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7

귀농교육 20년, 나아가야 할 방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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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교육 20년, 나아가야 할 방향은?

기사승인 2016.06.27  15: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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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농민 살릴 수 있는 귀농교육 돼야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
  
▲ (사)전국귀농운동본부는 지난 21일 ‘귀농교육 20년의 평가와 과제’란 주제로 귀농교육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사)전국귀농운동본부(상임대표 차흥도)는 지난 21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 소재 동화빌딩에서 ‘귀농교육, 20년의 평가와 앞으로의 과제’라는 주제로 귀농교육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차흥도 상임대표는 여는 말에서 “20년 전엔 교육운동을 중심으로 했는데, 지금은 귀농귀촌기관이 60여 개나 돼 다른 귀농귀촌기관의 교육과 우리의 차별성은 무엇인지 우리 귀농교육 프로그램도 질적인 변화와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밝히고, “이제까지 지녀왔던 생태적 가치는 유효하지만, 20년에 대한 평가와 과제를 통해서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논의해보자”고 말했다.
이날 ‘귀농본부를 통해 보는 교육흐름과 변화’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박용범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우리는 귀농교육에 대해 어떤 생각으로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고 있을까?”에 대해 질문을 던진 후, 그동안 인기 있고 구색을 맞춘 강사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것에 대해 지적했다. 또 “‘생태가치와 자립하는 소농’이라는 귀농본부의 슬로건을 내려놓을 것인지 아니면 이 용어를 계속 쓰면서 정체성을 강화할 것인지 명확히 정해야 진짜 귀농교육이 될 수 있는 교육과정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경수 논산시 공동체경제추진단장은 “귀농교육의 대부분이 작물교육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번 돈이 다시 농촌으로 투자되지는 않는다는 게 문제다. 돈을 잘 버는 소수의 귀농인은 농업과 농민을 살리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우리는 산업이 아닌 생활과 어우러진 농업을 만들려고 했지만, 돈 버는 농업에 대해 계속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며 “결국 농사로 번 돈이 다시 농사에 투자될 수 있는 그런 농민과 농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승우 화천현장귀농학교 교육팀장도 “정부기관 농업담당자들도 귀농교육을 자꾸 농사교육으로 가져가려고 하는데, 사실 텃밭농사와 큰 소득형 농사는 완전히 개념이 다르다”며, “정부기관 홈페이지에 있는 각종 사이버 작물 교육 등은 전혀 현실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이날 토론회에는 송민영 귀농귀촌종합센터 팀장, 구자송 부산귀농학교 사무국장, 최민규 전북귀농귀촌지원센터 사무국장, 이수형 순창군 귀농귀촌지원센터소장 등이 참여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박호진 귀농본부 사무처장은 “2010년부터 귀농가구가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3, 40대 청년들의 비중이 지금은 절반을 넘어섰고, 소농학교는 여성이 더 많아졌다”며, “귀농교육 20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를 고민할 때, 다양한 곳의 사례를 들어보는 게 가장 큰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이번 토론회에 대해 총평했다.
김은경 carax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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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이 올린 글과 함께 이 기사를 보았다. 20년 전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이 글은 당시 귀농학교 1기생이었던 양태순님이 쓴 것을 여기에 복사해서 옮겨 실었다. 올해 전국귀농운동본부를 결성한지 꼭 스무돌이 되었다. 언제 이 이야기는 따로 해야겠다.
-양태순/옹달샘
1996년 전국 귀농운동본부가 창립된 그해 가을, 서울 이수역 인근의 농업기술자회관에서 귀농학교 1기생 20여명이 제 2의 브나로드 운동의 전사를 자처하며 함께 했었다. 그로부터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귀농학교 과정은 최근 귀농.귀촌 인구의 증가로 그 위상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나 이땅의 농촌 현실은 농업의 위기와 농촌 마을의 공동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당시 동기인 임경수씨는 인터넷 이장이라는 '사회적 협동조합' 을 만들고 국내 농업 벤처 1호 기업인이 되어 왕성하게 활동하였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전북 완주군에 퍼머컬처 대학과정을 만들어 2013년 까지 농업인 양성에 힘썼다.
창업 전에 그는 환경공학을 전공했으나 환경이 오염되는 현장을 연구하고 개선시키며 돈벌이를 해야하는 공부에 회의하던 차 호주의 퍼머컬처 과정을 체험하고 한국의 농촌 현실에 눈을 떠 전공을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감행했다.
그런 그를 지금 내가 살고있는 아산시 온양의 사회적 기업 컨퍼런스 행사장에서 2009년 재회했었다.
또 이후 강릉의 문화인들과 함께 그가 만든
서천의 에너지 순환 공동주택 단지도 방문했었는데 이곳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인 봉화마을에도 도입하려 했던 의미있는 공동체 주택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당시 아이가 셋이었는데 다섯은 낳을거라던 그가 너털웃음 지으며 오랜시간 새벽녘 까지 연탄불에 구운 소박한 안주와 소줏잔을 기울이던 시간은 여전히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는 지금 충남 논산시에서'공동체경제추진단장'으로 농촌 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 세계화에 맞서는 실천하는 지식인이자 이 나라의 참된 독립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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