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05

206 임진왜란 420년 한중 워크샵을 마치고

동북아역사재단 뉴스레터



임진왜란 420년 한중 워크샵을 마치고
홍면기 | 정책기획실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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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420년 한ㆍ중 워크샵
재단은 지난 5월 10일(목) 재단 중회의실에서「임진왜란의 전개와 명의 대응」을 주제로 임진왜란 발발 420년 한중 워크샵을 개최하였다. 이번 워크샵은 일국주의적, 애국주의적 관점을 넘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반면교사로서, 그리고 이 세계사적 전쟁에 대한 새로운 연구 주제와 방법론을 발굴하기 위해 기획되었으며 총 4개의 세션에 한국·중국·대만에서 16명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8개의 주제발표와 이에 대한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반면교사로서, 임진왜란에 대한 새로운 연구 방법론 발굴
제1세션에서 중국 절강 공상대의 정지에시(鄭潔西)교수는 임진왜란 기간 명의 일본 본토 정벌 계획과 섬라국(暹羅國) 참전 논의 경과를 상술하면서 이런 사실은 당시 명조의 동아시아 전략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로서의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정교수 논문에 대해 재단 윤유숙 박사는 당시 명 내부의 정치역학과 관련하여 조선출병에 반대하는 세력이 소위 조일 결탁설을 유포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국방대 노영구 교수는 임진왜란이 조선과 일본의 군사제도, 병법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 과정을 구체적으로 추적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노교수는 이 전쟁 후 조선과 일본은 대륙과 해양으로부터의 상이한 위협인식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양국의 전략문화 형성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하는 점을 역사적 맥락에서 설명하기도 했다. 전쟁사, 특히 전술과 무기체계의 발전에 주목하고 있는 대만 청화대 창시우밍(常修銘) 교수는 전쟁 초기 일방적 일본군의 우위는 단순한 철포의 발달이라는 측면 뿐 아니라 서구에서의 보병혁명에 비견되는 일본군의 조직과 전술 측면의 진전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팡즈위엔(方志遠) 강서사범대 교수는 만력연간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장졸들에 관한 체계적 분석을 시도하였다. 이 논문의 토론을 맡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완범 교수는 임진왜란을 명과 일본 간의 전쟁으로 보려는 경향성에 경계를 표시하고, 전쟁의 명칭에 대한 학계의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토론을 맡은 중국 중산대학 웨이지쟝(魏志江) 교수가 명나라 수군 참전 목적 등의 쟁점을 제기하면서 명 수군 작전의 지휘권 등에 대한 이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제2세션에서 남개대학 순웨이궈(孫衛國) 교수는 우리에게 익숙한 역관 홍순언과 명 병부상서 석성(石星)의 후실 유씨와의 고사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순교수는 역관 홍순언이명에 사절로 가는 길에 유곽에서 석성의 계실을 구했고, 이것이 석성이 참전논의를 주도하게 된 배경이었다는 설에 문제가 있음을 제기하였다. 이 이야기는 후에 만들어진 얘기일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석성이 조선 출병을 결정한 것은 조선의 청병 외교가 주효했고 여기에 책임감이 강했던 석성의 개성이 결합한 결과라는 것이다. 순 교수는 아울러 임란 후 조선에서의 석성에 대한 평가도 국가이익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판단에 근거하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토론에 나선 명지대 한명기 교수는 조선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봉공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 조선이 그의 구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원인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리고 석성이 정치적 운명을 걸면서 일본과의 봉공에 집착했던 것은 군사적·재정적 상황 악화와 관련이 있는지 등 관련문제에 대한 진전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오후에 속개된 제3세션에서 중국 사회과학원 양하이잉(楊海英) 박사는 전쟁 중 조중변경에서 중국 내륙의 운하까지를 연계하는 거대한 무역망을 구성했던 오종도(吳宗道)의 사례를 집중 소개하였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허남린 교수는 전쟁을 국가, 민족, 애국심 등의 개념이 아닌 개인의 이익추구라는 점에서 보려는 양박사의 접근은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하였다. 해사 박물관의 이상훈 박사는 이순신 장군의 간찰을 통해 정유재란 때 명 해군의 참전과정과 배경, 그리고 연합작전과 관련된 제 문제를 검토하였다. 이 박사는 이순신 장군의 친필 간찰을 공개하면서 이 간찰을 통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명 수군과의 조화로운 연합을 이루어나가는 장군의 주도 면밀함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제4세션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중요한 문제가 되었던 양초(糧草) 문제에 대한 한중 양국 학자의 대립적 시각이 제기되었다. 허남린 교수는 군량의 조달과 운송의 어려움에 주목했던 기존 연구경향에 이의를 제기하고 군량문제야말로 명과 조선 사이의 정치역학을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주제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명이 일본과의 전쟁 수행과 강화협상 과정에서 식량문제를 정치적 무기로 활용한 측면이 강했다는 것이다. 반면 산동대학 천샹셩(陳尙勝) 교수는 조선의 양초 지원 부족이 명군의 작전에 지장을 초래했으며, 이는 조선의 정치적 무력과 전쟁대응 능력의 한계를 노정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였다. 이에 대해 경북대 홍성구 교수는 명대 군량 조달 시스템을 밝혀 볼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경략 송응창이 마련한 양초가 얼마나 되었는지 그리고 실제로 조선으로 운송된 군량은 어느 정도의 규모였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자료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재단의 케네스 로빈슨 박사는 병력과 군수물자의 이동 경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며, 당시 조선이 남병과 북병 간의 갈등관계를 잘 파악하고 외교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황해의 물이 깊다한들 한중간의 우의만큼 깊으랴"
그동안 임진왜란의 전개과정과 명의 대응은 임란연구에서 상대적으로 부진한 연구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이 워크샵은 이런 연구의 공백을 메꾸면서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통해 한ㆍ중관계의 미래를 탐색해 나갈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석자들도 종합토론에서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이번 회의가 내실 있게 진행된데 만족을 표시하였다. 특히, 중국 측 학자들은 주변으로부터 중국을 보자는 최근 중국학계의 분위기를 전하며 동북아역사재단이 평화를 위한 전쟁 연구라는 입장에서 임진왜란에 관한 체계적인 자료 집적과 후속 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해 줄 것을 희망하였다. 천샹셩 교수는 이백이 자신의 지기에게 증왕륜(贈王倫)이라는 시를 빌어 "황해의 물이 깊다한들 한ㆍ중간의 우의만큼 깊으랴"(黃海之水三千尺, 不及中韓情誼深)라고 이번 회의의 의의를 압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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