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 장인’ 전 국제사법재판소장 “‘위안부’, 법적정리 이상을 해야” : 일본 : 국제 : 뉴스 : 한겨레
‘일왕 장인’ 전 국제사법재판소장 “‘위안부’, 법적정리 이상을 해야”
등록 :2022-08-25
길윤형 기자
오와다 히사시 전 국제사법재판소장
제7회 ‘한일포럼상’ 수상뒤 소감 연설
외무성 재직 시절 ‘위안부’ 노력 소개도
왼쪽부터 오와다 히사시 전 국제사법재판소장과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한국국제교류재단 제공“국가 간의 위기관리를 위해선 정부 간 외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민족이고, 인간이고, 국민입니다. 그래서 민간의 교류가 정말 중요합니다.”
25일 도쿄 지요다구 뉴오타니호텔에서 열린 ‘제7회 한일포럼상’ 수상을 위해 연단에 오른 오와다 히사시(89) 전 국제사법재판소장은 감개무량한 듯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일포럼 초대 일본 쪽 의장이기도한 그는 자신과 한국의 인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며 절감한 민간 교류의 중요성, 양국 관계 회복의 필요성 등에 대해 수상 연설을 이어갔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일 두 나라가 국교를 정상화하던 1960대 중반으로 거슬러 오른다. 1955년 대학을 졸업한 뒤 외무성에 들어가 주로 조약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1965년 6월 조인된 한일협정의 문서 작성에 참여하게 된다.
한국과 관계가 ‘결정적’으로 깊어지게 된 것은 1991년 8월 외무성의 ‘넘버2’인 사무차관에 임명된 직후 불거진 ‘위안부’ 문제였다. 자신이 본 피해를 직접 밝히며 호소한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 증언’을 통해 그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위안부 문제가 역사 전면에 부상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일본 정부는 매우 난처한 입장에 몰리게 된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차관이었던 내 업무의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애초 일본 외무성은 “위안부 문제는 1965년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체결된 청구권 협정으로 법적 처리가 끝낸 문제”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국제법 전문가’인 오와다 전 소장의 견해 역시 같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의 마음은 요동쳤다.
“법적으로는 그렇다 해도 인간으로서 그럴 수 있을까요. 법적으로 정리된 문제라 해서 인간과 민족의 관계는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성의를 갖고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외무성 역시 그런 방침을 정하게 됩니다.”
오와다 전 소장은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했던 미야자와 기이치(1919~2007) 총리에게도 그런 취지로 보고했다. “미야자와 총리께서도 제 말에 반론하지 않고 쭉 얘기를 들으시더니, ‘그게 맞는 얘기다. 그런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가자’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일본 정부의 방침이 정해진 것입니다.”
이후 미야자와 내각은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과 일본 정부의 관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를 내놓게 된다. 나아가 일본 정부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 시절이던 1995년 7월 일본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피해자들에게 ‘속죄금’을 지급하는 ‘아시아 여성기금’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명확한 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의 반발에 막혀 일본 정부가 기대했던 ‘완전한 해결’에는 이르지 못한다.
제7회 한일포럼상 시상식에서 유명환(오른쪽)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오와다 히사시 전 국제사법재판소장을 소개하고 있다.위안부 문제를 다루며 오와다 전 소장이 절감한 것은 민간 외교의 중요성이었다. 외교에는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한-일이 화해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데 필요한 것은 민간의 지속적인 교류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무차관 퇴임을 앞두고 당시 공로명 당시 주일 한국대사와, 두 사회가 교류할 수 있는 민간 플랫폼을 만들어보자고 제의한다. 이 제안이 열매를 맺어 1993년 11월 김영삼 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가 경주에서 만나 양국의 지속적인 민간 교류를 위해 폭넓고 지속적인 대화를 하기로 합의한다. 이후 30년 동안 한해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한일포럼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포럼은 그동안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김포-하네다 직항 노선 신설 등 양국 관계를 개선하고 교류를 심화시킬 수 있는 여러 제언을 내놓았다. 24일부터 3년 만에 도쿄에서 ‘대면’으로 열린 제30차 포럼의 둘째날엔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이 직접 참석해 축사를 전했다. 하야시 외상은 이 포럼에 16번이나 참가한 ‘단골 멤버’다.
오와다 전 소장은 현재 사상 ‘최악의 상태’라 불리는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다. “관계가 어렵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현재 양국 간 문제를 단순히 분석만 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건 학자들이 하면 되는 것이죠. 두 나라 사이의 긍정적인 요소를 잡아내 실현해야 합니다. 이 모임에 정부 관계자 대신, 정치가, 언론인, 학자, 전직 관료를 넣은 이유입니다. 의견을 결집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오와다 전 소장은 나루히토 현 일왕의 장인이기도 하다.
도쿄/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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