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중독자가 쓰는 고급 감상문
김미옥의 감상문엔 문학평론가보다 예리함이 있다
전재민 | 기사입력 2020/07/03
[강건문화뉴스=전재민 기자]
김미옥 그녀는 그녀 스스로 고급독자를 지향한다. 그리고 활자 중독자라고 본인을 소개하고 있다. 그녀가 소개하는 책은 물론 일정한 패턴이 있다. 낮은 곳을 지향한다. 그리고 소외받는 곳을 지향한다. 하지만 그녀는 세계 곳곳에 우리가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던 이들을 찾아내서 우리를 그 삶으로 그 책으로 우릴 빨아 들인다. 대부분의 책을 소개하는 기사나 책을 평론하는 글들은 출판에 관계되어 있거나 지인이거나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면 할 말을 제대로 못하거나 비평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녀가 소개하는 책들은 그녀와는 하등에 관계가 없는 책들이 많다. 그래서 그녀가 소개하는 책들은 객관적이고 믿음이 간다. 굳이 친절할 이유가 없는 관계이기때문에 책을 진솔하게 설명한다. 재미를 떠나서 때론 그녀의 사고와 사상에 부합되는 책에 더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넓이도 대단해서 일반 소설에서 예능부분등 다방면에 잡식성 독서 식도락가이다. 그녀는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문학적 소양이 대단히 깊어 보인다. 그녀는 스스로 대학시절 동아리에서 활동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독이 영향을 주었으리라.
작가들은 대부분 힘든 시절이 있다. 정신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아니면 모두 다. 그런면에서 난 그녀가 작가가 되거나 문학비평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많은 출판사에서 그녀에게 구애중이지만 그녀는 활자중독자이자 고급독자로 남고 싶다는게 현재의 바람이다. 해박한 지식을 거미줄처럼 풀어 놓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 그녀에게 인생상담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밤 늦게 술취한 사람이 메세지로 괴롭히기도 한다고한다. 그럼 그녀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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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행복동에 살고 있습니까?
이수경의 <자연사박물관>을 읽었다.이 소설은 7편의 독립된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21세기 판을 보는 느낌이었다.
작가 조세희는 2008년도 한겨레신문과의 대담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난장이’를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것,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것, 내 걱정은 그거다.
가난에서 가난으로 대를 잇는 노동자들
결혼마저 가난에서 가난으로 이사 가는 젊은이들
21세기에도 <난쏘공>을 읽으며 아이들이 눈물짓는 나라에
이수경이 <자연사박물관>을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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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의 <자연사박물관> 1편은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해고 노동자가 굴뚝에 올라가기 전 가족과 함께 <자연사박물관>을 구경하는 이야기다.
그 후 작가는 여섯 편의 노동자 가족 이야기를 썼고 2020년 5월 책으로 펴냈다.
이 연작소설은 우리 한국의 노동문제와 빈곤의 문제를 서정적 묘사로 풀고 있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가난은 사랑도 주변부로 밀어버린다.
닭똥집이 먹고 싶다는 여자의 요청을 남자는 거절하고 그 날로 여자는 잠자리를 거부한다.
닭똥집으로 말해지는 가난과 불안은 모든 것을 잠식한다.
<난쏘공>의 자식들이 공부할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것과 달리 <자연사박물관>의 부부는 대학을 다니고 노동문제를 인지한 사람들이었다.
결혼을 하고 공장 노동자로 살면서 노조를 만들다 회사로부터 해고당한다.
굴뚝으로 철탑으로 올라가도 근본적인 해결은 없다.
이 소설은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거나 노동문제 해법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노동자 가족은 주변부에서 주변부로 계속 밀려날 뿐이다.
<난쏘공>의 가족들이 재개발로 인해 도시의 주변으로 계속 밀려나는 것과 같다.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잘해서 특수고인 외고를 갔지만 돈 없는 부모 밑의 자식은 선행학습을 할 수 없고
반에서 꼴찌는 당연한 것이고 결국 주변부로 밀려난다.
기업은 힘이 세다.
불온한 노동자를 다양한 방법으로 해고할 수 있다.
구조조정을 활용하고 회사를 매각한 뒤 해외로 공장을 옮기거나 파업으로 인한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으로 노동자의 재산에 압류를 걸어버린다.
기업의 이익은 합법적이며 이익에 반하는 노동자는 범죄자다.
정규와 비정규를 오가는 노동자 가족의 삶은 불안하고 신산하다. 노동자는 중얼거린다.
공장은 누구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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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여러 상념으로 몇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내가 살아 온 어느 지점과 맞물린 기억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왜 가난한가.
나는 그 해답을 책에서 찾으려했다.
그러나 책은 실질 경제와 관련이 없었다.
단지 내가 더 고등학문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했을 뿐이다.
아버지의 빚이 상속포기각서로 사라진다는 것도
셋방도 선 대출이 없는 집을 골라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학교에서 등기부등본 읽는 법 하나 가르쳐주지 않았다.
내가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해고를 할 수 없는 직장이어야 한다는 것과
그 월급으로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재테크를 잘하는 것이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내 형제들이 공장에서 손가락을 잘리고 치료비도 안 되는 돈을 받았을 때
어린 나는 그들의 절망을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나무 다른 가지였지만 갈라진 순간 우리의 길은 너무나 달랐다.
그들은 절망했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자연사박물관> 이 소설은 노동문제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 분쇄기에 손이 갈린 외국인노동자가
목을 매어 자살하자 딸이 손 없는 사람을 그리듯 이 소설은 그림처럼 보여줄 뿐이다.
노동자 가족의 삶이 얼마나 불안한지 그리고 어디로 내몰리는지
간만에 문제작을 읽었다.
나는 작가 이수경이 <난쏘공>의 조세희 작가처럼 한 소설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란다.
작가 조세희는 다른 작품을 여럿 발표했음에도 우리 세대는 <난쏘공>으로 기억하고 있다.
<자연사박물관>도 강렬하게 기억되는 작품이다.
문제를 보여줌으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공장 노동자의 삶을 그렸으나 사실 이 소설은 블루칼라 화이트칼라를 가리지 않는다.
이 세계화 시대의 자본주의는 언제든 구조조정으로 근로자들을 낙원구 행복동에서 지옥구 불행동으로 보낼 수 있다.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은 순간이다. 작가 이수경의 차기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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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경 소설집 © 전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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