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적’인 문화는 어떻게 탄생하였나?…보수와 진보의 밀당이 빚어낸 일본 ‘전통’ 형성사
김선희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일본사상사
승인 2023.02.26
■ 옮긴이의 말_ 『에도시대를 생각한다: 도쿠가와 3백 년의 유산』
(쓰지 다쓰야 지음, 김선희 옮김, 빈서재, 242쪽, 2023.01)
일본문화 강의를 하면서 학기 초에 항상 학생들에게 각자의 일본 경험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다. 15년여의 흐름을 보면 일본여행 경험이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과 더 이상 일본이 선망의 대상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거리가 깨끗하다거나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것과 더불어 전통문화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좋다는 감상은 변함없는 공통점이다. 어느 나라나 대도시라면 화려한 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디자인마저 유사하여 도시경관이 엇비슷하니, 여행자에게는 그 나라만의 옛 모습이 무엇보다 이국적인 정취를 더욱 실감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성공적’인 근대국가를 건설한 일본은 세련되고 현대적인 도시 풍경뿐 아니라, 급조되어 재현된 것이 아닌 옛날 목조 주택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곳도 많고, 천년 수도라는 수식어를 가진 교토에 가면 지금도 짙은 화장과 기모노 차림의 게이샤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런 이질적인 두 요소가 묘하게 어울리는 모습이 이방인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는 것이리라.
쓰지 다쓰야의 『에도시대를 생각한다: 도쿠가와 3백년의 유산』은 지금의 일본을 만든 문화적 토대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이다. 메이지시대에 한창 유행했던 ‘문명개화’란 말이 대변하듯이, 그 대척점에 선 ‘전통’시대는 부정의 대상이어야만 했다. 저자는 근대 이후 부정의 대상으로 인식된 에도시대에 대한 ‘박한’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며 ‘메이지유신 전후로 역사의 단절을 바라보는 시각은 과연 적절한가?’라는 물음 속에서 글을 시작한다. 유신 이후의 서구 문화와 이전의 전통문화라는 이분법에서 갖게 되는 전통문화에 대한 어떤 노스탤지어적인 선입견에 일단 브레이크를 걸자는 뜻이기도 하다.
그 ‘일본적’인 것은 이 땅의 풍토에 고유한 특성이라고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시간과 역사를 뛰어넘어 일본인 안에 정착한 풍속 · 습관 · 생활 혹은 사고방식 등이 존재하며, 외래문화나 사상도 어느덧 그 속에 흡수 · 동화되고 만다. 메이지 이전의 일본인이 지닌 문화란 이런 풍토에 뿌리 내려 역사를 뛰어 넘어 일관되게 전해진 문화라는 관점이 성립한다.(20쪽)
역사성을 중시하는 저자는 현대 일본의 전통문화란, 전체 일본의 역사에서 보자면 그리 오래 전이 아닌 에도시대에 다양하게 발전한 문화가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도쿠가와 3백 년이라는 부제는 서슬 퍼런 무위(武威)에 기반한 무사 정권이면서도 별다른 내란 없이 평화로운 260여 년을 강조하는 것인데, 그런 만큼 경제가 발전하였고 서민문화가 크게 융성한 시대였다.
스시를 비롯한 일식의 유래부터, 의복, 주거, 음악, 연극, 학문, 종교,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 걸친 에도시대 제반 양상을 저자는 쉬운 문장으로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일본적’인 사상(事象)이 일본에서 자생한 그야말로 ‘고유한’ 것이라거나 역사 내내 일관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보편 속에서 ‘일본화’를 탐색하고 있다. 일본문화를 논하면서 자국중심주의적인 식상하고 도식적인 관점을 거부하는 일본인 역사학자의 시각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에도시대 많은 지식인들은 시대와 풍토에 따라 만물의 면면이 달라진다고 인식하였는데, 저자 역시 이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런 역동성을 만들어 온 서민층을 특히 높게 평가한다. 물론 이러한 성장이 지배 관계의 변화나 생산력의 발전과 연동되었다는 점 역시 풍부한 사료와 함께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정치, 경제사적 흐름보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적인 것은 원래 일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수용되었다는 역설이다! 그리고 대륙의 세련된 외래문물에 대한 상류층의 “이국취미”가 차츰차츰 정착하면서 일본적인 것이라는 이름을 갖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민중의 ‘욕망’에 대한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이다. 헤이안시대의 고상한 귀족문화와 대비되어, 항상 세속적이고 천박하게 여겨지기 일쑤였던 에도시대의 문화의 주체로서 민중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저자의 시선에서도 메이지 이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부당함’에 대한 결연한 이의제기가 읽힌다.
그러한 일본의 독자성을 가진 배경으로 나는 우선 근세라는 시대가 근대로 이어지는 통일 국가 권력의 형성기였다는 것, 동시에 중화 문명의 커다란 우산에서 독립하는 시기였음을 지적하고 싶다. 그리하여 새로운 통일 국가 안에서 일본의 전통문화도 외래의 이국 문화도 널리 민중 계층에 침투하여 정착하고, 마치 이 풍토에 토착하고 있는 듯한 ‘일본적’ 문화를 형성했다.(221쪽)
메이지 시대 친정부적인 역사가들은 ‘근대’ 일본 찬양에 열중하면서 ‘전근대’ 에도시대를 부정하였고,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역사가들 역시 일본 근대의 ‘불완전성’을 비판하면서 그 요인을 뒤처진 에도시대에서 찾았다. 요컨대 양자 모두 암울한 에도시대라는 시대상을 창출해 냈다. 저자의 에도시대 ‘예찬’은 가볍지 않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목적의식적으로 역사상을 창출해 내는 관점에 대한 비판이며, 그런 절실한 호소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오랫동안 세계사 발전의 기본법칙이란 프리즘으로 역사를 바라보았던 ‘닫힌’ 시점이나, 또는 거대이론을 벗어나 한없이 가볍게 ‘다양성’만을 추구하는 시점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메이지시대 서구화뿐 아니라 ‘중화’에서 독립한 전근대의 사회적 · 문화적 발전이 근대 일본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다는 저자의 시선 역시 지극히 ‘일본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는 에도시대의 흐름을 아는 데 매우 유용하다. 그리고 어째서 일본만이 한발 빠르게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같은 상투적인 물음과도 연동시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요즈음 일본을 방문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특히나 과거 일본을 찬탄의 눈길로 바라보던 세대라면, 관광객에게 와사비테러를 하는 회전스시집 뉴스나 한껏 눈웃음을 치며 손님을 맞이하지 않는 젊은 종업원을 접하면 일본이 변했다고 느낄 법도 하다.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그대로인가? 이 책을 읽고 나서 겉으로 드러나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일본인의 심성과 같은 소프트웨어까지, 일본 사회에 지금도 여전한 에도시대의 ‘흔적’에서 전통과 현대의 이음쇠를 더듬어 가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서가 일본인을 위한 개설서이니만큼 우리나라 독자들이 쉽게 접하지 못한 사항이 많다보니 역자 주가 상당하다. 부록과 함께 독자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김선희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일본사상사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연구원. 일본 히로시마대학에서 『조선과 일본 지식인의 자타인식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통의 변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특히 유학사상이 동시대 각 지역에서 어떻게 옷을 갈아입는지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일본 근세 유학과 지식의 활용』, 『한국인, 근대적 건강을 상상하다』, 『동북아시아의 근대체험과 문화공간』, 『명동 길거리 문화사』, 『韓流 · 日流―東アジア文化交流の時代』, 『국학과 일본주의-일본 보수주의의 원류』, 역서로 『일본 정치사상사 17~19세기』 , 『일본 ‘국체’ 내셔널리즘의 원형-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국학』, 『에도 유교와 근대의 知』, 『핵확산 문제와 아시아』 외 다수가 있다.
일본문화 강의를 하면서 학기 초에 항상 학생들에게 각자의 일본 경험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다. 15년여의 흐름을 보면 일본여행 경험이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과 더 이상 일본이 선망의 대상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거리가 깨끗하다거나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것과 더불어 전통문화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좋다는 감상은 변함없는 공통점이다. 어느 나라나 대도시라면 화려한 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디자인마저 유사하여 도시경관이 엇비슷하니, 여행자에게는 그 나라만의 옛 모습이 무엇보다 이국적인 정취를 더욱 실감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성공적’인 근대국가를 건설한 일본은 세련되고 현대적인 도시 풍경뿐 아니라, 급조되어 재현된 것이 아닌 옛날 목조 주택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곳도 많고, 천년 수도라는 수식어를 가진 교토에 가면 지금도 짙은 화장과 기모노 차림의 게이샤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런 이질적인 두 요소가 묘하게 어울리는 모습이 이방인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는 것이리라.
쓰지 다쓰야의 『에도시대를 생각한다: 도쿠가와 3백년의 유산』은 지금의 일본을 만든 문화적 토대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이다. 메이지시대에 한창 유행했던 ‘문명개화’란 말이 대변하듯이, 그 대척점에 선 ‘전통’시대는 부정의 대상이어야만 했다. 저자는 근대 이후 부정의 대상으로 인식된 에도시대에 대한 ‘박한’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며 ‘메이지유신 전후로 역사의 단절을 바라보는 시각은 과연 적절한가?’라는 물음 속에서 글을 시작한다. 유신 이후의 서구 문화와 이전의 전통문화라는 이분법에서 갖게 되는 전통문화에 대한 어떤 노스탤지어적인 선입견에 일단 브레이크를 걸자는 뜻이기도 하다.
그 ‘일본적’인 것은 이 땅의 풍토에 고유한 특성이라고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시간과 역사를 뛰어넘어 일본인 안에 정착한 풍속 · 습관 · 생활 혹은 사고방식 등이 존재하며, 외래문화나 사상도 어느덧 그 속에 흡수 · 동화되고 만다. 메이지 이전의 일본인이 지닌 문화란 이런 풍토에 뿌리 내려 역사를 뛰어 넘어 일관되게 전해진 문화라는 관점이 성립한다.(20쪽)
역사성을 중시하는 저자는 현대 일본의 전통문화란, 전체 일본의 역사에서 보자면 그리 오래 전이 아닌 에도시대에 다양하게 발전한 문화가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도쿠가와 3백 년이라는 부제는 서슬 퍼런 무위(武威)에 기반한 무사 정권이면서도 별다른 내란 없이 평화로운 260여 년을 강조하는 것인데, 그런 만큼 경제가 발전하였고 서민문화가 크게 융성한 시대였다.
스시를 비롯한 일식의 유래부터, 의복, 주거, 음악, 연극, 학문, 종교,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 걸친 에도시대 제반 양상을 저자는 쉬운 문장으로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일본적’인 사상(事象)이 일본에서 자생한 그야말로 ‘고유한’ 것이라거나 역사 내내 일관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보편 속에서 ‘일본화’를 탐색하고 있다. 일본문화를 논하면서 자국중심주의적인 식상하고 도식적인 관점을 거부하는 일본인 역사학자의 시각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에도시대 많은 지식인들은 시대와 풍토에 따라 만물의 면면이 달라진다고 인식하였는데, 저자 역시 이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런 역동성을 만들어 온 서민층을 특히 높게 평가한다. 물론 이러한 성장이 지배 관계의 변화나 생산력의 발전과 연동되었다는 점 역시 풍부한 사료와 함께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정치, 경제사적 흐름보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적인 것은 원래 일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수용되었다는 역설이다! 그리고 대륙의 세련된 외래문물에 대한 상류층의 “이국취미”가 차츰차츰 정착하면서 일본적인 것이라는 이름을 갖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민중의 ‘욕망’에 대한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이다. 헤이안시대의 고상한 귀족문화와 대비되어, 항상 세속적이고 천박하게 여겨지기 일쑤였던 에도시대의 문화의 주체로서 민중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저자의 시선에서도 메이지 이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부당함’에 대한 결연한 이의제기가 읽힌다.
그러한 일본의 독자성을 가진 배경으로 나는 우선 근세라는 시대가 근대로 이어지는 통일 국가 권력의 형성기였다는 것, 동시에 중화 문명의 커다란 우산에서 독립하는 시기였음을 지적하고 싶다. 그리하여 새로운 통일 국가 안에서 일본의 전통문화도 외래의 이국 문화도 널리 민중 계층에 침투하여 정착하고, 마치 이 풍토에 토착하고 있는 듯한 ‘일본적’ 문화를 형성했다.(221쪽)
메이지 시대 친정부적인 역사가들은 ‘근대’ 일본 찬양에 열중하면서 ‘전근대’ 에도시대를 부정하였고,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역사가들 역시 일본 근대의 ‘불완전성’을 비판하면서 그 요인을 뒤처진 에도시대에서 찾았다. 요컨대 양자 모두 암울한 에도시대라는 시대상을 창출해 냈다. 저자의 에도시대 ‘예찬’은 가볍지 않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목적의식적으로 역사상을 창출해 내는 관점에 대한 비판이며, 그런 절실한 호소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오랫동안 세계사 발전의 기본법칙이란 프리즘으로 역사를 바라보았던 ‘닫힌’ 시점이나, 또는 거대이론을 벗어나 한없이 가볍게 ‘다양성’만을 추구하는 시점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메이지시대 서구화뿐 아니라 ‘중화’에서 독립한 전근대의 사회적 · 문화적 발전이 근대 일본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다는 저자의 시선 역시 지극히 ‘일본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는 에도시대의 흐름을 아는 데 매우 유용하다. 그리고 어째서 일본만이 한발 빠르게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같은 상투적인 물음과도 연동시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요즈음 일본을 방문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특히나 과거 일본을 찬탄의 눈길로 바라보던 세대라면, 관광객에게 와사비테러를 하는 회전스시집 뉴스나 한껏 눈웃음을 치며 손님을 맞이하지 않는 젊은 종업원을 접하면 일본이 변했다고 느낄 법도 하다.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그대로인가? 이 책을 읽고 나서 겉으로 드러나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일본인의 심성과 같은 소프트웨어까지, 일본 사회에 지금도 여전한 에도시대의 ‘흔적’에서 전통과 현대의 이음쇠를 더듬어 가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서가 일본인을 위한 개설서이니만큼 우리나라 독자들이 쉽게 접하지 못한 사항이 많다보니 역자 주가 상당하다. 부록과 함께 독자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김선희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일본사상사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연구원. 일본 히로시마대학에서 『조선과 일본 지식인의 자타인식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통의 변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특히 유학사상이 동시대 각 지역에서 어떻게 옷을 갈아입는지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일본 근세 유학과 지식의 활용』, 『한국인, 근대적 건강을 상상하다』, 『동북아시아의 근대체험과 문화공간』, 『명동 길거리 문화사』, 『韓流 · 日流―東アジア文化交流の時代』, 『국학과 일본주의-일본 보수주의의 원류』, 역서로 『일본 정치사상사 17~19세기』 , 『일본 ‘국체’ 내셔널리즘의 원형-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국학』, 『에도 유교와 근대의 知』, 『핵확산 문제와 아시아』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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