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노 도모유키의 인간탐색
‘흉내일지 모른다’는 의심, 전체주의화 막는 브레이크
② 일본인의 의사표현
김석희 기사입력 2021-07-02 제94호
나는 슈퍼마켓을 정말 좋아합니다. 거의 매일 슈퍼마켓에 갑니다. 일본 국내든 외국이든 여행을 할 때도 반
드시 그 지역의 슈퍼마켓에 갑니다. 슈퍼에 가면 약간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안정되는 거예요. 편의점은
너무 작아서 오래 머물 수도 없고, 구경이 금방 끝나 버려서 안 됩니다.
슈퍼에는 그 지역 주민에게 마땅한 물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여행자인 나는 신기한 물건을
찾아냅니다. “오오, 이 동네 사람들은 평소에 이런 걸 먹는구나!”그렇게 새로운 발견을 기뻐하곤 하죠.
일본 이즈반도(伊豆半島)의 슈퍼에 가면, 생선 매대에서 대체로 돌고래 고기를 팝니다. 처음 봤을 때는 깜
짝 놀랐지만, 이즈반도 사람들은 옛날부터 돌고래와 고래 고기를 먹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서울의 서대문 쪽에 살 때도, 나는 매일 슈퍼에 가는 것이 일상의 낙이었습니다. 보통은 농협의 하나로 마트
를 갔지만, 조금 걷고 싶을 때는 영천시장에 있는 마트(이름을 잊었지만)를 기웃거렸습니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군요. 지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고기를 파는 방식이 일본의 슈퍼마켓과는 달리, 커다란 고깃덩
어리를 통째로 팔거나, 썰어 놓은 고기가 너무 두껍거나, 분쇄육이 없거나 했습니다. 그래서, 역시 고기 요
리 방식이 다르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한국의 두유 제품은 질이 좋아서 매일 두유를 마시는 습관이 생기기
도 했습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맨 먼저 서울의 슈퍼마켓에 가고 싶습니다.
평소에 슈퍼에 다니다 보면, 때때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김치 파는 곳에 있다고
칩시다. 한국에서 먹을 때처럼 맛있는 김치를 일본에서 사기는 좀처럼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수입한 김치
도 대체로 일본인 대상으로 만들어 단맛은 강하고 매운 맛은 약하기 때문에 나에겐 어딘가 부족한 느낌입
니다. 그래서 언제나 어느 김치가 가장 나은지 이것저것 들여다보며 망설이곤 합니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상품을 고르고 있으면, 다른 손님이 하나, 둘, 모여듭니다. 그리고 내가 그곳을 떠나면,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상품을 골라 설명서를 읽거나 하지만, 결국은 장바구니에 넣지 않고 갑니다. 아마, 그
손님은 김치를 살 생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너무 열심히 살피고 있으니 끌려오듯 와서 봤을 것입니
다.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이끌려 왔다가 볼 만큼 보고 나니 만족한 것이겠죠. 아주 찬찬히 점포 안을
관찰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그렇게 두, 세 사람이 같은 매대에 줄 서 있는 걸 목격할 수 있습니다.
나도 예외는 아닙니다. 좋아하는 바나나 매대에 두 사람 정도 손님이 모여 바나나를 고르고 있으면, 오늘은
좋은 바나나가 들어왔나, 아니면 특별세일이라 싸게 파나, 하고 관심이 생겨 다가갑니다. 번화가에서도 긴
행렬이 있으면 ‘인기 있는 가게인가?’하고 궁금해져서는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야만 속이 시원합니다. 불구
경 하러 모여드는 구경꾼이나 다름없지요.
이렇게 모이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 군중심리라는 것이 생깁니다. 하지만 슈퍼에서 세 사람 정도가 모여
있는 상태는 그 시작의 순간 정도이고, 군중이랄 정도는 아닙니다.
슈퍼마켓에서 때때로 그런 장면을 보는 동안,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란, 평소에 넋을 놓
고 있을 때는 사실 단순히 주변의 흉내를 내며 사는 것이 아닐까?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여러 가지 행동의
아귀가 맞아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계단에서 누군가가 달리기 시작하면, 지하철이 온다고 생각한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달
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지하철은 아직 오지 않았죠. 친구 여럿이 길을 잃었을 때, 그 반수가 ‘분명 이쪽일
거야’하고 가리킨다면, 모두가 근거 없이 그쪽으로 가 버립니다. 그리고 더욱 헤매는 처지가 됩니다.
회의 같은 것을 할 때 그 의견에는 특별히 문제가 없다고 찬성할 생각이었으면서, 한두 명이 강하게 반대의
견을 내면, 왠지 모르게 모두가 반대하는 마음으로 바뀌어 부결돼 버립니다. 나중에 잘 생각해보면, 왜 부결
됐는지 좀처럼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요컨대, 멸치 떼나 찌르레기 떼와 같은 것입니다.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그 한 마리 한 마리는,
옆에 있는 물고기나 새의 움직임을 흉내 내는 것뿐입니다.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사회는 주변의 흉내로 자기 행동이나
의견을 정하는 성질이 비교적 강하다.
자신의 의견이라고 믿고 있는 언행이 사실은 ‘흉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일본에서는 곧 올림픽이 열린다고 합니다. 팬데믹이 진정되지 않고, 백신 접종도 아직 부족한 상태인데다,
델타 감염이 늘어나는 것도 확실시되는 가운데, 5월의 여론조사에서는 개최에 반대하는 의견이 80%나 됐습니다.
그러나 주요국 수뇌 회담에서 개최를 지지한다는 성명이 나오자마자 개최 반대 여론이 20%나 줄었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해 봐도 ‘개최라니 말도 안 돼’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어차피 개최하지 않겠어?그러면 나도봐야겠다’하고 미묘하게 변했습니다.
나는 이걸 보면서 슈퍼마켓에서 생각 없이 모여드는 것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개최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하고 몇 사람이 말하면, 그 체념하는 기분이 감염되고 ‘그러면 선수들 열심히하는 거 봐야겠지?’하고 누군가가 올림픽을 받아들이는 발언을 하는 순간, 주변에서도 ‘올림픽이 있는 일상’쪽으로 중심이 옮겨 갑니다.
이것은 개인의 선택일까요?아니면 사람이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이렇게 주변을모방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이제 나는 인간의 행동 대부분은 흉내와 의존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인간도 생물체인 이상, 멸치나 찌르레기 떼와 마찬가지로, 주변과 함께 행동하는 것이 위험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회로가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도 어쨌든 부모의 흉내를 내며 성장해갑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개인의 의사’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도록 생겼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도 그 성질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에게는 ‘자기 의사’라는 개별성이 갖춰집니다. 그러면, 자신의 행동은 자신의 의사로 결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개인의 자유의지이며 결정에 대한 책임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 결정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주변의 흉내라는 측면도 적지 않습니다. 스스로 결정한 것같지만, 사실은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스스로는 알아채지 못하지요. TV나 신문의 의견을 자신의 주장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제법 많습니다.
흉내이기 때문에 의견을 바꾼다는 의식도 없이 자연스럽게 의견과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팬데믹상황 하의 올림픽 개최는 반대다’하고 생각했던 사람이, 팬데믹 상황은 바뀌지 않았는데 ‘조심하면서 개최하면 즐겨야지’하고 느낌상의 모순 없이 방향을 수정해 버립니다.
일본 사회는 주변의 흉내로 자기 행동이나 의견을 정하는 성질이 비교적 강합니다. 그래서 기정사실에 약합니다. 억지로라도 개최해 버리면 찬성이 늘어나는 현상이 쉽게 일어납니다.
나는 단지 자기 의사대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의견이라고 믿고 있는 언행코로나19팬데믹으로인해일본시민들이2021년5월17일도쿄에서 ‘도쿄올림픽’개최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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