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9

2015 일본 낭인들, '여우사냥' 명명된 명성황후 암살 작전에 동원돼 - 프리미엄조선


일본 낭인들, '여우사냥' 명명된 명성황후 암살 작전에 동원돼 - 프리미엄조선


장대성의 세종 회장과 충무공 사장(33)-②
일본 낭인들, '여우사냥' 명명된 명성황후 암살 작전에 동원돼

입력 : 2015.06.18 
<①편에서 계속>

4. 명성황후 시해에 하버드 대학과 동경제대 출신의 일본 최고지식인들 참여

1895년 10월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를 당했다. 이 사건은 일본 천황 직속 기관인 대본영의 야마가타 아리토모 육군대장과 조선 공사와 외무대신을 지낸 이노우에 가오루 등이 지휘했다. 이들은 현 아베 총리의 정치적 본거지인 야마구치 현 출신으로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대표적으로 조선 정벌을 주장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자기들 고향 야마구치 현 출신의 극우 거물인 육군 중장 출신의 자작 미우라 고로에게 친러 정책의 명성황후를 죽이라는 밀명을 주고 1895년 9월 조선공사로 부임시켰다. 미우라의 명성황후 암살 계획참모는 시바 시로란 자로 미국 명문 하버드 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최고지식인이었다. 미우라와 시바는 일본군대가 명성황후를 암살하면 비난받을 것 같아 민간인들 중심의 암살집단을 구성하였다.

명성황후 살해 실행 총책 미우라 공사와 이시즈카 에조의 암살 보고서.이 민간 암살집단에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출신 등 일본 최고의 젊은 지식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메이지 유신 추종 세력과 백제 유민 후손이 많은 규슈 구마모토 출신 낭인 30여 명과 한성 신 보의 주필, 편집장, 기자들이 주도적으로 가담했다. 이는 후에 시해사건을 일본 공사관이 아니고 민간이 주도했다고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명성황후 암살 작전은 “여우사냥” 이라고 명명했으며 1895년 10월 8일 새벽 4시에 작전 개시했고 명성황후는 새벽 6시경에 시해 당했다. 이 작전에 흥선대원군, 개화파 유길준, 훈련대 2대대장 우범선 등 조선인들 여럿이 가담하여 조력하였는데 황후 시해에는 가담하지 않았다.

5.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들에게 국부 검사와 성폭행 당했는가?

45세의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의 칼을 맞고 즉시 숨이 끊어졌는지 아니면 칼을 맞고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한 기록이 우리에게는 없다. 위에 보이는 조선 정부의 일본인 고문관 이시즈카 에조 보고서를 근거로 황후가 사망 직전에 능욕을 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 기록과 주장이 진실이든 아니든 또 설사 황후가 성폭행을 당하고 죽었다고 해도 군사력이 없는 황후의 남편 고종은 통곡하는 길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조선 정부 고문관 이시즈카 에조는 “낭인들은 왕비를 끌어내어 두세 군데 칼로 상처를 입힌 후 왕비를 발가벗기고 국부 검사를 한 후에 기름을 부어 소각시켰다” 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일본에 보냈다(위키 백과).

김진명씨의 소설 “신황태자비 납치사건” 의하면 이시즈카 에조는 “낭인들은 훤히 드러난 조선 왕비의 가슴을 밟고 짓이기고 왕비 몸을 칼로 상처를 낸 후 왕비를 완전히 발가벗겼다. 그리고 한 낭인이 발가벗겨진 왕비의 음부를~~(중략)~~ 꿈틀거리는 조선 왕비를 앞에 놓고 낭인들은 대일본제국 만세를 불렀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일본의 법제국장에게 보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잔인성과 변태성으로 보아 명성황후 시해 주범자들은 일본 최고지식인들이지만 능히 명성황후의 음부를 검사하고 성폭행했을 것이다. 731 부대에서 보듯이 일본인들은 의사와 과학자 등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무의식의 빈 깡통의 두뇌가 되어 상부조직의 프로그램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못할 짓은 아무것도 없었다.

명성황후 시해 모습(왼쪽). /명성황후 기념관, 명성황후 시해 행동대원들. /위키백과
6. 일본의 한국 재침략 대비해 경제력과 국방력 증강해야

명성황후 시해 주도자들이 시해 사건 후 아래 그림과 같이 출세한 것을 보면 명성황후 시해의 모든 것은 일본 정부의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자행된 것임이 확실하다.

일본이 조상의 과거 범죄를 진정 사죄하고 참회한다면 몰라도 일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 인기 있던 삼성 갤럭시 휴대전화기가 삼성 로고를 떼어도 잘 안 팔리고 젊은이들에게 열풍같이 일었던 한류 바람도 시들해졌다. 한일관계가 경색되자 일본인들은 한국 것을 좋아하다가는 자칫 우파세력에 이지매를 당할까 두려운 것이다. 조선 정벌론을 마음속에 품은 일본 우파세력은 기회만 포착되면 한국을 재침략할 것이다.

해방 직후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아베 총리와 혈연관계 없음)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한 말 “나는 반드시 조선에 다시 온다”를 명심하여 일본 상품 구매를 자제하고 경제력과 국방력 증강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장대성의 세종 회장과 충무공 사장(33)-②] 전체기사 보기




장대성의 세종 회장과 충무공 사장(33)-①
하버드대-동경제대 출신 日최고 지식인들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었다

장대성전 
강릉영동대 총장
E-mail : dschang28@hanmail.net서울서 성장해 경기고와 한국외국어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탁결..

입력 : 2015.06.18

 
 
1. 일본군의 8만명 중국 여인들 강간사건 폭로 저자 일본우익 협박에 자살

중국을 침략해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은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한 1937년 12월 13일부터 6주간 피난가고 남은 주민의 50% 이상인 30만명을 무차별 학살했고 8만명의 여인을 집단 강간했다. 난징에서 중국인들을 무차별 학살하라는 명령을 하달한 총책임자는 황족 아사카 야스히코 중장인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난징사건을 다루는 극동국제군사재판에 소추가 면제되어 재판정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 황족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맥아더 사령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현재 일본에선 극소수 지식인들 이외에는 난징 대학살을 날조된 없었던 사건으로 부정함은 물론이고 교과서에는 난징사건으로 축소하거나 기술을 못 하게 하는 등 국가적으로 난징대학살에 대해 언급을 금하고 있다.

여인 강간 후 내장을 파헤쳐 죽인 일본군(왼쪽), 일본군의 백 명 먼저 목 베기 시합 기사.일본군은 사람들을 대량 학살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여자 아이는 물론이고 늙은 할머니까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집단 강간하고 팔과 다리를 절단하고 유방을 도려내어 죽였다. 심지어 강간하고 그 여성의 음부에 총을 쏘거나 칼을 꽂아 죽이기도 했다. 일본군들은 가족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는 딸을, 아들은 어머니를, 오빠는 누이를 강간하도록 강요했다.

이 집단 강간 사건에 대하여 29세의 재미 중국 여인 아이리스 장(Iris Chang)이 1997년 논픽션으로 “난징의 강간(The Rape of Nanking)”이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 출판하였다. 일본 우익세력은 날조라고 그녀를 협박하고 규탄집회 시위까지 하면서 압박을 가했다. 결국 아이리스 장은 일본 우익세력의 협박과 공갈에 못 이겨 2004년 11월 권총 자살로 36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2. 일본인들 8백년 동안 사무라이들에게 잘 훈련된 무의식 집단

평상시 그렇게 얌전하고 예의 바른 일본인들이 왜 그토록 잔인했을까? 일본은 12세기 말 가마쿠라 막부시대부터 약 800년 동안 사무라이들이 지배한 국가이다. 사무라이들은 도쿠가와 막부가 자리 잡는 17세기 초까지 약 400여 년 동안 수없는 살육의 전투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수많은 전투에서 계속 승리하려면 부하 사무라이들과 하급전사들은 물론 백성의 머릿속까지 빈 깡통으로 만들어야 했다. 어떠한 명령에도 무조건 복종하게 하여 일사불란 한 행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사무라이 조직의 명령과 방침에 반하면 칼로 베이거나 할복자살을 강요당했다.

사무라이 조직의 행동 강령과 방침에 대하여 사소한 반감과 반대 의견을 가져도 일본에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술좌석에서라도 사무라이들에게 거슬리는 말을 하면 그 즉시 사무라이들의 칼에 목이 떨어져 나가거나 집단 린치를 당했다. 무섭고 잔인한 사무라이들의 지배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일본인들은 스스로 자기 머릿속을 비웠다. 자기 주관과 의견 없이 사무라이들이 시키는 대로 묵묵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독특하면서도 불행한(?) 민족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일본인들은 전 세계에서 전체주의 조직에 가장 잘 순응하는 국민이 되었다.

3. 일본 관동군 731부대 임산부에 매독균 주입 후 산모와 태아 함께 해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과 아시아 정벌 꿈을 계승한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인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노우에 가오루 등 야마구치 현의 청년들과 하급 사무라이들이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부르짖으며 도쿠가와 막부를 붕괴시키고 1867년 메이지 유신시대를 열었다. 이 메이지 유신 세력이 일본을 근대화하면서 사무라이 지배정신과 요시다 쇼인의 조선과 아시아 정벌론을 계승하여 일본의 신흥 우익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에 의해 양성된 일본 제국군대는 명령이라면 인류를 모두 불태워 죽이라고 해도 아무 죄의식 없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잔인무도한 무리가 되었다. 일본 제국 군인들은 자기 누이를 강간하는 것이 천황 폐하와 일본제국을 위하는 길이라면 당당하게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마취 없이 남자 성기를 자르는 모습(왼쪽), 마취 없이 생체 실험하는 모습.일본은 1932년 천황 히로히토의 칙명으로 만주 관동군 산하에 731부대라는 생체실험 부대를 하얼빈에 설치했다. 이 부대에서 약 1만 명 이상의 조선인, 중국인, 몽골인, 러시아인 등이 산채로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극심한 고통 속에 죽어 갔다. 임산부에게 매독균을 주입 후 산모와 태아를 함께 해부했다.

의사가 여인을 임신시키고 태아를 배를 째고 꺼내어 실험했다. 생사람의 팔, 다리를 자르고 출혈상태를 관찰했다. 피부표본을 얻기 위해 사람의 피부를 산채로 벗겨 냈다. 어떤 사람의 콩팥에는 말의 오줌이 투입되었다. 이 모든 실험은 마취 없이 진행되었고 이러한 생체실험 부대는 731부대 이외에 9개 부대가 더 있었다. 이 부대들의 의사와 과학자들은 많은 생체실험을 통하여 일본 의학과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②편에계속>





☞ [장대성의 세종 회장과 충무공 사장(33)-①]

Talk & 通 (총 109개)


김석범(uks****)2015.09.08 16:48:50

신고 | 삭제

일본인들은 그들의 악행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역사가 심판할 때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댓글쓰기찬성(0) | 반대(0)

이석(so****)2015.09.07 10:01:07

신고 | 삭제

선진국의 본을 보이고 있는작금의 메르켈 독일을 보노라면, 자연스레 아베의 일본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2차대전때의 과오를 인정하는 독일과 그 시절의 만행을 나 몰라라 하는 일본은 너무도 극명하게 대비되지 않는가? 과거를 모른채하는 아베의 일본은 한 중 일 동아시아인의 자존심과 격을 내동댕이 치는 원범이다. 아시아인으로서 창피하고 모멸감을 느낀다. 메르켈의 독일이 부럽다, 그로 인해 비로서 미국을 능가하며 세계의 최선진국이됐음을 인정하며 독일국에 경의를 표한다.



댓글쓰기찬성(0) | 반대(0)

이석(so****)2015.09.06 20:04:14

신고 | 삭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함이 올바른 양식인의 자질이라 생각하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입장에서 더군다나 가해자가 자신들이 저지른 짐승다운 만행을 부정하는 현실에서 먼저 가해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 본인이 피해 당사자가 아닌 우리 어르신들이라 난 모르겠다는 건가? 일본은 먼저 자신들의 과거를 솔직히 인정한 후에야 비로서 새로운 동아시아의 미래가 열릴 수 있다고 본다. 만약 쟌윤 같은 사람이 한국인이라면 일제치하에서의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에게 너무나 잔인하고 비참하게 만드는것 아닐까? 오랜만에 들어와서 정말 놀랐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댓글쓰기찬성(0) | 반대(0)

김철영(cyk****)2015.07.10 21:30:25

신고 | 삭제

일본인들의 잔인함과 비겁함은 세계가 아는 사실로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민족이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섬 민족인데다가, 잦은 지진과 태풍으로 위축되어 살기 위해서 뭉치기는 잘하지만, 앞에서의 미소 뒤에 비수가 있는 민족이다. 항상 불안하기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고 거짓으로라도 합리화하며 괴변으로 배타적인 사고를 갖은 민족이다. 항상 경계하고 우리가 힘을 키워야 깔보임응 당하지 않음을 기억해야하겠다.



댓글쓰기찬성(0) | 반대(0)

이창욱(lcw****)2015.06.25 10:45:01

신고 | 삭제

수천년 전부터 byon-tae 행각을 벌여온 일본nom들... 그 죄가는 자손대대로 받을 겁니다.



댓글쓰기찬성(0) | 반대(0)

최운주(cwj****)2015.06.23 15:51:00

신고 | 삭제

튼튼한 국력만이 국민을 지켜줄 근간 이겠죠! 과거사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 일본은 무슨 배짱 일까요? 진실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텐데요!



댓글쓰기찬성(0) | 반대(0)

장숙성(chan****)2015.06.23 09:38:05

신고 | 삭제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걸까요. 역사를 보면 일본이 끔찍하게도 우리나라를 못살게 굴죠.근본은 변하지않아요. 반드시 경계해야합니다.



댓글쓰기찬성(2) | 반대(0)

쟌윤(john****)2015.06.23 02:28:16

신고 | 삭제

조선인구의 37% 가 노비였으나 일본에서는 노비제도가 16세기부터 금지되었고 20세기 식민지가 생긴후에나 강제노동이 빈번해졌다. 조선인구는 1800년에서 1900년 사이 10% 이상 감소하였으나 1900년에서 1945년 사이 일제하에서 1천2백만에서 2천5백만으로 증가하였다. 1900년 조선인의 평균수명은 고작 25세 (남성 24세, 여성 26세)였으나 1935년까지 남성 40.4세 여성 41.7세로 증가하였다. 일제하에서 2등 국민으로 전락해서 식민지 생활을 한게 조선왕조 통치하에 있던것보다 삶의 질이 오히려 더 나았다는건 조선이 얼마나 거지같은 나라였는지 잘 보여준다.



댓글쓰기찬성(7) | 반대(5)


쟌윤(john****)2015.06.24 06:40:30


신고 | 삭제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같은건 국가에서 신청하는것이라 문화수준의 객관적 척도가 못됩니다. 광주항쟁 새마을운동 난중일기 동의보감 이런것 갖고 조선의 우수성을 입증하긴 좀 무립니다. 혹시 조선이 일본보다 나은 면이 있었다면 구체적으로 밝혀 주시죠. 저도 그런게 있었으면 좋겠네요.


심유경(yksh****)2015.06.23 11:42:29


신고 | 삭제

조선은 감히 사무라이 깡패 일본이 넘 볼 수 없는 고도의 문화와 통치제도가 발달된 국가입니다,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요 조선을 우습게 보지 마세요,

쟌윤(john****)2015.06.23 02:11:11

신고 | 삭제

난징학살 생체실험 명성황후 시해 같은건 아이리스 챙이 새로 폭로한게 아니라 무식한 사람 아니면 오래전부터 상식으로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중요한 사실은 일본은 전후 70년간 아무나라에게도 무력을 행사하지 못했고 국제사회에서 모범국으로 존중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일본국민이 군국주의의 부활을 허용할 가능성은 사실 없다는것이다. 120년전 명성황후 사태때문에 일본의 재침략에 대비하자는게 좀 한심한 논리 아닌가? 대한민국의 주적은 북한, 둘째 경계상대는 중국, 세째는 러시아로 보는게 정상이다. 비민주적 독재국가가 무력을 멋대로 휘두르고 침공한다는 사실도 못 깨우쳤나?



댓글쓰기찬성(7) | 반대(4)


쟌윤(john****)2015.06.24 07:00:27


신고 | 삭제

일본이 속시원하게 사죄는 안했어도 최소한 하는 시늉이라도 좀 한건 사실입니다. 반성하면 믿을수 있고 안하면 못믿는다는 것도 유치한 생각이죠. 국제관계에서 유일하게 믿을수 있는건 자신이 가진 힘 뿐입니다.


쟌윤(john****)2015.06.24 06:53:10


신고 | 삭제

북한은 남침한것 KAL기 폭발사건 아웅산 사건 천안함 사건 인정하나요? 중국이 한국전쟁 개입해서 전쟁을 3년 연장시킨것 사과한적 있나요? 러시아는 남북 분단시키고 한국전쟁 후원하고 KAL기 추락시키고 한것 사과했나요?


쟌윤(john****)2015.06.24 06:48:35


신고 | 삭제

일본애들이 우리나라는 이렇게 위대한 나라야 하고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싶은데 사실은 생체실험하고 성노예나 부렸다고 인정하긴 창피할것 아닙니까? 자꾸 숨기니까 앞으로도 침략할 속셈이라는 논리는 좀 과합니다. 객관적으로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 이 네 나라중 제일 우리에게 위협적인게 북한 중국 러시아 그리고 마지막이 일본이죠.


심유경(yksh****)2015.06.23 11:37:30


신고 | 삭제

물론 북한 중국 라시아 다 경계해야 할 국가이죠, 그리고 일본의 문제는 과거 범죄를 인정 안하는 것이죠, 도둑과 강도가 자기 범죄를 인정 안하고 반성 안하면 계속 범죄를 하지요, 그래서 일본도 언제가 기회가 있으면 또 우리를 침력할 가능성이 있어 항상 경계하자는 의미이죠, 쟌윤씨는 일본인의 겉 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 같아요, 일본인애 대해 연구 더 하세요, 그리고 친일 하세요,

김기주(k****)2015.06.23 01:48:28

신고 | 삭제

잔윤(John**) 그래서 설들력 있게 당신 스스로 함 제시해보지. 별일 아닌데 이런 기획기사를 쓴다는게 낭비같나? 설득력이 없이 그냥 감정적으로만 이러는 사람들이 미개하다 느끼나? 미국살아 미국식 사고에 젖은건가??한민족의 피를 받았으면 세계사보다 한국사 좀 더 공부하지~ 독일이 나치가 저지른 죄과에 대해 사과하는것도 별일 아니겠네? 아님 그냥 친일인가?



댓글쓰기찬성(4) | 반대(4)


송기식(everad****)2015.06.23 06:43:34


신고 | 삭제

쟌윤님은 일제를 옹호하지도 또 친일도 아니다. 주관적이기 보다 객관적 안목, 감성적이기보다 이성적 판단과 행동이 중요함을 언급하였을 뿐.. 감성적, 주관적, 국수주의적 사고와 행동으로는 왜를 이길 수 없음이 자명하다. 왜가 저지른, 그리고 아직도 보배처럼 떠받드는 약점이 바로 그 세가지이기 때문이다. 반세기전 그 세가지 오류를 용감히 내밀다보니 왜가 망하지 않았나~! 우리가 이를 답습해서야 되겠나!!
더보기( 총 99개 )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