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한국은 18세기에 중세로부터 탈주했다. 상품화폐 발생과 상공업의 발전이 그 토대다. 그 속에서 기존 사회의 해체를 지향하면서 미래 사회의 비전을 제시한 것이 최제우의 〈용담유사〉이고, 집강소이며 동학농민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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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의는 이미 이 지점에서 실패해버렸다. "상품화폐의 발생과 상공업의 발전"이 "중세로부터 탈주"하는 "토대"라는데 조선왕조 하에서의 사회경제적 발전의 수준이 동시대 중국, 일본보다도 높았던가? 제임스 팔레의 이 비판을 한국학 연구자들은 이렇게 끈질기게 외면한다. 내재적 발전론을 대표하는 역사이론서 하나 창출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그저 계속 식민사관 극복만 내세우고 있으니 답답하다. 내가 그런 걸 좀 해보고 싶어서 김용섭을 탐독하며 마르크스로 넘어왔건만 지금 와서는 자본주의맹아론을 갖고 조선왕조 사회경제사를 독해하면 나오는 게 없다.
엄밀하게 보았을 때 조선왕조는 노예제에서 농노제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단계였고, 이걸 논점으로 삼아 조선왕조의 사회구성체를 농노제라 보는 이영훈을 비판하려고 했는데 이 양반이 <한국경제사 1, 2>를 쓴 다음에 갑자기 노예제론으로 선회하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쳤다. 뭐 어차피 법제적인 측면을 기준으로 하니까 비판해도 상관없기는 하다. 이영훈, 안병직의 근대론은 굉장히 폭력적이고 단순해서 이영훈의 경우에는 중국이 사적 소유권을 법제화한 2004년인가 그 즈음에서야 비로소 "근대사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단순하고 조악한 근대관이 그의 탁월한 역사연구와 밀접하게 얽혀 있어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렵다.
예컨대 식민지근대화론 입장으로 분류되는 김낙년, 이영훈 등의 낙성대 학파의 식민지배 비판이 이것과도 연결돼 있다. 일본제국주의는 물론 그 자체로도 타민족의 주권을 박탈한 것이라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어찌됐든 사적 소유권을 공인하고 근대적 시장경제를 도입하였다. 일본제국주의를 통해 조선사회는 근대세계와 접하게 되었으며 점차 근대인으로 성숙해진다. 하지만 그 기간은 매우 짧았고 1930년대 이후 일본제국주의 자체가 야만화되어 전체주의와 같은 통제경제로 전환되면서 사적소유권을 말살하는 방향으로 세계사적 보편성에서 이탈하였다.
일본을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근대성을 습득하게 된 조선인들은 근대로부터 이탈한 야만의 제국, 일본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야만의 세계인 전체주의적 공산주의 세력과의 투쟁 속에서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근대를 성취하기에 이르렀다. 야만의 일본제국주의와 북조선 국가사회주의 모두로부터 근대성을 지킨 대한민국 건국을 긍정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적 소유권과 자유민주주의의 도입과 보존이라는 맥락으로 1876~1987년까지의 약 90년 간의 역사를 일관되게 설명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단순하고 폭력적인 근대관과 이도흠의 "다양한 근대", 미야지마의 "유교적 근대" 같은 조잡한 근대관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근대를 자본주의 그 자체, 그중에서도 '사적 소유"권"'의 성립으로 파악하는 단순한 관점은 근대를 자본주의와 관련없는 상품화폐경제 자체와 연관시키면서 자본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론적 분석을 포기하는 '복잡한(?)' 관점과 서로 테제 - 안티테제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하게 된다. 이 틀 자체를 붕괴시키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된다. 탈근대론적 입장들은 그런 걸 하겠다고 나왔지만 윤해동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식민지 문제를 사유하는데 있어 실패하는 바람에 보수주의로 투항해버린다. 내 역사이론 관련 원고가 이런 난점을 돌파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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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밖으로 눈 돌리면 다양한 ‘다른 근대’가 있다
동학농민전쟁은 평등과 해방의 정신으로 조선이 도달한 근대성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드라마 ‘녹두꽃’의 한 장면. 부산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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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밖으로 눈 돌리면 다양한 ‘다른 근대’가 있다
입력 : 2022-08-18 19:14:51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18~19세기 한국문학, 차이의 근대성 / 이도흠
근대, 서로가 서로에게 침투돼서 열려
서구 중심주의 ‘동일성 담론’ 탈피
다양한 주체들 ‘차이의 근대성’ 강조
17~18세기 서학 만나 발전한 동학 등
한국엔 자생적으로 발달한 근대 존재
동학농민전쟁은 평등과 해방의 정신으로 조선이 도달한 근대성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드라마 ‘녹두꽃’의 한 장면. 부산일보 DB
근대가 문제다. 〈18~19세기 한국문학, 차이의 근대성〉은 “한국민은 ‘다른 근대’를 만들어왔다”며 “이제 근대성을 성찰하면서 새로운 근대를 기획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근대’가 문제적이고 ‘새로운 근대의 기획’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새로운 근대의 기획’이란 기존 근대성을 넘어서서 실존 노동 산업 민주주의 등에 이르는 21세기 복합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획을 하자는 것이다. 책의 1부 ‘이론과 방법론‘은 세 편, 2부 ‘18~19세기 한국문학에서 차이의 근대성과 재현’은 일곱 편의 글을 싣고 있다.
일반적으로 근대에 이르는 여정을 영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제1의 길, 후발 자본주의 국가인 독일이나 일본으로 대표되는 제2의 길로 나누어왔다. 21세기적 통찰에 따르면 그와 다른 것이 한국의 ‘다른 근대’라는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사적 수준에서 근대성이 작동한 것은 아주 다양하고 서로 혼종돼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근대의 길은 홀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침투돼 있는 것이 세계사적 실상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18세기에 중세로부터 탈주했다. 상품화폐 발생과 상공업의 발전이 그 토대다. 그 속에서 기존 사회의 해체를 지향하면서 미래 사회의 비전을 제시한 것이 최제우의 〈용담유사〉이고, 집강소이며 동학농민혁명이다. 그런데 동학은 17~18세기 유럽(서학)이라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가능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시대도 마찬가지다. 식민 저항을 통해 한국의 근대성은 여물어졌다. 식민성에 근대성이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식민성에 근대성이 있다는 것은 서구 경우가 더 그러하다. 서구의 근대성은 식민지 수탈, 식민성을 통해 가능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세계사적 차원에서 ‘근대’를 다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에 이르는 길은 제1의 길, 제2의 길이 아니라 아주 다양하다는 것이다. 아이젠스타트의 ‘복수의 근대성’, 슈미트의 ‘다종의 근대성’이 그 표현이며, 이 책은 거기서 더욱 나아가 ‘차이의 근대성’을 주장한다.
‘차이의 근대성’은 ‘새 옷을 갈아입은 탈식민 담론’으로, 원효의 사상에 뿌리를 둔 ‘화쟁 시학의 방법론’을 취한다. 동양과 서양, 근대성과 식민성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대대(待對)의 관계로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고 생성시키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관계라는 것이다. 좀 어렵기는 하다.
저자는 ‘차이의 근대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과 구분한다. 첫째 ‘내재적 발전론’은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하지만 결국 유럽 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맹아론으로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 ‘김용섭의 경영형 부농’ 등이 그것이다. 근년에는 한국 중국 베트남의 과거제가 주요하게 거론된다. 공정한 선발과 능력주의에 기반한 합리적 관료제 사회가 유럽보다 앞선 아시아의 선취적 근대성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 중국 베트남의 과거제가 중세 체제를 수백 년 이상 구성했다면 그것은 서양과 다른 아시아의 중세성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둘째 일제 강점이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대놓고 식민 지배를 상찬하는 것이다. 이 주장은 ‘실증’을 내세우며 생각보다 더 넓게 퍼져 있다. 21세기 미국과 일본 학계, 한국 보수학계는 ‘주류’ ‘통설’을 거론하며 여기에 기울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일제강점기 개발 중 한국전쟁 이후까지 잔존한 것은 10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고 지적한다. 실제, 일제가 조선에 투자한 것은 60억~70억 엔인 데 비해 조선에서 가져간 것은 440억 엔으로 6.3~7.4배 더 빼갔다. 식민지 전 기간 추정 GDP 550억 엔의 80% 이상을 유출해 간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결국 ‘내재적 발전론’ ‘식민지 근대화론’, 그리고 마르크주의 문학이론가 임화의 ‘이식문학론’, 해방 후 민족주의자들의 ‘식민지 수탈론’ 등은 서구의 근대화를 근대화의 유일한 길로 삼는 ‘동일성 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의 숨겨진 얼굴이 ‘오리엔탈리즘’이다. 이런 ‘동일성 담론’을 넘어서자는 것이 아주 다양한 ‘다른 근대’이며, 이 책의 제목인 ‘차이의 근대성’이다.
‘차이의 근대성’의 함의는 뭔가. 공동체 파괴, 소외 심화, 불평등 극대화, 환경과 생명의 위기, 노동 배제, 물신주의 만연, 경쟁과 갈등 증대, 문화 종속, 기후 위기, 자본주의 체제 붕괴 위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 위기, 공론장 붕괴와 민주주의 위기를 유발하는 것의 뿌리에는 서구적 근대성, 동일성 담론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넘어설 때 다양한 주체들이 자연 환경 타자들과 연기적 관계를 맺으면서 세계를 구성하고 이의 의미를 해석하고 지향하고 실천하면서 세계를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좀 더 행복해지자는 것이다.
이도흠 지음/소명출판/659쪽/5만 6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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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한국문학, 차이의 근대성 - 유럽중심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 |
한국연구총서 107
이도흠 (지은이)
소명출판2022-06-29
56,000원
양장본659쪽
18~19세기 한국문학, 차이의 근대성 - 유럽중심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
한국유학의 철학적 탐구
우리 역사의 철학적 쟁점
책소개
근대성에 대해 유럽중심주와 민족주의를 넘어 ‘차이의 근대성’이라는 새로운 이론으로 분석한 책이다. 국문학계만이 아니라 역사학계와 경제학계에서도 가장 큰 쟁점이라 할 근대성의 문제에 대해 다루되, 기존의 내재적 발전론, 식민지 근대화론은 물론, 서구 바깥에 여러 근대성이 존재한다는 아이젠스타트의 복수의 근대성론과 다양한 유형의 자본주의의 발전이 있었다는 폴커 슈미트의 다종의 근대성론이 모두 동일성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차이의 근대성’이라는 새로운 이론과 방법론으로 분석하였다.
21세기 지금 여기, 자본과 제국의 착취와 수탈로 인하여 아직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이 주요 모순인 근대에 가상과 실재가 공존하고 인공지능이 글을 쓰는 탈근대가 겹쳐지는 시대를 맞아, 재현의 불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대안으로 ‘자본주의 체제 바깥의 서사의 창조’와 ‘틈과 참의 리얼리즘’을 제안한다.
목차
책머리에 / 3
서문 / 25
제1부 이론과 방법론 29
제1장 기존의 근대화론의 타당성과 한계 31
글을 열며 31
1. 서구적 근대화론의 타당성과 한계 33
2. 이식문화론의 타당성과 한계 40
3. 자본주의 맹아론의 타당성과 한계 50
4. 협의의 내재적 발전론의 타당성과 한계 64
5. 식민지 근대화론의 타당성과 한계 71
마무리 87
제2장 중세성ㆍ근대성ㆍ탈근대성의 동일성과 차이 89
글을 열며 89
1. 근대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92
2. 유럽의 중세, 근대, 탈근대에서 토대와 상부구조 문제 95
3. 중세성, 근대성, 탈근대성의 동일성과 차이 105
마무리 125
제3장 차이의 근대성, 그 이론과 방법론 127
글을 열며 127
1. 이론의 철학적 바탕동일성에서 대대待對의 차이로 129
2. 현실과 텍스트, 해석의 관계와 차이 156
3. 차이의 근대성론의 방법과 지향점 189
4. 화쟁시학의 방법론 232
마무리 236
제2부 18~19세기 한국문학에서 차이의 근대성과 재현 239
제1장 상품화폐의 발생과 문학적 재현 241
글을 열며 241
1. 상품화폐 경제와 근대성의 상관관계 243
2. 18~19세기 조선조에서 상품화폐 경제의 발생 문제 249
3. 상품화폐의 문학적 재현과 태도 유형 258
4. 18~19세기 가사에서 상품화폐 관계의 재현과 지향 264
마무리 291
제2장 근대적 주체의 형성과 문화창조 295
글을 열며 295
1. 18~19세기 조선조 사회의 계급 구성 296
2. 중인의 사회경제적 토대와 구술문화 맥락에서 청중지향 장르로서 사설시조 향유 299
3. 사설시조 담론 주도층으로서 중인의 문화 창조의 네 양상유가적 미학, 놀이와 풍류의 흥, 통속성, 탈중세성 312
4. 두레와 장시의 공론장과 근대적 주체의 형성 335
5. 민중의 각성과 문화 창조판소리와 탈춤의 중세성과 근대성 345
마무리 365
제3장 새로운 세계관에 따른 표상체계/미학/담론의 변화 368
글을 열며 368
1. 주자주의에 대한 성찰과 실학 문학 담론의 구성 370
2. 물질주의의 전개와 사설시조에서 하체의 미학 383
3. 표상체계의 변화심성론에서 활물론으로 392
4. 민중의 저항과 민중문학의 담론 형성 398
5. 동학사상의 변혁성과 용담유사의 개벽 담론 403
마무리 420
제4장 탈중세성의 시론과 실제 423
글을 열며 423
1. 진정론眞情論과 성정의 진솔한 표출 426
2. 간쟁론諫諍論과 현실의 풍자와 비판 441
3. 창신론創新論과 새로운 형식의 창조 449
4. 서민성의 시론과 서민미학의 구현 455
마무리 460
제5장 근대적 시공간의 형성과 재현 462
글을 열며 462
1. 중세적 시공간과 근대적 시공간의 차이 463
2. 근대적 시간의 출현과 문학적 재현 476
3. 근대적 공간의 출현과 문학적 재현 482
마무리 497
제6장 사랑과 욕망의 표출과 권력, 이데올로기, 시선 499
글을 열며 499
1. 사랑과 욕망의 개념과 권력, 이데올로기, 시선과 상관관계 500
2. 조선조 사회의 섹슈얼리티와 권력/이데올로기/시선 512
3. 시조에서 사랑과 욕망 표현의 네 양상 517
4. 시조에서 욕망 표출과 권력, 이데올로기, 시선의 관계 536
마무리 549
제7장 문학의 대중화와 통속성의 미학 553
글을 열며 553
1. 통속성의 미적 범주 555
2. 사랑의 정한 560
3. 성의 관능성 564
4. 눈물의 감상성 566
5. 웃음의 해학성 569
6. 몽상의 환상성 573
7. 폭력의 배타성 577
8. 통속성의 미적 범주 사이의 상관관계 580
마무리 582
제8장 타자로서 서양의 만남과 재현 양상 585
글을 열며 585
1. 타자의 네 범주 588
2. 낯선 남으로서 타자와 「무자서행록」 590
3. 동일성의 대립자로서 타자와 <병인연행가> 593
4. 자아의 이상으로서 타자와 『셔유견문록』 597
5. 대대적 자아로서 타자와 「해유가」 602
6. 타자의 네 양상과 근대성의 관계 607
마무리 611
맺음말 대안의 근대성을 향하여 614
참고문헌 / 635
찾아보기 / 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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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22년 8월 12일자 '책&생각'
저자 및 역자소개
이도흠 (지은이)
동양과 서양의 대화를 모색하며 우리 문학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약자들이 좀 더 잘사는 세상으로 바꾸는 데 보탬이 되고자 애쓰고 있다. 원효의 화쟁사상을 바탕으로 마르크시즘과 형식주의를 종합하여 화쟁기호학을 창안하였다. 2001년 『동아일보』의 ‘동과 서의 벽을 넘어’란 기획에 북경대의 탕이지에, 도쿄대의 다카하시 교수 등과 함께 동서양을 아우르는 인문학자로 소개되었고, 국문학자임에도 2010년 『법보신문』에 10대 불교학자로, 2020년에는 세계적 학자를 양성하는 사업인 한국연구재단 우수학자에 선정되었다. 현재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백기완 노나메기 재단 부설 노나메기 민중사상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시가학회 회장, 한국기호학회 회장, 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상임의장,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계간 『문학과 경계』 주간,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소장, 의상ㆍ만해 연구원 연학실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화쟁사상을 통한 형식주의와 마르크시즘의 종합』,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등, 역서로 틱낫한의 『엄마』가 있다. 접기
수상 : 2016년 유심작품상
최근작 : <설악무산의 불교, 그 깊이와 넓이>,<18~19세기 한국문학, 차이의 근대성>,<과학기술 글쓰기> … 총 35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근대성의 논의를 새로운 이론을 통해 분석하다
유럽중심주의를 탈피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동일성을 해체하는 차이로 바라볼 때, 각 나라와 사회에는 각각의 중세성과 근대성이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나 유럽식의 자본주의의 발전이 있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이나 세습적 귀족제에서 벗어나 능력주의에 따라 과거제를 통한 관료의 임용을 한 것이 중국, 한국, 베트남에서 근대성을 선취한 것이라는 우드사이드의 주장 모두 유럽의 기준을 다른 국가나 사회에 일반화한 데서 빚어진 오류다. 세습적 귀족제를 유지한 유럽과 달리 과거제를 바탕으로 한 관료제가 한국의 중세이고 이에서 벗어나 동학농민전쟁 시기에 집강소에서 농민과 천민이 동등하게 집강, 집사 등의 임원이 되어 의사결정을 하고 자치를 행한 것이 근대다. 이처럼, 각 나라와 사회에는 차이의 중세가 있고, 18~19세기의 달라진 맥락에 따라 중세적 흐름에서 탈주하려는 탈중세적 변화들이 나타났다.
이에 저자는 유럽의 근대성 기준을 떠나 조선조 현실과 이를 재현한 텍스트를 차이의 사유로 직시했다. 각 분야별로 실제 현실과 텍스트로 재현된 것을 구분하여 분석하며 전반적인 흐름과 변화, 한 사건과 다른 사건과 연기적 관계, 그 사건과 텍스트가 놓여있는 맥락을 관찰했다.
그렇다고 중세로부터 탈주, 탈중세성이 곧 바로 근대성과 동일화할 수는 없다. 아무리 큰 변화라 하더라도 기존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은폐하고 지속적이지 못하고 비전이나 미래와 연결되는 지점들이 없다면 근대로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여러 학자들이 자유로운 사랑을 노래하고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사설시조들이 이를 강하게 억압하였던 유교이데올로기와 도덕관으로부터 탈주이기에 근대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행위를 관능적으로 묘사한 대다수의 사설시조들은 신분과 젠더에서 절대적으로 우월한 권력관계에 있는 양반 남성이 성을 독점하고자 만든 기생제나 축첩제를 이용하여 기생을 포함한 천민이나 서민 여성에 대해 행한 억압적 탈승화다. 지속성을 갖기는 했지만 오히려 기존 사회의 모순을 은폐하고 비전도 전혀 드러내지 못하였으며 신분과 젠더를 초월하여 주체의 자기실현과 존재의 연속성과 합일을 지향한 근대적 사랑이나 여러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욕망과도 연계되지 않는다. 이들 시조는 근대성을 선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봉건성을 심화한 사례다.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관계, 근대성과 식민성
문화란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감성, 유전적 능력과 더불어 잠재성과 가능성을 가진 다양한 주체들이 특정한 사회경제적 토대와 맥락에서 세계관과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 세계를 해석하고 지향하며 여러 실천을 행하는 것들이 서로 부딪치고 어우러지며 인정투쟁, 담론투쟁, 헤게모니 투쟁을 하는 장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행해진다. 그러기에 현실과 문화 모두 이중적·복합적·대대적(待對的)·연기적(緣起的)이다.
상품화폐의 발생으로 물신화가 나타나고 상공업의 발전으로 유흥업이 번성하면서 성적 자유가 확대되고 민란과 변란이 발생하자 지배층은 유교이데올로기 강화와 대중교화의 방편으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경민편(警民編)을 발간하여 대대적으로 보급하는 반작용을 행한다. 이전 시대에 유교 윤리와 도덕이 상층에만 머문 데 반하여, 18~19세기에는 이의 서민화가 일어난다. 서민계급은 자신들이 나서서 「오륜가」를 짓고 서당을 세울 정도로 충, 효, 열(烈), 신의, 우애 등의 유교적 가치를 자발적으로 내면화하고 일상화하여 생활규범으로 삼는다. 이는 일시적으로 지배이데올로기의 강화와 체제의 생활세계 침투로 나타나지만, 본연지성과 예의 구현이 정당성 확보, 권력과 명예, 헤게모니의 바탕이자 양반과 서민을 가르는 핵심 준거인 조선조 사회에서 서민들은 자신들을 양반과 다름없이 유교적 도덕을 구현하는 주체로 각성하였고 일부는 양반계급에 저항하였다. 또, 여성들의 치산(治産)은 17세기에 장자 상속제가 확립된 이후 막대한 제사비용을 감당하면서도 안빈낙도(安貧樂道)가 권력과 헤게모니의 바탕인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그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 가부장적 폭력의 소산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치산을 하면서 상품화폐경제에 눈을 뜨고 경제권을 확보하며, 가정의 단위든, 마을의 단위든 상품화폐경제가 유교적 삶을 대체하는 만큼 점점 발언권을 높였다. 그럼에도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전자에만 주목하여 조선의 자생적 근대성을 부정하고, 내재적 발전론자들은 후자의 실증이나 사례에 기반한 해석만을 견지한다.
18~19세기 실제 현실과 재현된 텍스트를 통해 근대성을 규정하다
18~19세기의 실제 현실과 재현된 텍스트에서 ① 중세로부터 탈주하는 탈중세적 변화 가운데 ② 기존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 ③ 지속성을 갖고 나타나면서 다른 사건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건으로서 ④ 비전을 제시하여 ⑤ 미래의 한국 사회와도 연계되는 것을 근대로 규정한다. 이에 대해 차이의 사유로 분석하되, 서양/동양, 제국/식민, 중심/주변, 엘리트/서발턴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분법이 아니라 대대(待對)의 논리로 서로 모방하거나 저항하면서 거울이자 타자, 내 안의 남과 너 안의 남으로서 서로 생성하는 과정에 대해, 비동시적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권력, 헤게모니, 사회경제적 토대를 종합하여 해석하였다.
조선조 건국에서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도도한 흐름이 그대로 이어지는 가운데 18~19세기를 기점으로 하거나 그 이전부터 기존의 중세와 다른, 괄목할 만한 변화 가운데 조선조 봉건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면서 지속적으로 사건이 일어나면서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고 비전을 제시하여 이후의 한국 사회와도 연계되는 것들에 주목하였다. 이를 크게 상품화폐, 계급과 주체, 세계관, 시론(詩論), 시공간, 욕망, 문학의 대중화와 통속성, 타자 등 8가지의 분야로 정리한다.
조선사회의 목표는 왕에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이기고 본연의 성을 되찾아 예(禮)를 구현하는 것이다. 조선사회는 인의(仁義), 충(忠), 효(孝)와 같은 유교의 이념과 가치를 세계관이나 통치이념,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삶의 원칙으로 삼아 실천하였다. 당연히 이런 가치보다 물질과 화폐를 추구하는 이는 공동체에서 배제되거나 추방당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상품화폐의 발생은 패러다임과 삶의 양식에 대전환을 가져왔고 토대를 변화시켰다.
또 조선조는 다른 중세 국가처럼 신분상의 구분과 차별이 명확하였다. 사회학적으로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극소수의 자작농과 중인을 제하고는 왕족과 양반만이 토지와 권력, 한문의 리터러시와 이에서 비롯된 지식을 독점하였다. 계급은 토대와 상부구조를 매개하는 행위자다. 토대가 계급을 결정하지만, 계급의 변화는 토대와 상부구조 모두의 변화를 야기한다. 18~19세기에 상공업의 발전에 따라 신분질서에 동요가 일었다. 중인이 확대되고 이들과 민중들이 두레와 장시의 공론장을 매개로 계급의식과 민권의식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과도한 수취, 삼정의 문란, 세도정치 등의 현실을 몸으로 겪으면서 봉건모순을 인식하고 근대적 주체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유교 이데올로기와 지배질서에 대해 합법적으로는 상언과 격쟁으로, 비합법적으로는 민란과 무장폭동으로 저항하였다. 현실비판가사는 봉건모순에 대해선 핍진하게 비판했지만 새로운 비전을 펼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판소리는 지배이데올로기/지배층과 타협적 평형을 이루기는 했지만, 봉건사회의 모순에 대한 비판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펼쳤으며 대중적으로 연행이 되면서 체제 수렴과 해체 양쪽에 모두 영향을 미쳤다.
세계관은 세계의 부조리에 대하여 집단무의식적으로 대응하는 양식이자 세계의 의미를 구성하고 해석하는 바탕체계이고 기업이나 국가처럼 그 구성원들이 서로 실재한다고 믿을 경우 실제 현실을 구성하는 상호주관적 실재로서 작동하는 믿음의 체계다. 불교적 세계관이나 샤머니즘적 세계관이 잔존하기는 하였지만 조선조 사회는 승려나 무당을 천민으로 타자화할 정도로 유교적 세계관이 주동적 세계관으로 압도하였다. 본연의 성을 되찾아 예를 구현하며 안빈낙도를 추구하면서 물욕을 천시하던 조선조 사회에서 물질주의는 문학에도 일대 전환을 야기하였다. 곧, 물욕으로 인하여 인간이 타락하고 공동체가 몰락하는 현실을 세계의 부조리로 인식하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개인이 물욕을 추구하는 자에 맞서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서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휴머니즘적 세계관과 신분을 초월한 평등을 추구하는 민중들의 세계관이 부상적 세계관으로 출현하면서 공고했던 주동적 세계관에 균열이 발생했다.
조선조 사회에서 문학은 단순히 예술적 향유를 넘어 풍류를 즐기고 과거를 통해 권력을 얻는 수단이자 헤게모니를 결정하는 요인이다. 조선조 문학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시론(詩論)이다. 조선조 내내 시는 옛 전고에 근거하여 유교적 이념이 추구하는 도(道)나 리(理)를 전달하는 방편이었다. 하지만 상공업과 도시의 발전으로 유흥문화가 발달하고 중인들이 이를 주도하면서 실제 자유로운 성애가 질펀하게 이루어졌다. 시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우려는 욕구와 옛 전고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 도나 리가 아니라 개인의 성령(性靈)의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하는 시론이 안과 밖에서 태동하였다.
조선조는 다른 중세사회와 마찬가지로 우주와 자연의 패턴에 인간이 조응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 해가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왔으며 24절기에 맞추어서 의례를 행하고 놀이를 하고 삶을 영위하였다. 하지만, 18세기에 들어 시간에 자신의 패턴을 종속시키기 시작하였다.
중세인들은 타계와 대립되는 세속의 공간을 설정하고 이를 다시 신전과 교회나 절 등의 성소, 왕이 사는 궁성, 귀족들의 거주처, 평민들의 거주처, 배제된 자들의 거주처로 분할하였다. 근대에서 공간은 타계를 소거하고 경제적 목적과 권력에 따라 구획화한다. 상공업의 발전에 따라 상공인과 일꾼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1789년에 한성부 내 도성 밖 인구는 거의 절반인 15만 명에 이른다. 서울의 공간 절반 정도가 신분질서와 권력이 공간을 분할던 데서 벗어나 경제적 목적과 이에 따른 권력에 의해 비교적 자유롭게 구획된 것이다.
조선조는 남녀칠세부동석을 외치고 남자가 가는 길을 여자가 멀찍이 돌아가라고 노래할 정도로 유교 도덕과 윤리를 강력하게 내세우고 공동체 안에서 타자의 시선을 촘촘하게 엮어서 욕망을 과도하게 억압하고 절제한 사회다. 주권권력, 규율/훈육권력이 거시적으로 억압하는 바탕에서 유교윤리를 서민화/내면화한 공동체의 미시 권력들이 감시하고 검열한다. 하지만, 18세기에는 상공업이 발전하고 도시가 확대하고 생산성이 증대하여 잉여자본이 풍성해지면서 유흥업이 번성한다. 욕망을 억압하던 이데올로기, 도덕관, 권력, 규율/훈육체계가 느슨해진 가운데 신분질서를 파괴한 사랑과 불륜, 기방을 매개로 한 성매매도 성행하자 문학과 예술에서도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춘화, 사설시조, 소설 등이 유행한다. 사랑과 욕망에서도 중세적 사랑과 근대적 사랑, 억압적 성애와 자유로운 성애가 서로 충돌한다. 아무리 자유로운 사랑과 성을 노래했다 하더라도 유흥문화의 현장에서 비롯된 문학이나 양반들의 성적 욕구 해소를 재현한 텍스트를 근대성으로 간주할 수 없다.
조선조 사회는 지배문화로서 양반문화와 하위문화(subculture)로서 서민문화로 양분되어 있고, 서민문화는 문화나 예술로 인정되지 않았으며 양반문화에서는 예술이 도의 전달 수단이나 풍류의 매개체였다. 18세기에 들어 소설, 시조, 그림, 판소리 등이 상품으로 거래되고 대중적으로 유통되자 전혀 다른 문화의 창조와 소비 양식을 야기하며 대중과 예술 모두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준다. 특히 이들 예술들은 기존의 사대부의 미학과 규범에서 탈주하여 성의 관능성, 눈물의 감상성, 웃음의 해학성, 몽상의 환상성, 폭력의 배타성 등 통속성을 지향하였다. 이는 대중문화로 가는 길을 열었다.
조선은 오랜 동안 중국의 천하관과 조공과 책봉체제 아래에 있었으며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였다. 그러던 조선은 17~18세기에 들어 유럽이라는 타자를 만나고 이를 거울로 비추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을 인식했다. 조선 사회는 서양에 대해 부정, 지향, 경계, 성찰 등의 여러 태도를 보였으며, 이는 쇄국, 개화, 저항, 성찰적 근대화 등으로 나타났다. 무자서행록처럼 서양을 낯선 남으로 재현한 담론을 수용한 조선인들은 처음에는 자기방어의 자세를 취하여 타자를 경계하였지만, 접촉이 이어질 경우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갔다.
이처럼 여러 분야에서 서양이나 일본의 영향을 받기 이전에 18~19세기의 문학은 근대성을 구현했다. 식민지 근대성을 주장하는 이들이나 현대문학 전공자들이 한국의 근대문학의 특성으로 지적한 것들과 비교하면 모더니즘 등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일치한다.
우리 문학이 나아갈 길
이제 우리의 문학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자연주의는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게 했지만, 다양한 인간의 삶을 결정론의 틀에 구속시켰다. 리얼리즘은 현실을 객관적으로/비판적으로 잘 재현하고 때로 비전을 제시하여 인간다운 삶의 길을 제시했지만, 해석과 상상의 자유를 제한했다. 낭만주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드러내면서도 이상의 빛을 비추었지만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였고 우리의 근대에서는 병적 감상으로 전락시켰다. 모더니즘은 새로운 실험과 형식으로 일상을 심미화하고 다의적으로 열어준 대신에 현실을 소거시켜 버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중심주의, 주체, 동일성에 근거한 근대를 해체하거나 성찰하게 했지만 진리와 역사마저 소거시켜 버렸다. 새로운 세계관과 패러다임, 문예사조가 필요하다. 이의 대안 가운데 하나가 틈과 참의 리얼리즘이다.
이제 세계 체제 차원에서는 미국-유럽, 러시아-중국의 다극이 중심이 되어 야기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기에 대해 제3세계의 연대를 통해 맞서고, 중심-주변의 관계를 고착하는 세계체제의 고리들을 끊임없이 끊어내는 운동을 하면서 제국이 구성한 유럽과 미국 중심의 보편의 인식과 이데올로기와 프레임에 대해 맞서서 전혀 다르게 인식하고 읽고 쓰고 존재하는 가운데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면서 저항하는 새로운 인간형―눈부처주체―으로 거듭나면서 모두가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를 창출해야 한다.
21세기 지금 여기, 자본과 제국의 착취와 수탈로 인하여 아직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이 주요 모순인 근대에 가상과 실재가 공존하고 인공지능이 글을 쓰는 탈근대가 겹쳐지는 시대를 맞아, 재현의 불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대안으로 ‘자본주의 체제 바깥의 서사의 창조’와 ‘틈과 참의 리얼리즘’을 제안한다.
이제 자본주의체제가 만든 서사의 바깥으로 가서 새롭게 서사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지배적 세계관과 담론이 구성한 서사의 바깥으로 나가기 전까지는 그 서사를 진실하다고 믿으며 반복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서사들은 한 마디로 말하여, 타락한 자와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자가 자신/타자/부조리한 세계와 대결하는 서사, 혹은 고독과 불안, 소외로 몸부림치는 이의 독백이나 형식을 매개로 한 형상화였다. 이제 이와 다른 세계의 구성과 서사의 창조가 필요하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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