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3

(8)이광수 저 『유정』

(8)이광수 저 『유정』

이광수 저 『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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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소설 중에서 제일 좋은 작품을 한 권 고르라고 하면 나는 서슴지 않고 춘원 이광수 선생의 유정을 들고 싶다.
춘원 자신도 자기가 쓴 수십 편의 소설 중에서 가장 애착과 자신을 갖는 것은 유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내 작품 중에서 후세에 남을 만한 것이 있다면 또 외람한 말이나 외국어로 번역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유정이다.』
절실하게 그린 인간의 정|영육의 갈등 속에 고민하는 구도자상 부각|높은 휴머니즘…춘원문학의 정수
인간에는 정이 있다. 정이 있기 때문에 인생은 살맛이 있고 사는 보람이 있다. 정은 인생의 맑은 향기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정 때문에 우리는 또한 슬퍼하고 괴로워해야 한다. 특히 남녀간에 오고가는 사랑의 정은 인간의 정 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가장 뜨겁다. 그 때문에 기쁨과 행복도 크지만 슬픔과 괴로움도 크다. 춘원 자신이 말한 바와 같이 『유정』은 인정의 아름다움을 그리려고 한 작품이다.
정은 아름답지만 비극의 씨도 된다. 서로 사랑해서는 안될 사이에 강하고 뜨거운 정을 느낄 때 인생은 비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유정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어질고 착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랑의 정 때문에 괴로워하고 슬픈 인생 길을 걷는다. 유정의 주인공 최철은 독립운동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자기의 막역한 친구의 딸 남정임을 자기 친딸처럼 키운다. 고독한 남정임은 아버지의 친구인 최철을 친아버지처럼 믿고 따른다. 최철은 독실한 교육자다. 최철과 정임은 서로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는 세상의 오해를 받는다. 최철은 사랑의 정을 누르고 또 종교적으로 순화시키기 위해서 혼자 고국을 버리고 시베리아로 떠난다.
남정임도 나중에 따라간다. 시베리아에서 최철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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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인간의 정의 아름다움을 유정처럼 절실하게 그린 소설을 우리는 발견하지 못한다. 애욕의 불길을 신앙과 용기로써 이기려고 악전고투하는 인간 최철의 구도자적 고민을 문호 춘원은 아름다운 필치로 생생하게 그려놓았다.
특히 시베리아의 자연 묘사의 아름다움에 우리는 도취하지 않을 수 없다. 육의 사랑과 영의 구원 사이에서 고민하며 시베리아 숲 속에서 혼자 극기향상의 생활을 힘쓰는 최철에서 우리는 높은 휴머니즘의 맥박을 강하게 느낀다.
유정은 우리의 마음을 순화시켜 준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인간의 정의 향기로 우리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준다.
유정은 춘원문학의 정수일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명작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 작품을 널리 알리고 읽히는 것은 나의 즐거움의 하나다. [안병욱(숭실대학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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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8)이광수 저 『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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