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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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는 수교 30년을 넘겨 올해로 31년째를 맞았다. 해방 후 거의 반세기 동안 단절됐던 장벽이 걷히자 관계가 급속도로 발전한 것이다. 특히 무역 등 경제 부문은 미국, 일본을 넘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민들 사이에 반중정서가 높다는 보도가 자주 나온다. 중국 덕에 그동안 경제가 호황이었는데, 국민들이 중국을 싫어한다는 보도가 과연 사실일까.
나로서는 이 보도를 믿기 어렵다. 최근 20년 사이 중국의 '대국굴기'가 가시화되고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는 현실과 한국에서 중국 혐오 보도가 부쩍 늘어난 데는 심상치 않은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미국적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데 길들여진 한국 언론의 노예근성을 떠올리면 그렇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새 정권 출범 이후 미국과 일본에 대한 자세가 굴종적으로 변해가면서 정부 차원에서는 한중 간에 원활치 못한 점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국민이 경제와 안보를 함께 걱정하게 된 것 아닌가.
내 짧은 지식에, 역사적으로 중국은 점진적인 대국주의의 나라였다. 수천 년 전 황하 유역에서 출발한 그리 크지 않은 나라가 끊임없이 주변 민족들을 흡수 통합하면서 거대국가로 발전해 온 것이 오늘의 중국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데 중국의 특이한 점은 정치적으로 한때 몽골족이나 만주족에 정복되는 경우에도 한족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했고, 그럴뿐더러 그것을 기반으로 오히려 주변 종족을 포함하는 국가적 통합을 달성했다는 사실이다.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고대 페르시아 등이 모두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오늘날과의 사이에 더 이상 국가적 연속성을 주장하기 어렵게 된 반면, 중국은 원(元) 청(淸) 등에 의한 수백 년의 정치적 단절을 극복하고 놀랍게도 고대와 현재 사이에 일정한 국가적 민족적 문화적 연속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위구르와 티베트는 중국의 점진적인 대국주의에 하나의 역사적인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렇게 살펴보면 한국(한반도)과 베트남은 중국과의 역사적 관계에서 독특한 운명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다. 두 나라는 정치적으로 수천 년 중국의 강한 영향을 받았고 문화적으로는 더 깊은 습합(習合)상태에 빠져, 한때 조선은 자기야말로 진짜 중국 즉 ‘소중화’라고 칭하기도 했다. 아무튼 한국으로서나 베트남으로서나 중국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일 수밖에 없는 역사적 지리적 정치적 관계에 있다. 이 원칙을 벗어나는 것은 언제나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월 7일(화)자 평화재단의 <현안진단> 298호를 읽고 떠오른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다음에 <현안진단> 전문을 옮긴다. 꽤 길다. 천천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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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 강화 속의 한중 관계의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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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외교의 2022년 성과와 2023년 전망
왕이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해 12월 25일 ‘2022년 국제 정세와 중국 외교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2022년 중국 외교를 회고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있게 전진한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총체적으로 정상 외교가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고, 제로섬 게임에 반대하고 대국 관계의 전략적 안정을 유지했으며, 개방적 지역주의를 고수하고 아시아에 근거를 마련하였고, 개발도상국을 결집했으며, 글로벌 도전에 대한 대응에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였고, 핵심 이익을 수호했으며, 글로벌 경제 회복에 기여했고, 국민의 해외이익 보호에도 노력했다고 밝혔다.
2023년의 과제로 중국 특색의 새로운 외교정책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새해 6대 과제로 정상 외교를 고도로 수행하고 전 방위 외교를 확대하며 글로벌 거버넌스를 개선하고 국가의 고품질 발전에 기여하며 핵심이익을 수호하고 국제적 발언권을 높일 것이라고 소개했다.
지역별 평가와 전망에서, 러시아와의 연대를 통해 국제 관계 민주화를 확고히 했고 우크라이나 위기는 항상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대응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올해 러시아와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한층 더 견고히 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과의 관계는 유럽이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고 EU가 국제 문제에 있어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올해 EU와의 관계 회복은 어느 정도 낙관하는 듯하다. 아시아와의 관계에 대해 미국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이웃국가들과 운명공동체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볼 때, 올해 역내 국가들과 연대와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 주석은 지난 20차 당 대회에서 총서기로 3연임되었고 오는 3월 양회에서 국가주석으로 재선출되는 정치일정을 남겨놓고 있다. 중국 경제는 올해 유엔 전망에 따르면 4.8% 성장률이 예상되고 있어 세계 경제와 비교해도 나름 선전할 전망이다. 대체적으로 시 주석의 리더십 환경은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사태, 미중 관계를 비롯한 국제 정세가 매우 유동적인 만큼 중국 외교가 상대적으로 유연해질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중국 외교의 모든 결정은 결국 시진핑 최고지도자 한 사람에게 달려있다.
왕 부장은 연설에서 “중국 외교가 역사적 성과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정치적 보장은 시진핑 주석이 키를 잡고 항해를 이끄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이론적 성과는 시진핑 외교사상을 창립한 것이며, 가장 귀중한 실천 경험은 중국 특색 대국 외교의 새로운 길을 연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올해 중국 특색의 중국 외교를 펼치겠지만 중국 특색이란 시진핑 특색과 동일어임에 다름 아니다. 새로이 임명된 왕이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과 친강 외교부장의 전랑(戰狼) 외교도 이들의 캐릭터라기보다는 시진핑의 생각을 잘 전달하는 형식이다. 이들은 테크니컬한 부분에서 공간을 가지겠지만 큰 방향과 기조는 모두 시진핑의 결정을 따를 뿐이다.
⃢ 미중 관계의 여전히 뜨거운 감자, 대만 문제
미국과의 관계와 관련해서 중국은 지난해 미국이 진영 대결과 제로섬 경쟁을 추구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이 중국을 경쟁자로 간주해 미중 관계가 난관에 봉착했다면서 미국은 잘못된 대중 정책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대국 간에는 원칙적 공감대가 있어야 하며, 미중 공존을 위해 시진핑 국가 주석이 제시한 상호존중, 평화공존, 협력상생의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상호존중이란 양국이 다시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는 것이며 평화존중은 상호 충돌·대항하지 않고 공존하는 것이고, 협력상생은 양국의 공동이익을 위해 경제·무역·과학·기술 문제의 정치화·무기화 중지를 말한다.
왕이 부장은 특히 대만 문제에 대해 “중국의 핵심이익 중 핵심이고 중미 관계의 정치적 기초 중 기초로서 중미 관계의 첫 번째 넘을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고 주장했다. 왕이 부장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지난 8월 대만 방문 강행으로 현 미중 관계가 더 크게 악화되었으며,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고, 대만에 대한 내정간섭을 중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새해 들어서도 대만 문제는 식을 줄 모른다. 1월 27일 워싱턴포스트가 미 공중기동사령부를 이끄는 마이클 A. 미니헌 장군이 2년 뒤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휘하 장병들에게 보낸 사실을 보도하면서 미중 관계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미니헌 장군은 그 근거로 시 주석의 3연임, 지난해 10월 설치한 전쟁 자문위원회, 2024년 대만 총통 선거 등을 예시했다. 미 군부의 반중 시각은 중국이 2027년 대만 침공을 시작할 수 있다고 예측한 필립 데이비슨 전 인태사령관의 2021년 3월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이어서 바로 올해 2월 초로 예정되었던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이 중국 ‘정찰 풍선’의 미국 영공 침해로 연기되었다. 이에 더해 올해 4월로 예상되는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지난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보다 더 큰 역풍을 부르며 설상가상으로 미중 관계에 악화일로 분위기를 조성할 것으로 보인다.
⃢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 두 축이 바로 서야 한다
한반도 안보환경을 구성하는 몇 개의 중요한 관계 중 하나인 미중 관계는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악화일로이다. 또 하나의 축인 한미 관계는, 상당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한미 양국의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2월 2일 박진 외교부 장관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을 백악관에서 만나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등에 대해 논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 동맹 70주년인 올해 4월 미국을 ‘국빈 방문’해 한미 동맹 7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강화를 재확인하려 한다.
다른 한 축인 한중 관계는 이러한 한미의 밀접한 행보와는 크게 대비된다. 지난해 11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 발전 방향 공감대를 원활히 이행하기로 했지만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25분간 진행된 약식 만남에 불과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1년 만에 미국 정상이 오고 한국 정상이 가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방중도 시 주석의 방한도 모두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듯하다.
사실 누가 방문하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다. 일부 언론 보도처럼 양국 지도자의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시 주석이 와야 하지 않느냐고 힐난을 하지만 시 주석은 코로나 시기 근 3년 동안 그 어느 나라도 방문하지 않았다. 최근 시 주석의 광범위한 외교 행보를 보면 방한은 그리 큰 어려움이 아니다. 여러 나라를 묶어 순방하면서 방한할 수도 있다. 단지 중국 측이 신경 쓰는 것은 한국 국내에서 시진핑 방한의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느냐, 그리고 한국이 중국에 대해 어떤 정치적 선물을 줄 수 있느냐이다. 이런 것들이 정해지면 올해 방한이 가능하다.
⃢ 작은 불만들이 계속 쌓여가는 한중 관계
최근 양국은 긴장감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미묘한 불편함이 계속되고 있다. 2022년 12월 28일 인태전략 최종보고서와 관련한 중국 내 반응은 제한적이었다. 인태전략서의 발표 시점도 시점이었지만 중국은 인태전략서 자체보다는 한국 정부의 실제 행보를 더 주시하고 있다. 한국을 중립지대에 있게 할 수 있다면 중국도 미국과의 대립 전선을 주변국에 확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양국 관계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작은 불만과 갈등들이다.
지난달 국제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중국이 53개국에 비밀경찰서 102곳을 두고 있고, 한국에도 1곳이 있다고 밝혀 국내 반중 정서를 달궜다. 이어 한국 정부의 중국인들의 한국 입국 비자 발급 중단이 있었다. 박진-친강 외교장관 상견례 겸 회담에서 양측은 공급망 대화·FTA 후속 협상 등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하고,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각급에서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계속하기로 했다. 하지만 양국 외교장관 회담 바로 다음날 중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결정에 상응하는 차원에서 한국발 입국자에 대한 비자 거부를 결정했다. 한국 정부의 중국발 입국자 비자 발급 중단은, 윤 정부가 기본적으로 친미 보수정권이고 문재인 정부의 방역정책과 차이점을 보이려는 국내정치적 결정이며 다른 국가들보다 한발 더 나아간 조치로 보인다. 한덕수 총리가 중국 입국자에 대한 방역 조치를 다소 완화할 가능성을 내보였지만 향후 상호 빌미를 주는 행보, 언어, 조치들이 지속적으로 양국의 감정을 상처 낼 듯하다.
⃢ 한중 관계 활용은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기 위한 기본 요소다
앞서 언급했던 왕이 외교부장의 기조연설을 다시 돌아보면 중국 외교는 올해 다자 외교, 거점 외교, 집중 외교 양상을 보일 듯하다. 이미 시진핑 주석이 20차 당 대회 폐막 직후부터 독일, 탄자니아, 베트남, 파키스탄 등의 정상들과 베이징에서 만났으며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함으로써 대륙별 거점국가 외교를 선보였다.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SCO), 브릭스(BRICs) 등을 확대하고 있고, 아세안과 남중국해 행위준칙과 관련해 소통하며, 남미 5개국과 새로운 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한중일 FTA 논의를 계속하며, 일대일로 고위급 논단 10주년을 맞이해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등 다자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집중 외교를 통해 해당 지역과 이슈 영역별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 기술혁신 국가, 글로벌 중추 국가로 스스로 정의하면서 한국 외교의 새 목표, 새 능력, 새 위상을 추구하고 있다. 2023년에 한국이 이들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외교력이 필요하다. 한미 동맹의 격상과 한미일 협력의 구축만으로 가능할지, 한중 관계의 활용도 필요할지 정부의 신중한 결정과 집행 프로세스를 지켜보게 된다.
전략 없는 감정적 대응으로는 글로벌 중추 국가가 되기 어렵고 이 전환기를 헤쳐 나가기도 힘들다. 한중 간의 작은 불만들도 쌓이게 되면 결국 댐을 무너뜨리는 구멍이 되어 이익도 명분도 다 휩쓸어 버릴 것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우리에게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는 역관계가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 차원에서 한중 사이 작은 불만들을 잘 다루면서 민감한 사안들, 즉 대만 문제, 미 중거리미사일의 한국 배치, 한·미·일 3국 안보협력 등에도 현명한 판단과 신중한 접근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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