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러진 지 50일째, 가족들의 일상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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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쓰러지신 지 50일째, 정부는 아직까지 사과 한마디 없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의 일상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아빠는 11월 14일 집회 때 물대포에 맞아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올 때부터 의식이 없었고, 지금까지도 의식이 없다. 뇌출혈 수술을 하셨고, 수술 후 뇌의 붓기를 염려해 떼어낸 두개골을 아직 덮지 못한 상태다. 뇌의 붓기는 여전하다. 기관지를 뚫어 인공호흡기를 연결했고, 혈압•심박수•체온•소화•소변량 등 거의 모든 대사 활동을 약물과 기기에 의존하고 있다. 뇌뿌리가 손상되고 대뇌의 50% 이상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의식이 깨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아빠가 언제까지 견디실지는 알 수 없지만, 가족들은 아침저녁으로 30분씩 면회를 하며 손발을 닦아드리고 그날 일어난 일들과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손자(나의 조카) 이야기를 해드린다. 가끔 손자 동영상을 보여드리기도 한다. 물론 눈은 못 뜨시지만.
사고 이후 몇몇 언론과 인터뷰를 했는데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이 "이해가 안 된다, 말이 안 된다"였다. 나의 상식으로는 저들의 무대응이 정말 이해가 안 되었다. 공권력의 잘못으로 한 시민의 생명권이 중대하게 침해되었는데 관련자 처벌은커녕 사과 한마디도 없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 아무 말도 없는 정부. 정부의 무대응에 맞닥뜨리면서 나는 정부와 그 구성원들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고자 하는 나는 비인간인 저들을 영원히 이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저들이 우리의 말을 들어줄 때까지 지치지 않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경찰청장 강신명은 사고 이후 11월 23일, "결과가 중한 것만 가지고 '무엇이 잘못됐다 잘됐다'라고 말하는 건 이성적이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기사를 읽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성을 잃고 경찰청에 쫓아가 불이라도 질렀던가? 가장 기본적이고도 상식적인 요구를 했을 뿐인데 비이성적이라고 매도당하고 나니 헛웃음만 났다. 그리고 슬픔과 충격에 빠져 있는 가족들에게 고르고 골라서 쓴 단어가 '비이성적'이라니......
더 황당한 사실. 11월 14일 시위 진압을 했던 경찰 관계자들이 승진을 했다고 한다. 이 뉴스를 읽고서는 정말 분노가 치밀었다. 이렇게 큰 사건이 벌어졌으면 관련자들은 당장 모든 직무를 정지하고 수사에 철저하게 임해야 하지 않나? 사건에 관계된 경찰관들은 승진과 보상 체계에서 즉각적으로 제외되지 않나? 설마 우리나라 경찰 내부에는 그런 프로토콜이 존재하지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너무 창피한 일이다. 그날 진압의 실질적 책임자인 서울지방경찰청장 구은수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해임된 것인지 은퇴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정부가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해임했을 것이다.) 그의 몇 가지 행동을 보고 나는 기가 막혔는데, 오늘은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다. 그는 일반교통방해죄 혐의를 받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잡으러 조계사로 직접 출동했다. 천만 서울 시민의 치안을 책임지는 서울경찰청장 자리가 그렇게 한가한 자리인지? 서울경찰청장쯤 되면 높은 사람이니까, 자기 할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의 상사로는 경찰청장과 행자부 장관, 대통령 정도가 있는데, 어느 누구도 일반교통방해죄 혐의를 받은 사람을 직접 잡으러 가라고 명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을 하라고 그 자리에 앉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더 중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내팽개치고 경범죄 위반 혐의자를 직접 잡으러 간단 말인가?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제를 강행하려고 한다. 우선순위를 제대로 못 정하는 사람은 높은 성과를 낼 수 없다. 아! 그래서 정부는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할 줄 모르는 전임 서울경찰청장을 저성과자로 해고한 것인가? 그렇다면 다행이다. 다시는 그가 공직에서건 정부산하기관에서건 어떠한 직무도 맡지 않았으면 한다. 그는 테러리스트가 서울시를 위협해도 경범죄 위반 혐의자를 먼저 잡으러 갈 사람이니까.
구은수의 뒤를 이어 취임한 이상원은 취임사에서 "정부의 노동개혁을 뒷받침"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직무는 서울시의 치안을 책임지는 것이다. 자신의 직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맡고 있다니, 서울 시민인 나는 내가 사는 도시의 치안 유지가 심히 우려된다. 자신의 직무를 모르는 자가 고성과자가 될 리는 없으므로, 정부는 이상원 청장의 능력 평가를 철저히 시행하여 저성과자로 판명될 시 지체 없이 해고하기 바란다. 정부가 앞장서야 새로운 정책이 빨리 자리잡을 테니까 말이다. (밝혀두자면 나는 저성과자 해고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서울시 치안 걱정은 이쯤에서 마치고, 난 다시 아빠와 우리 가족 걱정을 해야겠다. 당시 동영상을 보면 아빠는 물대포에 맞고 주저앉았다가 물대포를 계속 맞고 결국 바닥에 쓰러진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만약 아빠가 주저앉았을 때, 그때만이라도 물대포 발사를 멈췄으면 지금 이 지경으로 다치지 않지는 않았을까? 또 생각한다. 아빠는 70이 다 되는 노인이고 뭔가 위법 행위를 했다면 경찰관 두 명만 왔어도 충분히 잡아갈 수 있었을 텐데, 왜 체포하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물대포를 쐈을까? 경찰들이 하는 일은 치안을 지키는 건데, 그들은 시위대가 사고 치지 않도록 주의시키는 역할만 하면 되는데, 왜 시위대들이 적이라도 되는 양, 자신들이 군인이라도 되는 양 그렇게 비무장 시민을 무자비하게 공격했을까? 이후 두 차례의 시위는 경찰들이 지켜주면서 평화롭게 끝났는데, 왜 하필 11월 14일에는 경찰이 충분히 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가장 큰 의문은 이것이다. 왜 하필 우리 아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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