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9

마르크스 옆자리에 묻혔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Vladimir Tikhonov
31 m  · 
전 홉스범의 여성주의에 대한 태도나 1968년 혁명 관련 생각에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한 가지 측면에서 그를 롤모델로 삼고 싶습니다

. 그는 철저하게 '세계사'를 한 사람이고, 일국사를 할 생각을 애당초부터 하지 않았다는 측면입니다. 
전 그게 맑스주의적 사학자로서 올바른 태도라고 봅니다. 저도 한국사라기보다는 동아시아사, 내지 동아시아적 맥락에서의 한국사를 하고 싶은데, 

가장 큰 현실적인 장애물은 중국어와 일본어 자료 독해 속도가 느리다는 것입니다. 한데 학생들에게는, 한국어와 함께 꼭 보통화와 일본어를 배우길 권합니다 (한문 습득은 어차피 애당초부터 한국학의 일부분에 속합니다)


마르크스 옆자리에 묻혔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마르크스 옆자리에 묻혔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

등록 2023-06-08



[나는 역사다] 에릭 홉스봄(1917~2012)




영국의 식민지였던 이집트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1917년 6월9일 태어났다고 알려졌다(그의 전기를 쓴 리처드 에번스는 하루 앞선 6월8일이 실제 생일이라고 했다). 이집트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외가가 있던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겨갔다. 살림이 기울고 가난을 겪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었다. 독일 베를린의 삼촌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책을 많이 읽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를 읽고 좌파에 공감했다. 1930년 무렵부터 히틀러에 맞서는 독일 공산당의 운동에 참여했다. 대규모 집회에 참석한 일은 그에게 가슴 벅찬 기억으로 남았다.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이 거세지기 직전 영국으로 옮겨갔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모르는 것 없는 학생”으로 통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으로 복무했다. 홉스봄을 골칫거리 좌파 부사관으로 여긴 영국 정보부는 그를 뒷조사했다. 영국 공산당도 그를 말썽분자로 생각했다. 소련을 추종하는 당의 방침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뒤 냉전이 시작됐고, 보수적인 학계는 좌파 지식인 홉스봄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런던대 버크벡 칼리지 교수가 된 홉스봄은 세계 역사를 나라 단위가 아니라 전체사적인 시각에서 접근했다.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3부작은 여러 나라에서 학술적으로,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좌파이면서도 누릴 것은 누린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때로는 난처해했고 때로는 “가라앉는 배라도 일등석에 타는 편이 낫다”며 농담으로 넘기기도 했다.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했다. 민족주의를 거부했고 68혁명에 부정적이었다. 그람시를 좋아했으나 알튀세르에 동의하지 않았다. 유럽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받았고, 여성주의와 관련해 시대에 뒤떨어진 태도를 취했다.

소련 공산당을 싫어했는데, 소련이 멸망했을 때는 “앞으로 세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렇게 됐다). 마지막까지 좌파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2012년 95살 나이로 숨졌다. 장례식에서는 “참으로 나는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구나”라는 브레히트의 시구절이 낭독됐다. 카를 마르크스의 옆자리에 묻혔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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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
민음사 50주년 기념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13권.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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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시인선 13번,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첫 시집인 『가정기도서(Hauspostille)』를 번역한 것이다. 옮긴이는 박찬일로, 이후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또한 번역한다. 『가정기도서(Hauspostille)』는 아직 사회적인 메시지를 주로 다루기보단, 반기독교적인 내용과 독자를 위한 사용가치의 문학을 추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우리 시대 문학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챗GPT의 등장으로 인간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AI의 발달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우리만이 가진 고유의 능력은 무엇일까. 사유하는 것, 생각하는 인간. 그 가치를 살피기 이전에, 문학의 가치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서, 문학의 사용가치를 외쳤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를 다시 한 번 펼쳐볼 때다.

시집의 처음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독자들에게 남긴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제껏 행해온 예술과 시를 '부르주아들의 노래'라고 비판했던 브레히트. 그는 시가 성경처럼 모두에게 읽히고 쓰여지며, 사용되기를 바랐다. 이렇듯 '시의 사용가치'를 중요하게 여긴 그는 『가정기도서(Hauspostille)』의 처음에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을 적는다. 아래 인용할 이 글은, 이 시집을 펼쳐볼 독자들이 어떻게 시집을 읽어나갈지 안내해준다.





『가정기도서(Hauspostille)』는 독자가 사용하도록 의도되었다. 무심히 먹어치우듯 읽어선 안 될 일이다. 1부(제1과) '기원 행렬'은 독자의 감성에 직접 파고든다. 너무 많이 한꺼번에 읽어 치우지 말기를 권한다.  ......  2부(제2과) '정신 수련'은 오성에 더 호소하는 경우다. 여러 읽을거리를 천천히, 그리고 반복해서 읽는 게 좋다.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은 금물이다.  ......  3부(제3과) '연대기'는 자연의 폭력이 거칠어질 때 펼쳐보는 것이 좋다.  ......  4부(제4과) '마하고니 노래들'은 부의 시간에(호주머니가 두둑해졌을 때가) 적격이고, 육체적 의식을 가질 때(육욕에 휩싸였을 때), 자기 주체를 못할 때(방자해졌을 때) 적격이다.(제 4과는 그러므로 아주 소수의 독자들을 위해 고려된 것이다) 독자들은 목소리와 감정에서 고도의 볼륨을 갖고 소리와 감정을 최대한 발휘해서(그렇지만 몸은 쓰지 말고)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
  ......




전부를 인용하지 않고, 일부를 가져왔다.



브레히트는 이처럼 시집 처음에 독자들을 위해 안내서를 작성해줬다. 각 부마다의 시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적고 어떤 방식으로 읽으면 좋을지 안내한다.



처음 '독자가 사용하도록 의도되었다.'는 브레히트가 성경처럼 이 시집이 많은 독자에게 읽히고 실생활에 쓰일 것을 고려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는 부르주아만이 가졌던 노래를 일반 독자에게도 전하려는 그의 의도를 볼 수 있다.













친절하게도 그가 적어준 방식대로 시를 읽으면 그 매력을 더욱 느낄 수 있다.





1부, '기원 행렬'은 독자의 감성에 직접 파고든다.


1부는 그가 안내했듯이,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을 담았다. 부모를 죽인 야콥 아펠뵈크, 영아살해자인 마리 파라르 등 사회적 윤리를 어긴 인물을 등장시킨 뒤,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특히 시 <영아살해자 마리 파라르에 관하여>는 독자들에게 그 판단을 맡긴다.



"마리 파라르, 4월 태생, 미성년자,/구루병, 고아인 것 빼고는 드러낼 게 없는 여자,/지금까지 책잡힐 일 없이 살아왔다는 그녀가/한 아이를 살해했다 주장한다,"로 시작하는 시는, 법정에서 마리 파라르의 신분을 밝히는 것처럼 상황을 그린다. 이 상황 속으로 독자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한 아이를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마리 파라르'라는 인물.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잘못한 인물이지만, 브레히트는 우선 독자들에게 말한다.





그대들에게 청하노니, 분노하지 말기를,

피조물은 모든 피조물의 도움이 필요하다네.





이 부분은 독자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시 기법이다. 독자를 상황으로 끌고 들어온 뒤 독자들이 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이야기를 보고 분노하지 않고, 상황을 좀 더 면밀하게 살피는 것을 도왔다. 법정의 진술처럼 '마리 파라르'가 영아를 살해한 이야기를 전해준 그는, 그녀가 사회에서 외면당한 자로, 내몰리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혼모인 그녀가 아이를 죽이는 것까지 굉장히 담백한 묘사로 이어지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다. 아이를 때려 죽이는 장면과 시체를 숨기는 장면까지. 그대로 사실을 전하고 있을 뿐이지만, 오히려 그 잔상이 오래 남도록 도운다. '마리 파라르'로 아이를 혼자 낳아 살해까지 하게 되는 나약한 피조물, 궁지에 내몰리게 되는 부당한 사회를 그리고 있다.



자칫 그의 마르크스 사상으로 인해 사회적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비기독교적인 이야기가 더 짙어 보인다. '피조물의 나약함을 증명하려고 한다.'는 행에서, 그의 피조물과 신에 대한 시선을 알 수 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말에 영향을 받은 브레히트는, 신이 만들어낸 피조물이 나약하다는 것,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선 시인 <아펠뵈크 혹은 들의 백합화>에서도 그런 상황을 보여준다.





감성에 파고든 1부에서는 상황을 보여주고 독자들의 감성을 이끌어내면서 신은 피조물 곁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의 상식을 부수고, 독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계몽주의적 면모를 보인다.







 



2부 '정신수련'은  ......  여러 금언 및 직접적 지침들이 인생에 관해 여러 개안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는다.






인생에 관해 여러 개안을 가져다 줄 거라는 2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가 수록된 부분이다.



<세상의 친절함에 관하여>라는 성경과 비슷한 단어가 나온다. '벌거숭이', '지상에' 등의 단어를 통해 마치 성경처럼 느껴지고, 그 안에서 세상의 친절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1

차가운 바람이 가득 부는 이 땅에

너희 아이들은 모두 벌거숭이로 왔네.

가진 것 하나 없이 추위에 떨면서 누워 있네.

그때 한 여자가 기저귀를 채워 주었지.





......





3

너희들에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세상,

어느 누구도 너희들이 떠나려 할 때 붙잡지 않네.

많은 이들에게, 아이들, 너흰 있으나 마나 했네,

많은 이들이 그렇더라도 너희들을 위해 울었네.



4

차가운 바람이 가득 부는 이 땅을

너희 모두는 딱지와 부스럼에 덮인 채 떠나네.

거의 누구나 이 세상을 사랑했지

사람들이 너희에게 두 줌의 흙을 뿌려 줄 때면.









앞서 브레히트가 반기독교적인 시를 썼다고 했지만, 브레히트의 시가 공격적인 것은 아니다. 반기독교적,이란 말은 '신이 있는 세상이 이럴 리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니체의 신은 없다는 말에서부터, 브레히트는 꾸준히 인간, 피조물, 벌거숭이가 태어나 살아가는 것을 그리며 인간의 힘듦을 말한다.



'너희들에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세상,'에서 차가운 바람에 태어난 인간들을 신이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신이 없다는 게 아니다. 신이 없더라도,인 게 이 시의 중요한 지점이다. 신이 없고 책임도 지지 않지만, 벌거숭이 인간에게는 기저귀 채워주는 여자도 있고 '많은 이들이 그렇더라도 너희들을 위해 울'기도 한다.



그렇기에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이 땅이래도, 모두는 사후세계 없이 한 줌의 부스럼과 떠나고, 누구나 이 세상을 사랑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너희에게 두 줌의 흙을 뿌려' 주기 때문이다. 천국이라는 사후 세계가 아닌, 죽음 이후에도 지상에서 애도하는 마음으로 흙을 뿌려 주는 것에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반기독교적이라는 공격적인 듯이 보이는 말에도, 오히려 인간의 힘든 삶과 서로의 사랑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는 결국 앞선 소개인 '시의 사용가치'와 연결된다. 브레히트는 시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위 인용한 시처럼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3부 '연대기'는 자연의 폭력이 거칠어질 때 필쳐 보는 것이 좋다.






3부에는 브레히트의 서정시인 면모를 보여주는 시가 있다. 브레히트는 실제로 감성적인 시선을 담은 시편을 많이 써냈으나, 이후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서정시를 쓸 수 있는 시대가 아님을 인지하고 서정시가 아닌 현실을 살피는 시를 써낸다. 그런 그의 생각이 담긴 시도 존재하지만, 그는 브레히트의 다른 시집에 수록되어 있으니 이후 그때 살펴보겠다.



<마리 A.에 관한 기억>은 실제로 브레히트가 사귄 마리 A.라는 여자에 대한 기억을 써낸 시다.







1

푸르른 9월 어느 날

어린 자두나무 아래서

나는 그녀를, 그 고요하고 창백한 사랑을

조용히 품에 안았다. 마치 부드러운 꿈인 듯.





......





그러나 구름은 몇 분 동안만 피어올랐고

내가 올려다보았을 때 바람에 벌써 사라지고 없었네.









구름이 피어난 현재, 사랑했던 한 여자를 생각한 시다. 과거의 사랑을 읊는 브레히트는 서정시인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매력적인 표현을 가졌으나, 이후 살필 전쟁에 관한 시처럼 붉은 피로 적셔진 시대에 서정시를 쓰지 못했다.







3

조지가 전사했고, 프레디가 결국 죽었다.

존이 실종돼서 썩은 상태.

혈액은 그러나 여전히 빨간색,

군대는 계속 신병을 모집 중.







위 시와는 반대된다. 부드러운 꿈, 사랑의 기억을 가진 브레히트는 다른 시인들처럼 순수하고 부드러운 사랑을 가졌으나 조지, 프레디, 존과 같은 병사 세 명의 모습을 직시했다. 그렇기에 병사 세 명의 죽음, 여전히 빨간 혈액, 하지만 신병을 계속해서 모집하는 군대, 이들에 대한 시를 계속 적어나갔다.



그의 시는 완전히 과거 프랑스 상징주의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 그와 이어진 것을 쓰던 중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나간 것이다.



















이후에도 『가정기도서(Hauspostille)』에는 4부부터 6부까지 많은 시가 담겼다.



그의 첫 시집인만큼, 아직 완전한 마르크스주의 내용이 담긴 게 아닌, 반기독교와 삶을 성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브레히트는 인간의 삶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누구보다 인간을 사랑한 시인이다. 인간 고유의 삶과 고통, 극복과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시인이다.



인간 고유의 것을 다루고 있기에 시인은 신을 거부하고 인간을 앞세운다. 특히 부르주아들의 노래였던 예술, 시를 전해주는 프로메테우스의 면을 보이기도 한다.





『가정기도서(Hauspostille)』에는 그의 서정시가 담기기도 했다. 그가 왜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고 붉은 피로 물든 시를 쓰는지. 그는 이후에 나온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그의 첫 시집으로 브레히트의 매력을 알아보았다. 간결하고 현실에서부터 출발하는 시. 현재 우리 문학, 시에도 필요한 움직임이다. 물론 우리나라 시인들도 세월호, 빈부격차 등을 살펴왔다. 브레히트 같은 냉철하게 사회를 꿰뚫는 시인이 나타날까.



그런 시를 기다리게 되고, 또 찾아보게 하는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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