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관해
미국에선 짝수 해마다 11월 첫째 화요일에 선거가 실시된다. 첫째 화요일이 1일이면 둘째 화요일로 늦춰진다. 매월 1일은 각종 부처와 기관에서 회계로 바쁘기 때문이다. 올해가 그런 경우라 11월 8일이 선거일이다. 이 날 임기 4년의 대통령, 임기 4년 주지사 50명의 약 1/3, 임기 6년 연방 상원의원 100명의 약 1/3, 임기 2년의 연방 하원의원 435명 전원이 뽑힌다. 주지사들과 상원의원들이 4년이나 6년마다 한꺼번에 뽑히지 않고 2년마다 나뉘어 뽑히는 것은 급격한 변화를 피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그만큼 안정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나라다.
주요 선출직 가운데 대통령은 간접선거를 통해 뽑힌다. 유권자들에 의해 선정된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것이다. 연방제 때문이다. 미국은 50개의 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다. 나라 안에서는 서로 다른 법률과 제도를 가진 독립국가 같은 주들이 밖으로는 강하고 커다란 하나의 통일국가를 이루고 있는 형태다. 각 주마다 선거제도가 다른 이유요, 각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를 실시하는 배경이다.
대통령 선거인단은 538명이다. 50개 주의 연방 상원의원 100명과 연방 하원의원 435명 그리고 워싱턴 특별구에 할당된 3명의 대표를 합친 숫자다. 의회가 상원과 하원으로 나뉘어 구성된 것도 연방제 때문이다. 헌법을 만들 때, 인구가 적은 주들은 의회에서 모든 주들이 동등하게 대표되길 원했고, 인구가 많은 주들은 인구에 비례하여 의회에서의 대표성이 확보되길 원했다. 서로의 배려와 타협에 의해, 인구가 적은 주들의 요구대로 모든 주가 인구의 크기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6년 임기의 대표 2명씩 뽑아 상원을 구성하고, 인구가 많은 주들의 희망대로 각 주에서 인구의 크기에 비례하여 2년 임기의 대표를 뽑아 하원을 구성하게 됐다.
이에 따라 2016년 현재 인구가 거의 4000만명에 이르는 캘리포니아주는 상원의원 2명과 하원의원 53명을 합친 55명의 선거인단을 갖고, 겨우 50만명 안팎의 와이오밍주는 상원의원 2명과 하원의원 1명을 합친 3명의 선거인단을 갖는다. 워싱턴 특별구는 독립된 주가 아니지만 수도로서 특별대우를 받아 3명의 선거인단을 할당받는다. 인구가 아무리 적은 주라도 상원의원 2명과 하원의원 1명에 해당되는 선거인단 3명이 배정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인단이 확보되는 과정에서는 연방제 때문에 '승자 독식 (winner-take-all)'이 이루어진다. 유권자들의 투표는 주별로 집계되는데 각 주에서 단 1표라도 많이 얻은 대통령후보가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모두 확보하는 것이다. 대통령후보의 득표에 비례하여 선거인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주에서 A후보가 1800만표를 얻고 B후보가 1500만표를 얻는다면 두 후보가 55명의 선거인단을 득표 비율로 각각 30명과 25명으로 나누어 갖는 게 아니라 A후보가 55명을 싹쓸이한다. 연방제 정신에 따라 주마다 독립적으로 대통령을 뽑는 셈이다.
따라서 한 후보가 인구가 많은 10개 안팎의 주에서 근소한 차이로라도 이기면 인구가 적은 나머지 40개 안팎의 주에서 크게 참패하더라도 선거인단 과반수인 270명을 확보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 가끔 유권자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은 후보가 낙선하는 비민주적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이유다.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고어 민주당 후보가 국민투표에서는 부쉬 공화당 후보보다 약 54만표 더 얻고도 선거인단투표에서는 4표 덜 얻어 떨어지는 등 이런 사례가 네 번이나 있었다.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요소 가운데 하나인 다수결 원칙이 대통령선거에서조차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불합리성 때문에, 간접선거제를 직접선거제로 고치자는 주장이 몇 차례 제기되었다. 그러나 연방제 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각 주의 독립성과 대표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고 헌법 개정이 쉽지 않아 간접선거제가 고수되고 있다.
이러한 간접선거제 때문에 대통령후보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전체 지지율만 가지고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기 어렵다. 각 주의 지지율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올해처럼 클린턴 민주당후보와 트럼프 공화당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적을 때는 더욱 그렇다. 미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 한국은 두 후보 가운데 누가 당선되더라도 국익을 최대한 얻을 수 있도록 잘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두 후보의 대외정책을 비교해본다.
미국의 대외정책: 고립주의와 국제주의에 관해
요즘 미국 대통령후보들의 대외정책을 소개하거나 비교하는 언론기사나 평론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용어가 '고립주의 (isolationism)'와 '국제주의 (internationalism)'다. 클린턴은 국제주의 외교노선을 취하고 트럼프는 고립주의를 지향할 것이라는 식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분석하거나 평가할 때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분류 방법이기도 하다.
고립주의와 국제주의는 미국의 대외적 역할에 대한 인식과 방법의 차이로 구별된다. 고립주의는 미국이 자신의 국가안보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 한 세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외교방침이다.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나 지원을 줄이고 군대의 해외 파견을 자제하거나 이미 외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철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세계 경찰' 같은 광범위한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국제주의는 말 그대로 미국의 국제적 역할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겠다는 외교방침이다.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나 지원을 늘리고 군대를 해외에 전진 배치시키며 세계문제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건국 초기엔 고립주의 외교노선을 걸었다. 대표적인 게 '먼로 독트린 (Monroe Doctrine)'이다. 먼로 대통령이 1823년 발표한 외교정책이다. 유럽 열강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에 간섭하지 말고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이후 스페인의 약화로 중남미 국가들이 독립을 선언하자, 라틴아메리카를 더 이상 유럽의 식민지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미국도 유럽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기서 '고립'이란 용어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미국이 마치 고립을 느낄 정도로 대외적 역할을 축소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건국 이후 세계문제로부터 진정 고립을 추구한 적은 없다. 실제로 먼로 독트린은 유럽 강국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침입하는 것을 봉쇄하여 이 지역에서 미국의 안전과 영향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려는 공세적 정책이었다. 따라서 '고립주의'라는 용어보다 '독자주의'나 '불간섭주의'라는 말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후 세계적 전환기 또는 격변기에 "미국의 세계적 역할에 관한 대 논쟁"이 벌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 세계적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에 그랬다. 그리고 미국의 세계적 패권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2010년대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클린턴과 트럼프 사이에 이 논쟁이 다시 일고 있는 것이다.
첫째,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19년 윌슨 (Wilson) 대통령은 국제연맹 (League of Nations)을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국제협력을 촉진하고 군비를 축소하며 평화적 분쟁 해결을 통해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지키자는 취지였다. 1920년 세계 최초의 국제기구로 출범했지만 제안자인 미국은 의회의 반대로 가입하지 못했다. 공화당이 다수파를 차지하던 상원에서 먼로 독트린에 어긋난다며 비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군을 국제연맹군의 일원이 되게 할 수 없다며 소극적 국제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보호무역 정책을 펴는 등 고립주의 노선을 고수한 것이다.
둘째,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유럽의 열강들이 쇠퇴의 길로 빠져드는 가운데 세계 제1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국제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고립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국제주의 외교정책을 펼친 것이다. 패전국 독일은 물론 승전국 영국과 프랑스도 겨우 30년 사이에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속하게 퇴조한 반면, 상대적으로 전쟁의 부담이나 피해가 적었던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자리 잡아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면에서 힘의 공백을 채우며 패권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련 공산주의라는 명확한 적"이 등장하자 미국은 소련의 팽창을 봉쇄하고 공산주의의 확장을 저지하며 "미국에 의한 세계평화 (Pax Americana)"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16년 현재 세계 곳곳에 약 1000곳의 군사기지를 운영하며, 150개 이상의 국가에 15만 명 이상의 병력을 전진 배치시켜 놓고 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전 지역에 걸쳐 200개 이상의 전쟁을 일으키고 개입해왔다.
셋째, 1980년대 말 동유럽 시회주의권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되어 냉전이 끝나자 고립주의와 국제주의 사이의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특히 199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전개되었는데, 이 때 논의된 고립주의를 과거의 고립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신고립주의 (neo-isolationism)'라고 일컫기도 한다.
먼저 (신)고립주의자들은 소련이 붕괴되어 미국의 안보에 위협적인 요소가 사라졌기 때문에 해외에 전진 배치된 미군들을 철수하고 국제기구에 대한 지원을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문제 해결에 국력을 쏟으며 사회복지를 향상시키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국제주의자들은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유일한 초강대국 (the only Superpower)'으로서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문제에 지속적으로 개입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확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미국 안보를 튼튼히 하고 수출 촉진을 통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엔 "국제경제 체제의 생명력은 국제정치 질서에 달려있고, 정치 질서는 군사 안보에 크게 의존한다"거나, "미국 국력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군사력의 위협이나 사용이기 때문에,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는 일반적으로 실패한다"는 등의 주장이 곁들여졌다.
그런데 당시 (신)고립주의자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소수 의원들이나 무소속 대통령 후보들에 불과했기 때문에 실제로 행정부의 대외정책 결정이나 전개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외침으로만 끝났던 것이다. 미국의 국제주의 외교정책은 냉전 종식 이후 오히려 강화되었는데, 기조나 특징은 크게 다음과 같다.
1) 미국은 소련이 사라진 '새로운 세계의 질서 (New World Order)'를 이끌었다. 새로운 경쟁국이 등장하는 것을 저지하는데 힘썼다. 중국처럼 세계적 강대국이 될 잠재력을 가진 나라는 지역 패권국으로 떠오르는 것부터 막았다.
2)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확장함으로써 미국의 일자리를 늘리고자 했다. 이와 아울러 "국내문제와 대외문제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총력외교 (total diplomacy)를 전개했다. 미국이 당면한 절박한 과제는 경제회복인데 이는 해외시장을 개척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을 확산시키는 것을 대외정책의 기본 목표로 삼는다는 것이다.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자유시장 민주주의'체제로 전환하도록 이끄는 것은 '미국의 자선'이 아니라 미국의 경제 및 안보이익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깔려있었다.
3) '미국 제일주의 (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상황에 따라서는 독자주의나 일방주의 (unilateralism) 노선을 취했다.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며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도 했던 것이다.
넷째, 위와 같은 외교기조가 지속되어온 가운데 2016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다시 (신)고립주의 대외정책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1990년대 초 냉전 종식 직후와 달리 무소속 후보들이 아닌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들에 의해서다. 민주당의 클린턴은 군사.안보 분야에서는 국제주의 노선을 천명하지만 무역.통상 분야에서는 고립주의에 가까운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의 트럼프는 모든 분야에서 굳건하게 고립주의를 주창해왔다. 선거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적지 않게 바뀔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특히 트럼프는 공화당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 "세계주의 (globalism)가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 또는 미국주의 (Americanism)가 우리의 새로운 신조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며 고립주의 대외정책을 강조했다. 강령에는 미국 예외주의 (American exceptionalism)도 포함되었다. 여기서 미국이 국제사회와 함께 나아간다는 세계주의는 국제주의 대외정책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미국 우선주의나 미국의 특수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는 미국주의는 고립주의 대외정책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미국이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는 일방주의와 제국주의로도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는 예외주의는 신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선민의식에서 출발하는데, 이 역시 2000년대 부쉬 독트린에서 드러났듯 일방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는 구체적으로 군사.안보 분야에서 해외에 배치된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주둔비용을 전부 부담하라며 그렇지 않으면 철수시키겠다고 윽박지른다. 북한과 관련해서는 김정은이 미치광이지만 인정은 해줘야 한다며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무역.통상 분야에서는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중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다짐한다.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보호무역 정책을 강조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을 포함한 모든 무역협정을 통해 미국이 손해 본다며 다시 협상하겠다고 벼른다.
따라서 트럼프가 집권하면 (신)고립주의 대외정책에 따라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겠지만 세계적으로 미국에 의한 전쟁은 줄어들 것이다. 군사.안보 분야에서 중국과의 경쟁과 갈등 역시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주한미군은 쉽게 철수되지 않을 것이다. 주한미군을 통해 북한의 남침을 막는 남한의 이익보다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군사.안보 분야에서 동맹국들과의 공조를 중시하겠다고 주장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급속하게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아시아 회귀 (pivot to Asia) 또는 재균형 (rebalancing) 정책은 2011년 당시 클린턴 국무부장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일본+남한의 공조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러나 남편 빌 클린턴이 대통령을 하던 2000년 미국이 북한과 고위급 협상과 교류를 통해 국교정상화까지 나아가려 했던 경험은 아내 힐러리 클린턴이 집권할 경우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의 배반이나 도발 때문이 아니라 2000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부쉬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와 외교 경험이 풍부한 클린턴이 당선되면 미국의 국제주의 대외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중국에 대한 압박 정책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과 갈등은 심화하거나 악화하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미국+일본+남한 사이의 동맹 강화는 중국+러시아+북한의 공조를 이끌어, 중국과 남한의 관계가 훼손되고 남한과 북한의 관계도 진전되기 어려워질 것 같다.
물론 클린턴이든 트럼프든 후보들의 대외정책이 집권 후엔 바뀔 수 있다. 대외정책을 결정하고 전개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역할이 가장 크고 결정적이지만, 대외정책을 주로 담당하는 국가안보위원회 (NSC)와 국무부 그리고 중앙정보국 (CIA)과 국방부 등의 책임자들과 조율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선 대외정책 담당자들이 강경파들이든 온건파들이든 "정치 지도자들은 선거에 의해 바뀔 수 있어도 미국의 이익은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고 서로 견제하고 타협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고립주의로 바뀌게 되길 기대한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다. 앞에서 얘기했듯,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2016년 오늘까지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국제주의 대외정책은 세계 전 지역에 걸쳐 200개 이상의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국가 (IS)와 관련된 끔찍한 폭력과 전쟁도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빚어진 것 아닌가. 민주와 평화를 내세우며 세계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온 국제주의 대외정책의 결과는 끊임없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미국에선 짝수 해마다 11월 첫째 화요일에 선거가 실시된다. 첫째 화요일이 1일이면 둘째 화요일로 늦춰진다. 매월 1일은 각종 부처와 기관에서 회계로 바쁘기 때문이다. 올해가 그런 경우라 11월 8일이 선거일이다. 이 날 임기 4년의 대통령, 임기 4년 주지사 50명의 약 1/3, 임기 6년 연방 상원의원 100명의 약 1/3, 임기 2년의 연방 하원의원 435명 전원이 뽑힌다. 주지사들과 상원의원들이 4년이나 6년마다 한꺼번에 뽑히지 않고 2년마다 나뉘어 뽑히는 것은 급격한 변화를 피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그만큼 안정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나라다.
주요 선출직 가운데 대통령은 간접선거를 통해 뽑힌다. 유권자들에 의해 선정된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것이다. 연방제 때문이다. 미국은 50개의 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다. 나라 안에서는 서로 다른 법률과 제도를 가진 독립국가 같은 주들이 밖으로는 강하고 커다란 하나의 통일국가를 이루고 있는 형태다. 각 주마다 선거제도가 다른 이유요, 각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를 실시하는 배경이다.
이에 따라 2016년 현재 인구가 거의 4000만명에 이르는 캘리포니아주는 상원의원 2명과 하원의원 53명을 합친 55명의 선거인단을 갖고, 겨우 50만명 안팎의 와이오밍주는 상원의원 2명과 하원의원 1명을 합친 3명의 선거인단을 갖는다. 워싱턴 특별구는 독립된 주가 아니지만 수도로서 특별대우를 받아 3명의 선거인단을 할당받는다. 인구가 아무리 적은 주라도 상원의원 2명과 하원의원 1명에 해당되는 선거인단 3명이 배정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인단이 확보되는 과정에서는 연방제 때문에 '승자 독식 (winner-take-all)'이 이루어진다. 유권자들의 투표는 주별로 집계되는데 각 주에서 단 1표라도 많이 얻은 대통령후보가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모두 확보하는 것이다. 대통령후보의 득표에 비례하여 선거인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주에서 A후보가 1800만표를 얻고 B후보가 1500만표를 얻는다면 두 후보가 55명의 선거인단을 득표 비율로 각각 30명과 25명으로 나누어 갖는 게 아니라 A후보가 55명을 싹쓸이한다. 연방제 정신에 따라 주마다 독립적으로 대통령을 뽑는 셈이다.
따라서 한 후보가 인구가 많은 10개 안팎의 주에서 근소한 차이로라도 이기면 인구가 적은 나머지 40개 안팎의 주에서 크게 참패하더라도 선거인단 과반수인 270명을 확보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 가끔 유권자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은 후보가 낙선하는 비민주적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이유다.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고어 민주당 후보가 국민투표에서는 부쉬 공화당 후보보다 약 54만표 더 얻고도 선거인단투표에서는 4표 덜 얻어 떨어지는 등 이런 사례가 네 번이나 있었다.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요소 가운데 하나인 다수결 원칙이 대통령선거에서조차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불합리성 때문에, 간접선거제를 직접선거제로 고치자는 주장이 몇 차례 제기되었다. 그러나 연방제 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각 주의 독립성과 대표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고 헌법 개정이 쉽지 않아 간접선거제가 고수되고 있다.
이러한 간접선거제 때문에 대통령후보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전체 지지율만 가지고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기 어렵다. 각 주의 지지율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올해처럼 클린턴 민주당후보와 트럼프 공화당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적을 때는 더욱 그렇다. 미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 한국은 두 후보 가운데 누가 당선되더라도 국익을 최대한 얻을 수 있도록 잘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두 후보의 대외정책을 비교해본다.
미국의 대외정책: 고립주의와 국제주의에 관해
요즘 미국 대통령후보들의 대외정책을 소개하거나 비교하는 언론기사나 평론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용어가 '고립주의 (isolationism)'와 '국제주의 (internationalism)'다. 클린턴은 국제주의 외교노선을 취하고 트럼프는 고립주의를 지향할 것이라는 식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분석하거나 평가할 때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분류 방법이기도 하다.
고립주의와 국제주의는 미국의 대외적 역할에 대한 인식과 방법의 차이로 구별된다. 고립주의는 미국이 자신의 국가안보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 한 세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외교방침이다.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나 지원을 줄이고 군대의 해외 파견을 자제하거나 이미 외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철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세계 경찰' 같은 광범위한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국제주의는 말 그대로 미국의 국제적 역할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겠다는 외교방침이다.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나 지원을 늘리고 군대를 해외에 전진 배치시키며 세계문제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건국 초기엔 고립주의 외교노선을 걸었다. 대표적인 게 '먼로 독트린 (Monroe Doctrine)'이다. 먼로 대통령이 1823년 발표한 외교정책이다. 유럽 열강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에 간섭하지 말고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이후 스페인의 약화로 중남미 국가들이 독립을 선언하자, 라틴아메리카를 더 이상 유럽의 식민지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미국도 유럽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기서 '고립'이란 용어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미국이 마치 고립을 느낄 정도로 대외적 역할을 축소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건국 이후 세계문제로부터 진정 고립을 추구한 적은 없다. 실제로 먼로 독트린은 유럽 강국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침입하는 것을 봉쇄하여 이 지역에서 미국의 안전과 영향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려는 공세적 정책이었다. 따라서 '고립주의'라는 용어보다 '독자주의'나 '불간섭주의'라는 말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후 세계적 전환기 또는 격변기에 "미국의 세계적 역할에 관한 대 논쟁"이 벌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 세계적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에 그랬다. 그리고 미국의 세계적 패권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2010년대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클린턴과 트럼프 사이에 이 논쟁이 다시 일고 있는 것이다.
첫째,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19년 윌슨 (Wilson) 대통령은 국제연맹 (League of Nations)을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국제협력을 촉진하고 군비를 축소하며 평화적 분쟁 해결을 통해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지키자는 취지였다. 1920년 세계 최초의 국제기구로 출범했지만 제안자인 미국은 의회의 반대로 가입하지 못했다. 공화당이 다수파를 차지하던 상원에서 먼로 독트린에 어긋난다며 비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군을 국제연맹군의 일원이 되게 할 수 없다며 소극적 국제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보호무역 정책을 펴는 등 고립주의 노선을 고수한 것이다.
둘째,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유럽의 열강들이 쇠퇴의 길로 빠져드는 가운데 세계 제1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국제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고립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국제주의 외교정책을 펼친 것이다. 패전국 독일은 물론 승전국 영국과 프랑스도 겨우 30년 사이에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속하게 퇴조한 반면, 상대적으로 전쟁의 부담이나 피해가 적었던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자리 잡아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면에서 힘의 공백을 채우며 패권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련 공산주의라는 명확한 적"이 등장하자 미국은 소련의 팽창을 봉쇄하고 공산주의의 확장을 저지하며 "미국에 의한 세계평화 (Pax Americana)"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16년 현재 세계 곳곳에 약 1000곳의 군사기지를 운영하며, 150개 이상의 국가에 15만 명 이상의 병력을 전진 배치시켜 놓고 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전 지역에 걸쳐 200개 이상의 전쟁을 일으키고 개입해왔다.
셋째, 1980년대 말 동유럽 시회주의권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되어 냉전이 끝나자 고립주의와 국제주의 사이의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특히 199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전개되었는데, 이 때 논의된 고립주의를 과거의 고립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신고립주의 (neo-isolationism)'라고 일컫기도 한다.
먼저 (신)고립주의자들은 소련이 붕괴되어 미국의 안보에 위협적인 요소가 사라졌기 때문에 해외에 전진 배치된 미군들을 철수하고 국제기구에 대한 지원을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문제 해결에 국력을 쏟으며 사회복지를 향상시키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국제주의자들은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유일한 초강대국 (the only Superpower)'으로서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문제에 지속적으로 개입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확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미국 안보를 튼튼히 하고 수출 촉진을 통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엔 "국제경제 체제의 생명력은 국제정치 질서에 달려있고, 정치 질서는 군사 안보에 크게 의존한다"거나, "미국 국력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군사력의 위협이나 사용이기 때문에,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는 일반적으로 실패한다"는 등의 주장이 곁들여졌다.
그런데 당시 (신)고립주의자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소수 의원들이나 무소속 대통령 후보들에 불과했기 때문에 실제로 행정부의 대외정책 결정이나 전개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외침으로만 끝났던 것이다. 미국의 국제주의 외교정책은 냉전 종식 이후 오히려 강화되었는데, 기조나 특징은 크게 다음과 같다.
1) 미국은 소련이 사라진 '새로운 세계의 질서 (New World Order)'를 이끌었다. 새로운 경쟁국이 등장하는 것을 저지하는데 힘썼다. 중국처럼 세계적 강대국이 될 잠재력을 가진 나라는 지역 패권국으로 떠오르는 것부터 막았다.
2)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확장함으로써 미국의 일자리를 늘리고자 했다. 이와 아울러 "국내문제와 대외문제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총력외교 (total diplomacy)를 전개했다. 미국이 당면한 절박한 과제는 경제회복인데 이는 해외시장을 개척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을 확산시키는 것을 대외정책의 기본 목표로 삼는다는 것이다.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자유시장 민주주의'체제로 전환하도록 이끄는 것은 '미국의 자선'이 아니라 미국의 경제 및 안보이익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깔려있었다.
3) '미국 제일주의 (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상황에 따라서는 독자주의나 일방주의 (unilateralism) 노선을 취했다.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며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도 했던 것이다.
넷째, 위와 같은 외교기조가 지속되어온 가운데 2016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다시 (신)고립주의 대외정책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1990년대 초 냉전 종식 직후와 달리 무소속 후보들이 아닌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들에 의해서다. 민주당의 클린턴은 군사.안보 분야에서는 국제주의 노선을 천명하지만 무역.통상 분야에서는 고립주의에 가까운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의 트럼프는 모든 분야에서 굳건하게 고립주의를 주창해왔다. 선거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적지 않게 바뀔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특히 트럼프는 공화당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 "세계주의 (globalism)가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 또는 미국주의 (Americanism)가 우리의 새로운 신조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며 고립주의 대외정책을 강조했다. 강령에는 미국 예외주의 (American exceptionalism)도 포함되었다. 여기서 미국이 국제사회와 함께 나아간다는 세계주의는 국제주의 대외정책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미국 우선주의나 미국의 특수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는 미국주의는 고립주의 대외정책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미국이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는 일방주의와 제국주의로도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는 예외주의는 신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선민의식에서 출발하는데, 이 역시 2000년대 부쉬 독트린에서 드러났듯 일방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는 구체적으로 군사.안보 분야에서 해외에 배치된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주둔비용을 전부 부담하라며 그렇지 않으면 철수시키겠다고 윽박지른다. 북한과 관련해서는 김정은이 미치광이지만 인정은 해줘야 한다며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무역.통상 분야에서는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중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다짐한다.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보호무역 정책을 강조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을 포함한 모든 무역협정을 통해 미국이 손해 본다며 다시 협상하겠다고 벼른다.
따라서 트럼프가 집권하면 (신)고립주의 대외정책에 따라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겠지만 세계적으로 미국에 의한 전쟁은 줄어들 것이다. 군사.안보 분야에서 중국과의 경쟁과 갈등 역시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주한미군은 쉽게 철수되지 않을 것이다. 주한미군을 통해 북한의 남침을 막는 남한의 이익보다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군사.안보 분야에서 동맹국들과의 공조를 중시하겠다고 주장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급속하게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아시아 회귀 (pivot to Asia) 또는 재균형 (rebalancing) 정책은 2011년 당시 클린턴 국무부장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일본+남한의 공조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러나 남편 빌 클린턴이 대통령을 하던 2000년 미국이 북한과 고위급 협상과 교류를 통해 국교정상화까지 나아가려 했던 경험은 아내 힐러리 클린턴이 집권할 경우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의 배반이나 도발 때문이 아니라 2000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부쉬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와 외교 경험이 풍부한 클린턴이 당선되면 미국의 국제주의 대외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중국에 대한 압박 정책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과 갈등은 심화하거나 악화하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미국+일본+남한 사이의 동맹 강화는 중국+러시아+북한의 공조를 이끌어, 중국과 남한의 관계가 훼손되고 남한과 북한의 관계도 진전되기 어려워질 것 같다.
물론 클린턴이든 트럼프든 후보들의 대외정책이 집권 후엔 바뀔 수 있다. 대외정책을 결정하고 전개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역할이 가장 크고 결정적이지만, 대외정책을 주로 담당하는 국가안보위원회 (NSC)와 국무부 그리고 중앙정보국 (CIA)과 국방부 등의 책임자들과 조율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선 대외정책 담당자들이 강경파들이든 온건파들이든 "정치 지도자들은 선거에 의해 바뀔 수 있어도 미국의 이익은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고 서로 견제하고 타협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고립주의로 바뀌게 되길 기대한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다. 앞에서 얘기했듯,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2016년 오늘까지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국제주의 대외정책은 세계 전 지역에 걸쳐 200개 이상의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국가 (IS)와 관련된 끔찍한 폭력과 전쟁도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빚어진 것 아닌가. 민주와 평화를 내세우며 세계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온 국제주의 대외정책의 결과는 끊임없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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