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7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다카사키 소지 지음 | 서울신문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다카사키 소지 지음 | 서울신문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다카사키 소지 지음
입력 :2006-05-06


일본의 조선지배는 군인과 경찰, 관료들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의 지배구조는 오히려 지배계층의 비호 아래 조선에 이식된 수많은 ‘풀뿌리 식민자’들을 통해 유지됐다고 할 수 있다. 개항 당시 54명에 불과했던 조선 내 일본인은 식민 지배 말기인 1942년에는 75만명을 넘어섰다. 이 숫자는 일본의 작은 부현(府縣)의 인구와 맞먹는 규모다. 요컨대 식민지는 일본 자본주의 모순의 분출구이자 생명선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다카사키 소지 지음, 이규수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은 군인에서 상인, 게이샤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다양한 군상을 통해 일제 ‘풀뿌리 식민지배’의 실상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일본 쓰다주쿠대 국제관계학 교수.1876년 조선 개항부터 1945년 일본 패전까지 일본 식민지배의 양상을 실증적으로 밝힌다.

개항 직후 조선으로 거류민을 가장 많이 보낸 지역은 전통적으로 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나가사키였다. 강점 이후에는 지역적으로 조선과 가까운 야마구치나 후쿠오카를 비롯한 규슈와 주고쿠 지방이 주를 이뤘다. 식민 후기로 갈수록 관리와 경찰이 늘어나면서 도쿄 등 대도시 출신자들과 홋카이도를 비롯한 거의 모든 지방의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건너왔다. 이주 초기에 건너온 일본인 중에는 조선에서 한몫 잡아보려는 대륙낭인들이 많았다.1894년 7월 대원군 추대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도 오카모토 류노스케를 중심으로 한 대륙낭인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은 조선 사람들에 대해 우월의식을 갖고 있었다. 특히 면화 재배나 철도 건설, 식림사업 같은 일들은 자신들이 베푼 시혜로 여겼다. 그런 만큼 조선인에 대한 멸시와 편견은 극심했다. 한 예로 한국의 온돌에 대한 편견은 당시 일본인들 사이에 널리 유포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18년 조선 주둔 일본군으로 복무한 나가이 요시는 “온돌제 군인들 머리로 뭘 할 수 있겠는가. 온돌방에서 잠을 자면 모두 바보가 된다고들 했다.”고 증언했다. 물론 조선의 민예를 연구한 야나기 무네요시나 아사카와 다쿠미처럼 조선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사랑한 일본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책은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눈길을 끈다. 

첫째는 자신들의 행동이 훌륭했다고 강변하는 부류다. 압록강수력발전주식회사 사장으로 수풍댐을 건설한 구보타 유타카, 경성제국대 교수로 대륙병참기지론을 편 스즈키 다케오, 전남 지사를 지낸 경찰 출신의 야기 노부오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 전후 대장성 재외재산조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스즈키 다케오는 “…비참한 상태에 있던 조선경제가 병합 이후 불과 30여년 사이 오늘과 같은 일대 발전을 이룩한 것은 분명 일본이 지도한 결과”라고 단언, 일본 정부가 한국과 타이완에 대해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다.

두번째 유형은 일본으로 건너간 뒤 경성회·인천회·벌교회 같은 동향회를 만들만큼 식민지 조선을 그리워하던 부류. 

그리고 세번째 유형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비판을 가하는 부류다.
‘조선식민자’의 저자 무라마쓰 다케시, 소설가 고바야시 마사루, 조선사연구회 회장을 지낸 하타다 다카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자아비판파’다. 

저자는 “역사를 모르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한다.”는 말로 책의 집필의도를 밝힌다.

그동안 식민정책사는 한국사의 영역으로 간주해 중요하게 다뤄왔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삶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에 대한 연구는 마치 일본사의 일부인 것처럼 여겨져온 게 사실이다. 이 책은 식민지 조선 내 일본인에 관한 국내 학계의 연구를 자극하는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

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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