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위안부피해자의 역사를 제대로 이야기 하고 있을까]
윤미향 비례대표 당선인에 대한 위안부피해자 이용수 운동가의 기자회견으로 불에 기름을 부은 듯 타 올랐던 여론이 2차 회견을 시점으로 다시 새로운 전환기로 접어들고 있다.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며 뉴라이트학파를 이끌던 서울대 교수 출신 이영훈(1951~ )은 오늘 한 세미나에서 “위안부제가 벼락이 치듯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역사가 전제돼서 공창제를 형성한 여러 제도와 기구와 그런 것들이 전제가 돼서 생겨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윤미향 당선인의 남편인 김모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지역신문 인터넷 기사에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이용수 할머니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는 후손들에게 목돈을 물려주고 싶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라는 내용을 편집해서 올렸다.
더 이상 언급하기도 난망하지만 세종대 교수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란 책에서 일본군과 위안부피해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 "동지적 관계", "사랑"이란 단어를 동원하기도 했다.
우리 국민들은 심지어 학자들까지도, 당시 피해자까지도 정확한 실상에 대한 ‘기억 및 기록의 왜곡’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60년대생인 나는 그 당시를 겪지 않았지만 주변을 통해 간접 확인을 할 수 있는 몇몇 상황이 있었다.
분명한 사실은 ‘정신대’와 ‘위안부’는 달랐지만 전쟁이 끝나자 당사자들은 병자호란 시절 ‘환향녀’처럼 대접을 받았고 역사의 장으로 나올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위안부’를 포함하여 ‘정신대’로 통칭되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조혼(早婚)의 풍습이 새로 생겨났다는 점이다. 그 이전까지는 신랑의 나이가 신부보다 어린 애기신랑이 많았다면 그 시기에는 신랑이 나이가 많은 역전현상이 나타났고 지금까지도 관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시절을 살았던 분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나거나 기억이 흐려지는 지금도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할 소명이 있는 학자들은 학파라는 패거리즘 확보 차원에서, 또는 새로운 정치적 돌파구로 ‘위안부 피해자’ 이슈에 천착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운동가들 또한 시작은 순수했지만 그 나중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많이 안타깝다.
한·일 관계에서 ‘독도’와 ‘위안부피해자’ 이슈는 정치인들 입장에서 볼 때 사실관계에 앞서 국내 또는 외교에서 분위기 전환용으로 쓰이는 중요한 양념 취급을 받고 있음도 감지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오늘 또 한분의 공개된 피해자 할머니 한 분이 세상을 뜨셔서 이제 역사의 증인은 19분이 남았다. 사실과 진실에 대한 논증이 우선 중요하고 일본은 차치하고서라도 국가가 나서서 피해자에게 사죄하고(일본과 국제사회에 사실을 통지하고) 분명하게 매듭을 짓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51希修, 박정옥 and 4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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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제 글이 불편을 드린건 아닌지 미안해 집니다.
대표님의 책에 대한 애정과 신념을 잘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도 그러하지만 책도 그렇고 또 우리 인간사, 나아가 우리를 담고 있는 자연계 모두 양면이 있는것 같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음과 양이 그러하지요.
각자 편하고 좋은 것을 찾아 보고싶은 것만 보고 한쪽은 외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라는 단어가 현실적으로 주는 부정적인 어감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무정치, 반정치, 탈정치라는 용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또한 정치적인 입장의 대변일 겁니다.
이번 '제국의 위안부'가 법정다툼으로 가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책이, 학문이 어떻게 해야 제길을 갈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사회적 인식의 저변을 넓히기를 희망했을 것이고(다만, 준비에 비해 의욕이 과했다고 생각합니다), 소송인 주변의 일부는 운동의 외연넓히기를 의도했지도 모르며(중간에 공소장이 바뀌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 왔지요), 소송당사자인 할머니들의 각자 생각의 높낮이도 다를 것입니다.
가처분심판의 판결문에서 말한 "옳고 그름의 문제는 이미 법률적 판결이 내려진 사안이라 할지라도 학문의 장에서 다루고 다만, 사실과 달라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할 염려가 있는 부분은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평범한 사회적 인식을 법률적 언어로 표현한 것일 겁니다.
저는 한일 양국 사이에 다양한 층위의 이해관계에서 과거사에 대한 평가와 해법은 눈에 보이지 않은 각자의 위치와 이해관계에 따라 아주 다양하게 말해질 수 있으며 거기에 대한 결론은 정치적 방법으로 조율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는 두편으로 나뉘어, 그리고 저자는 물론 대표님까지도 보고싶지않은 것은 외면한채 스스로 희망고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비록 현재까지는 악역이었지만 우리 사회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깨우치고 저변을 넓히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대표님 또한 출판인으로서의 소임을 하신 것이니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비난이나 책임을 부담하실 일도 그다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행보는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소송은 아편이나 도박처럼 목적이나 의도는 실종되고 그 자체가 본질이 되어 개인과 사회를 황폐화시키면서 이전투구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손바닥은 마주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들어오는 손바닥을 감싸 안을 수 있다면 갈등도 그리 어렵지않게 녹을 수 있겠지요.
부디 대상을 특정한 상태에서, 소송을 위한 소송으로 소모전이 아닌, 대표님의 철학에 따라 큰 행보를 하셔서 존경하는 출판인으로의 길을 가시는데 이번 일이 디딤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머니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문제가되었던 문구들의 자진수정을 제안하신다면 아마도 받아들이시리라 믿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조속히 이번 사안이 원만한 매듭지어져서 좋은 책 만드시는 일에 매진하게 되시기를 '뿌리와 이파리'의 예비독자의 한사람으로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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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ng-joo Jeong고맙습니다. 안팎으로 정신없는 상황이지만, 할 수 있는 껏 슬기롭게, 깊이 생각하고, 여러 분과 상의해서 잘 대처하겠습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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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o-Ho Lee대표님, 이 칼럼도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이동기의 현대사 스틸컷]유럽의 성노예, 생존으로 저항하다H21.HANI.CO.KR[이동기의 현대사 스틸컷]유럽의 성노예, 생존으로 저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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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ng-joo Jeong이수호 네, 이미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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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소회
일본은 지리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우리가 가장 친해야 마땅할 이웃국가이지만 과거의 임진왜란과 한일병합의 역사로 인해 극일의 대상이며 월드컵 1승보다 한일 축구전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대이다.
그럼에도 일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표절논란이 있었던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 형사재판까지 갔던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같은 조잡한 주만간산 또는 억지춘향격 망발이 널리 소개되었을 따름이고 외눈박이 뉴라이트학파도 있다.
일본의 문화는 아직도 사무라이문화,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섬안에서 춘추전국시대를 보낸 생존의 절박함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전통 민간건축 양식은 이를 적극 반영하여 불시에 침략할 수도 있는 적을 막는 것이 최우선으로 구조에 반영되어 있다.
세계2차대전 패전 이후 짧은 시간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었던 요인은 한국전 특수라는 시대적 찬스와 강한 기록문화, 약속은 철저히 지키고 배려와 친절의 매뉴얼 등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 출장을 갔을때 동행했던 컨설턴트가 회의가 끝난 뒤 자기집과 반대방향으로 신칸센을 타고 두시간반 거리에 예약된 호텔의 출입문까지 나의 적극적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스코트해주었던 일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날 방문했던 회사에서 녹차티백을 기념품으로 받았는데 설*차 정도를 선물이라고 주다니 했는데 한국에 와서야 찬물에도 녹색이 자연스럽게 녹아나는 아주 귀한 그 지역특산품이란 걸 알았다. 진심이 담긴 품격높은 선물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는 해결되지 못한 앙금들이 많고 정치인들은 이를 풀기보다는 악용하고 있다. 4.3의 무자비한 처벌을 피해 밀항으로 건너가 국제미아가 된 교포들의 삶은 원동에서 맨몸으로 강제추방되어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버려졌던 까레이스키만큼 눈물겹고 대를 이어 지금도 진행 중이기도 하다.
다만 지금은 서로 오가는 관광객들이 많고 수준있는 문학과 영화를 통해 서로의 진짜 속내를 오가게 해주어 그나마 다행이다.
[오마이뉴스] 동해를 과연 '동해'라 불러도 좋은가
제 이름 찾기의 첫걸음은 일본해 삭제부터
이수호(oceanlove)
등록 2002.09.06 20:31수정 2002.09.0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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