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대, 기득권자 된 거 인정하자”···‘동네사회학자’ 조형근의 고백록 - 경향신문
“86세대, 기득권자 된 거 인정하자”···‘동네사회학자’ 조형근의 고백록
2022.08.26 11:10 입력
김종목 기자
조형근은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중 주거와 가난, 철거 문제를 다룬 장에 ‘개발연대, 산업정책이자 계급적 사회정책으로서 아파트’ ‘민주화 이후, 공공임대주택의 등장과 성장’ 같은 소제목을 달아 분석한다. 소제목만 보면 여느 사회학자의 주거 글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1988년 가을의 어느 맑은 날 서울 사당동 철거촌 철거 반대 집회에 참여한 경험과 심정을 담으면서 현장에서 “잘 조직된 폭력 집단”인 백골단이 보인다는 외침을 들었다. 그는 “도망치느라 백골단은 보지도 못했다…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집으로 갔다”고 썼다.
이 장 제목은 ‘사당동, 철거 이후의 그 가족과 나’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발전 서사는 빈민 추방의 연대기”다. 서사적 연대기에서 만난 사당동 철거민 ‘금선 할머니 가족’을 떠올리며 “백골단을 피해 산 넘어 도망친 내게 집은 무엇이었을까”를 고민한다.
조형근은 1988년 서울 사당동 철거 현장에서 백골단을 피해 도망간 기억을 끄집어낸다. 고백록을 두고 “그날 도망간 한 젊은이가 이리저리 세상을 떠돌다가, 자기 딴의 방식으로 찾아온, 돌아온 길”이라고 했다. 사진은 1988년 사당동 철거 현장에서 주민들이 밥을 지어먹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또 다른 장에서도 자괴감에 시달리는 일을 스스로 들춰낸다. 1997~1999년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며 대학 연구소 조교 노릇을 할 때 연구 프로젝트비를 관리하며 참여 교수들에게 연구계획서에 적힌 액수보다 더 많은 금액의 돈을 직접 나눠줬다. 집행 근거는 서점, 식당 등에서간이 영수증을 구해 맞췄다. “외국책을 적당히 베껴서 교과서를 내는 교수들이 세상을 훈계하는 칼럼”을 쓰고, “더러 출세를” 하던 때였다.
조형근은 이 책을 “나를 성찰하는 고백록”이라고 했다. 책 제목에서 짐작하듯 ‘진보’ ‘남성’ ‘엘리트’ ‘지식인’의 정체성을 지닌 자신의 이중성과 모순, 비겁함에 관한 성찰과 반성의 고백이 곳곳에서 이어낸다. 내로남불에다 후안무치하고, 공격적이고 일방적이며, 정파와 진영에 복무하는 선전과 선동의 언어, 억견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성찰과 고백의 말들은 낯설기도 하다.
‘그 좋은 직장’ 정규직 교수 관두고…‘노마’가 된 사회학자 조형근
“11월부터 무직자가 됐다. 정규직 교수 노릇을 그만두었다. 나는 공부가 좋았고 가르치기를 즐겼...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008141723005
조형근은 2019년 10월 말 1년 남짓 한 정규직 교수를 그만뒀다. “업적 생산 경쟁과 세상을 향한 발언을 병행하기가 불가능했다”고 여겼다. 지금 ‘동네 사회학자’로 살아간다. 이런저런 매체에 글을 쓰고 여기저기서 강의도 한다. 세속 기준으로 큰일도 별일도 아닌데, “어느 정도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특권’의 측면이 있다. 학맥을 핵심으로 한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덕이 아니라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청년세대의 이른바 86세대 비판도 뼈아프게 느낀다. “(청년들이) 소수의 메이저 대학 운동권 출신이 기득권이 됐다고 비판하는 것이라면 나 자신도 부족하나마 일익을 맡아왔다. 나의 뼈아픈 자기비판이기도 하다”고 했다. 자성(自省) 때문에 남들 비판하고, 세상사 따지는 일은 어렵다. “비판에 날이 서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너는 얼마나 다르냐는 질문에 스스로 떳떳하지 않다. 비판의 대상에 내가 포함되어 있으니 남 일처럼 나무랄 수 없다…권력에 저항해야 한다는 선언이기만 하다면 그저 통쾌할 텐데, 내가 권력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불편한 통증이 몰려온다”
뼈아픔, 머뭇거림, 불편함에도 “꾹꾹 눌러쓴 비판들”을 이어간다. 그 비판을 자신을 포함한 지식인과 지식인 사회, 86세대에 먼저 겨눈다. “지식인들은 대개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강력하게 비판해왔다. 그들 자신이 그 양극화의 수혜자라는 사실은 곧잘 잊혔다.” 그는 “(불평등) 구조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도 했다. 서울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강남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연구년에 출국해 자녀들을 유학시키는 사례 등을 두고 “능력주의적 계층 재생산에, 불평등 세습에 열심”이라고 지적한다. ‘조국 사태’ 때 비판적 교수들 중 많은 이들이 “나는 돌을 못 던지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했다. “비판적 교수지식인은 대개 중상류 계급”이다.
‘투쟁에서 경쟁으로 달려온 86세대의 학형에게’는 편지 형식으로 적었다. ‘학형’은 학생운동권에서 남성을 기준으로 한 어휘다. “그 시절의 영광과 부채를 모두 떠올리려고 이제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이 호칭을 쓴다”며 말문을 연다. ‘86세대’란 말에 대해서는 “1980년대를 살거나 죽어간 수많은 삶의 결들을 학생운동권 엘리트들의 영웅서사로 축소해버린 이 어휘가 심하게 불편했다”고 말한다. “대학에 다닌 적 없는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 가난하고 평범한 이들의 삶과 싸움과 죽음”은 “정치권과 미디어의 힘센 이들”에게 관심을 못 끈 점도 지적한다.
[기자칼럼]사람인가 자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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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712132058025
조형근은 86세대가 “한국 사회의 개발독재 체제를 지금의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체제로 바꾸고 합리화하는 데 순응하고 협력한 지배체제의 일부”라고 말한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사람의 경쟁력에 대한 투자가 국가전략이 된 점을 분석하며 “착취를 증오하고 노동과 사람이 소중하다”는 86세대의 믿음은 “ ‘인적 자본’의 경쟁력화에 대한 신념으로 바뀌어갔다”고 말한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우리가 경쟁으로 내몰고, 그중 다수를 경쟁에서 탈락시킨 세대”다. “(우리가) 재벌과 투쟁이 아니라 경쟁하면서, 재벌과 함께 이런 세상을 만들었다.” 그는 “재벌과 독재의 후예 세력을 방패 삼아 우리의 허물을 가리기 전에, 우리가 ‘탈락’시킨 청년세대들, 나와의 경쟁에서 탈진한 동세대의 벗들과 무엇을 나눌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최상류층 엘리트들사이의 목숨 건 이전투구의 와중에 대학서열화 체제의 바깥에 있는 실업계 고교, 전문계 대학, 제조업 현장의 청년 노동자들은 아예 없는 존재처럼 취급되고 있다”고도 했다.
86세대가 중심인 민주당도 비판 대상이다. 박근혜 정권의 반민주성을 상징하는 악법인 ‘테러방지법’은 폐지하지 않았다. 되레 “고의로 감염병에 대한 검사와 치료 등을 거부하는 행위”를 테러로 추가하자는 개정안을 2020년 9월 민주당 의원들이 냈다. 조형근은 “민주당 정권 아래서는 테러방지법도 좋은 법이 되는 것일까? 폐지나 전면 개정안은커녕 어떻게 강화안이 나올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한다.
[아침을 열며]영웅 놀이와 사랑스러운 전망
조국이 사퇴한 날 법무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오른 글 하나 제목은 ‘(조국은) 불멸의 영웅’이다...
https://www.khan.co.kr/opinion/morning-column/article/201910272053025
조형근은 테러방지법 강화 시도가 징후적이라며 “민주적 시민성이 정당성에 대한 확신 속에서 오히려 신념에 찬 권위주의로 ‘흑화’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헌법상의 기본권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 대한 극심한 제약, 결함 많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등도 거론한다. 조형근은 “입법이 성사된 것만 해도 다행이다. 하지만 산재 관련 논란은 철저히 중후장대형의 남성형 산재사고에 집중된다. 건설업, 제조업처럼 남성이 많이 일하는 현장에서 큰 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맞다. 여성의산재는 잘 가시화되지 못한다. 여성 노동자들은 가사노동자, 간병인 같은 비공식 부문, 특수고용직, 무급가족종사자 등이 많다. 들리지 않는 이야기”라고 썼다.
“비극적 죽음을 맞은 자기 진영의 지도자는 자격 없는 인민 따위가 갖기에는 과분했다” “배움이 모자라서 보수정당을 지지한다” 같은 말도 비판 대상이다. “젊어서 민주주의의 깃발을 휘두르고, 한때 뜨겁게 촛불을 들었던 이들 중에서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주류 엘리트가 되어 인민의 자격을 따지는 이들”이 경멸과 폄훼를 담은 언사기 때문이다.
86세대가 지배체제의 일부가 되었음을, 기득권이 되었음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형근은 말한다. “지배체제의 일부로서 책임감을 갖자는 말이기도 하다”고 했다.
책은 “세상을 비판하는 시론(時論)”이기도 하다. ‘지식인의 죽음’ ‘20대 남성의 보수화’ ‘세월호와 붕괴하는 사회’ ‘행복경제학’ ‘사회적인 것의 복원’ 등을 다룬다. 시론의 핵심은 구조와 체제, ‘인민’과 약자에 관한 것이다
조형근은 보수정권에 맞서 촛불을 들었다고 ‘체제’에 저항한 것일까라고 되묻는다. “집회 참여에 가장 머뭇거렸던 제도권 민주파 야당, 민주당이 촛불의 성과를 독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정치에서는 위임을 넘어 ‘신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민주당에 전적으로 의지”했다. 촛불의 신탁을 받은 정권이 들어서고도 교수지식인과 86세대가 늘 비판하던 불평등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가슴 벅차게 바뀐 세상이, 다른 이들에게는 여전히 고달프고 불평등한 저들만의 세상”이었을 뿐이다.
이 고백록과 시론은 “더 많은 인민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로 향한다. “우리가 중산층의 안온한 삶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약자를 위해 무엇을 양보하고 희생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어려운 사람들이 좀 덜 힘들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상위 1%만이 아니라 20%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나도 개혁 대상”이라는 조형근은 시론을 이어가며 다시 자신을 들여다본다. “비난의 말을 뱉고 나니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따지고 보면 나는 지금까지 누구를 비판하고 있었던 것일까? 어느덧 중산층이 되어 안온한 자리에서 안전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나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내 얼굴이 민주주의의 적을 닮았다. 점점 더 닮아가는 것 같아 때로 아득해진다.”
1988년 사당동 철거 현장으로 돌아가면 조형근은 “지금은 비겁하게 떠나지만 언젠가 내가 힘을 얻으면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겠다며 다짐한” 부류에 속한다. 이 책은 “그날 도망간 한 젊은이가 이리저리 세상을 떠돌다가, 자기 딴의 방식으로 찾아온, 돌아온 길”이다.
조형근은 2019년 대학 정규직 교수를 그만두고 ‘동네 사회학자’로 살아간다. 사진 창비 제공
조형근은 이 길에서 연대사회를 갈구한다. 길은 지식인의 “스스로 걸머지는 책무”와도 이어진다. 지식인의 죽음이란 말이 떠돈 지 오래다. 지식인은 조롱받는 캐릭터다. 조형근은 다시 사르트르가 규정한 책무를 상기한다. “민중을 마비시키는 이데올로기가 민중 속에서 계속해서 되살아나 현상과 맞서 싸우는 일이다. 뿌리까지 내려가서 비판적으로 되는 것”이다. 이 말에 고백과 성찰 속 신랄한 비판의 취지가 담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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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글을쓸때만정의롭다 조형근 86세대 지배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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