿐이다. 석서방에게 병춘의 해산구 완을 청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그가 다른 인물과 말을 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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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생각한다. 백정들이 소와 돼지를 잡듯 그렇게 잡아먹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獸魂㙮도 세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세워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206쪽)

⓹ 용팔은 똥예네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몸을 돌리고 ‘獸魂㙮’을 쳐다본다. 그는 웃고 있다. 왜 그런지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305쪽)

⓺ 용팔은 말뚝처럼 서서 똥예를 바라본다. ‘獸魂㙮’이란 세 글자 외엔 아무것도 씌여있지 않 은 싱거운 물건이 떠오른다. [...] 그러나 그것을 가만히 보면 무엇인가 써주려고 애쓴 백정들의 흔적은 보인다. [...] 나오는 것은 웃음뿐이다. 다만 잘 가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용팔은 까마아 득하게 사라져가는 똥예를 마지막으로 쳐다보며 양손을 입에 가져간다. 이것은 똥예에게 세워 주는 용팔의 獸魂㙮인지도 모른다./ “똥예야, 잘 가라.” (307쪽)

⓵은 “똥예의 순결을 밟아놓은” 이후 수혼탑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는” 장면, ⓶⓷은 자살 하려던 똥예가 용팔의 수수께끼 같은 말 한마디로 기운을 차리는 장면, ⓸는 “똥예를 잡아먹 었다”고 생각하는 용팔이 병춘의 해산방을 꾸미는 데 필요한 물품을 가지러 도축장으로 들어 가는 장면, ⓹⓺은 멀리 사라지는 똥예를 바라보면서 용팔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나무하 러 가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똥예가 겪는 불행의 씨앗을 심은 당사자로서 있을 법한 인 간적 감정이 깨끗이 제거된 이 묘사들은 그를 단순히 난폭한 가해자로서가 아니라 똥예의 삶 과 운명을 좌우하는 어떤 막강한 힘의 표상처럼 보이게 한다.

“소와 돼지를 잡듯” 똥예를 “잡아먹었다”는 용팔은 산목숨이 부서지고 해체되는 도축장 옆 에 기거하면서 호롱골을 지배하는 ‘정조의 율법’에 대해 다른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그는 똥예를 공포에 떨게 하는 죽음의 율법을 간단히 부정(“여자는 정조를 지켜야 하지 만 봉순이는 바보여”)하고 똥예의 죽음을 사면(“때려잡을 때는 때려잡아야 허구 세워줄 때는 세워줘야 하는 법여”)하는 존재다. 용팔의 말 한마디에 똥예는 새 삶을 향해 내달린다. 용팔은 ‘빙긋이’ 웃으며 그녀를 보낸다. 이후 그는 소설 내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가 다시 나타나는 것은 똥예가 “이미 와 있는 죽음”51), 즉 광기에 이르렀을 때이다. 똥예를 집으로 옮기는 것도,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홀로 ‘웃으며’ 지켜보는 것도 용팔이다. 대체 이 자는 누구인가?

법의 유보나 예외를 결정하는 주권적 존재, 사적 쾌락을 박탈당한 주체로부터 억압의 에너 지를 축적하는 “외설적” 존재, 용팔은 정확하게 그 ‘대타자’를 표상한다. 블랙박스에 담긴 비 밀은 이것이었다. 요컨대, 『분례기』는 호롱골이라는 팬옵티콘의 세계에 작동하는 미세권력과 보이지 않는 대타자의 시선의 모사(模寫)이다. 앞서 보았듯, 이 세계에서 “권력의 그물망”에 포획된 개인 주체는 “스스로 권력의 강제력을 떠맡아 자기 자신에게 작용[시키면서] 권력관계 를 내면화하여 일인이역을 하는”52) 존재다. “때려잡을 때는 때려잡구 세워줄 때는 세워주는 법”이 작동하는 세계, “죽이거나 아니면 살게 내버려 두는(take life or let live)” 주권 권력이 아 니라 그 낡은 권리를 수정하고 보완한 새로운 권력, 즉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make live and let die)”53) 또는 “살게 해주거나 죽을 지경으로 내모는(foster life or disallow it to the point

51) 푸코(2003), 64쪽.

52) 푸코(1996), 299쪽. 각주 49도 참조.

53) M. Foucault, David Macey, tr. Society must be defended, St. Martin’s Press, 2003,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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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death)”54) 규율/생명 권력의 세계 ―『분례기』는 공포(恐怖) 소설이다.

용팔은 까마득히 사라져가는 똥예를 바라보며 넓은 벌판이 울리게 “똥예야, 잘 가라” 소리

를 지른다. 소설은 흥얼거리는 용팔의 노래로 끝을 맺는다. “너 죽어서 꽃이 되고/ 나 죽어서 나비 된다/ 나비 됐다 설워 마라/ 꽃밭으로 날아든다.” 그렇다. 똥예는 용팔이 “잡아먹고” 싸 놓은 똥이다. (봉순이도 그럴 것이다). 흥얼거리며 숲속으로 들어가는 용팔은 또 다른 똥예를 찾 으러 갔을 것이다. 똥예는 어디선가 또 다른 옥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촘촘한 그 물에 걸린 한 마리 나비로.... 아니면, 뉘 알랴. 꿈 깬 나비 되어 훨훨 날고 있을지.

6. “종말” 이후

중앙탑의 창문을 통해 온갖 동물들이 갇혀 있는 우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설계된 동물원 의 건축양식에서 벤담(J. Bentham)이 팬옵티콘의 기본 착상을 얻었다는55) 사실은 『분례기』 독해 와 관련하여 많은 것을 암시한다. 독자는 등장인물과 그들의 행위를 “짐승의 그것”, “짐승의 우리”, “돼지 새끼” 등으로 지칭하는 작가의 안내를 따라 온갖 “짐승”들이 뒹구는 『분례기』라 는 ‘동물원’을 관람한다. 똥무더기 위에 태어나 시종일관 똥과 함께하는 똥예라는 짐승이 마른 똥의 냄새를 맡으며 즐거워하는 첫 번째 우리에서 관객은 충격을 받는다. 바로 이어서 관객은 “소경, 백치, 벙어리”로 이루어진 한 무리의 짐승들이 뒹구는 우리를 본다. “벙어리”는 “돼지 불알 바를 때보다 더” 심한 비명을 질러대고, 코와 입으로 파리가 넘나드는 갓난쟁이를 짓밟 고, “백치”는 “벙어리”의 퉁퉁 불은 “젖통”을 빨아댄다. 소, 돼지의 피와 오물로 흥건한 바닥에 서 “지랄병” 걸린 콩조지라는 짐승이 발작을 일으키자 모두 덤벼들어 그를 짓밟는 광경은 옆 우리에서 벌어진다. 건너편 우리에는 옥화라는 미친 짐승이 있다. 관객은 이 짐승의 출산 장면 에서 충격을 받는다. 안내인은 “뻘건 물이 골을 타고 똥구멍 밑으로 흘러내”리는 순간을 관객 이 자세히 볼 수 있도록 그 짐승의 벌어지는 성기 부분에 오래 조명을 비춘다. 그밖에 한없이 게으르고 불결한 짐승들, 포악하고 방탕한 짐승들의 기괴한 짓들이 관객의 눈을 끈다. 실성한 똥예가 무덤 위에 똥을 누고 사라질 때, 시종 “빙긋이 웃으며” 지켜보던 간수가 마지막 우리 의 문을 잠그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선다. 안내인과 관객은 중앙탑 안에서 그 모든 광경을 본다. 물론 안내인, 관객, 그리고 간수 모두 이 동물원의 구조와 효과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나는 『분례기』를 『감시와 처벌』 및 『광기의 역사』의 한 레퍼런스로 읽는다. 주지하듯이, 푸 코는 그가 “감금의 시대”라고 불렀던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말까지의 150여년간 유럽 전역 의 구빈원, 수용소, 교도소 등에 감금되었던 ‘광인-짐승’들의 실태를 통해 서구 이성의 기원에 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광증의 정도가 극심한 ‘정신착란자’부터 “로마 황제의 계승자로 네로를 선호했기 때문에” 미쳤다는 판정을 받은 ‘광인’까지 온갖 형태의 ‘미치광이들’은 “무위 도식자, 범죄자, 가난한 자, 거지, 백치, 불구자, 노망난 노파, 노처녀, 발육부진아, 성병환자, 간질환자, 동성애자, 자유사상가, 난봉꾼, 자살시도자, 배은망덕한 자식, 낭비벽 심한 아버지,

54) ───, Robert Hurley, tr. The History of Sexuality, Penguin Books, 1978, p.138. 55) 푸코(1996),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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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스럽고 유행을 좇는 여자”, 그밖에 무질서를 야기한다고 간주된 온갖 “인간쓰레기”들과 함께 구빈원이나 교도소에 “덩어리채” 뒤섞여 끔찍한 징벌과 교정(矯正)의 어둠 속으로 은폐되 었다.

‘광인’과 ‘무위도식자’ ‘범죄자’ 등을 하나로 묶는 이 기괴한 동일성의 인식론적 토대는 코기 토에 의해 문이 열린 17세기 ‘이성의 시대’에 새롭게 그어진 “이성/비이성”의 분할선이다. 이 성의 명징성 아래 ‘광기’는 이성의 타자로, “한 지점에 모아진 비이성의 전부”로, 비이성에 대 한 이성의 승리의 표지로 이해되면서, 도덕적 규범에 따라 측정되고 질서와 치안상의 목적으 로 감금의 대상이 되었다. 광기는 “의지의 박약”을 의미했고, “단죄될 행동 모두를 하나로 묶 는 중심”이었고, 결국 엄격한 조련과 ‘우둔화(愚鈍化)’를 통해 교정해야 할 것이었다.56)

“나는 손과 다리, 머리가 없는 인간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고가 불가능한 인간 은 결코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돌멩이거나 짐승일 것이다.”57) 근대 이성의 ‘오만과 편견’을 집약하는 파스칼의 이 말은 인간 경험으로부터 ‘광기(=비이성)’를 배제할 실천 적 근거이기도 했다. ‘사고가 불가능한 인간’을 돌멩이나 짐승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수용소의 어둠 속에 묻어버림으로써 인간은 광기가 야기하는 공포 및 수치심으로부터 해방되고, 나아가 그렇게 쫓겨난 광기를 바라보고 구경하게 되었다. “인간 타락의 마지막 단계”로서 광기는 인 간이 “짐승으로 구현되는 사태”였고, 광인이 드러내는 ‘동물성’과 ‘자연성’은 ‘사유하는 이성 인’에게 교훈과 오락을 제공했다. 대혁명 시기, 심지어 19세기까지도 수용소 주변을 산책하면 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짐승 같은” 광인들을 구경하거나 그들에게 동전을 던져주는 일은 ‘정 상인’들의 즐거운 소일거리였다.58)

『분례기』가 예시(例示)하는 동물원과 팬옵티콘과 광기의 결합은 “지상(至上)의 기쁨은 이성의 충만함 속에서만 이루어진다”59)는, 위와 같은 근대 에피스테메의 산물이며 지금도 변치 않는 질서의 원리이다. 그런 점에서, 백낙청의 「분례기론」이 화이트헤드(A.N. Whitehead)의 『이성의 기능』을 인용하면서 끝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이성의 기능은 “사는 법 (art of life)을 향상시키는” 데에 있다. ‘사는 법’이란 “그냥 살아있는 것, 만족스럽게 사는 것, 더 만족스럽게 사는 법”을 말하는데, “미약한 생존력을 지닌 복잡한 유기체”인 인간이 (‘적자생 존’의 원리에 어긋나게)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더 만족스럽게 사는 법’을 추구한 “이성의 활 동” 때문이었다. 바위 같은 “무기물”만이 “오래 지속”하는데 그것은 “죽어있는 것이다.” 백낙 청은 화이트헤드의 이런 주장을 따라, “인간이 만족스렵게 살고 또 더 큰 만족을 달성하는 길 을 열어주는 것”이 이성의 기능이며 문학과 예술은 그것의 표현이라는 결론을 맺는다. “사람 이 사는 것이 결국은 그냥 사는 것이지만 또 그냥 사는 것만일 수도 없음을 구체적으로 가르 쳐 주는 것은 참다운 예술이 하는 최고의 작업”이라는 「분례기론」 서두에서의 서술은 이 결론 과 호응한다. 똥예의 광기에 대한 격렬한 반응(“생명력의 어처구니없는 실종”, “삶을 일거에 부정하 는 것”)의 밑바탕에도, 비이성과 광기를 “돌멩이나 짐승”으로 규정하면서 인간 경험의 영역으

56) 푸코(2003), 113~287쪽.

57) 위의 책, 268쪽.

58) 위의 책, 265~283/567~568쪽. 59) 위의 책, 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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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부터 추방·감금했던 근대 이래 이성 지배의 오랜 사고가 놓여있음이 화이트헤드 인용을 통 해 분명해진다.

중요한 것은, 17세기 고전주의 시대의 광인 이해를 인도주의의 관점에서 비난하는 것과, 수 용소에 갇힌 광인들이 ‘해방’되어 정신의학과 법원의 판단을 거쳐 ‘정신병원’의 치료 대상으로 변모한 대혁명 이후의 역사를 사회적 진보와 과학발전의 성과로 찬양하는 것은 둘 다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은 것이라는 점이다. 이성/비이성의 분할 위에서 광기를 비이성의 모호한 세계 속으로 몰아넣은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 이해가 감금(사법)과 치료(의학)의 분열에 바탕을 두고 있었던 것이라면, “처음으로 광인을 인간 취급했다”고 주장하는 현대의 정신의학은 단지 그 분열을 봉합하여 “처음으로 인간을 무능력자 ‘겸’ 광인으로 인정”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더욱 이 17세기에 정립된 광기와 비이성의 관계를 “은밀히 이어받아” “광기의 잡다한 얼굴을 [...] 분간하기 어려운 단일성으로 축소시키는 폭력적 술책”을 통해, 여전히 광기를 “비이성과 동물 성이 깃들여 있는”60) 대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다. “인간의 어떤 것을 인간의 이해 범위 밖으로 추방”61)함으로써 자족적·폐쇄적 영역 안에 갇혀버린 근대의 ‘이성인’은 결코 ‘이성적’이지 않다.

마찬가지로, 『분례기』라는 동물원의 ‘짐승’들을 보면서 공포-혐오와 함께 안도감이나 쾌감을 느끼는 인간과, 동정-연민과 함께 그 자연화한 존재들의 ‘건강한 생명력’을 찬탄하고 ‘의지박 약’을 개탄하는 인간은 다르지 않다. 안내인-간수-관객의 시선 아래 놓인 그 ‘짐승들’, ‘똥/쓰 레기’로 표상되는 그 비체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 ‘이성의 시 대’의 후예인 우리 ‘인간’은 알지도 상상하지도 못한다.62) 그 ‘인간’은 불과 200년 전에 창조된 피조물이며,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진 얼굴처럼 곧 사라져버릴 “종말”에 다가서고 있다고 푸 코는 말한 바 있다.63) 『분례기』의 작가-작품-독자가 지금껏 펼쳐온 담론들은 그 “종말”의 도 래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것도 모른 채 우리는 또 다른 “종말”을 향해 저 똥예처럼 미친 듯이 내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64) (그리고 또, 그러지 않으면 그것이 ‘인간’이겠는가).

 60) 61) 62)

63)

64)

위의 책, 243~246/287쪽.

위의 책, 168쪽.

그 점에서, 『분례기』에 대한 전통적 리얼리즘적 해석은 똥예의 ‘광기’를 문제화하지 못한다. 따라서, 공동체로부터 “배제되는 동시에 포함되며, 해방되는 동시에 포획당함”으로써 공동체를 존립케 하는 “벌거벗은 생명”, 즉 “호모 사케르(Homo Sacer)”의 형상으로 『분례기』의 ‘인간-짐승’들을 읽을 가능 성도 전무하다. 그리고 그 불가능성이야말로 푸코가 묘사한 ‘광기의 역사’의 본질일 것이다. (조르조 아감벤, 박진우 역,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새물결, 2008, 223쪽).

미셸 푸코, 이광래 역, 『말과 사물』, 민음사, 1987, 355/440쪽. (이 주제는 「분지」, 「똥바다」 그리고 『분례기』를 연결하는 근본적 질문으로서 이 논문의 1부에서 제기한 바 있다).

이 지점에서 이 논문은 ‘똥예의 광증은 남의 일이 아니’라는 백낙청의 「분례기론」과 전혀 다른 맥락 으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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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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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이 논문은 『분례기』를 농촌소설로 읽는 기존의 이해 방식을 비판하면서, 이 소설에 관한 새 로운 해석 방식을 제시한다. 백낙청과 창비의 비평가들은 『분례기』를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의 근대화 정책에 따른 농촌의 수탈과 착취를 반영하는 리얼리즘 소설”로 평가하고, 이 소설 에 만연한 “원시주의와 불결성”을 개발독재에 대한 정치적-문학적 저항의 한 표지로 위치지우 려 했다. 이것은 명백한 의도적 오독이다. 작품 내 어디에도 그렇게 읽을 수 있는 농촌 현실이 나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분례기』는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묘사한 팬옵티콘 시 스템이 20세기 한반도의 한 농촌 마을에서 생생하게 작동하고 있는 현실을 그려내었다. 외부 세계와 철저하게 단절된 ‘호롱골’이라는 작품의 무대는 ‘정조의 율법’에 의해 감시되고 순치된 종속적 주체들의 세계에 대한 유비이며, 그 세계 안에 작동하는 미세권력과 보이지 않는 대타 자의 시선의 모사(模寫)이다. 『분례기』 안에 흘러넘치는 ‘인간-짐승’들의 역겨운 형상들은 17~18세기 서구 근대 이성이 빈민, 범죄자, 광인 등의 비체(abject) 혹은 ‘벌거벗은 생명’들을 인간 경험의 영역으로부터 배제하고 은폐했던 ‘광기의 역사’의 재현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읽기를 통해 이 논문은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제기했던 ‘인간의 종말’에 관한 사유의 실마 리를 찾고자 한다.

핵심어: 『감시와 처벌』, ‘광기의 역사’, 『분례기』, 『말과 사물』, 이성, 팬옵티콘, ‘정조의 율법’, 비체, 미셸 푸코, 백낙청, ‘인간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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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초록

The Face of Dung drawn in Korean literature(2): Rethinking Bunryegi(분례기)

Kim, Chul

Criticizing the established way of reading the novel Bunryegi as a rural literature, this paper suggests a new interpretation of the work. Appreciating Bunryegi as “a realistic novel that reflects the rural exploitation caused by the 1960’s modernization policy of Park Chung-Hee regime”, Paik Nak-Cheong and the critics of Changbi(창비) tried to establish rampant “primitivism and filthiness” in the work as a political, literary resistance to the developmental dictatorship. This is deliberate misreading obviously. No rural realities or actions in the work can be interpreted as such.

Regardless of the author’s intention, the novel depicts the reality that the system of “panopticon”, described in Surveillance and Punishment by Foucault, is vividly operating in a rural village of Korea in the 20th C. Horonggol(호롱골), a stage of the novel completely isolated from the outside, is an analogy of the world of the subjected subjects who are surveilled and tamed by “Precept of the Chastity”, namely, a mimesis of the micro-power and the invisible gaze of the Other working there. The overflowing image of disgusting human-beasts in the work could be read as a representation of the “history of madness”, which Reason of the West excluded and concealed the poor, criminals, and lunatics, i.e. “the abject” or “bare life” from the realm of human experience in the 17~18th C. Via such reading, this paper tries to get a clue of contemplation on “the end of human” Foucault mentioned in The Order of Things.

Keywords: the abject, Bunryegi, history of madness, Michell Foucault, The Order of Things, Paik Nak-Cheong, panopticon, Precept of the Chastity, Reason, Surveillance and Punishment, “the end of h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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